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1년 산업현장 안전은 마이너스
박근혜 정부 1년 산업현장 안전은 마이너스
  • 오도엽 객원기자
  • 승인 2014.06.03 09:43
  • 수정 0000.00.0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하루 5명 사망, 252명 재해로 감소추세 역행 중
50세 이상 노동자·50인 미만 사업장, 산업재해 집중
[분석 4] 2014 산업재해 발생 현황

세월호 사건으로 안전에 대한 사회의 관심이 높아졌다. 숱한 곳에서 안전을 외치지만 끔찍한 사고는 멈추지 않는다. 이 기사를 쓰는 순간에도 전남 장성의 한 요양병원에서 불이 나 20명이 넘는 사람이 숨졌다. 곧이어 지하철에서 화재가 일어났다는 속보도 뜬다.

정부 부처는 물론 사회 곳곳에서 안전이 최대 이슈로 떠오르며 대책 마련을 준비하느라 어수선하다. 방하남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 5월 19일 “고용률 70% 로드맵 및 안전분야 확대 점검회의”를 가졌다. 어느 부처보다 안전에 앞장서야 할 고용노동부는 ‘고용률 70%’의 곁가지로 안전을 끼워 넣은 모양새다. 고용노동부의 행정예산 등을 제외한 정책사업예산은 1조6,677억4,200만 원이다. 이 가운데 고용정책 예산이 73%에 이른다. 일자리 창출에 밀려 일하는 사람들의 생명과 권익은 뒷전으로 물러난 듯하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13년 산업재해 발생현황을 보면 과연 일자리 창출이 우선인가 하는 의문을 들게 한다. 지난 해 먹고살려고 일터에 나가 하루 평균 5명 이상이 숨지고, 252명이 다치거나 질병을 얻었다.

박근혜 정부 1년, 산재 사망 증가

2014년 벽두부터 규제완화를 국정 최고화두로 기업에게는 돈벌이의 자유를, 공무원에게는 자발적 권한을 부여하려던 박근혜 정부는, 세월호 사건 이후 안전 및 환경과 관련된 규제는 강화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고용노동부는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씻을 대책을 아직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2013년 대한민국 근로자는 1,544만9,228명이다. 2012년보다 9만9,195명이 줄었다. 하지만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은 노동자는 65명이 늘어 1,929명에 이른다. 하루 평균 5.2명이 숨졌다. 이 가운데 사고로 숨진 노동자는 1,090명이고, 839명은 질병으로 숨졌다. 노동자 1만 명 당 산업재해 사망자 수를 나타내는 사망만인율도 2012년 1.20보다 상승한 1.25를 기록했다. 산업재해 사고 재해자 수는 9만1,824명으로 하루 평균 252명이 질병을 얻거나 다쳤다. 이 통계는 산업재해보상보험 가입 노동자만을 대상으로 하기에 아직도 의무가입이 아닌 영세 사업장과 특수고용노동자까지 포함한다면 일터에서 다치거나 사망한 사람은 훨씬 많다.

2013년 산업재해율은 0.59%다. 재해율은 2004년 이후로 줄어드는 추세였다. 2005년 0.77%였던 재해율은 해마다 감소해 2010년에는 0.69%, 2012년은 0.59%였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지난해에 감소 추세는 멈추었고, 오히려 사망자 수는 늘었다.

산업재해로 입은 경제적 손실은 막대하다. 2012년 산업재해 보상금으로 나간 액수는 3조8,513억 원이다. 간접손실을 포함하면 경제적 손실액은 19조2,564억 원에 달한다. 세계적인 기업이자 대한민국 대표기업으로 꼽히는 삼성전자가 벌어들인 영업이익(36조7,850억 원)의 절반 이상, 현대자동차 영업이익(8조3,155억 원)의 2배 이상을 산업재해로 날리고 있는 셈이다. 산업재해를 막으면 현대자동차와 같은 기업 2개를 설립한 경제적 효과를 얻는다는 말이다.

산업재해로 인한 근로손실일수는 5,452만 일이다. 한국경제를 망친다고 아우성치는 노사분규 근로손실일수 93만 일에 무려 약 58배에 달한다.

대표 산재유형은 넘어짐 또는 떨어짐

노동자 수가 1만여 명에 불과한 광업을 제외하면, 재해율이 가장 많은 업종은 건설업이다. 특히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건설업 재해율은 큰 폭으로 증가했다. 2013년 건설업 재해자 수는 2만3,600명으로 재해율이 0.92%에 달해 2012년 0.84%보다 증가했다. 사망자 수도 2012년에 비해 71명 증가해 567명이며, 사망만인율도 2.21에 달한다. 전체 산업재해 사망자 가운데 29.4%가 건설업에서 발생했다.

2012년 재해율은 건설업과 제조업이 0.84%로 동일했다. 하지만 2013년 제조업은 0.78%로 줄어든 반면 건설업은 0.92%로 늘었다. 질병으로 인한 사망자나 재해자 비중이 다른 업종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건설업의 산업재해는 대부분이 안전조치 미비에 따른 사고재해다. 건설업의 질병재해율은 0.03%, 사망만인율은 0.20으로 제조업 질병재해율 0.08%, 사망만인율 0.47에 비해 절반도 되지 않은 실정이다.

재해 유형을 보면 대부분 떨어지거나 넘어져서 발생한다. 추락으로 다친 사람은 1만3,756명이고, 사망자는 349명이다. 넘어져 다친 사람은 1만7,588명이다. 이 같은 재해는 많은 비용이 드는 설비나 기계 장치도 필요 없이 기본적인 안전설비와 주의만 기울이면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사고들이다.

재해 증가자의 대부분은 55세 이상

해마다 발표하는 산업재해 발생현황에서 가장 안타까운 일은 연령별 산업재해 통계다. 대부분의 연령대에서 재해자 수와 사망자 수는 줄어드는 추세다. 하지만 고령으로 갈수록 재해자나 사망자 수가 늘어난다. 50세 이상 사망자는 2012년에 비해 142명이 늘었다. 전체 연령대 사망자 증가는 65명이었다. 전체 산업재해자 수는 2012년에 비해 232명 줄어들었는데, 55세 이상 노동자의 경우는 무려 2,696명이 늘었다. 다음으로 재해자와 사망자가 증가한 연령대는 18~24세로 각 15명, 5명이 늘었다.

정년이나 퇴직 이후 어렵고 위험하고 열악한 작업 환경으로 내몰리고 있다는 이야기다. 정년연장과 고령자 일자리 창출을 정부 및 지방자치단체에서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데, 이는 행복한 노년과 거리가 멀 수 있다. 재정을 이유로 국민연금 수령 시기를 늦추고, 안정적인 노후 보장이라는 국가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수단으로 접근할 경우 커다란 사회문제로 대두될 수 있다. 실제 55세 재해 증가자 2,696명 가운데 대부분인 2,603명이 사고로 인한 재해다. 질병으로 인한 재해자 증가는 93명이다. 나이가 많지만 질환으로 인한 재해보다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다 사고를 당한다는 결과다.

50인 미만 사업장에 산재 집중

통계가 보여주는 안타까움은 또 있다. 재해자의 47.4%가 5~49인 사업장에서 일했다.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재해를 입은 이들이 7만4,836명이다. 전체 산업재해자수가 9만1,824명이니 80% 넘는 재해자가 중소영세업체에서 일하다 재해를 입었다.

50인 미만 업체의 산업재해 사망자 수는 1,116명으로 58%다. 특히 5인 미만 사업장의 재해자 수는 3만1,291명으로 재해율은 1.41%다. 이는 전체 평균의 2배에 가깝고, 사망만인율은 2.01로 3배에 육박한다.
5인 미만 사업장만 떼어 살펴보면 재해자 수는 1,431명이 늘고, 사망자 수는 446명이 증가해 5인 이상 사업장에 비해 큰 폭으로 상승했다. 임금과 복지, 작업환경이 열악할수록 산업재해 발생이 크다는 말이고, 큰 규모의 사업장에서 위험하고 힘든 일을 하도급이나 파견업체 형식으로 영세사업장에게 맡기고 있는 실정을 반증한다. 실제로 세부업종으로 구분하여 가장 높은 재해자와 사망자 수를 기록한 곳은 ‘기타의 각종사업’으로 분류되고 있다. 재해자 수 1만1,681명, 사망자 수는 126명이다.

장시간 노동 과도한 업무량은 산재 주범

산재공화국의 오명에서 벗어나려면 장시간 노동과 야간 노동 및 고령자 노동에 대한 적극적인 개선 의지가 있어야 한다.

대부분의 산업재해를 부주의 때문이라고 말한다. 노동자의 실수나 잘못이라는 말이다. 이렇게 접근하면 사고는 늘 일어날 수 있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실수하지 않는 인간이 없다는 말로 치부되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말해야 한다. 잘못과 실수로부터 사고를 막는 게 안전이다. 발을 헛딛을 수 있기에 핸드레일로 안전대를 설치하는 게 안전이다. 프레스가 하강할 때 손을 빼지 못할 수가 있으니 안전센서를 설치하는 거다. 실수를 1차적 책임이나 직접적 원인으로 말하는 건 안전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는 행위로 이렇게 접근해서는 결코 산재를 줄일 수 없다. 안전사고를 막을 대책도 나올 수 없다.

노동자의 주의력을 떨어뜨려 실수나 잘못을 일으키는 근본 원인은 장시간 노동에 있다. 잘못을 하고 실수를 해서 다치거나 죽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한국 노동자는 언제든 잘못과 실수를 일으킬 수 있는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주간에 일할 때보다 야간에 일할 때 산재가 많이 일어나고, 야간 노동 때 일어나는 사고는 중대사고로 이어진다는 사실은 다시 거론할 필요도 없다.

산업재해 통계에서 질병으로 인한 사망자 가운데 늘 1, 2위를 다투고 있는 게 뇌심혈관계 질환이다. 이로 인해 2013년 한해에만 348명이 사망했다. 전체 질병 사망자 839명 가운데 42%를 차지한다. 2012년보다 47명이 증가했다. 뇌심혈관계 질환은 과로와 직무 스트레스로 발생한다. 산재의 원인으로 거론되는 노동자의 실수나 잘못은 대부분 장시간 노동과 과도한 업무량에서 비롯한다. 질병 산업재해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사고 산업재해의 대부분이 떨어짐과 넘어짐이다. 노동자의 집중력을 떨어뜨리는 과로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이 같은 안전사고가 반복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

다이옥신보다 위험한 야간노동

2010년 충남 당진의 환영철강에서 20대 청년이 용광로에 떨어져 목숨을 잃은 사고를 기억할 거다. 이 청년 노동자는 제품이 용광로에 끼여 로가 제대로 닫히지 않자 안전설비도 없는 용광로 옆 철판에 올라갔다가 미끄러져 1,600도의 쇳물에 빠졌다. 이 청년은 새벽 2시 야간근무 중이었다. 위험한 현장에서 일했건만 그곳에는 혼자 있었다. 이 청년은 용광로 뚜껑이 닫히지 않을 경우 입을 회사의 경제적 손실을 막으려고 위험을 무릅쓰고 일했다. 하지만 사용주는 10만 원 남짓한 안전 펜스를 설치하지 않아 이 청년의 죽음을 막지 않았다.

독일 수면학회는 야간에 일하는 노동자들은 주간에 일하는 노동자보다 수명이 13년 짧다고 발표를 했다. 일반 노동자의 평균 수명은 78세인데, 야간 교대 노동자는 65세에 불과했다. 야간 교대 노동자의 80%가 수면장애에 시달린다. 주간 근무자의 신경장애는 25%인 반면 주·야간 교대 근무자는 60~70%에 달한다. 심혈관 질환도 주간 근무자에 비해 6년 이상 교대근무를 하면 2배, 20년을 하면 2.8배가 높아진다.
이미 2007년에 세계보건기구(WHO) 국제암연구소는 야간노동이 신체리듬을 교란해 암을 유발한다고 발표했다. 야간노동은 납과 같은 2급 발암물질로 지정되었다. 이는 자동차 유해가스와 다이옥신보다 한 단계 높은 발암물질이다.

주간 근무자에 비해 야간 교대근무자의 사고가 4배 이상 일어난다. 밤에 재해 발생률은 30.4%가 높아진다.

고령노동자에 대한 법제도 마련 시급

고령자의 재해가 늘어나고, 사망사고가 집중되는 까닭은 실정에 맞는 고령자 일자리 정책의 부재와 법과 제도의 미비에서 비롯한다. 연소자에게 하루 7시간 노동시간과 야간노동 금지를 근로기준법에 명시하듯이 고령 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는 법과 제도도 마련해야 한다. 이를 선결하지 않은 채 이루어지는 고령자 일자리 창출 사업은 산업재해를 동반할 수밖에 없다.

대기업의 하도급업체에 대한 횡포도 막아야 한다. 영세업체에서 산업재해가 집중되는 까닭은 최저가 입찰과 단가 후려치기라는 불공정 거래 때문이기도 하다. 낮은 하도급 단가로 인해 안전에 대한 투자를 원활히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기업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대형 산업재해로 피해를 보는 노동자는 대부분 하도급업체 노동자다. 같은 사고 재해가 반복되는 까닭도 재해의 책임과 부담을 하도급업체에 떠밀고 있기 때문이다. 하도급업체가 아닌 원도급업체에 산업재해의 법적·물리적 책임을 지게 하는 법과 제도도 마련해야 한다.

돈보다 목숨, 기업과 사회의 가치관 절실

2013년 산업재해 발생현황을 통해,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뒤로 2004년 이후 감소 추세였던 산업재해가 제자리걸음을 하거나 후퇴하였고, 여전히 규모가 영세한 사업장의 산업재해 발생비율이 높으며, 특히 50대 이상의 연령대에 재해와 사망 사고가 집중되고 큰 폭으로 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후진국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세월호 사건이 2014년에 벌어진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한 나라의 안전 척도는 산업재해 현황을 통해 극명하게 드러난다. 이를 극복할 방법은 돈보다 목숨을 중요시하는 기업가 정신과 국민의 안전과 행복을 추구해야 할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세월호 사건에서 선장과 선원의 양심과 과실을 1차적, 또는 직접적 원인으로 파악할 때 근본적인 대책이 나오기는 어렵다. 산업재해도 마찬가지다. 작업자의 부주의나 실수를 산업재해의 1차적, 직접적 원인으로 봐서는 산재 공화국이라는 불명예를 떨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