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사랑방으로 초대합니다
우리 동네 사랑방으로 초대합니다
  • 박상재 기자
  • 승인 2014.12.19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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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가게 최초 미리내 가게 운영하는 최규철, 김은혜 부부
부부의 ‘나눔’ 철학이 맺은 수많은 인연들

새로 머리를 하고 왔다는 김은혜 씨가 젖은 머리로 인사를 건넨다. 인터뷰 때문에 머리까지 만지고 온 것이냐는 질문에 옆집 이웃이 무료로 파마와 염색을 해준다고 해서 받고 온 거라며 쑥스러워 한다. 그러더니 잠시 후엔 남편 최규철 씨가 따끈한 파전을 들고 와선 “요즘 다이어트 중인데 자꾸 이렇게 누가 음식을 갖다 주니 빠졌던 살이 다시 돌아오고 있다”며 대뜸 젓가락을 건넨다. 좀 있다가는 손님이 한 명 들어와선 익숙하게 인사를 하고, 옷을 고르며 수다를 시작한다. 옷가게라기 보단 사랑방에 가까운 모습이다.

ⓒ 김효진 객원기자 kkimphoto@gmail.com

‘참새가 방앗간 찾듯’ 찾아오는 사람들

“외국인 학생들이 몇 번 찾아왔었는데, 그 때마다 항상 뭐라도 주고 싶더라고요. 타지에서 고생하는 친구들이기도 하고, 한국의 정서를 알려주고 싶다는 생각에 군고구마도 주고, 한국 음식들을 나눠먹기도 했는데, 그게 외국인 학생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났는지 자주 찾아오더라고요.”

안암동에 위치한 ‘행복이 가득한 가게’는 올해로 2년이 조금 덜 된 구제 옷 전문 가게이다. 자리를 잡은 지 오래된 건 아니지만, 가게를 찾는 사람들은 이미 수십 년을 함께한 것처럼 가게를 들락날락한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연령대도 다양해서 처음엔 30~40대 주부들이 들어와 옷을 고르더니, 조금 지나니 인근 대학의 학생들이 들어와 이것저것 둘러본다. 최근엔 옷이 저렴하다는 소문이 대학가에 퍼지면서 외국인 교환학생들도 자주 찾아온다고 한다.

입소문뿐만 아니라 ‘행복이 가득한 가게’는 이미 방송을 통해서도 몇 차례 소개되기도 했다. 구제 옷이라는 아이템과 저렴한 가격 때문이다. 하지만 부부는 이런 식의 홍보가 부담스럽다며 오히려 난처해한다.

“몇 달 전에 저렴한 옷을 판다고 TV에 소개됐었는데, 한동안 ‘가게는 어디냐’, ‘영업시간은 어떻게 되냐’ 등 문의전화가 너무 많이 와서 영업하기가 힘들더라고요. 그러다보니 정작 가게에 찾아오는 손님들은 제대로 맞이하기도 힘들고. 우리는 그렇게 해서 돈을 많이 벌기 보다는 그냥 다양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 우선인데.”

실제로 가게는 누구나 찾아올 수 있는 자유로운 공간을 만들기 위해 노력 중이다. 저렴한 옷을 판매하는 가게들이라면 으레 걸어놓는 가격표나 입간판이 행복이 가득한 가게에는 전혀 없다. 너무 저렴한 가격이 적혀있으면 ‘싸구려’ 옷이라는 편견으로 사람들이 가게를 찾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판단도 있었고, 가게에 들어와 옷의 가격을 물어보는 것을 시작으로 자연스럽게 손님들과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렇다고 들어와 옷을 구경하는 손님들에게 붙어 구매 권유나 옷을 소개하지도 않는다. 백화점처럼 직원이 손님 곁에 붙어 옷을 설명하는 것이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 점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다만 누군가가 옷에 대해 물어보면 구체적으로 설명을 해주고, 어울리지 않는 옷이라면 가감 없이 “다른 옷을 고르는 것이 나을 것 같다”며 조언을 해주기도 한다. 이런 식의 자유로움이 김은혜 씨의 표현을 빌리면 ‘참새가 방앗간 찾듯’ 많은 사람들이 가게를 다시 찾도록 하는 요인이 되고, 궁극적으로는 행복이 가득한 가게를 동네 사랑방으로 만들고 있다.

나눔의 철학이 만든 가게

이들이 이런 사랑방 같은 가게를 운영하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우선 행복이 가득한 가게를 운영하기 전까지 최규철 씨는 “안 해본 일이 없다”고 말할 정도로 다양한 일을 경험했다며 오래된 앨범을 보여줬다.
결혼 생활을 시작했던 12년 전부터 두 아이들의 부모가 된 지금까지 쭉 이어져가는 사진들 중에는 지면 광고 스크랩자료도 들어있는데, 한 때 광고 모델로도 활동했던 최규철 씨를 찾을 수있다. 모델뿐만 아니라 한 때는 ‘술장사’도 하며 큰돈을 벌었던 적도 있었지만 이후 사업 실패를 경험하고, 이혼을 하며 절망적인 상황에 놓였던 적도 있었다.

그러던 도중 12년 전 지금의 부인 김은혜 씨를 만나 활력을 찾고, 컴퓨터 수출 사업을 시작했다. 급격히 늘어난 컴퓨터 사용인구와 함께 사업은 순조롭게 진행됐지만, 최근 태블릿PC와 스마트폰의 출현으로 다시 사업을 접어야 할 상황이 됐다. 그 후 부부는 어느 정도 생활의 안정을 찾은 상황에서 돈을 주된 목적으로 하기보다는 뭔가 뜻있는 일을 통해 사람들에게 베풀 수 있는 일을 하기로 결심했다. 평소 두 부부의 ‘나눔’의 철학이 반영된 결정인데, 김은혜 씨는 나눔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히며 행복이 가득한 가게의 운영 취지를 설명했다.

“나눔이라는 것에 대해선 예전부터 관심이 많았어요. 어떤 사람이 얼마나 돈을 버는지, 어느 위치에 있는 것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주어진 환경 속에서 무엇을 나누어 줄 것인지를 생각하는 것이 나눔의 시작이거든요. 만약 제가 음식점을 운영했다면, 질 좋은 재료를 사용해 많은 사람들에게 미각적인 즐거움을 주는 것도 나눔이고, 지금은 옷 가게이니 질 좋은 옷을 싸게 제공하는 것도 일종의 나눔이죠.”

덧붙여 최규철 씨도 나눔에 대한 생각을 설명했다.

“한 번 마음을 터놓고 얘기하면 서로가 편해져요. 사실 처음 가게를 운영할 때는 여성 손님들이 오면 눈을 어디에 둘 지도 몰랐어요. 옷 갈아입으러 왔다 갔다 하는 것도 부담스럽고, 대화를 나누는 것도 불편해서 아예 가게에 나오지 않은 적도 많았죠. 그런데 그렇게 몇 번 부딪히다가 어느 날 한 손님에게 먼저 제가 살아온 이야기를 늘어놓으니, 그 때부턴 그 사람과의 모든 것이 편해지더라고요. 나를 먼저 드러내면 상대도 마음을 열고 이야기를 하거든요. 삶을 나누는 대화 속에서 때로는 누군가를 위로하기도 하고, 그 과정이 위로 받는 단계가 되기도 하고.”

가게 한 편에 나란히 자리잡은 두 개의 테이블도 이러한 나눔의 공간을 만들고자 했던 부부의 마음이 담겨있다. 테이블 위에는 커피와 커피 잔이 놓여있는데, 인근 직장인이 점심시간에 그 커피를 마시고 가거나, 춥거나 더운 날씨엔 학생들이 잠시 앉아 약속을 기다리는 장소로도 쓰인다. 옷의 구매 여부와는 상관없이 가게를 찾는 모든 사람이 그 테이블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 김효진 객원기자 kkimphoto@gmail.com

구제로 맺어진 인연들

그렇다면 왜 구제였을까? 부부는 사업 방향을 결정하고 나서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사업 아이템을 찾던 중 우연히 구제 옷 가게에 들어갔다. 이 때 부부가 서로 눈빛을 교환하곤 사업 아이템을 확정했다고 한다. 김은혜 씨의 평소 구제 옷에 대한 관심이 크게 작용했다.

김은혜 씨는 이전부터 누군가에겐 쓸모없는 물건이 다른 누군가에겐 꼭 필요한 무언가로 용도가 변할 수 있다는 점과 무엇보다 그 쓰임새는 변하지 않아도 가격은 한층 저렴해지는 구제가 좋았다. 가게를 운영하는 입장에서도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갈 곳을 잃은 물건의 주인을 되찾아줄 수 있고, 부담 없이 누구나 찾을 수 있는 가게라는 측면에서 많은 사람들을 접할 수 있다는 점은 매력적인 요인이었다.

“저는 구제 이미지가 참 좋아요. 다른 사람한테는 필요하지 않은 물건이 누군가에겐 필요한 물건으로 변하잖아요. 그리고 처음 팔 땐 몇 만 원이던 물건을 몇 천 원이면 구매할 수 있다는 비용적인 장점도 있고.”

그 이후로 부부는 야시장을 돌아다니며 구제 옷을 찾아다녔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저렴한 구제 옷이라도 누구든지 입고 싶은 옷을 찾는 것이었는데, 이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결국 가게 인테리어를 마치고서도 영업을 시작하기까지는 두 달의 시간이 걸렸고, 시장에서 사 온 옷은 모두 세탁을 하고, 다림질을 거쳐서야 손님들의 손에 가도록 했다. 이렇게 옷에 대한 정성과 마음을 나누고 싶은 부부의 뜻이 고스란히 손님들에게 전해져 자연스럽게 단골이 형성되고 있다. 김은혜 씨는 이전에 있었던 에피소드를 설명하며 가게 운영의 즐거움을 설명했다.

“우리 가게는 부동산 중개업의 역할도 하는데, 어떤 사람이 가게를 내놓으면 우리가 입주자를 소개해줘요. 이전에는 지방에서 올라오신 아주머니가 우리 옷가게를 찾아와서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다간 자녀가 학교 때문에 하숙방을 알아보는 중인데 구하기가 만만치 않다고 말을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마침 우리 가게를 찾아오는 손님 중에 하숙방을 운영하는 아주머니가 있어서, 두 손님을 이어줬거든요. 그렇게 서로 고마워하고, 마음을 나누다보면 점차 많은 사람들을 만날 기회를 맞는 거죠.”

실제로 인터뷰를 진행한 날에 가게를 찾은 손님들 중 대부분은 단골이었다. 좋은 옷이 싸고 많은 건 좋은데, 가게에서 옷을 많이 사서 찾아오기가 민망하니까 “가던 길에 잠깐 들린 거야”라고 핑계를 대곤 하는 손님도 있다고 한다. 이렇게 민망하다고 하면서도 가게를 계속 찾아오게 만드는 힘은 단순히 옷뿐만 아니라 사람에 대한 정을 느낄 수 있는 편안한 분위기였다.

김은혜 씨는 “이 손님이 이 가게를 찾은 건 불과 두 달 전쯤인데, 벌써 서로의 집에서 가족끼리 식사를 대접할 정도로 가까워졌다”고 말한다. 처음 찾아왔을 때는 옷에 대한 얘기를 나누고, 두 번째 찾아왔을 때는 서로의 가족을 이야기하고, 세 번째 찾아왔을 때는 서로의 힘든 점을 터놓고 얘기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이 외에도 행복이 가득한 가게에는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많다. 부인이 기분이 안 좋으면 행복이 가득한 가게로 가라며 등을 떠미는 옆 가게 사장님도 있고, 항상 가게를 찾을 때면 각종 요리를 가져오는 칼국수 집 사장님도 있다. 부부는 “퇴근길이면 손님들이 가져다주는 음식이나 선물 때문에 양손이 무겁다”며 즐거워했다.

미리내 운동을 통해 나눔을 확장하다

부부는 미리내 방식으로 가게를 운영하며 나눔의 의미를 확장하고 있다. 미리내 운동은 다른 사람을 위해서 미리 음식이나 음료 값 등을 지불해놓는 기부 형식의 나눔 활동이다. 앞서 방문한 사람이 다음 사람을 위해 미리 돈을 기부해놓으면, 가게에서는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무료로 음식이나 음료를 제공하는 것이다.

우연인지, 인연인지는 알 수 없지만, 처음 가게를 오픈하고 나서 미리내 운동본부에서는 행복이 가득한 가게를 찾아 미리내 운동을 제안했고, 부부는 흔쾌히 승낙했다. 행복이 가득한 가게는 수많은 미리내 가게 중 옷을 취급하는 가게로는 최초이다. 식당이나 카페보다는 비용 부담이 큰 것은 아닌지 했지만, 부부는 구제 옷이기에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했다. 가게에서 판매하는 옷들은 대부분 2~3만 원 정도이고, 만 원도 하지 않는 옷들이 많다.

다만 행복이 가득한 가게의 미리내 운동법은 조금 다른 방식인데, 가게 입구 쪽에 마련된 큰 통에 기부할 옷을 모아놓고,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누구나 가져갈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영업을 하지 않는 날에는 그 통을 문 앞에 놔두고 있는데, 오히려 사람들이 자신들이 입지 않는 옷을 넣어놓고 갈 때도 많아 김은혜 씨는 “우리는 나눔의 공간을 제공하기만 할 뿐이다”며 웃는다. 다양한 사람들이 나눔을 실천하는 장을 마련한 행복이 가득한 가게는 그렇게 돈이 아닌 사람을 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