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2009년 철도노조 파업은 업무방해에 해당”
대법원, “2009년 철도노조 파업은 업무방해에 해당”
  • 임성봉 기자
  • 승인 2014.10.09 20:23
  • 수정 0000.00.0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11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뒤집고 철퇴 휘둘러
사측이 예상할 수 없을 정도로 ‘전격적’인 파업?
[분석 1] 철도노조 파업 업무방해 판결

ⓒ 참여와혁신 포토DB
지난 27일 대법원이 업무방해(2009년 파업)로 기소된 철도노조 노조원 22명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유죄 취지로 대전지법에 돌려보냈다. ‘파업은 곧 업무방해’라는 등식이 성립하던 과거로 사법부가 후퇴한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특히 이번 판결이 서울서부지법에서 진행 중인 김명환 철도노조 위원장, 박태만 수석부위원장 등의 재판에도 영향 끼칠 것으로 보이면서 파장이 적지 않다. 이들은 ‘수서발 KTX 자회사 설립’에 반대하며 지난 12월 불법 파업을 주도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상태다.

철도노조는 해당 판결이 내려지자 즉각 반발했다. 다음날인 28일 대법원 앞에서 해당 판결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고, 민주노총과 심상정 정의당 원내대표, 서기호 정의당 의원은 지난 9월 2일에 이번 판결과 관련한 긴급토론회를 개최했다. 사법부의 철퇴가 매서워지자 철도노조가 분주히 대응하는 모습이다.

이번 판결이 갖는 의미가 적지 않은 만큼 문제점은 무엇인지, 향후 갈등양상은 어떻게 나타날 것인지 짚어봤다.

2009년, 노사에 무슨 일 있었나

2009년 철도파업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1년 전인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시 노사는 2008년 4월 1일자로 유효기간이 만료되는 단체협약을 갱신, 2008년 임금협약 체결을 위해 교섭을 진행한다. 하지만 적절한 합의를 도출하는 데 실패하면서 노조는 노동위원회 조정신청 기간까지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거쳐 파업을 가결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이후 한국철도공사 대표자인 강경호 사장이 구속됨에 따라 단체협약 갱신교섭을 잠정 중단하고 2009년 3월 이후에 다시 논의하는 것으로 합의한다. 

2008년 말 정부는 한국철도공사의 정원 5,115명 감축 등을 골자로 한 4차 공공기관 선진화 계획을 발표한다. 이에 따라 2009년 1월, 한국철도공사는 인원을 감축하는 철도선진화 세부실천계획을 수립한다. 결국 2012년까지 정원을 감축하기로 한 이 계획(안건)이 이사회에서 의결되자, 전국철도노조는 ‘정원감축철회 등 구조조정 저지 및 해고자 복직’등을 요구하며 철도공사를 압박한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공공기관 선진화 계획을 강하게 밀어붙이자, 전국철도노조를 비롯한 민주노총 산하 노조는 2009년 9월에 공동투쟁본부를 결성한다. 목표는 ‘공공부문 민영화 중단 등 공공기관 선진화 정책 저지’였다.

공투본은 2009년 11월에 총파업 출정식을 갖고 지역별 순환파업에 들어간다. 이후 노사교섭이 4차례에 걸쳐 특별집중교섭 형태로 진행되지만, 2009년 11월 24일 마지막으로 개최된 교섭에서까지 합의점을 찾지 못한다. 결국 철도공사는 단체협약 해지통보를 하고, 철도공사와 노조는 전면전에 돌입하게 된다. 

노조는 곧장 투쟁명령을 하달한 뒤 11월 26일에 기해 장기간에 걸친 전면파업을 실행한다. 여객열차 999대, 화물열차 1,742대가 운행중단 되면서 영업수익 손실과 대체인력 보상금 지출 등으로 철도공사는 큰 손해를 입게 된다. 철도공사와 노조의 법적싸움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2014년 대법원, 철도공사의 손을 들다

먼저 1심과 2심은 노조의 손을 들어줬다. 혐의는 인정되지만 사전에 사측에 파업을 통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파업을 사전에 통보했다 하더라도 ‘파업의 목적성’에 따라 업무방해죄 해당 여부가 다르며, 2009년 철도노조 파업은 부당한 목적으로 진행해 파업을 ‘사전에 예측할 수 없어’ 업무방해에 해당된다는 판결을 내린 것이다. 대법원 판결의 일부를 살펴보자.

“순환파업 및 전면파업은 공동투쟁본부가 정한 일정과 방침에 맞춰 단체교섭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공공기관 선진화 정책 반대 등 구조조정 실시 그 자체를 저지하는 데 주된 목적이 있었음이 뚜렷이 드러나는 점 (…) 한국철도공사로서는 전국철도노동조합이 위와 같은 부당한 목적을 위하여 순환파업 및 전면파업을 실제로 강행하리라고는 예측할 수 없었다고 평가함이 타당하고 (…)”

이를 근거로 대법원 3부는 철도공사가 위와 같은 ‘부당한 목적’을 위해 파업을 실제로 강행하리라고 예측할 수 없었다고 평가함이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당시 파업이 “사용자인 한국철도공사의 사업계속에 관한 자유의사를 제압·혼란하게 할 만한 세력으로서 업무방해죄의 위력에 해당한다고 보기에 충분하다”고 했다. 이는 시기적으로 파업을 사전에 통보하면 업무방해죄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본 2011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과 다소 상충되는 지점이 있는 것이다.

판결에서 드러난 모순

여기서 중요한 개념이 ‘전격성’과 ‘위력’이다. 종전에 대법원은 주체, 목적, 절차, 수단과 방법에 대한 정당성을 기준으로 파업의 업무방해죄 해당 여부를 결정해 왔다. 또한 당시 대법원은 노동관계법령에 따른 정당한 쟁의행위로서 위법성이 조각(阻却)되는 경우가 아닌 한, 근로제공을 거부함으로써 사용자에게 손해를 입히면 이는 위력으로써 타인의 업무를 방해하는 행위에 해당한다고 봤다. 즉, 단순파업도 일단은 업무방해죄의 구성요건에 해당되는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지난 2009년 헌법재판소는 “쟁의행위는 고용주의 업무에 지장을 초래하는 것을 당연한 전제로 한다. 헌법상 기본권 행사에 본질적으로 수반되는 것으로서 정당화될 수 있는 업무의 지장 초래가 당연히 업무방해에 해당하여 원칙적으로 불법한 것이라 볼 수는 없다”는 결정을 내리게 된다. 업무방해에 대한 새로운 해석의 길이 열린 것이다. 이때 전격성과 위력이라는 개념이 파업의 업무방해죄 여부를 판단하는 중요한 요소로 떠오르게 된다. 

대법원은 헌재재판소의 결정 이후 2011년에 “사용자가 예측할 수 없는 시기에 ‘전격적’으로 파업이 이뤄져, 사업운영에 심대한 혼란 내지 막대한 손해를 입어야 업무방해에 해당한다”는 취지의 전원합의체 판결을 내린바 있다. 즉, 대법원이 종래의 판결관례에 벗어나 전격적(사용자가 예측할 수 없을 때)으로 이뤄진 집단적 노무제공거부(파업)를 위력으로 본다며 새롭게 의미를 정립한 것이다. 더불어 사용자에게 피해를 입히면 업무방해죄에 해당되던 것을 ‘심대한 혼란 내지 막대한 피해를 입혔을 때’로 업무방해죄 성립요건을 완화한다. 이 판결의 의미는 당시 대법원이 배포한 보도자료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이는 집단적 근로제공 거부인 파업의 업무방해죄 성립 여부와 관련해 형법상 업무방해죄의 구성요건요소 중 ‘위력’의 개념을 분명히 함과 동시에 위법한 쟁의행위로서의 파업의 경우, 만연히 업무방해죄로 처벌해 오던 종래의 관행에 제동을 걸고, 구체적인 사안에서 파업이 위에서 제시한 위력의 개념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살펴 업무방해죄의 성립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 결과 헌법을 정점으로 하는 현행 법령 체계 하에서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인 근로자들의 단체행동권을 보다 충실하게 보장할 수 있도록 하는 발판을 마련한 것이라는 점에서 이 판결의 의의를 찾아볼 수 있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문제는 ‘전격성’

이제 남은 문제는 2009년 파업이 ‘전격적’으로 이뤄졌냐 하는 부분이다. 만약 전격적으로 이뤄졌다면, 이는 곧 위력으로 볼 수 있고 업무방해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대법원은 ‘한국철도공사에서는 철도노조가 당시 부당한 목적을 가지고 실제로 파업에 들어갈 것이라고 예견할 수 없었다’고 하면서 2009년 파업이 전격적으로 이뤄졌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철도노조는 ▲ 한국철도공사의 파업자제 호소 ▲ 노조가 정한 파업일정 파악해 보고 ▲ 파업에 대비한 대책 수립 내지 시행 사실(대체인력 준비, 교육, 비상운영대책 수립 등)을 이유로 사측이 파업을 사전에 예견했다고 반박하고 있다.

철도노조가 제출한 증거에 따르면 철도공사 내부보고자료에 2009년 11월 5일부터 이틀간 열리는 파업에 대한 보고내용은 물론, 이에 대한 대책까지 명시돼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파업 전날인 11월 4일에 철도공사는 보도자료를 통해 언론에 파업사실을 밝히는 한편, 파업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 열차운행에는 전혀 지장이 없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또 다른 증거를 보면 철도공사가 11월 26일 파업을 사전에 보고한 사실도 확인할 수 있다. 해당 문서 하단에는 ▲ 비상수송대책 시행 완료 ▲ 필수유지업무필요인력 지명 및 개별통보 ▲ 각 소속장 및 2급 이상 간부 비상근무 시행 등 파업에 대한 주요 조치사항도 명시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철도노조는 ‘전격성’ 여부에 대해 위와 같은 사실을 근거로 ‘2009년 파업’은 철도공사가 충분히 예견가능한 일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충분히 대책을 마련해놨기 때문에 위력 판단의 한 요건인 ‘심대한 혼란 내지 막대한 손해’를 입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철도공사 초기 파업손해 주장액수는 약90억 원인데, 임금공제분은 100억에 달한다. 자료로만 보면 오히려 10억 원 가량 이익을 본 셈이다.

한편 이번 판결에 대해 철도공사의 입장을 들어보려 했으나 철도공사 측은 “판결 그대로 이해하면 되는 문제니, 어떤 입장인지 말할 것도 없다”고 답변했다.

|미니인터뷰|김영훈 철도노조 전 위원장

이번 판결의 숨은 의미는?

이번 판결, 어떻게 보고 있나?

“대단히 이해할 수 없는 판결이다. 어떠한 법리적 해석도 불가능하다. 대법원 논리가 이렇다. ‘철도노조 파업의 목적이 불법적이기 때문에, 사용자는 불법이 명백한 파업을 철도노조가 감히 할 것으로 예측할 수 없었다(즉, 파업이 전격적으로 실시됐다)’는 식이다. 그런데 이건 대법원의 논리라고 하기 보다는 공안검찰의 논리를 대법원이 그대로 수용했다고 봐야한다. 그대로 따지자면 (철도공사가 파업에)대비는 했지만 예측은 못했다는 것이다. 이건 모순이 아니라 궤변이다. 

대법원은 철도공사의 ‘실질적 행위’에 대해서는 판단을 거부하고, 사용자의 마음속에 깊이 들어가서 ‘이런 행동(대비)을 했더라도, 그 마음은 예측을 못했을 것이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의 판결논리대로라면, 박희태 같은 사람은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최근 캐디 성추행 사건을 예로 들며)내가 가슴은 찔렀지만, 내 마음은 손녀 같아 그런 것이다. 내 마음은 추호도 성추행 할 의도가 없었다, 라고 한다면 이 판결에 대비해 ‘가슴은 찔렀지만 성희롱은 아니다’와 같은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런 식이라면 우리사회가 근본적으로 붕괴될 수밖에 없다.”

판결이유를 살펴본다면?

“프로파일러가 된 심정으로 판결이유를 유추해볼 수밖에 없다. 23일간 파업 때(2013년 12월) 민주노총 침탈, 즉 ‘업무방해죄’로 고소·고발된 사람들을 검거하기 위한 목적으로 수천 명의 병력이 투입됐다. 그런데 2011년 판례에 비춰봤을 때, 이걸 업무방해죄라고 하기에는 불투명하다는 걸 법관들은 인지한 상태였다. 동시에, 수백 명을 고소한 철도공사는 무고죄에 해당될 수도 있던 상황이다. 여기서 박근혜 정부의 딜레마가 시작되는 거다. 경향신문사, 민주노총을 침탈한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이유는, 오로지 업무방해죄 혐의가 있는 사람들이 건물 안에 있다는 이유뿐이었다. 그런데 2009년 파업이 업무방해죄 무죄판결을 받으면, 당연히 2013년 파업도 같은 판결이 내려지게 된다. 결국 작년 23일 동안의 파업을 업무방해죄로 처벌하지 않으면, 도대체 정부는 왜 작년에 그렇게 까지 한 것이냐는 의문이 국민들 사이에서 생기게 된다. 그 엄청난 후폭풍을 피하기 위해, 이런 판결이 내려졌다는 것 말고는 그들의 범행동기를 설명할 방법이 없다.”

이번 판결에 숨은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저들이 말하는 것은 그냥 포기해라. 너희(노조)들은 무슨 수를 써도 우리한테 안 된다는 것을 각인시키려는 것이다. 세월호 특별법도 마찬가지지만, 처음에는 울더니 지금은 갑자기 태도가 바뀌지 않았나. 박근혜 정권은 군과 경찰과 정보기관에 의존하는 유사파시즘적인 성격으로 가고 있다. 또 일종에 사춘기, 혹은 중2병 같은 것일 수도 있겠다(웃음). 사회가 뭐라 말해도 나는 내 맘대로 하겠다는 식이다. 시민사회를 극도로 억압하는 기제, 그 기제는 국가폭력인데, 국가폭력에 마지막으로 기댈 수 있는 게 사법부다. 그런데 사법부마저도 정치에 완전히 귀속돼 버림으로써, 우리들의 저항의지를 완전히 눌러버리겠다는 의도가 더 강하게 먹혀들고 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무죄를 받을 때까지 싸워 나가면 된다. 포기하면 저들의 의도에 말리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