“조합원을 위한 노조 활동을 시작하자”
“조합원을 위한 노조 활동을 시작하자”
  • 박상재 기자
  • 승인 2014.05.08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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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정치색’에 근로조건은 뒷전
공기업에 적자기업 낙인은 부적절
[인터뷰 2] 이향진 서울도시철도공사통합노조 위원장

ⓒ 이현석 객원기자 175studio@gmail.com
2011년 7월 1일,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 설립이 가능해지면서 서울특별시도시철도공사는 이와 관련해 가장 ‘뜨거운’ 사업장이 되었다. 2012년 8월, 이른바 ‘5678노조’, ‘우리노조’, ‘통합노조’ 등 3개 노조가 통합 선거를 거쳐 서울도시철도공사통합노조(위원장 이향진, 이하 통합노조)를 출범시킨다.

민주노총 산하의 기존 노조와 달리 ‘한국노총 행’을 공약으로 내세웠던 이향진 집행부의 당선으로 통합노조는 2012년 9월 한국노총 서울지역본부 가입, 2013년 10월 공공노련 가입을 통해 상급단체를 확정한다. 이향진 위원장을 만나 노조 설립과 현안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복수노조 설립의 계기가 됐던 특별한 사건이 있었나?

“1996년에 입사해서 1998년에 노동조합 대의원을 했다. 당시만 해도 근무 환경이 얼마나 열악했냐면, 철제 간이침대에서 이불 한 채를 돌려 써가며 교대 근무자가 잠을 잤다. 지금은 그나마 순간온수기라도 달려 있지만, 찬물로 세수하고 양치질하면서. 조금씩 근로조건이 바뀌어가는 모습들을 보며 노동조합의 필요성에 대해 크게 느낀 바가 있었다.

노조 간부들은 항상 이런 얘기를 한다. ‘노동조합은 조합원들의 것입니다.’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이런저런 이유로 정작 조합원의 근로조건 등에 대한 사안이 뒷전으로 밀리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우리 조직의 경우도 정치색이 너무 짙은 부류, 상대적으로 옅은 부류로 노조 안에서도 분위기가 다른 모습을 찾아볼 수 있었는데, 정치적 명분 때문에 정작 조합원들을 위한 활동은 도외시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개인적으론 복수노조 설립이 아니면 안 되겠다고 마음먹게 된 직접적인 계기가 있었다. 지하철 역내의 즉석사진 부스를 본 적 있을 것이다. 노조 역무 본부장을 맡고 있을 당시였는데, 외부 사업자에게 맡기던 그 즉석사진 부스를 공사 직원들이 직접 운영하자고 제안했었다. 대신 수익의 20%를 공사 직원들을 위해 사용하자는 제안이었다. 적자로 허덕이던 공사는 직원들이 노력해서 수익을 내겠다고 하니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수익금을 활용할 역무 후생위원회를 만들어 별개로 운영했다. 여기서 모인 금액은 직원들이 상을 당하면 금전적인 지원을 하는 데 활용했다. 이후 노조 선거에서 낙마했는데, 그때 당선된 본부장은 위원회를 없앴다. 개인 사조직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결국 모든 사안을 정치적으로 판단하지, 실질적인 조합원들의 복지는 뒷전이라고 느꼈다.”

그간에 여러 가지 난관을 겪으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점이 있다면?

“지난 해 퇴직금누진제(퇴직수당)와 관련된 사안이 가장 힘들지 않았나 싶다. 이게 단순히 퇴직수당만 걸려 있는 문제라면 장기전을 각오하고 버텨봤을 것이다. 하지만 공사 직원들의 세대 간 갈등을 이용해 사측과 서울시가 압력을 행사하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상황이었다.

공기업에 대한 대중의 선입견이 심한데, 우리와 같은 지방공기업은 연봉 수준이 특별히 높은 게 아니다. 20년 근속을 해도 연봉 5천만 원 수준이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이 있으면 모르겠지만, 대학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시작해서 결혼하고, 아이들을 키우며 서울 근교에 집 한 칸을 장만한다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한숨 돌리나 싶으면 정년이 가까워 오고, 자녀들이 대학에 입학한다.

그렇다고 물가가 무섭게 올라가는 만큼 임금이 오르는 것도 아니다. 동결, 동결, 잘 해야 3~4%씩 오른다. 안정적인 직장에 대한 기대로 나름대로 치열한 경쟁을 뚫고 공기업에 들어온 직원들은 자괴감에 빠진다.

사회적 통념상 퇴직수당을 없애는 게 옳다는 이들이 있는데, 과연 어느 수준이 사회적 통념이 되는 건지 되물어보고 싶다. 일괄적인 잣대로 일단 없애는 게 대중들이 만족할 만한 정책인 건지, 갈수록 양극화가 심화되는 가운데 무작정 하향평준화를 지향하는 게 의미가 있는 건지 궁금하다.”

공사와 노동조합의 대표적인 현안이라고 하면 어떤 것이 있나?

“순수하게 원가만 놓고 봤을 때 지하철 승객 한 사람 당 요금을 천오백 원 선으로 잡아야 한다. 대부분의 공기업이 비슷한 상황이지만 도시철도 역시 꾸준히 적자가 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물론 시민들을 위해 공공요금을 낮춰야 한다는 점은 맞다. 하지만 적어도 원가 수준까지는 서울시가 됐든, 정부가 됐든 보전이 필요한 부분이다. 정책을 통해 생색은 자기들이 내면서, 애꿎은 직원들에게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공사를 적자기업이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적절한 얘기인지 의문스럽다.

전체 궤도 산업의 문제라고 볼 수 있겠는데, 무분별하게 구조조정이 시행되고 있는 점도 잠재적인 폭탄이라고 본다. 예전에 열 명이 하던 일을 지금은 서너 명이 하고 있으니까. 노동 강도에 대한 부분은 물론, 정비나 점검과 같이 열차 안전과 관련한 부분은 심각한 문제이다. 그나마 줄어든 인원은 돈벌이를 위한 수익 사업에 투입하고 있다. 역내 상가관리단 같은 곳으로 인원을 빼면서.

개인적으로 꿈이 있다면 조합원 학자금 지원 제도를 만드는 것이다. 과거 단일 노조였을 때 조합원 규모가 5천5백 명 수준이었다. 결코 적은 수가 아니다. 노동조합이 역량을 결집한다면 적어도 5년이면 학자금 지원을 위한 재원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사측이나 서울시에 무작정 요구안만 제시하고, 관철되지 않았을 때는 ‘어쩔 수 없지 않냐’고 변명하는 방식의 노동운동에서 벗어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