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 0.015% 빌미로 6만 조합원 법적 지위 박탈당하다
고작 0.015% 빌미로 6만 조합원 법적 지위 박탈당하다
  • 이가람 기자
  • 승인 2014.07.14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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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 합법화 15년 만에 다시 법외노조로
단식·탄원서 모두 수포?…아직 안 끝났다
[현장 2] 전교조 법외노조화

ⓒ 이가람 기자 grlee@laborplus.co.kr
지난달 19일 전교조가 법적으로 노조의 지위를 상실했다. 6만여 명의 조합원 중에 9명(0.015%)의 해고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전교조의 활동에 앞장서 오다가 해직된 교사들로 전교조는 이들을 내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그렇지만 고용노동부는 법적으로 해직된 교사는 현재 교사가 아니기 때문에 조합원으로 인정해선 안 된다고 했다. 서울행정법원은 전교조가 법외노조라고 판결 내렸다.
이번 판결의 과정에서 쟁점이 됐던 사안과 전교조의 대응들을 알아봤다.

전교조 법외노조 되다

19일 오후 1시 30분 서울행정법원(반정우 부장판사)은 전교조가 “법외노조 통보처분을 취소하라”며 고용노동부를 상대로 낸 법외노조 통보 처분 취소 소송 1심에서 전교조 패소로 판결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10월 24일 전교조는 노조가 아니라고 통보해 전교조는 법외노조가 됐다. 조합원 중에 해직자 9명이 있다는 게 이유였다. 이에 반발한 전교조가 법외노조 통보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했고, 서울행정법원은 11월 13일 이를 받아들였다. 전교조는 1심 판결 전까지 법내노조의 지위를 유지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7개월여가 지난 이날 서울행정법원은 고용노동부의 손을 들어주면서 전교조는 결국 법외노조가 됐다.

전교조는 이날 판결 직후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교조는 즉각 1심 판결에 대한 항소와 법외노조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 등 법률적 대응에 들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전교조는 이어 “교원노조법에 해고자가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없는 독소조항이 있는 한 법원의 판단에만 기대할 수는 없어 교원노조법 개정을 위한 활동에 본격적으로 나설 것”이라고 했다.

김정훈 전교조 위원장은 “오늘 전교조 법외노조 관련 반정우 부장판사의 1심 판결은 한 나라 집권자의 권력남용이 무지막지하게 작용하면 민주주의가 얼마나 후퇴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판결”이라며 “전교조가 노동기본권과 참교육 실천 활동에 나서는 것을 두려워한 정권이었기 때문에 전교조를 법 밖으로 몰아냈다”고 말했다.

▲ 김정훈 전교조 위원장(왼쪽)과 하병수 전교조 대변인이 지난 6월 19일 법외노조 통보 처분 취소 소송 1심 패소 후 서울행정법원을 나오고 있다.   ⓒ 이가람 기자 grlee@laborplus.co.kr
현재 법외노조 상태인 전국공무원노조는 이날 “전교조와 함께 공무원노조법과 교원노조법에서 해고자가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없도록 되어있는 독소조항을 개정하기 위한 투쟁에 본격적으로 나설 것”이고 “전교조와 공무원노조의 법외노조화에 대한 모든 책임은 결국 권력의 수장인 박근혜 대통령에게 있음을 분명히 하며, 공무원노조는 민주노조 사수를 위한 전면적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성명을 냈다.

전교조의 상급단체인 민주노총은 “가맹 조직으로서의 전교조도, 무한경쟁과 돈의 가치가 아닌 공동체와 사람다움을 위한 참교육이라는 가치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이번 판결은 어떤 합리적 판단이라고 인정할 수 없으며, 오로지 정치적 탄압의 연장으로 받아들이는 바, 우리의 투쟁도 계속될 것이며 노조의 자주적 결정권을 과잉 침해하는 법조항 자체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병수 전교조 대변인은 향후 일정에 대해 “21일에 대의원대회를 열어 구체적으로 논의한 이후, 다음 주에 항소와 가처분 신청을 진행”하고 “단식농성을 16개 지부 지부장까지(김정훈 위원장은 지난 9일부터 정부서울청사 앞 단식농성 중) 확대할 것”이라고 전했다.

교육부는 이날 판결에 따른 후속조치를 즉각 발표했다. 노조 전임자의 복직과 노조 사무실 지원 중단, 조합비 원천징수 금지, 단체교섭 중지 및 해지 등이 후속조치에 해당된다. 전교조의 전임자는 총 72명이다. 교육부는 7월 3일까지 이들에게 복직할 것을 권고해, 이를 어기면 직권면직 내지 징계사유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교육부는 또 전교조의 조합비도 7월부터 급여에서 원천징수를 금지하도록 했다. 이에 대해 전교조는 CMS 방식의 조합비 납부를 도입해 재정상의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 김정훈 전교조 위원장이 지난 6월 9일부터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단식농성을 했다. 8일차인 6월 16일 오전 모습.  ⓒ 이현석 객원기자 175studio@gmail.com
고용노동부와 전교조의 다른 시선

이번 소송에서는 ‘노조 아님’ 통보의 법적 성격을 고용노동부와 전교조가 서로 달리 판단하고 있다는 점이 쟁점 중 하나였다. 노조법 시행령 제9조 제2항에는 ‘노동조합이 설립신고증을 교부받은 후 법 제12조 제3항 제1호에 해당하는 설립신고서의 반려사유가 발생한 경우에는 행정관청은 30일의 기간을 정하여 시정을 요구하고 그 기간 내에 이를 이행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당해 노동조합에 대하여 이 법에 의한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함을 통보하여야 한다’고 돼 있다.

이에 대해 고용노동부는 집행명령으로 사법부의 위임 없이 행정부가 직권으로 ‘노조 아님’을 통보할 수 있다고 본다. 반면 전교조는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는 행위는 법률적 근거가 필요한 행정처분에 해당한다고 주장한다. 노조법에 행정부가 ‘노조 아님’을 통보할 수 있는 근거 조항이 없다는 것이다.

또 다른 쟁점은 노조법 제2조 제4호의 노동조합으로 보지 않는 경우에 대한 것이다. 이 사건에서는 라목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하는 경우, 다만, 해고된 자가 노동위원회에 부당노동행위의 구제신청을 할 경우에는 중앙노동위원회의 재심 판정이 있을 때까지는 근로자가 아닌 자로 해석해서는 아니 된다’는 해석에서 양측의 주장이 갈린다.

고용노동부는 해고자가 단 1명이라도 가입 및 활동을 하면 ‘노조 아님’을 통보할 수 있다고 보고 있는 반면, 전교조는 해고자로 인해 노조의 자주성이 훼손될 때만 ‘노조 아님’ 통보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1999년 전교조의 노조 설립신고 당시 규약에 관해서도 양측의 입장이 다르다. 문제가 되는 규약의 내용은 해고자 조합원 인정 조항이다. 전교조가 해당 조항을 설립신고 이후에 제정했고, 고용노동부는 2010년에 이 조항을 발견해 전교조가 허위로 해당 조항을 삭제 후 신고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전교조는 규약을 개정할 때마다 고용노동부에 알리는 노조는 없기 때문에 정상적인 절차라고 주장한다. 또한 이미 많은 노조들이 해고자를 조합원으로 인정하고 있어 이를 이유로 전교조를 법외노조화 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밝히고 있다.

ⓒ 이가람 기자 grlee@laborplus.co.kr
교육감·학부모·시민단체 탄원서도 보람 없이

전교조는 이번 판결을 앞두고 여러 가지 시도를 해왔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김정훈 위원장은 법외노조 통보 철회와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촉구하며 단식농성을 지난달 9일부터 했다. 김정훈 전교조 위원장은 단식농성에 들어가기에 앞서 “민주진보 교육감이 13명이나 당선된 것은 사회의 기조를 근본부터 바꾸자는 것”이라면서 “억압과 지시의 교육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전교조는 지난달 14일 교사대회를 열어 법외노조를 철회하라는 카드섹션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이날 교사대회에서 전교조는 법외노조 통보의 본질이 “박근혜 정권이 자본가의 마음껏 돈 벌 자유, 친일독재미화 세력의 맘껏 지배할 자유를 보장해 주기 위해서 교사들의 입을 막고 손발을 묶어두려는 것”이자 “교사들의 단결과 주체적인 교육활동을 막기 위해 전교조를 없애려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교사대회에서 한 조합원은 “법외노조가 되면 정부는 지금보다 더 전교조(의 목소리)를 듣지도 취급하지도 않을 것”이라면서 “우리가 원하는 것은 전교조의 합법노조 지위 유지로, 조합원 6만 명 중 9명의 해직자가 있다고 법외노조가 되는 것은 어떤 나라에서도 용납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전국 13개 시도교육청 교육감들은 탄원서로 전교조를 지지하기도 했다. 지난해 10월 고용노동부의 법외노조 통보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앞두고 광주, 강원, 전남, 전북 교육감이 법원에 탄원서를 제출했었다. 6월 19일 1심 판결을 며칠 앞두고는 서울, 부산, 인천, 세종, 경기, 충북, 충남, 전북, 전남, 경남, 제주 교육감이 서울행정법원에 탄원서를 제출했다.

탄원서에서 조희연 서울 교육감은 “전교조가 법적 지위를 상실한다면 교육현장의 다양성이 손상을 입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면서 백년지대계라는 교육의 현장에는 다양한 지혜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어 조희연 교육감은 “전교조의 지혜도 필요하고 교총의 지혜도 필요하다”며 “이 점을 재판부에서 깊이 헤아려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썼다.

이외에도 전교조 조합원과 비조합원 교사, 국회의원, 시민과 학부모 등 3만여 명이 탄원서를 제출했다. 그럼에도 19일 서울행정법원에서 ‘노조 아님’ 판결을 하면서 탄원서의 효력이 크게 미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엇갈리는 각계 반응

전교조 법외노조화에 대한 반응은 엇갈린다. 김명수 교육부 장관 후보자는 전교조의 법외노조화는 당연하다고 지난 2월 한 언론과 인터뷰한 바 있다. 법외노조가 되든 법내노조가 되든 김명수 후보자가 교육부 장관이 되면 전교조의 진로에 적신호가 예상되는 상태였다. 이 때문에 전교조를 비롯한 진보성향의 시민단체들은 김 후보자를 교육부 장관의 자리에 앉힐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이들은 지난달 18일 기자회견을 열어 김명수 교육부 장관 후보자가 “교사들로 하여금 정권에 대한 맹목적인 순응과 복종을 주문하고 있다”면서 “이렇듯 낡은 관념과 권위적인 잣대로 진보교육감과 교사와 학생을 통제하려 하고, 학교현장에 맞지 않는 교육정책을 남발하지 않을까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 없을 지경”이라고 주장했다.

다른 교원단체인 한국교총도 전교조의 법외노조 판결에 대해 “전교조의 조직 및 운영에 관련한 사항으로 인해 안정돼야 할 교육현장에 갈등과 혼란이 있어서는 안 되며, 극한 선택은 극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법원의 판결 존중과 법을 지키는 자세가 필요함을 강조한다”면서 “현행 교원노조법령이 현실과 맞지 않고 잘못된 점이 있다면 국회 심의과정을 통해 개정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판단하며, 현행 법령과 법원 판결마저 부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고 밝혔다.

하지만 전교조 법외노조화에 대해 비판하는 단체들도 많다. 앞서 탄원서를 제출하거나 기자회견에 참여한 단체 외에 국제 교원단체에서도 전교조의 법외노조화는 국제 기준에 어긋난다며 비판한다.

전교조에 따르면 캐나다 교원 단체 CSQ “전교조의 노조 등록 취소는 국제 기준에 위반되는 것이며, 국제적으로 한국의 인지도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덴마크 교원 노조 DLF는 “9만 명의 조합원이 있는 덴마크 교원노조는 그 중 19,000명이 퇴직 교원들이다. 귀 정부가 전교조의 등록을 취소하고자 위협하고 있다는 소식에 대하여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는 메시지를 정부에 전달했다.

스페인 교원노조 FECCOO도 “국제기구 및 한국 국내기구로부터도 계속적으로 비난을 받아왔던 해직자에 대한 노조원 자격 금지 조항을 이용해서 전교조의 노조 등록을 취소하고자 위협하는 것은 매우 실망스러운 일이다. 그 비난 받아온 조항이 지금 바로 개정되어야할 조항”이라고 주장했다.

프랑스 교원노조 FNEC FP FO는 “결사 및 단체 협상의 권리 같은 노동조합의 자유와 권리 보호는 불가침의 권리들이다. ILO 87, 98호 협약에 포함된 내용이며, 한국은 이 협약을 조속히 비준해야 할 뿐만 아니라, 존중해야한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행정부에 이어 사법부까지 전교조가 법적으로 노조가 아니라고 규정했다. 그렇다면 전교조가 법내노조가 되기 위한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규약을 개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그동안 전교조 활동에 앞장서 온 조합원들을 내치는 것이어서 전교조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 이가람 기자 grlee@laborplus.co.kr
또 다른 방법은 법을 개정하는 것이다. 교원노조법에는 현직 교원만 노조에 가입할 수 있게 돼 있다. 전교조는 이를 전직 교원까지 포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4월 29일, 한명숙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대표 발의한 교원노조법 개정안에는 ‘교사 자격이 있는 사람으로서 같은 법 제2조에 따른 학교에 근무하거나 근무하였던 사람’까지 교원으로 본다는 조항이 담겨 있다. 즉 전직 교원에게도 조합원의 자격을 부여한다는 내용이다.

19일 법외노조 판결 이후 신인수 전교조 공동변호인단 변호사는 “민주주의의 시계가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다. 이번 판결이 결코 끝이 아니다. 시계를 2014년으로 돌리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교조는 교원노조법 개정과 이번 판결에 대한 항소 등 법률 투쟁을 계속 이어갈 계획이어서, 교육 현장에서는 당분간 이를 둘러싼 갈등이 고조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