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산업단지 안전관리, 땜빵은 그만
불안한 산업단지 안전관리, 땜빵은 그만
  • 박종훈 기자
  • 승인 2015.01.14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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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폭발·유출, 크고 작은 사고 5년 새 131건
안전관리 총괄할 법체계 정비 필요
[사건] 산업단지 관리, 안전이 먼저

1964년, 과거 구로공단(서울디지털단지)이 산업 제1단지로 처음 지정됐다. 지난 50년 동안 산업단지는 한국 산업화의 견인차 역할을 해 왔다. 전국 1,047개 산업단지 78,600여 개 사업체에서 205만여 명의 노동자들이 오늘도 일하고 있다.

베이비부머 세대들의 은퇴가 다가오면서 우리 사회가 ‘고령화’ 문제를 고민하게 된 것처럼, 산업단지도 고령화에 대해 고민해 볼 시기가 되었다. 20년이 넘은 산업단지들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노후한 시설 등의 문제로 크고 작은 사고가 계속되고 있다.


ⓒ 한국산업단지공단

“안전에 대한 규제완화는 우려스러워”

지난해 4월 발생한 세월호 침몰 사고는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안전 문제에 무관심했던 그동안의 악습도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사고보다 예방이 중요하다는 점은 삼척동자도 알만한 사실임에도 말이다. 공공교통시민사회노동네트워크, 민주노총, 시민방사능감시센터, 화학물질 감시네트워크 등이 지난 해 5월 열었던 토론회에서 발표된 자료만을 취합해도 아래와 같이 사고가 계속되고 있다.

원인을 기준으로 재해를 분류하자면 자연재해와 인적재해로 나눌 수 있다. 또 재해를 피해 대상을 기준으로 나누면 일반 시민들이 피해자가 되는 공중재해와 근로자가 피해자가 되는 산업재해로 구분할 수 있다.

다수의 사업체가 밀집한 산업단지의 노후 설비 때문에 발생하는 재해는 주로 인적재해의 상황이다. 그 피해는 인근에 거주하는 일반 시민이든 일하고 있는 근로자들이든 영향을 끼친다. 강문대 민변 노동위원장은 “법적으로 공중재해와 산업재해 둘 다에 속할 수 있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일반 공중재해의 경우, 재해의 양태(화재, 붕괴 등)와 원인 물질(원자력, 전기, 액화석유가스, 유해 화학물질 등), 대상(선박, 비행기, 철도, 승강기, 어린이 놀이시설, 저수지 등)에 따라 제정된 법률안이 있다. 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구체적인 의무와 의무 위반 시 처벌 조항 등이 마련돼 있다.

소방기본법, 급경사지 재해예방에 관한 법률, 위험물 안전관리법, 고압가스 안전관리법, 시설물의 안전관리에 대한 특별법, 어린이 놀이시설 안전관리법, 항공보안법, 선박안전법 등이 이와 같은 내용에 해당하는 법률들이다.

각 법률에서 규정하는 구체적인 의무를 위반하는 경우 해방 벌칙 조항에 따라 처벌된다. 또 의무 위반으로 인해 사상자가 발생한 경우, 책임이 있는 사람은 형법상 업무상 과실치사사상죄로 처벌을 받는다. 두 가지 죄는 상상적 경합으로 취급되어, 각각의 죄가 성립하고 처벌은 더 무거운 쪽으로 받게 된다.

산업재해의 경우에도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예방과 관련해 규제를 받게 된다. 사업주가 예방 의무를 소홀히 한 경우 법률 상 벌칙 조항이 있으며, 재해가 발생해 사상자가 발생하면 공중재해와 마찬가지로 형법 상 죄가 성립한다. 두 죄 역시 상상적 경합에 해당한다.

하지만 산업단지를 재해의 대상으로 놓고 재해 예방 대책을 규정하고 있는 법률은 아직 없다. 현재 ‘산업집적활성화 및 공장설립에 관한 법률’에서 한국산업단지공단이 안전관리, 공해관리, 환경관리 등에 대해 입주 기업에 대해 필요한 지도를 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을 뿐이다. 여타 법률의 내용은 산업단지의 조성, 단지 내 공장 설립에 관한 문제만 다루고 있다.

지난해 11월부터 시행된 ‘기업활동 규제완화에 관한 특별조치법’에서는 법 이름처럼 재해 예방을 위한 규제를 완화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강문대 민변 노동위원장은 “그로 인해 산업단지 내에서 실효성 있는 안전조치가 행해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한다.

이 법에서 규제를 풀어주고 있는 부분은 안전관리자의 고용과 관련한 부분이다. 각 기업에게 고용의 자율성을 보장해 주고, 안전관리자의 겸직을 허용하는 등,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사람을 줄여도 좋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산업단지 안전관리, 중구난방

한국산업단지공단(이사장 강남훈)은 지난 8월 8일 한국가스안전공사,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한국소방산업기술원, 한국전기안전공사, 한국환경공단 등 5개 안전 기관과 ‘산업단지 안전관리를 위한 공동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산업단지 내 안전관련 소관 부처와 법령이 다양하게 나뉘어 체계화 되어 있지 않고, 국가산업단지 등 전국 57개 산업단지를 관리하고 있는 한국산업단지공단의 안전관리에 대한 법적근거 미비, 보조적 역할의 한계를 보완하고 산업재해 예방 활동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기 위함이다.

공단은 앞으로 전기, 가스, 위험물, 유독물, 산업안전 등 각 분야별 안전전문기관들과 함께 산업단지 입주기업의 안전관련 정보 공유, 통합 안전사고 예방활동 협력, 사고 발생 시 통합된 대비, 대응 및 복구체계 정립 등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 산업단지 안전관리를 위한 협력 범위 >
① 입주기업에 대한 안전 관련 정보 공유
② 통합 안전사고 예방활동 협력
③ 사고발생 시 통합된 대비·대응 및 복구 체계 정립
④ 분야별 안전점검 활동 협력
⑤ 기타 협력사항 : 기관별 협력 홍보(안전 캠페인·지도 등) 등


이와 같은 업무협약이 체결됐다는 점은 앞서 살펴 본 협약 취지에서도 잘 드러나 있듯이, 다수 기업체가 밀집한 산업단지에서 발생할지 모르는 재해에 대해 취약한 예방, 대응 구조를 갖고 있음이 드러난다.

전문가들은 이와 같은 총괄 대책의 마련을 위해 우선 법 제도의 정비를 통해 활동 근거를 만드는 부분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 이른바 ‘산업단지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의 필요성이 대두되는 것이다. 기존의 ‘시설물의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을 참고하면, 교량, 터널, 항만, 댐, 건축물 등에 대한 안전점검 및 정밀 안전진단에 관해 규정하고 있는데, 산업단지 내 산업설비에 대해서도 비슷한 종류의 규정들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또한 산업단지에서 발생하는 재해가 인근 주민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 최근 일련의 사고에서도 확인되고 있으니, 특별법에서 재해 발생 시 인근 주민들의 알권리에 관한 내용이 포함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대두된다.

사고예방 위한 유지보수는 계속 줄어

한인임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연구원은 “산업단지의 설비를 수선하는 작업을 크게 보통수선, 계획수선, 특별수선으로 나눌 수 있는데 그중 계획수선이 가장 중요하다”며 “예방정비만 잘 된다면 일단의 사고 발생을 방지할 수 있다”고 말한다.

계획수선은 건물이나 설비의 내용연수에 따라 적절한 손질을 통해 수명을 연장시킬 수 있는 수선의 유형이다. 최근 연이어 발생한 산업단지 화학물질 사고들의 경우에도, 고의로 누출시킨 게 아니라면 설비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고, 이를 계획예방정비를 통해 사전에 체크할 수 있다는 의미다.

매년 진행되는 한국은행의 기업경영분석을 보면 기업의 설비 투자는 경기지수와 연관이 크다. 1997년 말 발생한 아이엠에프 외환위기 이후 1998년 경제는 마이너스 성장을 보였으며, 이듬해인 1999년 기업의 설비투자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2003년까지 이와 같은 양상은 계속되다가 다시 증가하기 시작했는데,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에는 다시 주춤하고 있다.

제조업 부문의 수선비, 즉 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비용이 지출된 양상도 문제점이 드러난다. 지난 13년 동안 꾸준히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실 제조원가에서 다른 비용의 감소보다 우선적으로 수선비의 감소가 눈에 띤다.

대규모 장치산업에 속하는 발전부문을 살펴보면, 철강이나 석유화학과 같은 업종에 비해 수선비의 규모가 상당히 높은 수준에서 유지되고 있었다. 이는 2002년 발전자회사 분할이 완료되기 전까지 발전설비의 안정성을 강화하고 안정적인 전력공급을 달성하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강력한 정책을 펼쳤기 때문이다. 한 연구원은 “발전사 분할 이후 강화된 경쟁 체제로 인해 수선비가 실제로 많이 줄었다”고 주장한다.

그에 반해 민간자본적 속성을 더 많이 갖고 있었던 철강, 석유화학 업종의 경우 유지보수를 위한 수선비가 아주 낮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나마 이조차도 최근 10년 새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설비는 그만큼 노후해 가는 데, 이를 보완하는 부분은 도외시 되었다. 최근 계속해 발생하고 있는 누출, 폭발 문제는 이와 같은 경향과 긴밀한 관계가 있는 것이라고 한 연구원은 주장한다.

이와 같은 문제 해소를 위해서는 정부가 각 산업별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감가상각비 대비 일정 비율의 적정 수선비 지출을 요구할 필요가 있다고 한 연구원은 덧붙였다. 또 안전예방을 위한 적절한 비용을 지불하지 않은 기업은 ‘한계기업’으로 인식해 페널티를 줄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지난 5년 동안 산업단지 내 화재, 폭발, 가스누출 등 크고 작은 사고는 모두 131건이나 발생했다. 그에 대해 정부가 처방한 재발방지 조치 내용 중 80%는 안전사고 예방 요청 및 계도이다. 사후약방문식 땜질처방이 아닌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점은, 다시 세월호 사고를 언급하지 않아도 자명해 보인다. 더 적극적인 사고의 책임소지 추궁과 예방책의 개선이 요구되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