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에 따른 세금 징수로 소득을 재분배하다
소득에 따른 세금 징수로 소득을 재분배하다
  • 오도엽 객원기자
  • 승인 2014.10.13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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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법원, 적절하고 안락한 생활할 수 있는 합당한 임금 제정
강제퇴직연금 90%…저소득자에겐 적립금만큼 매칭하여 정부가 보충
[기획 연재] ‘복지강국의 비밀’ (5) 호주

▲ 호주 골드코스트의 센터링크 ⓒ 이진욱
박근혜 정부는 ‘증세는 없다’고 했다. 하지만 서민들에게 주어졌던 감세 혜택은 슬그머니 폐지되었다. 주민세와 담배세 인상이 예정되어 있다. 반면 특정 중견기업에 대산 상속세 공제 한도를 늘여주는 등 기업에게는 세 부담을 줄여주는 방식이 나오고 있다. 증세 대신 ‘꼼수’ 세금으로 서민들의 세금 부담을 늘이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호주의 사회보장체계에서 눈여겨 본 내용은 세금을 통한 소득재분배다. 여유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사회통합연구센터장의 목소리로 호주의 복지를 들춘다.

호주를 자유주의 복지국가 유형이라고 한다.

“호주가 자유주의 복지국가냐에 대한 반론도 있다. 캐슬(Castles) 교수는 호주의 기본적인 틀은 미국식의 복지국가랑은 전혀 다르다고 주장하며, 급진적(radical) 복지국가 모형, 임금노동자 복지국가라고 명명했다. 미국 유형을 잔여적 복지국가라고 하는데, 시장에서 탈락한 사람만을 위주로 한 공공부조 중심의 복지국가 유형이다. 호주는 미국에 비해 훨씬 진보적인 복지국가다.

호주 사회보장제도는 개인주의와 시장주의에 입각한 전형적인 자유주의보다 훨씬 더 통합적인(inclusive) 사회적 보호를 제공한다. 사회보장 급여 대상자 선정은 소득 및 자산조사를 수반하지만, 그 기준선이 높게 책정되어 있어서 세계에서 가장 포괄적인(comprehensive) 소득보장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호주는 최저임금 수준도 상당히 높은 걸로 알려져 있다.

“흔히 복지국가를 말할 때 복지제도에만 초점을 맞춰 보는 경향이 있다. 나는 노동시장하고 복지국가를 상호연관체제로 함께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호주 노동시장정책은 노동자 보호주의적인 기반이 강하다. 특히 1900년대 초반에 생활임금 개념을 법적으로 도입했다. 생활임금은 유럽보다도 더 선진적인 개념이다. 생활임금이 현재의 최저임금으로 연결된다. 호주는 최저임금 수준이 굉장히 높다는 게 하나의 특징이다.”

secret 하나 합당한 임금

호주는 세계에서 가장 먼저 생활임금 제도를 만든 나라다. 1907년 호주 연방 조정법원 히긴스(Higgins) 판사의 하베스터(Harvester) 판결로 공식화 되었다. 노동자들이 품위를 유지할 수 있는(decent) 임금수준을 제도화한 것이다.

히긴스 판사는 ‘합당한 임금(a fair and reasonable wage)’에 대한 유일한 기준은 “문명화된 공동체에서 살고 있는 인간으로 간주되는 평균적인 피용자의 규범적 필요”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했다. 5인 가족이 “조명, 옷, 신발, 가구, 가구집기, 각종 요금, 생명보험, 저축, 손보협회, 일자리 상실, 노조회비, 책과 신문, 전철요금, 재봉틀, 탈수기, 학용품비, 오락 및 휴가비, 주류, 담배, 질병 혹은 사망, 십일조”를 낼 수 있는 금액으로 ‘적절하고 안락한(modest and comfort)’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임금이다.

당시에 부인과 자녀를 부양하는 성인 남성에 대해 하루 7실링 혹은 주당 42실링을 ‘합당한 임금’으로 규정했다. 히긴스 판사는 1명에서 7명 사이의 아동을 가진 아홉 가족의 실질적인 예산과 생활비를 연구해 이 금액을 도출했다.


호주는 북유럽 국가와는 달리 사회부조 중심의 소득보장체계를 갖췄다.

“호주가 사회부조국가이기는 한다. 하지만 한국에서 흔히 생각하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와 같은 그런 공공부조가 아니다. 가장 대표적으로 노령연금(Age Pension)이 있다. 65세 이상 인구의 78%가 노령연금 수급자인데 사회부조 방식이다. 아주 잘 사는 노인만을 배제시킨 나머지 노인들은 자산조사를 통해 급여를 약간 차등화해서 주는 방식이다. 한국의 기초노령연금하고 비슷한데, 한국보다 급여수준이 훨씬 더 높다. 중위소득의 40%정도(현재 한국 최저생계비 산정은 중위소득의 30%수준이다)까지 준다.

그래서 중위소득의 40% 기준으로 빈곤율을 따지면 호주 빈곤율(5.4%, 미국은 11.4%)은 오히려 북유럽이나 유럽대륙하고 비슷할 정도로 굉장히 낮다. 그런데 중위소득 60% 기준으로 하면은 미국(24.1%.  호주 20.4%) 수준으로 빈곤율이 높아진다. 복지기반이 잘 깔려 있지만 그 이상의 수준에 대해서 본인이 알아서 하라는 구조다. 그래서 호주는 자유주의와 베버리지식 보편주의의 중간 정도 노선을 걷고 있다.”

호주는 조세 비율이 높다고 알려져 있다.

“조세제도가 누진적이다. 소득세, 재산세, 기업의 법인세 비중이 오이씨디 국가 가운데 상당히 높은 편이다. 그에 비해 소비세는 오이씨디 평균보다 낮다. 소득세나 법인세, 재산세는 누진적이다. 특징적인 게 조세제도 내부에  소득재분배의 개념이 굉장히 강하게 들어가 있다.”

secret 둘 세금으로 소득 재분배

호주의 조세체계는 OECD 평균 이상으로 누진적이고, 그 내부에 사회보장 기능을 포함하고 있다. 125개 이상의 세금들이 해마다 부과되지만 그 가운데 10개의 세금이 조세의 90%를 차지한다. 조세 규모는 개인 소득세, 기업세, 재화 및 서비스세, 연료세, 인두세(주민세) 순이다.

OECD 기준으로 볼 때 기업세(법인세) 세율은 평균 이상이고, 소비세 비중은 평균보다 낮으며, 재산세 비중은 상대적으로 높다. 최상위 소득세율은 평균 수준이지만 역진적인 성격의 사회보장세가 없다는 점에서 최고 소득자에게 부과되는 세율은 매우 높은 수준이다. 세입의 약 40%는 노동에 대한 직접세(개인 소득세)이고, 기업에 대한 세금이 33%, 소비세가 27%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호주는 조세 부과 절차 내부에 다양한 재분배와 사회보장 기능을 가지고 있다. 일정 소득 이하의 가족에 대해서는 ‘부의 소득세(어느 개인의 소득이 최저생계비 또는 소득공제액에 미치지 못할 때 최저생계비와 실제소득간의 차액을 정부가 보조하는 세제. 한국의 근로장려세제 형식)’ 형의 급여를 제공하고, 그 이상의 가족에 대해서는 소득세를 부과해 조세를 통한 소득재분배 기능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한국의 건강보험료에 해당하는 메디케어(Medicare) 징세는 과세 소득의 1.5%에 해당하지만 저소득층에는 부과되지 않는다. 차상위계층에는 과세소득 1달러당 10%요율로 메디케어 징세가 감액된다. 반면에 기준선 이상의 과세 소득을 가진 개인에 대해서는 추가 1%의 추가 징세를 한다.


호주의 학자금 대출 상환 방식도 한국과 다르다.

“호주에는 헬프(HELP, Higher Education Loan Program, 고등교육 대부 프로그램)라는 제도가 있다. 호주는 미국하고 학제시스템이 비슷해서 대학 등록금이 굉장히 비싸다. 대부를 받지 않고 학비를 내면 20%를 할인해준다. 대부를 받으면 한국처럼 졸업하면 갚는 게 아니다. 졸업 후 취업해서 자기 소득이 일정정도 초과 했을 때 상환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면 연봉이 기준을 초과하면 상환하고 그 이하일 때는 상환하지 않는다. 한국도 참조할 필요가 있다.”

기준 소득을 벌지 못하면 평생 갚지 않을 수도 있는가.

“그럴 수 있다. 자기 능력이 안 되어 평생 실업자나 저임금 노동자로 살면 학자금 대부금을 상환 받지 않는 게 기본 정신이다. 능력 있는 수익자에게만 상환하도록 해 실질적인 재분배 기능을 하고 있다.”

secret 셋 HELP! 학자금

대학생이 학자금 대출을 받으면 졸업 후 과세소득이 특정 기준(41,595달러, 2008~9년)을 초과할 때 세금을 통해 대부금을 상환한다. 상환율은 4%를 시작으로 점증해서 소득이 77,248달러 이상이 되면 8%가 된다. 이처럼 소득에 따라 차등 적용하여 ‘능력 있는 수익자’에게만 대부금을 상환하게 해 실질적인 재분배 기능을 한다.

▲ 호주 센터링크 내부 풍경 ⓒ 이진욱
호주는 퇴직연금이 활성화되어 있다고 알려져 있다.

“1992년 강제화 된 강제기업(퇴직)연금(Superanuation Guarantee)이 실시되었고, 지금은 90%이상 근로자들이 가입했다. 현재는 65세 이상 인구 40~50%(43%, 2007년)정도가 급여를 받고 있으며 계속 늘어날 거다.”

한국의 퇴직연금과 차이점이 있는가.

“한국은 기본적으로 퇴직금이고, 현재 기업연금으로 바꾸려고 작업을 하는 거다. 호주는 고용주가 임금의 9%까지 적립하고, 2020년까지 12%로 상향조정할 예정이다. 노후의 안정된 삶을 위해 노령연금의 2층에 강제기업연금이 있다. 한국의 가장 큰 문제는 안정적인 근로자는 노후에까지 안정적인데, 불안정한 근로자는 노후까지 불안정하다는 거다.

한국은 (연금제도의) 사각지대가 너무 넓은 시스템이다. 대기업이라든지 공기업 근로자는 정년을 보장 받고 안정이 될 거다. 그건 국민연금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한국의 노동시장은 사회보험으로 (노후를) 커버하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자영업자 비중이 30%가 넘는다. 호주나 유럽 같은 경우에는 자영업자 비중이 10% 안쪽이다. 비정규직처럼 실질적 보호를 못 받는 근로자가 너무 많다. 이 부분을 어떻게 커버하느냐가 관건인데, 국민연금이나 기업연금은 안정적인 기업 근로자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

문제는 불안정한 계층이다. 이 계층은 어떤 시스템에도 항상 사각지대에 놓인다. 그래서 한국은 기초연금이나 호주식의 사회부조식의 연금을 강화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secret 넷 강제기업연금

호주의 대부분의 노동자는 강제기업연금 혜택을 받을 수 있다. 18세에서 69세의 노동자, 매월 450달러 이상의 임금을 받는 이는 연금이 적립된다.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고용형태와 상관없다. 18세 미만의 경우에는 주당 30시간 이상 일해야 자격을 부여한다.

저소득자의 경우는 적립금액이 적기 때문에 정부가 적립금만큼 매칭 하여 적립금을 보충해 주는 제도가 있다. 2011년 현재 가입자의 총소득이 연간 31,920달러 이하일 경우 최대 1,000달러에 한해 정부로부터 100%의 매칭 기여를 적용받고, 연간 소득이 61,920달러가 될 때까지 점차 삭감되는 요율로 부분적 매칭기여를 받을 수 있다.

고용주는 법에 의해 피고용인 급여의 9% 이상을 기업연금 기금에 적립해야 하며, 이는 급여에서 삭감되는 것이 아니라 급여에 추가된 고용주의 기여분(contribution)이다. 고용주는 기업연금을 납부하지 않을 경우 누락된 금액에 이자를 합산하여 납부해야 한다.

55세가 되면 기업연금을 수령할 수 있다. 분할 수령할 수도 있고, 일시불 수령도 가능하다. 2015년에서 2025년 사이에 수령 연령을 60세로 상향조정할 계획이다. 2008년 현재 은퇴한 이의 43%가 기업연금 급여를 받고 있다.


호주처럼 한국도 기초연금을 선별적으로 지급하는 방식이다. 여기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다.

“100% 하면 좋다. 무료급식 논쟁하고 비슷하다. 예를 들면 재벌 손자도 무료로 받아야 하느냐고 한다. 하지만 (혜택을 받는) 대신 세금으로 돈을 더 내면 되지 않는가. 굳이 100%를 다 해야 하느냐고 한다. 나는 꼭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연대적 측면에서 기왕 줄 거면 다 주자는 입장이다.

대신에 (소득이 많은 사람에게는) 그 이상을 세금으로 흡수하면 된다. 지금 시스템으로 가더라도 조금 더 (급여를) 강화해 나가야 한다. 굳이 (보편성이) 맞다 틀리다 논쟁은 큰 의미는 없는 거 같다.” 

호주를 복지 선진국으로 봐야 하는가?

“그건 아직 물음표다. 한국보다는 선진국이 분명하다. 노동시장 측면은 미국 쪽보다 선진적이다. 하지만 전체적인 경제 시스템이나 의식 측면에서는 자유주의 쪽에 가깝다.

최근 상황은 연금이나 최저임금과 같은 부분은 미국하고 상당히 다른 기조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크게 보면 자유주의 쪽으로 조금 더 가까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