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의존병’ 걸렸던 네덜란드를 살린 기적
‘복지의존병’ 걸렸던 네덜란드를 살린 기적
  • 오도엽 객원기자
  • 승인 2014.05.08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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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정 대타협 통해 유연안정성 모델 정착
퇴직 전 소득의 70% 보장으로 노후 불안 없애
[기획 연재] ‘복지강국의 비밀’ (1) 네덜란드

한국에서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온갖 복지공약이 쏟아지고 있다. 국가와 국민의 이익인지 당선을 위한 표 끌어 모으기인지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는 공약도 있다. 기초적인 사회보장체제조차 갖추지 못해 시민들이 생을 등지는 실정인데, 공약만 보면 ‘무상’ 천국이다.

복지강국의 앞선 사회보장제도를 무조건 따라가자는 것은 아니다. 복지강국이 되기까지 정부와 기업, 시민들은 어떤 과정과 노력을 기울였는지를 탐구한다. 이를 통해 한국이 복지강국으로 가는 여정에서 정부와 기업과 시민이 지녀야 할 역할을 찾으려고 한다.

연재의 시작은 네덜란드다. 한국사회의 유연안정성이 사회안전망 없이 비정규직과 정리해고 양산으로 치닫고 있기에 네덜란드 사례를 소개하는 게 무척 조심스럽다. 노사정 대화가 파국으로 치닫는 한국 상황에서 사회적 대타협의 모델이 되고 있는 네덜란드는 오해와 오독이 될 가능성도 무척 높다. 네덜란드의 사회적 협약이었던 ‘바세나르협약’의 타결은 노조의 조직력 쇠퇴, 조합원 사기가 추락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4월 15일, 국민연금연구원 연금제도실장으로 있는 이용하 박사를 통해 네덜란드 사회보장제도와 함께 사회적 대화, 한국의 공적연금 등에 대해 인터뷰했다. 네덜란드 사회보장제도 소개에 대해서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펴낸 <주요국의 사회보장제도 - 네덜란드편>을 참조하였다.

<참여와혁신> ‘복지강국의 비밀’연재 순서
1. 네덜란드 
2. 독일
3. 스웨덴 
4. 영국
5. 호주 
6. 종합

▲ 국민연금연구원 연금제도실장 이용하 박사
ⓒ 이현석 객원기자 175studio@gmail.com
국가, 기능은 최소화해도 강력한 컨트롤

네덜란드의 사회보장체제를 혼합유형(Hybrid type)이라고 말한다.

“네덜란드는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해양세력(영국)의 영향과 대륙세력(독일)의 영향을 동시에 받는다. 그 중간에서 그 두 체제를 적절하게 혼합한 게 네덜란드다. 영국의 자유주의적인 복지체제와 독일과 같이 국가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가부장적인 체제가 혼합되어 있다.

독일은 시장경제를 중시하면서도 시장경제가 만든 문제를 국가가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이고, 영국은 국가가 최소의 역할만 하고 나머지를 개인의 자유에 맡긴다. 이런 두 사고가 만나면서 네덜란드 같은 사회보장체제가 형성되었다. 네덜란드는 국가의 기능은 최소화하면서도 민간부분을 강력히 컨트롤한다.”

네덜란드는 다층노후보장체제를 갖췄다고 말한다. 공적연금인 기초연금(일반노령연금과 일반유족연금)과 사적연금인 기업(퇴직)연금이 혼합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기초노령연금이 네덜란드의 기초연금이고, 우리나라의 퇴직금하고 국민연금을 합해 놓은 것이 네덜란드의 퇴직연금제도라고 보면 된다. 네덜란드 노후보장 정책의 목표가 퇴직 전 소득의 70% 보장이다. 기초연금과 퇴직연금이 서로 연동돼 두 연금을 합한 실수급액이 퇴직 전 소득의 70%가 되도록 보장하는 것이다.”

한국의 기초노령연금을 네덜란드의 공적연금인 기초연금으로 보면 된다고 했는데, 국가가 시행하는 공적연금은 어떤 특성을 지녀야 하나.

“국가가 시행한다는 말은 어떤 제도에 대한 개입을 국가적인 차원에서 하는 거다. 국가가 관리하고 재정적인 책임을 지는 게 공적연금의 가장 큰 특징이다. 조세를 통하든 보험료를 걷든 실제 혜택을 줄 때는 가난한 사람에게 더 주고 부유한 사람에게 덜 주는 재분배 개념도 결합돼 있다. 재분배 개념과 공적관리, 재정적인 최종 책임의 세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을 때 공적연금이라고 할 수 있다.”

네덜란드엔 연금 사각지대 없다

네덜란드의 기초연금은 네덜란드에 거주하면 누구나 받고, 퇴직연금도 산별 단체협약을 통해 전체 노동자의 95%에게 적용되고 있다. 공적연금 사각지대라는 말이 있는데 네덜란드는 어떤가.

“네덜란드의 경우 사각지대라는 개념이 없다. 사각지대 개념은 중후진국에서 발생하는 문젠데, 가장 큰 이유는 불완전한 사회시스템에 있다. 소득이 투명하게 드러나느냐 안 드러나느냐의 차이다. (네덜란드의 경우) 소득이 투명하게 드러난다. 조그만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해도 국세청에 신고하게 돼 있다. 소득이 있다면 누구나 기초연금을 납부를 하는데, 그게 세금이랑 비슷하다. 소득에 비례해서 보험료를 내는데 그게 한 19%정도다. (연금을) 줄 때는 그것(납부금액)과 관계없이 준다. 네덜란드에 거주하면 강제 가입대상이고, 연금혜택을 받는다.

기초연금에 대한 개념이 정확해야 한다. 기초연금을 그냥 못 사는 사람에게 주는 부조로 대부분 이해한다. 그런데 부조는 기초연금이 아니다. 부조는 부조일 뿐이다. 국민연금이 보험료를 낸 사람한테 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초연금은 세금을 낸 사람 누구에게나 준다는 개념이다. 잘 사는 사람이든 못 사는 사람이든 간에 세금을 내야 한다. 많이 내든 적게 내든.

(재산이나 소득을 떠나) 누구라도 생애에서 어려움에 처해질 수 있다. 돈 있는 사람은 결코 어려움에 처해질 수 없다는 전제를 가지는 건 조심해야 한다. 이게 아니라는 것이 최근에 많이 나타나고 있다. 저소득층에서만 자살이 있는 게 아니다. 노인층 자살율도 높아지고 건강한 중산층까지도 자살하는 실정이다. 이제는 저소득층에 대한 시혜적인 그런 복지로는 감당이 안 된다.”

공적연금은 국민 모두에게 보편적이고 일괄적인 성격을 가져야 한다는 말인가.

“네덜란드 같은 경우는 국제기구에서도 국가와 기업의 역할이 아주 균형적으로 되어 있다고 말한다. 국가는 국민 누구에게나 최저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기본을 제공해주고, 기업은 그 이상을 보장해 줌으로써 퇴직 이후에도 퇴직 전의 생활과 크게 추락하지 않도록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공·사 연금 체제의 혼합형이라고 한다. 네덜란드는 기초연금만 해도 근로자평균소득의 30% 정도를 준다. 모든 사람이 30%를 연금으로 받는 거다. 거기에 기업연금이 더해져 70%를 보장한다. 한국에서는 아직 기초노령연금과 국민연금 평균치를 둘 다 받는다고 해도 25%정도쯤 될 거다.”

ⓒ 이현석 객원기자 175studio@gmail.com
노사정 대화 바탕은 신뢰관계

네덜란드는 노동유연성 모델의 대표적인 나라이고 노사정의 대화를 통한 사회적 협의의 모범으로도 소개된다.

“네덜란드는 (경제적) 어려움에 처했을 때 사회적인 타협을 한다. 합리적인 타협. 합리성의 원칙으로 서로가 문제를 해결하는 데 공감을 하는 거다. 공감을 하지 않고 끝까지 가는 게 후진국이다. 공감을 하고 잘 타협을 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게 선진국이다. 네덜란드에서는 노사정 대타협 같은 게 이미 일찍이 구조화돼 있었다. 70년대에 복지재정이 팽창하고 난 다음에 80년대에 들어오면서 어느 나라나 다 어려워졌다. 네덜란드는 경제를 살리려고 개방할 수밖에 없었다. 모든 걸 개방하고 시장원리에 충실하되 국가는 확실하게 (국민의 삶을) 보장해주는 구조로 가는 거다. 노동시장 유연화라는 게 노동법은 물론 임금협상에 있어서도 국가가 굉장히 많이 개입하는 개념이다. 네덜란드는 임금이라든지 노동법 개정이라든지 노사정대화를 통해 협의와 타협을 한다.”

노사정 대화가 잘 이루는 까닭은 어디에 있나.

“서로가 신뢰를 가지고 접근하느냐의 문제인 거 같다. 자본가 입장에서 노동자에게 일단 어려우니까 당신들이 양보하라고 했다면, 여건이 개선됐을 때 자본가들이 그에 대한 보답을 해줘야 하는 거다. 그렇게 약속을 한다. 네덜란드는 그 신뢰라는 게 확실하다. 국가든 자본가든 노동자든. 노동자가 양보를 했으면 그 (양보의) 조건은 반드시 들어준다. 그게 신뢰관계다. 그런 신뢰관계가 없으면 (노사정 대화가) 결코 제대로 작동되지 못한다.”

노사정 대화가 이뤄지려면 국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국가의 역할은 하나의 파트너가 아니다. 국가는 통제하고 감시하고 일방을 편드는 방식이 아니라, 중재자로서 비전을 제시하고 양쪽의 타협을 이끌어내는 중요한 협상 파트너가 돼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국가가 결국에는 어느 한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그게 신뢰를 깨버리는 거다. 그래서 노사정 타협이라는 게 우리나라에서는 별로 의미를 갖지 못하고 있다.”

secret  하나

네덜란드 시민은 퇴직 후 어떻게 먹고 사나요?

네덜란드는 모범적인 다층노후보장제도를 가진 국가로 알려져 있다. 공적연금인 기초연금과 사적연금인 기업연금이 서로 균형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 두 연금을 통해 은퇴 후 연금 실수급액이 퇴직 전 소득의 70%를 보장하는 것을 정책 목표로 설정하고 실시하고 있다.

기초연금은 일반노령연금법과 일반유족연금법에 규정돼있다. 기초연금은 네덜란드에 거주하였으면 누구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보편적 사회수당형 제도에 가깝다. 소득이 있으면 누구나 연금보험료를 납부해야 하므로 ‘사회보장세(social security tax)’ 개념으로도 볼 수 있다. 노령연금의 보험료는 부과대상소득의 17.9%고, 유족연금은 1.1%다. 15세 이상 65세 미만의 네덜란드 거주자는 누구나 의무적으로 보험료를 내는 것이 아니라 근로소득이 있을 경우에만 납부한다. 하지만 전업주부처럼 소득활동이 전혀 없어 보험료를 납부한 적이 없더라도 네덜란드에 거주하였다면 연금 수급권을 가질 수 있다. 네덜란드의 경우 65세 인구 100%가 연금을 받고 있다.

네덜란드의 기업연금은 강제연금에 준하는 성격을 지닌다. 산업별 혹은 전문직종별 단체교섭에 전체 노동자의 약 95%가 가입하고 있다. 보험료율은 평균 16.1%로 노사분담 원칙이지만 사용자의 부담률(67%)이 노동자 부담률(33%)에 비해 높다. 연금액은 최종소득의 70%를 통상 보장한다. 이때 70%는 공적연금인 기초연금을 포함한 것으로, 기업연금은 기초연금을 제외한 부분을 보장한다.

secret  둘

네덜란드가 ‘비정규직의 천국’인가요?

네덜란드는 1970년대에 오일쇼크를 거치면서 마이너스 경제성장을 하며 실업률이 높아졌다. 정부의 복지재정 지출에 따른 막대한 재정적자를 겪으며 경제위기에 빠졌다. 높은 복지의존성을 지적하며 ‘네덜란드병’이라는 이름을 얻기도 했다. 하지만 90년대 이후 탄탄한 경제성장, 고용의 기적, 국가재정의 안정 등을 이뤄 ‘네덜란드의 기적’이라고 불렸다. 네덜란드의 기적은 노사정 사회적 협의를 통한 유연안정성 때문에 성공했다고 알려져 있다. 1982년 노사정 대타협기구를 통해 ‘바세나르협약’을 맺는다. 이 협약에는 임금삭감과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정책이 담겼다. 1993년에는 신노선협약, 1996년에는 유연안정성협약을 맺는다. 이들 협약은 일자리보장을 우선하는 정책이다. 사용자에게 해고의 자유를 주는 것보다 노동시장의 유연화와 복지 간의 상호보완을 통해 노동과 고용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네덜란드는 비정규직의 천국이라고 불린다. 노동자의 1/3이 파트타임 노동자로 여성은 60%가 파트타임 노동자다. 이처럼 파트타임이 늘어날 수 있었던 것은 이들의 노동권의 보호와 사회안전망 강화, 정규직 노동자들과 동등한 법적 권리보장이 함께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단체협약으로 보장되는 임금 수준, 상여금, 기업연금, 기업복지, 교육훈련 등에서 차별을 없앴다. 비정규직이 정규직만큼 수적으로 증가했지만 삶의 질도 정규직 못지않게 사회적 보호를 받는다.

네덜란드는 유연안정성을 큰 노사갈등 없이 경제안정으로 이어갈 수 있었다. 이처럼 노사정 대타협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국가가 노조나 기업의 이익보다 공익의 관점에서 대화를 이끌었고, 노사 양측을 설득하는 한편 비판하고 제재를 하는 핵심적 역할을 했기에 가능했다. 여기에는 오랜 시간 합리성에 기초한 각 주체 간의 탄탄한 신뢰가 바탕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