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기업 자금지원, 골든타임을 잡아라
기술기업 자금지원, 골든타임을 잡아라
  • 박종훈 기자
  • 승인 2015.02.16 17:49
  • 수정 0000.00.0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부, 정책적으로 기술금융 육성 중
“할당치 채우기 위한 평가의뢰는 걸러야”
[사건] 기술금융 활성화 정책

ⓒ 금융위원회
기술금융(Innovation Financing)이란 아이디어와 기술의 개발`사업화 등 기술혁신 전 과정에서 필요한 자금을 지원하는 것(OECD, 2006년)으로, 좁은 의미로는 미래수익 창출이 기대되는 기술과 아이디어 등에 대해 가치평가에 근거하여 필요한 자금을 제공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박근혜 정부는 이른바 ‘창조경제’를 선도하고 금융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기술금융 강화를 위한 정책을 추진 중에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이며 정책 추진 과정은 어떠한지, 본래의 목적인 ‘기술금융’의 강화를 위해 짚어야 할 점은 무엇일까?

불확실한 가치, 신뢰할 평가 체계 필요

금융위원회(위원장 신제윤)는 제3차 경제관계장관회의 등을 거쳐 관계부처 합동으로 지난 2014년 1월 22일 ‘기술금융 활성화를 위한 기술평가 시스템 구축방안’을 확정, 발표한다.

기술금융은 크게 벤처캐피탈 등의 투자와 은행 등 금융기관에 의한 대출 형태로 구분된다. 국내의 기술금융 시장은 간접금융 위주의 구조 위에 정책금융에 의한 보증 활성화로 대출 형태의 자금 공급 비중이 크다.

2013년 말 기준 중소기업청 자금조달 잔액 규모를 보면 대출이 488조 9천억 원, 투자가 5조 9천억 원, 주식 및 회사채가 8천억 원 수준이다.

2013년 말 기준 기술금융 공급 규모는 약 26조 원 수준이었다. 기술보증기금의 기술보증과 이에 기초한 융자 형태가 약 19조 4천억 원 수준으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기술금융이 활성화되기 위해선 무엇보다 신뢰할 수 있는 평가가 기초돼야 한다. 효율적인 기술평가 시스템은 기술금융이란 개념 자체에 내재된 불확실성과 정보의 비대칭성을 효과적으로 축소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현실적으로 금융회사들에게 리스크를 줄여줄 수 있다.

이러한 기술평가 시스템은 아직 시장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현행 기술평가 시스템은 기술금융의 목적과 수요에 맞는 정보를 충분하게 제공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기술의 이전 및 사업화 촉진에 관한 법률’은 기술평가를 “사업화를 통하여 발생할 수 있는 기술의 경제적 가치를 가액(價額)·등급 또는 점수 등으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규정한다. 그에 따라 관계 중앙행정기관장은 기술평가기관을 지정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기술평가기관은 각 관계기관의 정책목적에 특화돼 있는 평가를 수행한다고 봐야 한다. 기술평가 정보는 산업통상자원부가 관리하게 된다. 정부출연 금융기관인 기술보증기금 역시 ‘보증’을 목적으로 자신들의 의사 결정을 위한 정보를 생산하는 게 주다.

결국 기술금융이 활성화되기 위해선 시중은행을 비롯한 각 금융기관들이 대출이나 투자를 늘려야 하는 것인데, 담보처럼 활용할 정보가 부족하고 접근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 현실이다. 개별 은행이 기술 전문인력을 확보하고 시스템을 정비하려고 노력 중이지만, 직접적인 이익을 창출하기에 리스크가 큰 부문이라 소극적인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공공재 성격을 띠는 기술평가 시스템은 다수의 참여자간 협업에 의해 구조적으로 시너지 창출이 필요하지만, 적절한 유인 구조도 부족하다.

TDB 구축과 TCB 운영이 핵심

금융위원회는 ‘기술금융 활성화를 위한 기술평가 생태계 조성’이라는 비전 아래 ▲ 공공재적 성격의 기술정보 DB(TDB) 구축 ▲ 민간 기술신용평가기관(TCB) 활성화 ▲ 은행 등 금융권의 기술평가 역량 제고 ▲ 기술평가정보의 활용도 제고라는 계획을 세웠다.

세부 추진 과제 중 무게 중심이 실리는 것은 기술정보 DB(Tech Data Base, 이하 TDB) 구축과 민간 기술신용평가기관(Tech Credit Bureau, 이하 TCB) 활성화와 관련한 내용이다.

기술평가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평가에 필요한 기술 정보를 탐색하고 필요한 근거 자료를 검색하는 작업이다. 기술의 특허정보, 시장정보 등은 국내외 연구기관, 협회, 각종 논문, 유명 저널 등에 다양하게 산재해 있다. 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은 논문 등의 자료를 약 1억 건, 특허정보원은 국내외 특허 등 지식재산권 정보를 약 2억 건 보유하고 있다. 통상 기술평가를 위해 정보를 검색하고 사례를 분석하는 데 전체 평가시간의 70%가 소요된다.

결국 이렇게 산재한 기술정보와 거래정보에 대한 접근 가능성을 높여줄 수 있는 효율적인 DB를 구축하는 게 선행될 필요가 있다. 이렇게 효율적으로 구축된 TDB는 정보의 유지, 관리에 따른 비용이라든지 정보 집적에 따른 규모의 경제 효과를 감안하면 매우 중요한 공공재라고 볼 수 있다.

개별 금융기관이 혹은 평가기관별로 TDB를 구축하는 것은 그만큼의 수고와 비용이 수반된다. 또 중복 투자에 따른 비효율성에 대한 문제도 제기될 수 있다. 결국 관건은 수요자의 요구에 맞는 정보를 대응성 있게 제공할 수 있도록 전문성을 유지하면서 참여자 간 기술정보, 거래정보를 유도해 집적 효과를 극대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또 공공재적인 성격을 감안해 독점 사용의 가능성을 차단하는 지배구조의 설정도 필요하다.

금융위원회는 전문성과 독립성이 확보된 TDB 구축을 위해 기술평가 정보 수요자가 참여하는 공동 출자 방식의 설립을 기도하고 있다. 산업은행, 기업은행, 신용보증기금, 기술보증기금 등의 정책금융기관과 시중은행, 자본시장 인프라 기관 등이 수요자에 해당할 것이다.

ⓒ 금융위원회
또 기술정보를 생산하는 연구기관 등과는 정보 공유를 위한 업무협약의 추진도 진행된다. 아울러 TDB의 운영비용은 DB 정보 이용료 등을 통해 조달할 수 있는 구조를 목표로 설계된다.

신용정보법 상 종합신용정보집중기관인 은행연합회가 기술정보를 추가로 집중 관리해 TDB로 기능하고 있다. 32개 민관 협약기관으로부터 수집정보 등 약 800만 건을 은행이나 보증기관, TCB 등 23개 기관에 다시 제공하고 있으며, 연말까지 협약기관을 100여 개, 제공 정보 건을 1,000만 건 이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3개 TCB 지정기관, 고유영역은 분명

지난해 6월 20일 기술보증기금을 시작으로, 6월 25일 한국기업데이터, 7월 15일 나이스평가정보 등 현재 3개사가 TCB로 지정돼 운영 중에 있다.

기술평가 업무는 전문성과 복잡성 등으로 인해 외부 전문기관에 평가를 의뢰하는 것이 보다 경제적이라는 게 금융당국의 판단이었다. 개별 은행 등 금융기관이 기술평가 업무를 내부화하기 위해선 많은 기술전문 인력과 조직을 갖춰야 하기 때문에 현실적인 무리가 따르기 때문이다.

문제는 외부 기관에 의뢰한 평가 결과에 대한 이해도와 신뢰도로 이어진다. 따라서 민간이 전문 평가기관으로 참여하기 위해선 일정한 인적 요건과 물적 요건을 갖춰야 할 것이다. 즉 기술 및 재무 전문가를 확보하고 있으며, 기술평가모형이나 전산설비 등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금융위원회는 향후 ‘기술신용조회업’을 신설하는 신용정보법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특허법인이나 회계법인도 적정 요건을 구비하면 TCB로 지정이 가능하도록 할 예정이다.

2014년 8월 말 현재 TCB의 기술신용평가 기반 대출은 1,661건에 1조 1,400억 원 수준에 이른다. 금융위원회는 2015년 업무계획에서 ‘기술금융 3.0으로의 도약’을 내세우며 기술금융의 정착을 위해 노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은행혁신성 평가, 인센티브 부여, 관련 인프라 확충 등을 통해 기술금융을 전 금융권의 영속적인 업무로 정착시키고, 기술가치평가 투자펀드 조성, 특허관리회사(NPE) 육성 등을 통해 기술금융의 중심축을 융자에서 투자로 이동하는 한편, 창조경제혁신센터 내 파이낸스존을 설치하는 등 현장에 가까운 투자, 융자 복합 기술금융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2015년 중에는 TCB 기반 대출을 3만2천 건, 20조 원 규모로 확장하겠다는 포부도 밝히고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기술금융 정책효과를 살피기 위해 조사기관을 통해 중소기업 임원 400명을 대상으로 설문을 실시하기도 했다. 응답자의 61.8%가 대체로 정책에 만족스럽다고 응답했으며, 다시 이용할 의향이 있다고 답한 이들도 94.8%로 매우 높았다. 또한 금리 인하나 담보부담 해소 등을 기대한다고도 응답했다.

“실적할당 때문에 자금지원 골든타임 놓쳐선 안 돼”

정부가 강한 의지를 갖고 추진하고 있는 기술금융 강화 정책에 대해 일선에서 기술평가 업무를 진행하고 있는 TCB 기관은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기술보증기금, 한국기업데이터, 나이스신용평가 등 3개 TCB 지정기관 모두 기존보다 업무량이 대폭 늘어났다는 점은 익히 짐작할 만하다. 윤주필 한국기업데이터지부 위원장은 “현 조직 인력 규모로는 밀려 있는 평가 업무를 처리하는 게 버거운 실정”이라며 “향후 기술금융을 확대해 나가는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TCB 지정기관 역시 전담 인력의 확충이 수반돼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 금융위원회
전문 인력을 포함한 규모를 확장하는 것에 있어서도 현실적인 어려움은 존재한다. 특히 수익 구조가 빤한 평가 전문기관의 경우, 규모 확충에 필요한 비용이 부담스러울 수 있다. 정책적인 육성을 위해선 재정지원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3개 TCB 기관은 당초 설립 취지나 특화된 부문, 기존의 거래 고객이 명확하게 구분돼 있는 편이다. 기술보증기금의 한 관계자는 “각자가 강점을 갖고 있는 섹터가 뚜렷하므로, 평가 건수 유치를 위한 TCB 지정기관끼리의 경쟁 구도는 아직 찾아볼 수 없다”고 말했다. 민간 참여가 본격화되면 이 구도가 어떻게 달라질지 모르지만, “기술평가 능력을 하루아침에 갖출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큰 우려를 갖고 있진 않다”고도 밝혔다.

기술금융 강화라는 본래 정책 취지에 대해 좀 더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은 제기됐다. 단기적인 성과를 위해 정부는 각 금융기관을 압박하고, 은행마다 목표 할당을 채우기 위해 신중한 검토 없이 평가를 의뢰하는 경우, 정작 신속하게 평가를 통해 자금지원이 필요한 기술기업들이 불이익을 볼 수도 있다는 의견도 제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