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들이 시민권 부여하는 노동운동 만들어야”
“대중들이 시민권 부여하는 노동운동 만들어야”
  • 박종훈 기자
  • 승인 2014.12.19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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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의식 확장 새로운 전기 보여 준 철도파업
낮은 리더십’으로 흩어진 조직력 다시 추스를 것
[인터뷰 1] 김영훈 전국철도노조 위원장

딱 십 년 만이다. 지난 2004년 20대 철도노조 위원장을 역임한 김영훈 위원장이 민주노총 6기 9대 집행부를 거쳐 다시 친정으로 돌아왔다. 보기 드문 ‘귀환’이지만 철도노조의 내외 환경은 녹록치 않다. 지난해 12월에 진행된 23일간 최장기 파업의 여파와 함께 박근혜 정부가 몰아세우고 있는 공공기관 정상화대책의 후폭풍은 거세다. 감상보다는 신속한 행동이 필요한 시기, 김영훈 위원장의 속내는 어떠할까?

ⓒ 이현석 객원기자 175studio@gmail.com

총연맹 위원장을 역임하고 단위 사업장 위원장으로 출마하는 데 부담이 있었을 것 같다.

“진짜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다. 민주노총은 물론, 우리 노동운동에서 전례가 없는 일이라고 많은 분들이 얘기해 주신다.

다시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전례가 없던 일들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른다. 작년 이맘 때 23일간의 최장기 철도파업이라는, 우리 사회에 엄청난 반향을 일으킨 사건이 있었고, 그에 따라 민주노총에 대한 공권력 침탈도 행해졌다. 철도파업 투쟁의 배경에는 시민과 노동이 한 데 만나는 역사적 의미가 있었다. 시민의 권리와 노동자들의 권리가 다르지 않다는 게 파업 과정에서 보였다. 하지만 그 투쟁 이후 전례 없는 탄압이 이어졌다. 23일간 파업을 이끌었던 지도부가 불신임되는 초유의 사태도 연이어 터졌다.

위원장 제안을 받고 스스로도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많은 생각을 했다. 그만큼 철도노조는 어렵고 또 소중하다. 소중한 철도노조를 꼭 지켜야 한다. 그래서 부담감을 떨치고 소중한 철도노조, 중요한 철도노조 투쟁을 잘 지켜내라는 뜻으로 여기고 돌아오게 됐다.”

당선 이후 교섭을 시작해, 이전 집행부와 크게 다른 내용이 아님에도 합의했는데?

“전 집행부 교섭과 크게 내용에서 다를 게 없는데, 84.9%의 압도적인 가결이 나왔다. 그 차이가 뭘까 고민했다. 형식과 절차에서 다른 점이 있다고 판단했다.

교섭 과정에서, 교섭의 내용을 진척시키는 것도 매우 중요하지만, 그 속에서 실시간으로 조합원과 소통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했다. 이번에 처음으로 ARS 사전 의견수렴이라는 제도를 실험했다. 철도 사업장이 전국에 산재해 있고, 2만 명이 넘는 조합원이 있으니 실시간으로 쌍방향 소통을 하는 건 쉽지 않다. 현장 조합원들은 어떻게 교섭이 진행되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덜컥 잠정합의안이 도출되면 노동조합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기 쉽다.

처음 시도했지만 70%에 육박하는 응답률을 보였다. 그리고 실제 인준 투표에서 나왔던 찬성률과 거의 유사한 결과가 도출됐다. 그 의미는 내용을 떠나 노동조합이 조합원들의 작은 목소리에도 귀 기울이고 있다는 것에 대해 조합원들이 신뢰를 보여준 거라고 생각한다.”

전례 없는 파업 투쟁을 국민들이 지지했지만, 이후 이어진 손배가압류, 징계 등 압박이 심했다. 철도의 공공성과 철도노조의 투쟁을 지킬 복안은 무엇인가?

“철도노조를 지키는 게 민주노총을 지키는 길이라 생각한다. 공공철도를 지키는 게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길이라 생각한다. 철도 민영화를 막는 게 국가의 재산을 지키는 길이라 생각한다. 내게 주어진 소명은 노동운동을 통해 넓게는 시민과 국가의 안전을 지키는 것까지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노동운동이 가야 할 길은 시민들과 보다 폭 넓게 연대하고, 시민의 요구와 우리의 그것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찾아내고 확장하는 게 중요하다. 굳이 표현하자면 사회연대적 노조주의라고 할까. 그 가능성을 지난 파업에서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말 그대로 ‘불편해도 괜찮아, 힘내라 철도노조’였다. 이 말을 통해 우리 사회가 아주 중요한 전환점에 와 있다고 본다. 그들만의 노동운동이 아니고 곧 나의 투쟁이라고 하는 연대의식이 확장됐다고 본다.

임기 동안 내가 할 일은 대단히 명확하다. 전례 없는 이런 일들로부터 좋은 사례를 많이 만들어서 노동운동이 도약하고, 사회적 고립에서 탈출하고, 연대를 확장해 나가야 한다. 그래서 대중들이 노동운동에 시민권을 부여해 줄 때, 우리 사회가 좀 더 진보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파업 이후 꺾인 조직력을 회복할 방안은 무엇인가?

“중요한 사업 기조 중 하나가 제2의 민주노조 건설 운동이다. 철도노조가 민주노조를 건설한 지 15년차를 맞고 있다. 그동안 철도노조는 공공철도론이라고 하는 튼튼한 이론적 담론을 기초로, 역대 어느 정권에서도 엄청난 탄압을 받았지만 철도노조 특유의 조직력으로 일관된 길을 걸어 왔다.

제2의 민주노조 건설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리더십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따르라’는 식이 아니라 소통하고 동행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국민들에게 많은 감동을 줬던 것처럼 낮은 모습의 연대, 겸손한 자세에서 보여주는 리더십이다.

또 끊임없이 연구하는 간부들을 발굴, 육성하고 내부적으로 세대교체를 이뤄냄으로써, 철도노조가 이론적으로나 사업방식으로서나, 조직력이나 투쟁력에서도 새롭게 진일보할 수 있게 다시 세울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새로운 담론들을 개발하고 끊임없이 제도를 실험하며 혁신해 가야 한다. 이번 교섭 과정에서 도입한 제도들 이외에도, 점점 장년층 조합원이 늘어남에 따라 발생하는 세대 간 격차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청년미래위원회를 꾸려서 새로운 세대를 육성할 것이다. 인생이모작 사업을 통해 정년을 앞둔 선배들에게 이후에도 인생 설계를 같이 돕는, 평생을 함께 가는 동반자로서의 철도노조를 꿈꾼다.

그밖에도 생활협동국과 청년여성국을 신설해 노동조합의 미래를 바라보는 장기 플랜을 세워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인생의 동반자로서의 노동조합, 내가 의지할 수 있는 노동조합이 철도노조가 바라보는 미래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