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보는 세상은 각기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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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여와혁신
  • 승인 2015.04.17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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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스 논쟁’으로 색 인식 차이 주목
밝은 조명 잔상효과처럼 뇌는 주변 환경 종합해 색 판단
▲ 박태진 과학칼럼니스트

지난 2월 말, SNS에 올라온 사진 한 장이 전 세계를 강타했다. 똑같은 줄무늬 드레스 사진을 보고 두 가지 반응이 나왔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흰색 바탕에 금색 줄무늬라고 말하는 반면, 다른 이는 파란색에 검은 줄무늬가 보인다고 답했다. 설문조사 결과만 보면 흰색 바탕에 금색 줄무늬라고 대답한 사람이 2배 이상 많았다. 미국 온라인 매체 버즈피드(Buzzfeed)에서 실시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74%가 흰색과 금색 줄무늬라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포토샵 업체인 어도비(Adobe) 사가 ‘파란색과 검정색이 맞다’고 밝히면서 전 세계인이 충격에 빠졌다. 대체 왜 수많은 사람들이 색깔을 잘못 인식한 것일까.

뇌, 눈에 보이는 색 자체보다 주변 환경 종합해 판단

지난 2월 26일 영국 가스 케이틀린 맥닐이 SNS 텀블러에 드레스 사진을 올리고 ‘무슨 색으로 보이느냐’고 물었다. 이후 이 사진이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을 타고 전 세계로 퍼지면서 세계적인 관심거리가 됐다. 사람마다 다른 색으로 본다는 게 알려졌기 때문이다.

포토샵 업체도 밝혔듯이 원래 맥닐이 촬영해서 올린 드레스는 파란색 바탕에 검은색 줄무늬였다. 하지만 이 드레스의 원래 색깔을 제대로 본 사람이 잘못 본 사람보다 더 적었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과학자들도 의견이 분분하지만 ‘사람마다 색을 인식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다’는 설명이 가장 유력하다.

우리 뇌는 정보를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색깔을 받아들일 때 보정하는 과정을 거친다. 예를 들어 백화점 밝은 조명 아래에서 빨간색으로 보이던 티셔츠는 집안에 있는 어두운 조명 아래로 오면 조금 칙칙한 빨간색이 된다. 하지만 우리는 티셔츠가 달라졌다고 여기지 않고, 두 가지를 동일한 색으로 인식한다. 우리의 뇌가 눈에 보이는 색만으로 판단을 내리지 않고 주변의 조명이나 그림자 같은 환경의 영향을 뺀 원래 색을 인식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를 ‘색채 항상성(color constancy)’이라고 한다.

이런 색채 항상성 때문에 우리는 종종 착각을 하기도 한다. 주변 상황에 따라 정확한 정보가 없으면 색을 잘못 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 논란이 된 드레스 사진은 어디서 어떤 조명 아래 촬영됐는지 명확하게 알 수 없다. 이 때문에 사람마다 원래 색깔을 찾는 조건을 다르게 생각했고, 실제 색깔도 달라보이게 된 것이다.

드레스가 어두운 실내에서 촬영됐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흰색 바탕에 검은색 줄무늬로 보게 된다. 파란색과 검은 줄무늬를 그림자나 조명 때문에 왜곡된 색깔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원래 흰색 바탕과 금색 줄무늬였다고 색깔을 보정해서 믿게 된다. 파란색 바탕에 검은 줄무늬가 보인다는 사람들은 드레스가 조명의 영향을 받지 않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다.

ⓒ tumblr

색깔 인식하는 ‘원추세포’서 광표백 효과 일어났을 수도

우리 눈은 빨간색과 파란색, 초록색에 해당하는 파장의 빛을 인식한다. 이를 인식하는 세포는 망막에 있는 원추세포(cone cell)다. 세 가지 원추세포가 빨강, 파랑, 초록에 해당하는 파장을 읽어내고 이들을 조합함으로써 수많은 색깔을 보게 된다. 원추세포가 색깔을 인식할 때는 로돕신(rhodopsin)이라는 색소 단백질을 이용하는데, 이 단백질은 밝은 환경에서 작은 분자로 분리돼 없어지는 성질이 있다.

만약 파란색을 인식하는 원추세포에서 로돕신이 더 많이 없어지면 파란색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게 된다. 이때 우리 뇌는 부족한 로돕신으로도 파란색을 보기 위해 감도를 조절하는 등 서서히 적응하게 된다. 그 사이에 로돕신이 충분히 만들어진다면 파란색을 다시 볼 수 있다. 그런데 로돕신이 회복되기까지의 시간 동안 잔상효과(afterimage)를 겪게 된다. 밝은 조명을 한참 보다가 물체로 시선을 돌리면 밝은 빛을 봤던 잔상이 남아 본래 색보다 바래져 보이는 경우를 생각하면 쉽다.

흰색을 오래 볼 때도 이와 비슷한 잔상효과가 나타난다. 밝은 빛인 흰색 바탕에 파란색 네모가 있다면 흰색 잔상효과 때문에 파란색 네모가 실제보다 더 밝게 보이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광표백’이라고 하는데, 이 효과가 크면 파란색을 흰색에 가깝게 보이게 된다.

논란이 됐던 드레스 사진을 보면 오른쪽에 강한 조명이 있고, 전체적으로 환한 톤이다. 이 때문에 사진을 본 사람들은 광표백 현상을 경험하고 파란색을 흰색에 가깝게 인식하게 된 것이다. 검정색이 금색으로 보인 것도 광표백 효과로 파란색이 거의 사라지면서 빨간색과 초록색이 합쳐지면서 노란색으로 인식됐다고 해석할 수 있다.

뇌는 색깔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지 않는다. 또 사람마다 환한 빛에 반응하는 정도와 로돕신이 복구되는 속도가 다르다. 그러니 같은 물체를 찍은 사진을 두고도 다르게 인식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이번 드레스 사진 논쟁으로 우리는 같은 상황도 사람마다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걸 다시금 깨닫게 됐다. 우리 뇌는 생각보다 자기중심적이라는 걸 잊지 말자. 더 많이 소통하면서 다양한 관점을 살펴야 진실에 가까워질 수 있다. 그래야 세상도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