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투명한 내일 때문에 오늘이 불안하다
불투명한 내일 때문에 오늘이 불안하다
  • 홍민아 기자
  • 승인 2015.03.11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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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지엠, 물량 확보 둘러싼 갈등 깊어
개발권은 한국지엠 손 떠났다
[사건] 한국지엠의 어제와 내일

2014년 GM은 2년 연속 역대 최대 차량 판매량을 기록했다. 전 세계에 총 992만 대의 차량을 판매해 전년 대비 2.1% 증가한 판매량을 보였다. 특히 북미 지역에서 약 341만 대를 판매해 2013년 대비 6%가 증가했고, 중국시장에서 약 353만 대를 판매해 전년 대비 12%의 판매 성장률을 기록했다. 한국지엠 역시 2014년 총 154,381대를 판매하며 회사 출범 이래 역대 최대 내수실적을 달성했다.

그러나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는 사측이 진행하려 한 통합라인 공사를 ‘공장축소 음모’라고 비판하며, 2015년 새해를 정종환 지부장의 삭발 투쟁으로 시작했다.

노사의 온도 차가 극명히 느껴지는 2015년의 시작이었다.

 

ⓒ 한국지엠지부

통합라인 공사는 막았지만

지난해 11월 한국지엠 사측은 경영설명회를 통해 부평 조립2공장에서 생산 중이던 말리부의 후속 모델인 엡실론을 부평 조립1공장에서 생산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고, 군산공장은 축소운영에 따른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자동차 생산 공정의 설비 규모 특성상 A공장에서 생산 중인 차량 혹은 후속모델이 다른 공장으로 이전된다는 것은 단순히 A공장의 물량 축소 문제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특정 차종 생산을 위한 설비 공사에는 막대한 규모의 비용이 투입되기 때문에 생산 라인이 한 번 구축되면 공장 간 차량 생산 이동이 쉽지 않다.

한국지엠에서는 물량 문제가 특히 중요하고 민감한 사안이다. 물량 문제는 곧 고용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전 세계 곳곳에 생산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지엠의 특성 상, 공장 간 물량이 어떻게 배치되느냐에 따라 고용도 좌지우지된다. 가령 지엠이 특정 공장에 신규 물량을 배정하지 않거나 줄이면, 공장이 폐쇄되거나 축소되고 해당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의 고용은 장담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특히 한국지엠 군산공장에 신형 크루즈가 투입되지 않아 심각한 물량 문제와 함께 고용불안을 겪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물량 문제는 더욱 심각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한국지엠지부는 엡실론의 조립1공장 투입은 불가하다며 곧바로 실무회의를 시작했다. 한국지엠지부 정종환 지부장은 “2014년 임단투 교섭 석상에서 말리부 후속 모델을 노사합의 없이 조립1부에서 생산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사측에서 생산불가라는 답변을 내놨다”는 점을 강조하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부평2공장 근무형태 축소 및 부평공장통폐합까지 야기될 수 있는 이번 사태에 대해 사활을 걸고 투쟁에 나설 것을 다짐했다.

정종환 지부장은 2015년 1월 6일 부평공장에 천막을 치고 농성에 들어갔다. 사측의 엡실론 조립1공장 생산 발표 후 1공장에서는 라인개선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당시 1공장 노동자 중 일부와 의견이 갈리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함께 살자, 2공장의 물량이 축소된다면 그 다음 순서는 1공장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 공감했다. 1공장 노동자들 역시 2~3년 후 발생할 수 있는 물량 문제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고 2공장 물량 축소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공감하고 함께 투쟁을 진행했다.

한국지엠지부는 중식시간 및 출퇴근시간에 맞춰 선전전을 이어 나갔고, 정종환 지부장은 조립1공장에서의 엡실론 생산을 위한 공사를 중단하라며 삭발식을 하고 본관 앞에서 철야 농성을 벌였다. 결국 사측에서는 조립1공장의 공사를 전격 중단했다.

이후 한국지엠지부는 2015년 첫 임시대의원대회를 통해 2015년 임금교섭에서 특별단체교섭을 요구하기로 하고 요구안을 채택했다. 또 2017년 군산공장 크루즈 후속모델 생산 약속이 지켜져야 한다고 강조하며 군산공장 운영에 관해서는 군산지회의 결정사항을 존중하기로 결의했다.
 

ⓒ 한국지엠지부

군산공장, 결국 1교대 전환

지난달 16일 한국지엠 군산공장 노사는 소식지를 통해 노사협의가 종료되었음을 알렸다. 기존의 주간연속2교대제에서 1교대제로 전환하고, 시간당 생산대수를 45대로 조정하며, 교대제 전환으로 발생한 줄어든 일자리는 배치전환 및 인소싱을 통해 확보하기로 했다.

배치전환은 군산 지역 내 타 부문과 다른 지역 공장이 대상이다. 신차 배치 및 물량 감소 문제로 어려움을 겪어 왔던 군산공장은 노사협의를 통해 2016년 4/4분기에 차세대 크루즈 도입에 의견을 모았고, 2월 12일 지엠은 설비 공사를 위한 900억 원 가량의 비용 승인을 확정했다.

군산공장은 차세대 크루즈(D2LC) 유치와 관련해서 지난해부터 논란이 많았던 곳이다. 신차배치나 물량배치에 대한 실질적 권한이 없는 한국지엠은 지엠 본사의 의견에 따를 수밖에 없는 입장에 놓여 있다. 아무리 한국지엠 사측과 노동조합이 협의를 하고 교섭을 진행한다고 하더라도 후속 차량 배치나 물량 배치 권한은 지엠 본사가 가지고 있다. 이는 이번 군산공장의 사태를 살펴보더라도 쉽게 알 수 있다.

한국지엠 군산지회는 소식지를 통해, 사측이 이번에 군산공장에서 1교대제 전환을 제시한 것은 ’14 임단협에서 합의한 차세대 크루즈 ’17년 1/4분기 양산에 대한 비용승인 문제와 결부시켜 노동조합을 압박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후속 차량 개발을 위한 설비 공사에 필요한 비용 문제를 교대제를 줄임으로써, 즉 인건비를 줄여서 해결하겠다는 의도라는 것이다.

군산공장은 지난해 1교대제 전환을 이유로 비정규직 노동자 350여 명을 정리해고 한 바 있다. 그보다 앞선 2013년 12월, 한국지엠은 쉐보레 브랜드 유럽 철수 선언 후 2014년 2월 사무직 200여 명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한 바 있다.

군산공장에서 근무하는 1,700여 명의 정규직 노동자들 역시 2014년에는 형식상 2교대로 근무했지만 사실상 1교대제 형태로 근무하고 있었다. 군산공장에서는 라세티, 크루즈, 올란도가 생산되고 있는데 2013년부터 물량이 줄어 가동률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는 지엠의 글로벌 정책에 따른 영향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 한국지엠지부

지엠 본사 결정 따라 고용 좌우

’13년 4월 지엠은 ’16년까지 유럽 내 브랜드인 오펠에 40억 유로(52억 달러)를 투자해 신모델 또는 개량모델과 13개 신형 파워트레인을 출시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뒤이어 오펠 브랜드 고급화를 통해 쉐보레와의 차별성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품질 개선을 위해 엔지니어를 신규 채용하고, 파워트레인을 위해 독일공장 증설 투자를 진행했다. 그리고 같은 해 12월 유럽에서 쉐보레 브랜드 철수를 발표한다.

지엠의 쉐보레 브랜드 철수는 자사 브랜드인 오펠과 한국지엠에서 생산하는 차종이 중복됨으로 인해 발생되는 문제를 해결하고, 유럽에서 보다 인지도가 높은 오펠을 밀어주기 위함이라고 한국지엠지부 관계자는 말했다.

특히 유럽에서 쉐보레 브랜드를 철수한다는 지엠의 방침으로 군산공장은 차세대 크루즈 유치에 직격탄을 맞게 됐다. 이에 따라 군산공장 노동자들은 또다시 고용불안에 휩싸이게 됐다.

한국지엠에서 생산한 중소형 차량들은 미국발 금융위기 때 지엠이 경영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게 견인차 역할을 했었다. 한국지엠의 선전에 힘입어 지엠은 2010년 중국시장에서 처음으로 200만 대 판매를 달성했다. 지엠 시장 중 두 번째로 큰 미국시장에서 전년 대비 6.3% 판매 증가를 기록했다. 세 번째 큰 시장인 브라질에서도 전년 대비 10.4% 판매 증가를 기록하며 2010년 한 해 동안 총 8,389,769대를 판매했다. 이에 따라 지엠은 2010년 4월 미국 재무부 및 캐나다 수출개발공사에 58억 달러의 구제금융 조기 상환을 완료했음을 밝히기도 했다.

2012년 당시 지엠해외사업부문(GMIO) 팀 리 사장은 “지엠의 핵심 전략시장 중 하나인 한국에서 쉐보레 브랜드가 출범하고 중국을 비롯한 여러 시장에서 공격적인 성장세를 보인 것은 진정한 글로벌 브랜드로서의 쉐보레의 입지를 증명한다”고 밝히면서 미국과 중국에서 쉐보레 브랜드의 판매 기여도를 인정하기도 했다.

한국지엠은 쉐보레 브랜드를 도입하여 2011년 140,705대를 내수시장에 판매해 2002년 회사 출범 이후 최대 내수 판매실적을 기록했다. 지엠 역시 쉐보레 실적 증가에 힘입어 연간 판매실적 9백만 대를 돌파했다. 그리고 한국지엠은 2012년 145,702대, 2013년 151,040대, 2014년 154,381대를 판매하는 등 최대 내수 판매량을 매년 갱신해왔다고 발표했다.

쉐보레라는 이름을 달고 잘 굴러가던 한국지엠에서 신차배치와 물량 문제로 노사갈등이 이어지고 공장 간 물량배치에 대한 눈치보기가 시작된 것은 경영위기를 극복한 지엠이 전 세계 공장 재편성을 시작하면서부터다.

지엠은 시장규모가 크고 성장이 예상되는 지역에 거점을 마련하고 투자를 시작했다. 지난해 지엠이 중국 법인에 ’17년까지 120억 달러(약 13조)를 투자해 60여 종의 신차를 출시하겠다고 발표한 것이 대표적이다. 또 지엠 인도 법인에서도 ’17년까지 2종의 신형 소형차를 내놓겠다고 발표했다. 공장 가동률 또한 높일 것이라고 밝혔다.

지엠은 투자 대비 최대 수익을 추구하는 자본의 입장에서 큰 시장에 공장을 짓고 그 곳을 거점으로 최대한의 효율성을 이끌어낼 수 있게 전 세계 공장 네트워크를 재설계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2년간의 한국지엠 각 공장별 생산량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회사는 매년 새로운 판매 기록을 갱신하고 있지만 총 생산량은 감소하고 있다. 한국지엠이 국내 4개 공장에서 1년간 생산할 수 있는 완성차는 총 90만 대 규모이다. 반조립(CKD) 상태까지 합치면 그 수는 더 증가하지만, 2013년을 정점으로 생산량은 감소하고 있는 추세이다.

최근 몇 년 간 노동자들은 신차개발과 물량배치 문제에서 소외되면서 고용불안에 직면하고 있다. 해외에 본사를 둔 한국지엠이 처한 현실이다. 차라리 국내공장 매각을 바라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지만, 공장을 폐쇄하더라도 매각하지 않는 지엠의 경영 특성상 한국지엠은 신차 배치와 물량 확대만을 바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실질적 경영 결정권이 없는 사측을 상대로 교섭을 진행해야 하는 노동조합도, 노동조합의 요구안에 노무관리 측면에서만 접근할 수밖에 없는 사측도, 그 사이에서 고용불안을 안고 살아가는 노동자들도 답답한 상황이기는 마찬가지다.

내수시장에서 점유율이 비약적으로 높아지고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면, 마치 지엠이 중국법인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는 것처럼 한국지엠에 대한 투자도 확대될 것이고 고용불안에서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상황은 그리 녹록치 않다. 내수시장의 규모 자체가 중국이나 북미지역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수시장 경쟁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오히려 시장점유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지엠 본사의 지원이 절실하지만, 지엠 본사의 지원은 거의 전무하다시피 한 실정이다. 이러다 보니 노동조합이 차량 홍보에 나서는 등 내수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는 있지만 역부족인 상황이고, 겨우 현상유지를 하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또 매각 이후 글로벌 기업인 지엠의 자회사로 편입되다 보니 한국지엠만의 독자적인 차량을 설계할 여건이 되지 않을뿐더러 그럴 만한 능력도 모두 지엠으로 넘어간 상황이다. 이는 곧 한국지엠이 공장 간 차종배치 등에서 주도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결국 한국지엠으로서는 지엠 본사가 물량을 배정해 주기만을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한국지엠지부는 최근 몇 년 간 임단협을 비롯한 각종 교섭에서 사측에 장기발전전망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사측에서도 이에 대해 명확한 답을 줄 수 없는 상황이다. 결정권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한국지엠지부가 지엠 본사를 상대로 이런 요구를 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상황이 겹치면서 한국지엠은 노사 가릴 것 없이 답답한 상황에 놓여 있다. 노사가 머리를 맞대고 협력한다고 해도 장밋빛 청사진을 그릴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올해 임금교섭을 준비하는 지금, 한국지엠 노사의 고민은 깊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