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 놓고 뒷북치는 노동운동 탈피해야”
“결과 놓고 뒷북치는 노동운동 탈피해야”
  • 승인 2006.07.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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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노조’ 아닌 ‘정책노조’ 만들겠다


지방공기업노조협의회 중심,


공공부문 새 모델 제시도


서울지하철노동조합 위원장 정연수

 

Profile
1981. 5.22  서울지하철 운영사업소 입사  / 1987. 8.12  서울지하철노조 초대법규부장
1988. 8.25  서울지하철 노조 2대 법규부장  / 1993. 5.25  서울지하철 노조 5.6.7기 대의원운영위원
2000.12.28  서울지하철 노조 중앙사무국장  / 2006. 4.21  서울지하철 노조 위원장 당선
2006. 5.18  전국 지방 공기업 노동조합  협의회 상임의장


두 번의 파업 실패와 잇따른 집행부 총사퇴(12대), 불신임(13대)의 후유증을 앓던 서울지하철노조의 새로운 수장으로 취임한 정연수(50) 위원장. 정 위원장은 취임과 동시에 “노동운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겠다”며 ‘조합원 중심, 시민 중심의 노조 활동’을 선언했다.

 

서울지하철노조는 여러 면에서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수도권 사업장 중 조합원 규모로 다섯 손가락 안에 들뿐더러 민주노조 운동의 상징처럼 자리 잡아왔다.

그랬던 서울지하철노조의 ‘변신’에 많은 사람들이 물음표를 던진다. 하지만 87년 지하철노조 결성 당시부터 법규부장을 지낸 후로 20여 년간 노조활동에 참여하고 지켜봐온 정 위원장은 생각은 확고하다. “지금이야말로 노동운동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계기”이고 “경영에 대한 종속적 위치가 아니라 자본을 건강하게 운영·관리하는 경영의 중심에 서는 노동운동을 펼쳐가겠다”는 다짐이 바로 그것이다.

 

노동운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겠다고 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한 마디로 경제사회 환경과 문화적 환경이 변했다. 지하철공사로 보자면 공기업이라는 특성 때문에 군사문화가 강했고 경영도 권위적이고 전문적이지 못했다. 이런 환경 속에서 공사의 경영을 민주화하고 참여를 넓히기 위해서는 투쟁이 불가피했다.


그러나 상황이 달라졌다. 그런데도 노동운동은 여전히 결과에만 관심을 갖는다. 비정규직 문제만 해도 그렇게 많은 비정규직이 양산되는 동안 운동진영은 두 눈 멀쩡히 뜨고 지켜만 본 것이 아닌가. 그렇게 해놓고 이제 와서 비정규직이 많아졌다는 ‘결과’만 놓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나는 이걸 ‘종속 노동운동’이라고 부른다. 이런 운동을 하면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계급성’을 가질 수 있을지 몰라도 노동자들은 행복하지 않다.


비정규직이 만들어졌던 과정에 개입하면 될 것이 아닌가. 자본을 관리하고, 감시하고, 참여해서 그 과정을 바꿔내면 결과도 바뀐다. ‘종속 노동운동’을 하기 싫으면 스스로 주인이 되면 된다.


실질적 경영참여 확대를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다. 공기업의 특성 때문에 민간기업보다 경영참여가 더 어려울 수도 있는데.
그렇지 않다. 공기업의 경우 경영진은 오너가 아니라 우리와 같은 월급쟁이고 시민을 위한 스탭이 되어야 하는 사람들이다. 나는 87년 노조 법규부장을 지내면서 88년 지하철공사의 경영비리에 대한 국회청원 활동으로 공사의 비리를 밝혀내고 사회적으로 이슈화시키는 데 성공한 경험이 있다.

 

이런 활동은 공사의 경영을 알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지금 공사의 경영관리, 예산관리 파트에서 일하는 사람의 70~80%가 우리 조합원이다. 이들이 제 역할을 해주면 충분히 경영참여가 가능하다. 그간의 경영참여는 기법만 난무했을 뿐 효과적이지 않았다. 우리는 실질적 참여를 통해서 시민사회의 지지를 얻어낼 것이다.


파격적이고 신선한 제안은 많지만 과거 배일도 집행부 정책의 재탕이라는 비판도 있다.
당시(배일도 집행부 시절, 2000년)에 내가 사무국장을 맡았었고 어느 정도 철학을 같이 하는 면도 있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시대적 흐름이나 조합원 정서 측면에서도 새로운 시도들이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 하지만 이미 시대적 흐름이 전투노조에서 정책노조로의 변화를 꾀하는 때가 됐다. 내 원칙과 철학이 있다면 누구와의 연관성을 고민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시민중심의 노사관계를 표방한 것도 같은 맥락인가? 구체적인 방안은 어떤 것인가?
이제까지 수차례의 지하철파업이 있었지만 조합원이자 고객인 시민을 이해시키지 못한 싸움은 한 번도 이긴 적이 없다. 노동자는 생산의 주체다.
그렇다면 생산의 주체가 직접 소비자를 챙기는 것을 못할 일이 없다. 그간 우리 조합원들이 관성적으로 ‘철밥통’ 행세를 했고 이런 관행을 노동조합이 뒷받침해 주기도 했다. 그렇게 2~3년마다 한번 씩 파업을 하면서 소비자에게 소홀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지난 3월의 파업 실패가 보여주듯이 이미 소비자들이 등을 돌렸다. 이제라도 노동조합 스스로 소비자에 대한 서비스와 민원접수 등을 통해 시민사회에 노동조합의 공적인 역할을 검증해 보일 때다. 이를 위해서 지하철공사의 비리와 부조리를 신고 받는 ‘클린센터’, 노동조합 차원의 민원봉사센터 운영 등을 검토하고 있다.


서울지하철은 민주노총 공공연맹 소속 최대 사업장 중 하나다. 최근의 행보를 두고 상급단체와의 결별을 선언할 것이라는 추측도 나오는데.
상급단체 문제는 규약에 의해 정해지고 가입된 것이므로 인위적으로 길을 달리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다만 과거 상급단체의 입장에서 모든 조합 활동이 관리되고 통제되었던 방식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다. 노조가 주체적 역량을 강화하고 자본의 성격이 유사한 정부 및 서울시 산하 공기업, 공무원노조와 연대를 통해 공감대를 조성하고 실질적 단결과 역량 강화에 나설 필요가 있다. 특히 서울시에서 한솥밥을 먹는 식구들(서울시 투자기관 노조)과 공기업들이 올바로 연대하고 원칙을 세워나가고 이것을 중심으로 해서 상급단체를 정리해나가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지난 5월에 전국지방공기업노조협의회 상임의장에 선출됐고 최근에는 ‘노사정 서울모델’ 복원을 추진하는 등 공공부문 노사관계의 새로운 흐름을 형성해 나가고 있다.
과거의 ‘서울모델’의 발전과 통합을 위한 모색 중이다. 과거 서울모델에는 6개 투자기관만 속해 있었는데 최근 서울시 공무원노조와 서울시 교육청노조가 들어왔고, 이들을 중심으로 통합작업을 해가고 있다. 이렇게 되면 명칭도 ‘서울 공공 노사정모델’ 쯤으로 하는 건 어떨까 하고 오세훈 서울시장과 함께눈높이를 맞춰나가고 있다.


서울시 소속 기관의 경우 그런 협의체나 모델이 아니면 시장을 교섭 상대로 끌어내기가 어렵다.
전국 지방공기업은 예산의 규모나 운영방식 거의 비슷하다. 협의회 속에 궤도분과가 따로 있는데 서울 1,2기 지하철, 대전, 광주, 인천, 대구가 함께하면 정부투자기관보다 규모가 더 커진다. 이들을 중심으로 공기업의 변화를 주도하고 이를 사기업으로 전파 시켜가는 것을 과제로 삼고 있다.


공공부문의 역할, 시민중심의 운동을 강조했는데, 지하철 내부의 현안도 만만치 않다.
지난 집행부가 공사와 공동으로 추진한 인력운용에 대한 연구용역이 구조조정의 여지를 남겨 놨다. 공사가 ‘연구용역’을 빌미로 제시한 안은 89년 파업투쟁 당시 노동부가 중재안으로 내놓은 것보다도 후퇴한 안이다. 이를 시급히 제자리로 돌려놓고, 조합원들의 노동조건 향상과 주5일제 정착을 위한 인력충원에 집중할 계획이다.

 

복수노조 시행을 앞두고 17명의 해고자 복직도 빠르게 추진해야 한다. 역량이 있을 때 대비하지 않으면 복수노조 시대의 혼란을 막을 수가 없다. 지하철이 우리나라 노동복지의 표준이 되도록 ‘노동복지 모델’을 제시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