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의 숲을 거닐다
인문학의 숲을 거닐다
  • 이상동 기자
  • 승인 2015.03.11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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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 열풍에도 삶은 힐링되지 않았다
인문학을 답을 주는 것이 아닌 생각을 더 하게 만드는 것
[일.탈_ 나만의 힐링을 공개한다] 인문학

언제부터였을까 인문학은 서서히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학문의 요람이었던 대학교는 취업을 위한 학원으로 변해갔다. 그에 취업과 관련이 적은 인문학은 홀대 받았다. 학과 정원이 줄고 일부 학과는 통합되고 사라져갔다. 그 와중에 사람들이 인문학 열풍이라 말하는 지금 상황은 모순과 같다. 마치 환상을 보여주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하다.

ⓒ 이상동 기자 sdlee@laborplus.co.kr

힐링은 끝났다

인문학의 인기는 나날이 높아진다. 서점의 베스트셀러 목록에는 항상 인문학 책이 상위권을 유지한다. 새롭게 출간되는 인문학 서적도 많다. 접하기 어려웠던 인문학자들이 대중강연과 TV출연을 통해 벽을 허물며 인문학은 급속히 성장했다.

“책을 읽는 것을 원래 좋아했었는데 자기계발서를 읽다가 자연스럽게 인문학도 접하게 됐어요”

이광한(34) 씨는 몇 년 전부터 불어왔던 자기계발서와 멘토 열풍이 인문학으로 이어졌다고 말한다. 스타 강사들이 연일 방송에서 강의를 했고 그들의 강연은 온라인에서 화제가 됐다. 김난도의 『아프니까 청춘이다』 책이 밀리언셀러를 기록하며 불티나게 팔렸고 힐링이 사회의 중심에서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큰 관심을 모았다.

그러나 이어진 힐링 열풍에도 삶은 ‘힐링’되지 않았다. 계속 힘들어지고 팍팍해져갔다. 사람들 답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시선은 인문학 강사들에게 쏠렸다. 인문학은 점점 그 저변을 넓혀 중심이 됐다.

“인문학을 접하기 전에는 자기계발서를 읽으면서 그냥 열심히 살면 되는구나. 내가 열심히 안 해서 이런 거구나 싶었죠”

인문학을 시작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졌다고 말한다. 시사에 관심이 생겨 뉴스나 신문도 챙겨보려 노력한다. 경쟁 중심의 사회에서 어떻게 사는 것이 사람다운 것인지를 고민하게 만드는 학문은 울림을 멈추지 않는다.

사람의 가치가 땅에 떨어지고 갑의 횡포가 당연시되는 사회에서 을로 살아가는 사람이 붙잡는 지푸라기라고 할 수 있다. 다변화되고 복잡해지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갈등을 마주하고 해법을 찾지 못하는 대중들은 누군가 답을 내려주길 원한다. 그러한 과정에서 찾게 된 것이 인문학이다.

“어떻게 사람답게 살 것인지, 그리고 사회 현상을 어떤 시각에서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을 알려주죠”

인문학은 답을 알려주는 학문이 아니다. 더 생각하고 고민하게 만드는 것이 인문학의 매력이다. 답은 스스로 찾아야 한다. 고민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수많은 인문학 서적과 쉽게 접할 수 있는 강의에서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

ⓒ 이상동 기자 sdlee@laborplus.co.kr

무료 인문학 강의를 듣자

미국의 비영리 재단에서 운영하는 TED(Technology, Entertainment, Design) 강의는 “널리 퍼져야할 아이디어”(Ideas worth spreading)를 모토로 진행되는데 웹사이트를 통해 무료 강연을 들을 수 있다. 친절하게 한국어 자막도 제공한다. 엄청 많은 강연이 있기 때문에 어떤걸 봐야 할지 모르겠다면 인터넷을 검색해 유명한 강연만 찾아봐도 충분하다. 국내에서 진행되는 TEDx 강연도 있다. TEDx는 지역적으로 조직된 독립된 행사를 말한다.

국내 도서관이나 서점, 지역의 평생학습관 등에서 인문학 강의를 진행하기도 한다. 노원구의 평생학습관에서 진행된 그리스 신화를 중심으로 한 인문학 강좌는 제법 넓은 시청각실을 가득 채울 정도로 인기가 있다.

“처음 듣는 인문학 강의인데 재밌었어요”

신경실(45) 씨는 친구의 추천으로 인문학 강의를 듣게 됐다. 이번에 진행된 그리스 신화 강의가 처음 듣는 강의이다. 그리스 신화를 통해 심리학을 설명하고 신화속의 오이디푸스 신화를 예로 들어 사람의 심층적 심리에 대하여 강의가 진행 됐다. 강의는 중간의 휴식시간을 포함하여 2시간 가까이 진행됐다. 당연히 비용은 무료다. 사전에 신청을 해야 되고 인기가 많아서 선착순으로 마감을 한다.

평소에 심리학에 관심이 있었던 신경실 씨는 이번 강의뿐만 아니라 앞으로 이어질 연속된 강의도 계속 들을 계획이라고 했다.

“요즘 인문학 붐이기도 하고 강의에 나온 내용인데, 평소에 생각하지 못했던 자아에 대한 이야기는 생각을 넓히고 깊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인문학 강의를 듣다 보면 평소에 알고는 있었지만 깊게 생각해보지 못한 것들에 대한 생각할 시간을 얻을 수 있다. 강사는 능숙한 말솜씨로 강의에 참가한 사람들을 이끈다.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처음 인문학을 시작하려는 사람에게도 어려움은 없다. 그냥 참가 신청을 하고 시간에 맞추어 참석하기만 하면 된다.

ⓒ 이상동 기자 sdlee@laborplus.co.kr

인문학 서가에서

“강신주 선생님 책으로 시작하는 것도 좋아요. 대중적으로 인기가 있다는 건 그만큼 쉽고 잘 읽힌다는 것이거든요”

보편적인 가치는 많은 사람들에게 환영 받는다. 대한민국에서 개성은 존중받기 어렵다. 일단 시작은 쉽고 다른 사람들도 많이 읽은 책으로 시작하는 게 좋다. 그 후에 점차 관심 있는 분야로 지식의 수준을 넓혀 가는 것이 어려움 없이 인문학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이다.

독서 토론 모임 같은 것에 참가하는 것도 하나의 방편이다. 동일한 책을 읽고 책의 내용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나누다 보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에 대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다양성에 대한 이해도 높아진다.

“책을 읽거나 강의를 들으려면 시간이 꽤 많이 필요해요. 그래도 틈틈이 책을 읽고 강의도 들으려고 노력하죠”

책을 읽는 데 걸리는 시간은 사람마다 다르다 몇 시간 만에 다 읽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며칠을 읽어야 한 권을 다 읽는 사람도 있다. 책에 따라 읽히는 속도도 다르다. 읽기 쉬워 쉽게 페이지를 넘기는 책이 있는가 하면, 한 페이지를 읽는데도 몇 번을 다시 읽어야 하는 책도 있다. 책을 한 권 다 읽고 나면 지식도 쌓인다.

인문학을 시작하고 나서 직장 동료들과 대화를 나누거나 사람들을 상대 할 때 많은 도움이 된다. 사회 현상이나 타인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는 것은 그만큼 대인관계에도 도움이 된다.

“인문학은 삶의 길을 알려주는 등대라고 생각해요”

인문학은 해석의 학문이다. 현상을 어떤 방식으로 해석할지는 자신에게 달려있다. 신경실 씨는 인문학을 등대라 생각한다. 이광환 씨는 삶의 방향을 유지 시켜주는 방향추로 인문학이 쓰인다고 말한다.

인문학 열풍이니 붐이니 하는 요즘의 시대상황은 그저 겉모습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취업이 절대 가치가 되고 돈이 삶의 목적이 되는 사회에서 사람에 대해서 고민하자고 이야기 하는 것은 고리타분하다는 소릴 들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인문학적 가치야 말로 어떻게 살아야 사람답게 사는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만든다.

수원시, 안양시, 울산 등 대도시와 금천구 등 수많은 도시가 “인문학 도시”를 만들겠다고 선언하고 각종 사업을 진행한다. 그러나 정작 우리들에게는 인문학을 접할 여유가 그렇게 많지 않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고민과 매일 밤 늦은 시간까지 하는 야근에 때로는 주말에도 출근해 일을 해야 한다.

사람다움이란 어떤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할 여유조차 없는 지금의 현실에서 인문학 열풍은 신기루 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사람이기를 고민하는 학문에 기대를 갖는 것은 현대의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붙잡고 있는 지푸라기 일지도 모른다.

지금의 인문학 열풍이 쉽게 가라앉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