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해묵은 과제’
어떤 ‘해묵은 과제’
  • 박종훈 기자
  • 승인 2014.11.03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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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묵은 과제’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게 떠오르십니까?

얼마 전 우연치 않게 중국 홍군의 ‘대장정’을 그린 두 권짜리 그림책을 보고 그 자리서 정신없이 훑어 봤던 기억이 납니다. 역사적 사실만 갖고도 드라마틱한 내용을 힘찬 판화 기법의 그림 이야기로 그려냈으니, 만화광의 눈이 번뜩이지 않을 수 없었지요.

비슷한 내용을 다룬 영화 ‘건국대업’은 혹평을 받았지만, 까메오를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에드가 스노우의 ‘중국의 붉은별’ 역시 흥미진진한 책이지요.

복수 이야기야말로 ‘해묵은 과제’라는 테마에 가장 어울리는 소재가 많을 거 같습니다. 워낙에 다종다양한 작품들이 있으니, 각자 취향에 따라 좋아하는 작품 이름이 계속 쏟아지겠지만, 제가 좋아하는 건 알렉상드르 뒤마의 ‘몬테크리스토 백작’입니다.

로시니의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를 보면, 아름다운 로지나와 사랑에 빠진 알마비바 백작이 고약하게 늙은(?) 바르톨로의 방해에도 결혼에 골인합니다. 그 과정에서 극의 진짜 주인공인 피가로가 재치를 발휘하지만, 백작의 집념과 끈기가 없었다면 사랑을 쟁취하지 못했겠지요.

곧 발표될 것으로 보이는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둘러싸고 유령처럼 음습한 이야기가 떠돌고 있습니다. 비정규직 근로자를 고용할 수 있는 기간을 현행 2년에서 3년으로 늘리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는 게 바로 그것입니다.

당연한 수순처럼 노동계는 즉각 반발했고, 소문의 진앙지인 고용노동부는 “구체적으로 논의된 바 없으며, 보도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했습니다.

이와 같은 소문이 더 그럴 듯하게 보이는 건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의 전적 때문입니다. 2009년 노동부가 ‘100만 해고대란설’을 내세우며 비정규직 사용기간 연장을 추진할 당시, 이 장관은 근로기준국장으로 해당 업무를 담당했습니다.

장관 인사청문회에서도 과거의 전적은 다시 이슈화됐습니다. 이 장관은 당시 “통계 부족으로 인해 숫자를 정확히 예측하지 못한 것은 업무 상 한계로, 그 부분을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습니다.

앞선 장광설은 이 장관이 내심 이 이슈를 ‘해묵은 과제’로 품고 있지 않을까 싶어서입니다. 취임 첫 행보를 비정규직 사업장으로 향했으며,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비정규직 문제 해결의 가장 절실한 부분이라고 말했던 것과 내심은 좀 다를 수도 있겠구나 싶어서입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 그리고 이해 당사자들의 의견과 공감을 모아가는 방법에 대해서 아주 소시민스러운 고민들을 해봅니다. 이를 테면 지면을 할애한다든가, 다들 바쁜 가운데 일정을 나눈다든가 그런 고민들 말입니다. 설득보다는 강요나 협박(?)이 편하고, 정보를 공유하는 것보다는 독점하고 통제하는 게 의사결정이 빠릅니다. 소시민스런 고민도 이렇게 야만적인데, 더 큰 권력은 어떻겠습니까?

‘해묵은 과제’를 완수하는 것은 대부분 경우 칭송을 받습니다. 인내와 노력을 높이 사기 때문이지요. 어떤 해묵은 과제는 그냥 묻어 두고 잊는 게 나을 때도 있지 않을까요? 구성원들의 갈등만 더욱 키울 수 있는 문제라면 더욱 그렇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