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새로운 20년, 주춧돌을 제대로 놓자
민주노총 새로운 20년, 주춧돌을 제대로 놓자
  • 박종훈 기자
  • 승인 2014.11.03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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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만의 직선제, 예상되는 문제점 가능한 한 공론화
책임 있는 실천이 조합원 호응 불러올 것
[기획인터뷰] 양성윤 민주노총 직선제사업본부장

오는 12월 3일부터 9일까지 민주노총 임원을 선출하는 직선제가 치러진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직선제’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 기대되는 역사적인 순간이겠다. 내년이면 출범 스무돌을 맞는 민주노총이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나아갈지 가늠해 볼 수 있는 계기이기도 하다.

이미 민주노총은 8월부터 사무총국을 대대적으로 개편하고 직선제 임원선거를 준비하는 데 매진해 왔다. 직선제사업본부장을 맡고 있는 양성윤 수석부위원장을 만나 준비 과정과 그 의미에 대해 들었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구체적인 준비 상태는 현재 어떠한가?

“규약 규정과 관련된 정비는 거의 마무리되었다. 선거를 진행하는 실무지침 등도 완비되었다. 좀 미흡한 부분은 선거관리위원회의 유권 해석으로 선거 과정에서도 지도할 수 있다.

예비선거인명부, 조합원명부 이런 거를 반복해서 확인하면서 가급적 놓치는 선거인이 안 생기도록 신경 쓰고 있다. 대략 65만 명 정도의 선거인 규모를 예상하고 있는데, 그보다 약간 많을 수도 있다.

임원 직선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오래 전부터 고민해 왔던 것은, 이미 논의되었던 문제점들, 즉 예측 가능한 사례들은 수면 위로 드러내고 대응 방법이나 보완책을 마련해 놓았지만 생각지도 못했던 문제점이 과연 어떻게 불거질 것이냐에 대한 거다. 그간 우리가 제시한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사례들도 많을 거다.

사전에 이런 것을 공표하고, 공론화 한다면 선거 도중이나 선거 이후에 전혀 문제제기가 없을 것이다. 그걸 밖으로 끌어내지 못하면 갑자기 사고가 터지는 거다.

과거에 아마 인천본부장 선거 때인가로 기억한다. 인천공항공사 내 조합원이 일하고 있는 구역이었는데, 보안 문제 때문에 선거 참관인이 들어갈 수 없었다. 그런데 막상 해당 선거구의 결과가 꽤 중요하게 작용하기 때문이었는지, 문제제기를 하는 후보 진영이 있었다고 한다. 이런 사례를 최소화해야 하지 않을까.

시스템을 설계하고 준비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 바로 이러한 예외적 상황들, 상식적 수준에서 이해할 수 있는 모든 부분들을 다 끌어내 각 후보 진영을 비롯한 구성원들이 납득하고 동의할 수 있게끔 준비하는 거였다. 문제가 차단되는 방법이다.”

규모가 크니 비용적인 부분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다.

“재정 부분도 역시 고민이 많다. 현재 책정된 예산 수준으로는 아주 공식적인 것들, 투표 용지라든지 투표함이랄지, 정책자료집이나 이런 부분만 가용할 수 있다. 실제 각 후보에게 필요한 비용을 대주는, 선거공영제 같은 게 시도되기는 어렵다. 각 후보 진영에서 선거대책본부도 꾸리고, 그러면 거기에 드는 비용도 어마어마할 텐데, 그런 게 조금 걱정이다.

상대적으로 조직이 없는 후보자들에게 기회가 굉장히 줄었다고 생각될지 모르겠다. 십시일반으로 비용을 분담한다 해도 부담이 클 테니까. 선거가 끝나고 나면 당연히 예상하는 것처럼 많은 평가가 이뤄질 텐데, 분명히 비용과 관련한 부분도 이야기의 한 축을 차지할 거라고 생각한다.

선거의 과열이라든지, 혹은 불법한 행위나 부정행위의 경우, 선거가 끝나면 그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조직 내 징계를 주는 규정을 두었다. 모든 게 선거에 집중돼 있는 상태에서, 선거만 끝나면 그 결과에 따라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넘어가는 그런 일은 안 된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조합원 호응, 현장 간부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

투표 방식에 대한 부분도 이미 공개됐다. 주안점을 두었던 부분은?

“사태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이 있고, 물론 직선제라는 덩어리 자체가 무거운 이슈기 때문에 민주노총 입장에서는 나름대로 어려움이 있다. 그래서 그동안 유예돼 왔던 부분도 있고. 가장 본질적으로 고민했던 부분은 임원 직선제에 가능한, 폭 넓은 조합원의 참여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모든 논의의 전제조건이 되었던 부분이다.

결국 선거권을 어떻게 줄 것이냐에 대한 고민이다. 형평성 문제라든지, 여러 이견이 있는 상황에서도, 조합원의 권리를 제약하는 것보다는 가급적 열어 놓는 방향으로 처음부터 일관되게 판단을 내려 왔다.

투표의 방식과 관련해서는 잘 알다시피 국회의원 비례대표 선출 과정에서 여러 가지 문제가 불거졌던 모 정당의 사례가 있었기 때문에, 인터넷 투표 방식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거점 투표, 현장 투표 방식으로 해야 한다고 쭉 밀고 나갔다.

그런데 현장 투표가 물리적으로 어려운 곳이 있다. 화물연대라든지 학교 비정규직이라든지. 이미 인터넷 투표, ARS 투표, 우편 투표 등 현장 투표가 아닌 방식으로 기존에 선거를 치러봤던 조직이 있다. 이런 곳에 한해서는 ARS 투표가 가능하도록 열어 놨다.

굳이 문제라고 제기하자면 ARS 투표도 발신자 전환 같은 방법으로 부정이 가능하다고 하는데, 화물연대 같은 데서 얘기하기를 본인이 갖고 있는 휴대폰이 사업장이나 마찬가지라는 거다. 일을 하려면 전화가 없어선 안 된다. 사업장을 과연 누구에게 빌려줄 수 있겠냐는 거다. ARS 투표의 대상 인원은 대략 10만 명에 조금 못 미칠 거 같다.

100% 무결점을 확신한다고 말하긴 어렵다. 부정행위를 하는 후보자나 후보 진영에 대해선 조합원들이 단호하게 심판해 달라고 계속 요구할 거다. 공직선거 과정에서도 마찬가지지만 관리의 문제가 언제고 지적될 수도 있을 거다. 처음 통일된 기준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이니까.”

무엇보다도 ‘흥행’하는 것이 분위기를 전환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거 같다.

“가장 중요하다. 현장 조합원들이 반응을 보여야 한다. 조합원들의 참여를 이끌어내야 한다. 상층과 기층의 온도차와 분리를 어떻게든 메워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직선제가 그동안 대안으로 논의됐던 건데, 과연 투표 행위로 그게 해소될 수 있을까?

직선제가 실행된다고 하는 거 자체만 갖고 그동안 이 제도를 주장해 왔던 의견 그룹의 성과물이라고 얘기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거다. 반대로 혹시 문제가 불거진다고 해서 과오로 낙인 찍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다.

시도해 보는 거다. 이게 우리 몸에 맞는지 안 맞는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공론만 벌이는 것보다 해 보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움직이지도 않으면서 이래서 안 된다, 저래서 안 된다. 비록 일보 후퇴가 될지언정, 가만히 있는 다면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 움직이는 것이 진보다.

개별 조합원들의 호응을 이끌어내는 것에서 나는 무엇보다 현장 간부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들이 내 일이라는 확신을 갖고 움직여야 한다. 공무원노조에서 치렀던 상급단체 결정에 대한 투표의 경험을 비추어 볼 때, 지부장들을 중심으로 현장 간부들의 자기 확신이나, 그걸 바탕으로 한 조합원들의 설득 과정이 없었다면, 민주노총 가입이 부결되었을 거라고 본다. 결정 이후에 따로 진행했던 설문조사 결과 등을 참고해 봤을 때 조합원들 개개인이 갖고 있는 생각이나 성향은 상당히 달랐다.

조합원들이 갖고 있는 기대나 신뢰도는 다 현장 간부들을 향해 있었던 거라고 본다. 이들이 ‘민주노총과 함께 해야 한다’며 열과 성을 다해 주장하고, 확 들쑤시니(웃음) ‘한번 믿어 주자. 밀어 주자’는 바람이 불었다고 본다.

이 경험을 곧바로 대입할 사안은 아니지만 아주 중요한 지점이라고 본다. ‘민주노총의 일’이 남의 일처럼, 혹은 멀리 있는 일처럼 느껴진다면 문제다. 내 일이고, 내 위원장을 뽑는 중요한 일이라고 현장 간부들이 느껴줬으면 좋겠다.

조금 다른 종류의 얘기일지 모르겠지만, 조직 내에서 책임감이 많이 옅어졌다는 점은 아쉬운 일이다. 지금까지 직선제 논의 상황을 봐도 그렇다. 이갑용 지도부 때 공약으로 들고 나오고, 결정된 지 7년째다. 항상 민주노총이 지적받던 부분은 결정은 하고, 집행은 따로라는 것. 여기에 대해 책임도 지지 않고. 밥 먹듯 지금까지 그래 왔다.

굉장히 무거운 숙제인 거다. 김영훈 위원장의 경우 그래서 사퇴를 한 거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우리의 문화나 풍토가 책임감과는 거리가 있지 않나? 대의원대회에서 결정이 되었다면 참석했던 대의원들은 책임감을 느껴야 하는 거다. 그때 당시 직선제를 결정했던 대의원들이 대체 지금 어디서 무얼 하는지 모르겠다. 나와는 의견이 다를지라도 내가 참석했던 회의체계에서 어떤 사안이 결정됐다면, 공동으로 책임을 져야 하는 거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역진불가, 결정 따로 집행 따로는 더 이상 없어야

외부에서도 관심이 뜨거운데?

“나 같은 경우엔 거주지를 중심으로 시민사회진영을 비롯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관계를 갖는데, 민주노총 조합원이 아닌 이들의 관심이 많다. 어마어마한 일이라는 둥, 민주노총만이 시도할 수 있는 일이라는 둥 기대가 굉장히 크다.

한국노총도 마찬가지다. 공공기관 가짜 정상화 폐기 이슈와 관련해 각 대표자들을 비롯해 많은 이들을 만나는데, 보자마자 항상 첫 마디로 물어보는 게 준비 잘 되고 있냐는 부분이다.

직선제사업을 준비하는 논의 과정에서 회의를 주관하기 전에 금기어를 제시하기도 했다. 직선제를 하는 게 맞냐 그르냐에 대한 논쟁은 금기였다. ‘역진불가’ 같은 표현을 쓸 수도 있겠고(웃음). 사업의 타당성을 논의하는 자리가 아니다. 이미 결정된 사안이고 이걸 어떻게 완벽하게 구현하느냐를 논의하는 자리다. 외부의 저 뜨거운 관심은 차치하고서라도, 조합원들의 냉소적인 시선을 돌리기 위해서라도 민주노총이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장기 투쟁 사업장, 지금도 치열하고 절박하게 투쟁을 이어 나가고 있는 현장을 생각해 보자. 이들과 함께 투쟁할 때 살펴보면, 직선제에 대해 얘기하는 사람들은 없다. 대선이 끝나고 박근혜 당선인이 인수위를 꾸리자 그 앞에서 엄청나게 투쟁 사업장이 몰려서 농성을 진행하기도 했다. 그때도 보면 직선제를 얘기하는 이들이 없었다.

계속 얘기하는 거지만 현장 조합원들에게는 직선제가 자기 마음에 안 들어오는 거다. 현장의 싸움은 절실한데, 민주노총 임원 선거를 직선으로 하냐, 간선으로 하냐는 별로 절실하지 않은 거다. 이걸 설득해 내는 게 어렵다.

하지만 민주노총 입장에선 이것도 굉장히 절실한 과제다. 직선제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새로 들어서는 집행부가 제대로 설 수 있는지가 가름된다. 집행부가 제대로 서야지만 훨씬 힘 있는 싸움을 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만약에 이번 선거가 부정시비로 얼룩진다든지, 여러 가지 문제가 선거 이후에도 계속된다면 내년 상반기는 정말 아무 것도 못하고 그냥 지나가는 거라고 보면 된다. 민주노총 출범 20주년을 앞두고 새로운 20년을 준비해 나가는 의미 깊은 자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