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판결 이후에도 논란 식지 않았다
대법원 판결 이후에도 논란 식지 않았다
  • 박석모 기자
  • 승인 2014.07.14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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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임금 범위·신의칙 놓고 공방 가열될 듯
통상임금 놓고 노사간 갈등 고조
[분석 1] 통상임금 판결 어떻게 되고 있나?

ⓒ 참여와혁신 포토DB
지난해 12월 18일 통상임금에 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통상임금 문제를 둘러싼 수많은 논의가 진행됐다. 그리고 올해 진행되고 있는 임·단협에서 통상임금 문제는 노사의 입장이 확연하게 갈리는 핵심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사업장마다 통상임금의 범위를 어떻게 정할 것인지를 놓고 노사가 주판알을 튕기고 있는 중이다.

현대차 노사, 통상임금 놓고 설전

지난 6월 3일 상견례를 가진 현대자동차 노사의 교섭에서도 통상임금 문제는 핵심적인 이슈가 되고 있다.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는 올해 임·단협에서 정기상여금과 복리후생비, 휴가비를 포함한 통상임금 확대 적용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현대자동차는 정기상여금도 통상임금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맞서고 있다.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소급분 지급 여부는 논의의 대상에도 올리지 않고 있다. 지난해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정기상여금은 그 지급주기와는 상관없이 통상임금이라고 판결한 것과도 엇갈리는 대응이다.

현대자동차가 이 같은 입장을 보이는 것은 정기상여금의 통상임금의 요건 중 고정성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지난해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서는 통상임금의 성립 요건으로 정기성과 일률성, 고정성이 제시됐다. 하지만 현대자동차의 경우 사내 세부규칙에 ‘월 15일 미만 근무자에게는 상여금을 지급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어, 고정성 요건이 결여됐다는 것이다.

정기상여금을 지급받기 위해서는 월 15일 이상 근무해야 하지만, 정기상여금을 지급하는 시점에 이 같은 최소 근무일수를 충족할지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으므로 고정성이 결여됐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명칭은 정기상여금이지만, 그 지급 요건이 고정성을 충족하지 못하기 때문에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이 현대자동차의 주장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서도 볼 수 있듯이, 통상임금 여부는 그 명칭이 아니라 실질을 따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현대자동차지부는 “사내 세부규칙은 노조와 합의한 사항이 아니다”고 일축한다. 사측이 일방적으로 정한 규칙이라는 주장이다. 나아가 현대자동차의 경우 중도에 퇴사하더라도 근무일수에 따라 상여금을 일할 지급하고 있기 때문에 고정성 요건을 충족한다는 것이 현대자동차지부의 주장이다. 현대자동차지부는 통상임금 확대 적용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파업도 불사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이처럼 통상임금을 둘러싼 현대자동차 노사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가운데, 노동계 안팎의 시선이 현대자동차의 임·단협 결과를 주목하고 있다. 동종사업장이나 부품업체는 물론 제조업 전반에 있어 현대자동차의 교섭 결과가 바로미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재직자에게만 지급한다면 통상임금 아니다

지난해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통상임금 판결 이후 몇몇 의미 있는 판결이 법원에서 나오고 있다. 이 판결을 토대로 통상임금과 관련한 법원의 판결이 어떻게 내려질 것인지를 짐작해 볼 수 있다. 물론 통상임금 문제의 해결을 법원의 판결에 맡겨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통상임금 문제에 대한 노사의 합의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법원의 판결에 따라 문제 해결의 방향이 달라질 수 있다.

지난 1월 8일, 부산고법은 D사의 통상임금과 관련한 소송에 대한 판결을 내렸다. 이 소송에서 쟁점이 된 것은 이른바 포괄임금제 문제다. 노동자와 사용자가 근로계약을 체결할 때는 소정근로시간에 대한 기본임금을 결정하고 기본임금을 기초로 각종 수당을 가산해 급여를 합산 지급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특수한 경우에는 실제 근로시간을 따지지 않고 일정한 금액의 시간외근로수당을 지급하거나 각종 수당이 기본임금에 포함되는 것으로 간주해 임금을 지급하기도 한다. 이를 포괄임금제라고 하는데, 근로시간이 불규칙하거나 노동자의 재량으로 근로시간을 정할 수 있는 경우에 시간외근로수당을 명확하게 확정하기 어렵다는 사정 때문에 임금산정방식으로 인정되고 있다.

그런데 포괄임금제에는 제한이 있다. 기본임금에 제 수당이 포함된다는 점이 근로계약서에 명시돼야 하고 이에 대한 노동자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또 기본임금에 실제 시간외근로에 따른 시간외근로수당을 더한 임금보다 포괄임금제로 산정한 임금이 적은 경우, 즉 노동자에게 불이익한 경우 포괄임금제는 무효가 된다.

대우여객의 경우 운수회사로서 실제 운행시간이 계속해서 변동하므로 일일이 실제 근로시간을 산정하기 곤란하므로 포괄임금제에 따라 임금을 산정할 필요가 있다는 점은 법원도 인정했다. 그러나 법원이 대우여객의 임금을 살펴보니, 대우여객은 각종 수당을 기본임금에 합산한 일정액을 지급한 것이 아니라, 시간급을 정하고 각종 수당의 항목별로 근무일수에 가산율을 적용해 금액을 산정한 후 이를 합산해 임금을 지급하고 있었다. 결국 대우여객의 경우 포괄임금제를 적용할 필요성은 인정되지만, 기존의 임금지급형태가 포괄임금제를 따르지 않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에 따라 대우여객의 경우에는 상여금과 각종 수당이 통상임금에 해당되는지 여부를 따지게 됐다. 법원은 그렇게 따져, 대우여객이 지급한 각종 수당 중 하기휴가비와 무사고수당, 장기근속수당, 교통비는 정기성과 일률성, 고정성이라는 통상임금의 요건을 충족한 것으로 통상임금에 포함된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만근수당은 월 14일 이상 근무해야 지급되므로 고정성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통상임금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 규모가 가장 큰 정기상여금 역시 법원은 통상임금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대우여객은 1년 이상 근속하고 있는 노동자에 대해 지급기준일 현재 재직하고 있는 노동자에게만 월 만근임금의 380%를 4분해 지급하고 있었다. 이 경우 해당 노동자가 임금을 지급받는 날 현재 재직 중이라는 지급조건이 성취될지 여부가 불확실하므로 고정성이 없어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대우여객의 통상임금 소송에서는 또 실제 근로시간이 얼마인지를 놓고 치열한 다툼이 이어졌다. 운수업종의 특성상 발생하는 대기시간이 근로시간에 포함되는지 여부를 놓고 다툰 것이다. 대기시간이라 하더라도 그 시간을 노동자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지 여부에 따라 근로시간에 포함되는지 여부가 결정된다.
대우여객의 경우 노동자들의 평균적인 운행시간은 11시간, 대기시간은 3시간 30분, 출발지 및 종착지에서 차고지까지의 운행시간(공차로 운행하는 시간)은 30분이었다. 법원은 이 부분 중 운행시간과 차고지까지의 공차 운행시간, 대기시간 중 연료충전, 청소, 운행 전 준비 및 운행 후 정리시간을 감안한 30분을 더해 하루 근로시간을 12시간으로 봤다. 또 이 12시간 중 4시간은 연장근로이며, 연장근로 4시간 중 2시간은 야간근로로 간주했다.

대우여객에서의 대기시간은 해당 노선의 배차표에 따라 운행을 완료한 시점에서 다음 운행을 시작하기 전까지의 시간을 말하는데, 노동자들은 대기시간 중에도 연료충전이나 청소, 운행 전후 준비 및 정리를 수행하기 때문에 대기시간 전체도 근로시간에 포함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이에 대해 대기시간을 미리 예측할 수 있고, 운행이 일찍 끝나면 대기시간 이상을 쉴 수 있으며, 대기장소가 사용자의 지휘·감독에서 벗어난 곳에 있고, 대기시간에 휴식을 취하거나 개인적인 볼 일을 보는 것이 가능하다는 점을 들어 근로시간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다만 대기시간 중에 연료충전과 청소, 운행 전후 준비 및 정리가 실제로 이루어지는 점을 감안해, 대기시간 중 30분을 근로시간으로 인정했다.

추가임금 지급해도 경영상 어려움 없어

5월 29일에는 서울중앙지법에서 아시아나항공의 승무원들이 제기한 통상임금 소송에 대한 판결이 내려졌다. 이 판결에서 주목할 점은 이른바 신의칙과 관련된 부분이다. 지난해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서는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된다고 판결하면서도, 그로 인한 추가임금의 청구가 회사에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초래한다면 신의칙에 따라 추가임금을 청구할 수 없다고 한 바 있다.

아시아나항공의 경우 매 짝수 달에 기본급과 근속수당을 합한 금액을 기준으로, 근속기간이 2개월 초과 4개월 이하인 경우 40%, 근속기간이 4개월 초과 6개월 이하인 경우 60%, 근속기간이 6개월 초과인 경우 100%를 지급하되, 퇴직자는 해당 월의 근무일수에 따라, 휴직자는 일정한 기준에 따라 일할 계산해 지급하고 있다. 이처럼 근속기간에 따라 차등을 둔 비율에 맞춰 지급한 경우는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판례에 따라 통상임금으로 보는 데 무리가 없다.

다만 캐빈어학수당은 승급시험을 통과할 경우에 지급하는 것이므로, 이를 지급받으려면 승급시험 통과라는 추가적인 조건의 달성이 필요해 고정성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고 봤다. 즉 캐빈어학수당은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시아나항공 사례에서 중요한 것은 이른바 신의칙을 적용할 수 있는지 여부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정기상여금의 경우에 한정해,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는 노사간의 합의가 있는 경우 그 합의는 근로기준법의 강행규정을 위반한 것이므로 무효라고 판결했다. 다만 이에 따라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한 결과 발생하는 임금의 차액(추가임금)을 청구할 경우 회사에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초래하는 때에는 추가임금을 청구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아시아나항공의 경우에도 이 같은 신의칙에 따라 추가임금을 청구할 수 있는지 여부가 쟁점이 됐다. 서울중앙지법은 이와 관련해 ▲ 아시아나항공이 2010년, 2011년, 2012년에 당기순이익을 기록한 점 ▲ 매출액이 매년 상승하는 추세에 있는 점 ▲ 자본금 8천억 원이 넘는 규모의 회사인 점 ▲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될 경우 매년 93억 원의 인건비 추가 지출이 예상되는데 이는 아시아나항공이 매년 지출하고 있는 인건비 6,817억 원의 약 1.3%에 불과하다는 점을 들어 신의칙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결론적으로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해서 임금을 지급할 경우에도 회사의 경영에 큰 재정적 위험을 초래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원심에서 신의칙 여부 심리했어야

ⓒ 참여와혁신 포토DB
역시 같은 5월 29일, 큰 관심을 끌었던 한국지엠의 통상임금 소송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한국지엠의 사례에서도 대법원은 생산직 노동자들에게 매 짝수 달과 5월에 지급하는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해당된다고 인정했다. 근속기간에 따라 차등지급하는 사정도 아시아나항공 사례와 같다. 하지만 그동안 하급심에서 통상임금으로 인정한 개인연금보험료, 휴가비, 귀성여비, 선물비에 대해서는 재직자에게만 지급됐다는 점을 들어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을 수 있다고 봤다.

그런데 한국지엠 사례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신의칙 적용에 대한 부분이다. 대법원은 아시아나항공 사례와는 달리 한국지엠 사례에서 원심이 신의칙 적용 여부를 고려하지 않았다며, 원심을 파기하고 서울고법으로 환송했다.

대법원은 한국지엠 노사가 임금 총액을 기준으로 기본급 등의 인상률과 각종 수당의 증액을 결정했으며,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산입할 경우 통상임금의 액수가 노사합의로 정한 통상임금의 액수를 훨씬 초과할 여지가 있다고 봤다. 또 한국지엠 생산직 노동자가 11,000명에 달하고 초과근로가 상시적으로 이루어지며 정기상여금이 연 700%에 이르므로,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산입할 경우 회사가 추가로 부담해야 할 초과근로에 대한 가산임금 등 법정수당이 노사 협상 당시 자료로 삼은 법정수당의 범위를 현저히 초과한다고 봤다. 정기상여금이 산입된 통상임금에 따라 계산된 초과근로수당을 노동자들이 받게 될 경우 실질임금 인상률은 임금협상 당시 노사가 상호 양해한 임금인상률을 훨씬 초과할 여지가 있어 보인다는 점도 지적됐다. 이런 사정으로 대법원은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산입하고 그에 따라 추가임금을 청구할 경우 예상치 못한 재정적 부담을 지게 돼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초래할 수 있다고 봤다.

이에 따라 대법원은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된다는 점에 대해서는 인정하면서도, 원심에서 추가임금의 청구가 신의칙에 위배되는지 여부를 살폈어야 했다고 봤다. 결국 원심에서 신의칙 여부를 살피지 않은 원심은 법리의 오해로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았으므로 파기환송한다고 판결한 것이다. 파기환송의 이유에는 각종 수당의 통상임금 해당 여부도 포함된다.

이 같은 판결이 나오자 민주노총은 즉각 성명을 내고 “근로기준법이 강행규정으로 노동자에게 일정한 권리를 보장하고 있음에도 신의칙을 내세워 권리행사를 가로막는 것은 부적절하기 짝이 없다”며 “‘신의칙’이라는 기상천외한 법리를 남용하여 임금청구권 행사를 부당하게 제한하고, ‘중대한 경영상의 이유’라는 모호한 기준을 남발하여 자본가들의 임금 떼먹기를 옹호한다”고 사법부를 규탄했다.

민주노총은 또 “통상임금 문제의 본질은 전체 임금 중 기본급 비중을 낮추고 기타 수당이나 상여금·성과급 비중을 높이는 편법으로 왜곡된 방식으로 시간당 임금과 초과노동에 대한 할증임금을 낮추려는 의도에 있다”면서 “노동시간을 단축하여 양질의 일자리를 늘리려는 정부라면 왜곡된 통상임금을 바로잡고 장시간노동 관행을 철폐하는 방향으로 법 제도를 정비해야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또 고용노동부에도 ‘통상임금 지도지침’을 폐기하라고 촉구했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정기상여금 등 각종 임금항목이 통상임금에 해당되는지 여부,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될 경우 추가임금의 청구 가능 여부 등을 놓고, 노사간의 공방은 오히려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노사가 통상임금 문제의 해결 방안에 합의할 가능성도 그다지 높지 않다. 발레오전장에서 상여금을 성과에 연동하는 형태로 변경해 통상임금에서 제외하는 데 노사가 합의한 사례가 있기는 하나, 이를 일반화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많은 사업장에서 통상임금 문제를 둘러싸고 노사간의 갈등이 고조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지난해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에도 통상임금과 관련한 논란은 그다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통상임금은 여전히 논란의 한 가운데 놓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