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페이’ 바로잡을 골든타임
‘열정페이’ 바로잡을 골든타임
  • 박상재 기자
  • 승인 2015.04.17 15:21
  • 수정 0000.00.0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4월은 세월호 참사 1주년이 되는 달입니다. 단원고 박예슬 학생의 전시회가 생각났습니다. 효자동 서촌갤러리에 틈틈이 그려놓은 그림들과 디자인 시안들이 전시됐습니다. 패션업계 CEO와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꿈이던 열일곱 소녀의 열정이 고스란히 묻어 있었습니다.

침몰하는 배 안에서 한 명의 학생이라도 더 구하려다 숨을 거둔 선생님이 지키고자 했던 것은 아이들의 이런 꿈과 열정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침몰하는 배를 바라보는 어른들의 무력감에는 아이들의 이런 꿈과 열정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부끄러움과 미안함이 뒤섞여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를 겪은 지 1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얼마나 바뀌었습니까.

최근 ‘열정페이’가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도제식 교육 현장에서 실습생들은 월 100만 원도 되지 않는 임금에 하루 12시간씩 일을 하고 있습니다. 패션업계뿐만 아니라 미용업계 등 도제식 교육이 이뤄지고 있는 현장에서 수많은 청년들이 잘못된 관행에 짓눌리고 있습니다. 학교를 갓 졸업하고, 본격적인 사회생활에 돌입한 젊은 현장 실습생들이 교육이란 명목 아래 힘겹게 버티고 있습니다.

꿈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부채의식에 짓눌려 자성하는 태도를 보이던 어른들은 다 어디 갔을까요.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던 어른들이 ‘열정’을 실현시켜주겠다는 이름으로 젊음을 소진하려 하고 있었습니다.

침몰한 건 세월호입니까, 우리나라의 미래입니까.

그래서 이젠 청년들이 직접 외치고 있습니다.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청년들이 자발적으로 뭉쳐 패션노조, 미용노조를 형성해 조금씩 현장의 어려움을 알리고 있습니다. 혹시라도 윗사람에게 낙인찍혀 업계를 떠나야 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숨죽이던 이들이 거리로 나와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현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선생이란 탈을 쓴 악덕 고용주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열정페이’ 논란 속에서 도제식 교육의 참뜻을 이어가려는 스승과 제자들도 많이 있습니다. 이번에 <참여와혁신>에서 만난 미용업 현장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열정에 걸맞은 ‘페이’를 지불해 줄 수 없는 현실에서 열정이 단순 소모되지 않도록 열심히 제자를 가르치는 스승. 그런 스승에게 의지해 한 걸음씩 자신의 꿈을 향해 나가려는 제자가 있었습니다.

지금 도제식 교육 현장은 서서히 침몰해가고 있습니다. 그 안에서 스승과 제자가 겪는 일들은 세월호 내부에 갇힌 채로 발버둥 칠 수밖에 없던 선생님과 학생들의 모습과도 같습니다.

다행히 고용노동부가 최근 ‘열정페이’를 바로잡기 위한 근로감독을 강화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러한 노력이 또 한 번 꿈과 열정을 가라앉히는 무기력한 ‘다이빙벨’로 남지 않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