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화 풍랑 속 삐걱대는 공대위
정상화 풍랑 속 삐걱대는 공대위
  • 박종훈 기자
  • 승인 2014.06.03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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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기관별 온도차…현실 바꿔내긴 부족한 동력
정부 ‘의지’는 확고, 노동계 ‘대응’은 느슨
[분석 3] 양대 노총 공공부문 공대위

ⓒ 공공노련
세월호 사고, 지방선거 등 화제와 논란거리가 계속되는 가운데,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은 꾸준히 진행돼 오고 있다. 이른바 38개 중점관리 대상기관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정부의 줄 세우기에 개별 공공기관은 힘이 없다. 당근과 채찍을 번갈아 들이대니 눈치 보기만 치열하다.

현장의 공공기관 종사자들은 술렁이고 있다. 당장 감사원 사정의 칼날이 휘둘러지고 있는 기관은 그야말로 “영혼의 밑바닥까지 탈탈 털리는” 심경이란다. 집중포화를 용케 피한 기관이라도 분위기가 남 얘기 같지만 않다.

강요된 자구책, 노사관계에 쐐기

양대 노총 5개 산별이 참여하고 있는 양대 노총 공대위를 중심으로 공공부문 노동조합이 유일하게 정부의 정상화 대책에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하지만 이들 역시 공공부문의 부채 문제를 비롯한 부조리함은 개선하는 게 옳다는 입장이다. 다만 정부의 정책 사업으로 비롯된 막대한 공공부문 부채의 책임을 기관과 종사자들에게 떠넘기는 부분과 과도한 복리후생이 사회 통념상 받아들여지기 어렵다는 것을 빌미로 공공부문 노사관계에 정부가 개입하고 있는 점에 대해서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경호 공공노련 사무처장은 “공공기관의 부채 원인은 막가파식 정책 떠넘기기에 있다”며 “부채의 원인은 직원들을 위한 과도한 복리후생 제도, 성과급 등이 아니라 정부의 재정사업 수행과 비정상적인 공공요금 통제에서 비롯된 게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그밖에도 “민영화 추진이나 경쟁체제 도입 등 산업구조 개편으로 인해 공공기관에 정부의 정책실패가 전가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 추진을 주도하고 있는 기획재정부도 “2008년 대비 공공기관의 부채 증가는 ① 시설투자 확대 ② 서민생활 안정을 위한 정책 추진 ③ 요금인상 최소화 ④ 부실 저축은행 지원 등 위기관리에 기인한다”고 밝히고 있다. 특히 공기업들에 대해선 미래 대비 시설투자 확대, 정책사업 추진, 공공요금 인상 최소화 등에 부채의 원인이 있다고 재차 강조한다.

그러면서도 정부는 이들 공공기관에는 이른바 ‘자구책’을 내 놓으라고 압박을 가하고 있지만, 실상 공공기관의 자발적인 노력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미 가이드라인을 통해 세부적인 그림을 그려 놓은 상태기 때문이다.

2017년까지 부채 비율 200% 감축이라는 목표를 할당하고, 퇴직금, 의료비, 보육비, 경조사비, 기념품 같은 방만경영 8대 항목을 지정하는 등 구체적이다. 부채감축과 방만경영 해소는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의 두 축이다. 부채와 관련한 내용도 그렇지만 특히 정부가 ‘방만경영’이란 꼬리표를 붙인 부분의 상당 내용이 각 기관 노사가 단체협약을 통해 정해 놓은 부분이므로, 정부가 노사관계에 개입하고 있다는 공대위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 공공노련
“청와대 의지 어떻게 꺾을까?”

지난 4월 29일 이석준 기획재정부 2차관은 제6차 공공기관운영위원회를 주재하고, 38개 중점관리 대상기관과 그 외 공공기관 16개 등 54개 기관을 대상으로 방만경영 정상화 이행계획안과 부채감축 계획에 대한 중간평가를 실시하기로 했다. 당시는 세월호 사고의 충격으로 온 국민의 이목이 팽목항으로 쏠리고 있던 즈음이었다.

양대 노총 공대위는 “범정부적으로 세월호 실종자 구조와 사고 수습에 전력을 기울여야 할 현 시점에 기획재정부의 ‘관피아’들은 공공기관 가짜 정상화 대책을 궁리하는 데만 골몰하고 있다”며 “공공기관 노동자들은 거꾸로 가는 정부 정책에 다시 한 번 참담함을 느낀다”고 밝혔다. 정부는 또 5월 2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대통령이 주재하는 공공기관 정상화 워크숍을 열고 개혁의지를 공유하기도 했다.

지난해 12월 기획재정부가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을 발표한 이후, 이를 추진해 가는 과정은 거침이 없었다. 부채나 방만경영 관련 이슈 이외에도 해외자원개발, 정보화, 중소기업, 고용복지 등 4대 분야 기능 점검이나 정보공개의 확대와 관련한 내용도 정상화 대책에 포함돼 있지만, 현재의 구도는 정부의 의지와 노동계의 의지가 정면충돌하고 있는 형국이다. 특히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언론을 통해 공공기관을 향해 포문을 열 만큼 정부의 의지는 확고하다. 세월호 사고, 선거 등의 여파로 잠시 기세가 꺾이지 않을까 예상했지만 별반 달라진 점은 보이지 않는다.

공공기관의 예산과 조직을 좌우하는 기획재정부나, 각 공공기관을 산하에 두고 있는 여타 정부부처의 의지는 확고해 보인다. 바로 그 ‘의지’를 거슬러 올라가면 청와대에 다다른다. 다른 어느 곳보다 정권의, 청와대의, 대통령의 의지가 확고하다는 부분에 대해선 노동계 관계자들 역시 공감하고 있다.

공공부문 노동조합의 한 관계자는 “청와대를 압박해 이 공공부문 이슈가 정치적으로 큰 타격을 줄 수 있을 거라는 위기감을 심어주는 게 이 의지를 꺾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을 취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뾰족한 방법이 없는 답답한 상황이다.

양대 노총 공대위 산하 전체 공공기관 노동조합은 정부가 추진하는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과 관련한 여타의 내용도 노사 합의를 하지 않는다는 것과 향후 절차적 준비 과정을 거쳐 총파업 투쟁까지 불사하는 것으로 방향을 설정한 바 있다.

ⓒ 공공노련
투쟁계획의 뒷걸음질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삐걱대고 있는 것은 공공부문 노동계의 이러한 투쟁 계획이다. 쟁의행위 돌입을 위한 형식적인 절차는 이런저런 상황들로 인해 계속 연기되고 있으며, 5월 말 현재 8월 중 총파업 총력투쟁이라는 수준으로 후퇴했다.

공공기관 노동조합의 한 대표자는 “총파업 돌입 시기를 8월 말로 잡는다고 해도 여름휴가 직후 동력을 끌어 모으는 준비 과정이 빠듯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또 “기관별로 특성이 제각각인 공공부문 노동조합이 과연 총파업을 엮어내는 게 가능할지부터도 미심쩍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양대 노총 공대위가 상급단체를 뛰어 넘는 연대를 위한 체계라는 점에서 의미를 부여할 순 있겠지만, 각기 다른 조직의 입장차에 따른 온도차까지 극복해낼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 제기도 있다.

이번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과 관련해서는 대규모 부채 공기업이 밀집한 한국노총 공공노련이 가장 다급함을 느끼고 있다. 그에 반해 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와 한국노총 금융노조의 경우 산하 조직 조합원들까지 이처럼 ‘자기 문제’로 받아들여지는지는 미심쩍다.

지난 3월 22일 2만여 조합원과 간부들이 모인 가운데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공대위의 대규모 결의대회에 참석한 이들 중 상당수가, 일부 대상 공공기관이 아니고선 조합원들이 관심을 집중하지는 않고 있다고 답하기도 했다.

또한 상대적으로 임금수준이나 근로조건이 열악한 기관 종사자들의 경우, “고임금이나 복리후생이 사실 중점관리 대상기관 노동자들이 높은 게 맞는데, 이들의 문제로 파업 투쟁에 들어가는 건 조합원들이 원치 않을 것”이라고 단정하기도 했다.

“노동계의 카드는 뭔가?”

일부 공공기관 노동조합이 양대 노총 공대위에서 결의한 것과 달리 노사 합의를 진행하고 있는 점도 큰 걸림돌이다. 현재 부산항만공사, 한국마사회, 한국수자원공사, 한국도로공사 등에서 정상화 이행계획서에 합의한 바 있다.

한 공공기관 노동조합 대표자는 “정부가 기관과 노조를 압박할 수 있는 방법은 너무 다양하다”고 말했다. 특히 “조합원들의 임금이나 고용안정, 부채 누적으로 인해 출연이 중지되고 있는 사내근로복지기금의 재출연 등의 카드와 함께 강도 높은 감사를 통해 징계 사항을 계속 만들어내면 버틸 방법이 없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이른바 이면합의 방식에 대한 유혹도 크다. 당장 정부의 압박이 너무 심하니 한숨 돌릴 수 있도록 정상화 이행계획에는 합의를 하고, 차후 노사가 논의를 통해 상응하는 보상을 취하도록 하자는 류의 이야기도 심심찮게 나돌고 있다.

기관의 입장에선 일단 큰 소나기는 피하고 보자는 심산인데, 노동조합 역시 공대위를 중심으로 한 공공부문 노동조합들의 연대 투쟁이 확고한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씁쓸한 공감대를 가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고 한다.

이처럼 정부의 의지와 노동계의 의지가 맞붙고 있는 가운데, 문제 해결을 위해선 노정간 교섭이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과 관련한 단일 의제에 한해서 노사정이 의논할 수 있는 기구를 찾자는 의견도 대두되고 있다. 5월 28일 열린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에서는 공대위에 참여하고 있는 공공운수노조를 중심으로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과 관련해 노사정 대표자회의를 추진하는 것으로 결의했다.

ⓒ 이가람 기자 grlee@laborplus.co.kr
노동계로서는 논의의 물꼬를 트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문제는 노사정이 모인 테이블에서 과연 어떤 얘기를 꺼낼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한 노동조합 대표자는 “명분도 실리도 이리저리 뒤엉킨 가운데 대표자들이 만난다고 해도 아주 원론적인 입장을 재확인하는 것 이외에 진척된 논의를 진행하는 것이 어려울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대선 과정과 집권 초기의 핵심 공약 대부분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더 이상 언급되지 않는 지금, 그리고 세월호 사고를 비롯한 국가적 재난으로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을 의식한 현 정부가 “그나마 진도가 나가고 있는”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을 쉽게 뒤집을 것으로 예상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양대 노총 공대위를 비롯한 노동계가 ‘순순히’ 정부 주도의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을 수용하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정부의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에 반대하는 노동계의 명분은 ‘공공성 강화’에 있고, 이를 포기하는 순간 공공기관 노동조합으로서 설 자리가 없어질 수밖에 없는 지형이기 때문이다. 물론 각각의 기관이 처한 상황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정부의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에 합의하는 노동조합이 있다고는 하지만, 정부가 거침없이 밀어불이는 것에 비하면 아직까지는 소수에 그치고 있다.

앞으로도 변수는 많다. 공공기관이란 명칭에 걸맞게, 공공성을 중심으로 한 공공기관 개혁이 향후 어떻게 진행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