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의 길 찾는 독일, 복지국가 이념 접었나?
중도의 길 찾는 독일, 복지국가 이념 접었나?
  • 오도엽 객원기자
  • 승인 2014.07.15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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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과 고령화 문제, 소득보장 대신 근로의욕 고취로 방식 선회
사회보장제도 후퇴…아직은 촘촘한 사회부조로 최후 안전망 마련
[기획 연재] ‘복지강국의 비밀’ (2) 독일

▲ 제갈현숙 박사 ⓒ 이현석 객원기자 175studio@gmail.com
“국민은 국가의 서비스를 축소하고, 개인책임을 장려하고, 개인 각자가 자신으로부터 더 많은 서비스를 요청해야 한다.”

2003년에 독일 사민당과 녹색당의 연립정부를 주도한 게르하르트 슈뢰더 당시 총리의 말이다. 2000년대 이후 독일의 사회보장제도는 대대적인 수술에 들어갔다. 한쪽에서는 이를 개혁이라고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사회해체라고 비판한다.

제갈현숙 박사를 만나 독일의 복지를 물었다. 그는 복지국가 성격 분석으로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고, 현재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위원으로 일한다.

사회보험제도, 노동자에게 당근 내밀다

사회보험제도를 가장 먼저 실시한 나라가 독일이다.

“비스마르크가 1800년대에 사회보험제도를 도입했다. 독일은 영국이나 프랑스에 비해 산업화가 늦었다. 비스마르크는 애국심이 강했던 사람이다. 영국이나 프랑스에 비해 늦은 산업화를 따라잡기 위해서는 독일 노동자들이 열심히 노력해 노동생산성을 높여야 했다. 근대국가로 가는 데 중앙정부로 권력을 집중시킬 필요가 있었다. 사회보험제도를 통해 중앙집권을 달성하고, 한편으로는 노동자들의 충성도를 높이려고 하였다. 당시 사회보험제도를 실시하기 1년 전에 사회주의탄압법을 만들어 체제에 반하는 노동자들은 감옥에 가뒀고, 체제에 순응하는 사람에게는 사회보험이라는 당근을 준다.”

독일의 사회보장시스템은 어떻게 이루어져 있나?

“사회보험국가라 가입자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공적연금과 산재, 고용, 의료, 장기요양 등이 소득보장을 목적으로 설계되어 있다. 여기에 빈곤층에게 제공하는 사회부조와 시민의 지위를 가지면 받을 수 있는 보편적 수당이 있다.”

자료 : BMAS (2011), Sozialbudget 2010.
출처 :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소득보장에서 능력 향상으로

사민당과 녹색당의 적록연합정부가 들어서며 독일의 복지제도에 큰 변화가 있었다.

“슈뢰더 정부 때 노동자들이 연금을 들면 국가가 일부 지원하는 제도를 만들었다. (고령화와 실업률 증가에 따라) 복지 지출을 줄여 재정 지속성을 가져가려고 했다. 복지 지출을 줄이려면 사회보험을 어떤 식으로든 민간시장으로 이동시켜야 했다. 개인연금인 리스터연금에 가입하면 정부가 지원을 해줬다. 그래서 사회보험과 함께 개인연금을 들었다. 부담이 그만큼 커졌다. 중산층 이상은 개인연금을 유지하는데, 중산층 이하는 리스터연금을 유지하지 못한다. 보험료를 내지 못하면, 그동안 정부에서 보조했던 금액을 가져간다. 결국 없는 사람일수록 혜택을 보지 못한 결과를 낳고 있다.”

2000년대에 들어 소득보장 중심의 복지에서 탈피하였다.

“그 당시 영국의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가 ‘제3의 길’을 선언한다. 제3의 길의 핵심은 소득보장 중심의 복지는 낡고 후졌다고 생각하는 거다. 영국도 그렇고 독일 사민당도 신자유주의 물결에 제대로 맞서지 못했다. ‘기존의 사민당 방식으로는 승리하지 못한다. 의회에서 여당이 되어 집권을 해야 한다’며 노선의 변화를 가져왔다. 독일도 ‘중도의 길’을 발표한다. 소득의 지원을 통한 결과의 평등 방식에서 국민들의 능력을 향상하고 촉진하는 방법을 찾는다. 실업자에 대한 교육과 훈련이다. 소득보장 방식은 국가의 재정을 약화하고 노동의욕을 떨어뜨린다는 보수주의자의 논리를 그대로 갖다 쓰기 시작한다. 폭스바겐 사장 출신인 하르츠를 위원장으로 하는 ‘노동시장 현대화 개혁위원회’를 만들어 하르츠법안을 만든다. 메르켈이 있는 기민당과 차이가 사라지자 사민당의 일부 세력이 나와서 지금 좌파당을 형성하는 기틀이 됐다.”

원칙 바뀌어도 지출은 줄지 않았다

독일의 사회보장제도가 많이 후퇴한 건가?

“강력한 신자유주의 시대에 들어와 (복지제도의) 체질과 원칙은 많이 바뀌었지만 재정 측면에서 지출은 줄지 않았다. 경제활동인구 대비해서 90%를 사회보험이 커버하고 있다. 사각지대는 10% 미만인데 공공부조로 해결하고 있다. 문제는 사각지대가 아니라 급여수준이다. 독일은 철저하게 소득비례 원칙이다. 저임금으로 일했던 사람은 평균 소득 이상의 사람과 차이가 난다.”

<그림2> 사회부조제도의 급여종류별 지출비중(2010)
자료 : Statistisches Bundesamt, Sozialleistungen : Soziahilfe 2011년
출처 :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그럼 저소득층은 생계가 힘들 수 있는 거 아닌가?

“소득 기준이 있다. 연금에서 최저소득 아래로 떨어지면 부조의 원리로 보장한다. 현재 독일의 공적 소득이전이 대략 80%선이다. 자기 소득에서 80%를 연금으로 받는다는 거다. 이걸로 생활이 거의 되는 셈이다. 문제는 연금개혁 이후 세대에게는 (연금이) 깎여 적용되니 앞으로 연금을 수령하는 세대들의 경우 우려가 있다.”

복지는 공짜가 아니다

독일에서 7년간 생활했는데, 독일 정부나 시민들이 복지를 바라보는 시선은 한국과 어떤 차이가 있나?

“한국은 복지를 인식하기 시작한 게 얼마 되지 않는다. 아직 권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복지는 공짜가 아니다. 한국에서 ‘무상, 공짜’ 하는데, 무상이 아니다. 독일에서는 ‘게제리히’, ‘법적’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절대 ‘무상’이라는 말을 안 쓴다. 복지는 조세든 사회보장제도를 통하든 시민들의 기여를 바탕으로 관리 운영한다고 생각한다. 사회보장(부조)을 받는 입장에서도 자기 권리의식이 있다. 한국에는 (자신이) 돈을 내면서도 무상이라고 하는 이중의식이 있다. 또한 무상을 내가 받는 건 좋은데 딴 사람이 받는 건 싫어한다. 연대의식이 깨져있다. 독일은 연대의식을 늘 강조한다. 시민진영과 노동진영은 물론 국가도 연대의식을 이야기한다. 내 옆에 살고 있는 이웃과 내가 함께 살아가려면 각자가 무엇을 할 것이냐를 생각한다.”

무상의 개념을 어떻게 바꿔야 하나?

“내가 ‘왜 무상이냐? 의무나 책임, 이렇게 바꾸자’고 했다. 하지만 이미 무상이라는 말이 시민들에게 대중성을 획득했기에 이걸 버릴 수가 없는 한계가 있었다. 거기에 복지에 대한 (진보의) 포퓰리즘이 있었다. 선거에서 너무 못 이기니까…. 계속 무상 패러다임으로 가면 장기적으로 재미를 볼 수 없다.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secret 하나

탄탄한 사회보험제도93% 공적연금 가입

독일의 복지는 사회 안정을 중요하게 여긴다. 스웨덴처럼 평등문제를 해결하려고 빈곤문제에 접근한 게 아니라 사회의 질서를 깨지 않고 유지하기 위한 문제로 바라본다.

독일의 공적연금제도는 산업·직역·지역별로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국민연금제도, 공무원연금제도, 농민연금제도, 예술가사회보험제도, 특수직역 자영자공제조합제도 등이 있다. 2009년 독일의 전체 생산인구 약 5,110만 명 가운데 68.7%, 3,513만 명이 국민연금에 가입했다. 여기에 공무원, 농민을 비롯한 의사·약사·변호사와 같은 특수직역 공제조합제도 가입자를 포함하면 전체 생산인구 93%가량이 공적연금에 가입되어 있다.

독일의 국민연금제도는 세대 간 계약의 원리에 기초한 부과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연금을 적립하는 형태가 아니라 연금 수령자의 급여를 현재 일을 하는 사람이 책임지는 방식이다.

급속한 고령화로 연금 불안 문제가 제기된 독일은 2001, 2004, 2007년 세 차례에 걸쳐 연금개혁을 했다. 인구 고령화에 따른 연금재정의 부담을 현세대와 미래세대가 공정하게 분담하는 방안을 강구했다. 이때 도입한 리스터 연금은 공적연금의 급여 축소 분을 보완하려고 가입자의 소득 수준에 따라 국고에서 지원하는 사적연금이다. 리스터연금에 가입하면 기본 보조금과 자녀수에 따른 보조금, 세금 공제가 주어진다. 공적연금의 경우 노동자와 사용주가 반반씩 부담했는데, 사적연금의 경우 사용주는 기여금을 내지 않고 대신 국가가 보조해주는 형태다.

secret 둘

실업수당에 이은 공적부조로 실업자의 삶 책임지다

사민당과 녹색당 연립정권은 ‘아젠다 2010’을 발표한다. 만성적인 실업률을 줄이려는 정책으로 과거와 ‘단절과 혁신’이라는 원칙 아래 사회보장제도의 개혁을 시도한다. 하르츠가 중심이 된 ‘노동시장 현대화 개혁위원회’의 보고서에 따라 4개의 하르츠법안이 만들어졌다.


독일의 고용촉진제도는 종전 실업보험 위주의 제도운영에서 탈피하여 적극적으로 고용을 지원하는 제도로 기능을 전환했다. 이 제도는 개인들이 지역·직종·직업 전반에 이동성의 능력과 의지를 갖출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방안을 찾았다. 개인의 상황이나 선호를 반영하려고 바우처제도와 같은 다양한 제도를 도입해 개인의 선택권과 자율권을 보장했다. 제도나 프로그램의 효율성과 효과성을 위해 직업알선, 상담, 교육 등에도 경쟁의 원리가 적용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었다. 고용촉진 목적 사업에 벗어나는 가족정책이나 모성보호사업 등이 재원은 보험료가 아닌 국가의 일반재정에서 충당할 수 있는 법률적 근거를 만들었다.


또한 실업부조제도를 폐지하고 ‘실업급여Ⅱ(하르츠Ⅳ)’라고 불리는 실업자 기초소득보장 제도를 새롭게 도입했다.


실업수당을 받으려면 지난 2년 동안 적어도 12개월을 보험에 가입하고 취업해야 한다. 수급기간에 최소 6개월에서 24개월까지 받을 수 있다. 실업수당을 받고 나서도 취업을 하지 못하면 실업급여Ⅱ를 받는다. 이때는 의무위반과 관련해 더욱 엄격한 규정을 적용한다. 노동을 거부할 경우 수당지급이 축소된다. 정신적, 정서적, 그리고 육체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모든 일자리를 의무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실업급여Ⅱ는 정상급여 이외에도 사회보험료 지원, 주거비와 난방비 등을 지원한다. 임산부와 한 부모 가정, 장애인, 신장투석과 당뇨병과 같은 만성질환자들에게는 추가비용지원과 일회성급여 등을 별도로 지원한다. 실업수당과는 달리 개인이 경제활동연령으로 근로능력을 가지고 있는 한 기간의 제한 없이 제공한다. 한국의 경우 달리 실업수당의 수급 조건이 끝나도 공적부조로 실업자의 생계를 지원하는 제도다.

secret 셋

빈곤의 사각지대를 막을 최후의 안전망이 있다

독일의 사회부조제도는 ‘부조의 원리’를 토대로 운영한다. 사회보장제도(일차적 안전망)의 기능적 결함을 보완하는 ‘이차적 안전망’ 또는 ‘최후의 안전망’으로서 역할을 한다.


사회부조로 생계급여를 제공한다. 생계급여는 가계의 유지를 위해 ‘필요로 하는 생계자원’을 자력(소득활동, 자산, 사회보장급여 등)이나 타인(주로 부양의무자)의 지원 등을 통해서 제대로 충당할 수 없는 사람이 수급대상이다. 빈곤가구의 기본적인 최저생계를 보장하고, 동시에 개인별로 욕구나 상황의 차이를 반영하여 적절한 보호를 제공하기 위한 목적으로 다양한 종류의 급여들을 운영한다. 기본급여와 확장급여의 항목으로 크게 구분한다. 기본급여는 다시 정상급여, 추가급여, 주거 및 난방급여 그리고 사회보장 지원급여가 있다. 확장급여는 일회성급여, 보충적 융자 그리고 상담지원급여 등으로 구성된다. 이밖에도 시설보호자들을 대상으로 한 시설급여가 있다.

정상급여는 빈곤계층에게도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정상적인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필요한 식료품, 의복, 생활용품의 구입, 사회문화적 욕구의 충족 및 대외활동 등에 소요되는 제반의 비용을 포괄적으로 충당할 수 있는 수준에서 그 금액을 결정한다. 정상급여의 수준은 독신자나 가구주의 경우 표준정상급여의 100%로서 2009년과 2010년의 경우 각각 월 359유로로 책정했다. 나머지의 가구 구성원에 대한 정상급여는 각자의 연령에 따라 6세 이하의 경우 표준정상급여의 60%, 7세 이상 14세 이하의 경우 70% 그리고 15세 이상의 경우 80%의 수준에서 결정한다. 부부의 경우 각자의 정상급여(100%와 80%)를 합산하여 반분한 금액이 되는 90%를 부부 개인에게 지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