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업 없는 공장을 만들다
잔업 없는 공장을 만들다
  • 홍민아 기자
  • 승인 2015.05.11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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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대제 개편·통상임금 문제 한꺼번에 해결
문제 해결의 시작은 결국 노사간 대화
[사건] 교대제 개편과 통상임금

ⓒ 홍민아 기자 mahong@laborplus.co.kr
2015년 임단협의 계절이 시작됐다. 속해 있는 조직에 따라 시작하는 시기가 다르긴 하지만, 임단협 교섭은 보통 매년 3~4월에 시작해서 여름휴가 전 또는 추석 전 타결을 목표로 진행된다. 노와 사는 상견례를 통해 점잖게 만남을 시작하지만, 교섭이 잘 풀리지 않으면 목소리가 높아지고 노동조합은 파업을 위한 수순을 밟기 시작한다. 사안에 따라 노사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면 교섭은 늘어지고, 한 해 교섭을 마무리하자마자 다음 해 교섭에 들어가야 하는 상황도 빈번하게 발생한다.

올해 임단협에서는 현대차나 기아차를 비롯한 많은 사업장들에서 통상임금 문제, 8+8 주간연속2교대제 도입이 이슈로 부각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임단협 교섭이 순탄치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더 복잡해진 통상임금 문제

갑을오토텍 통상임금에 대한 2013년 12월 18일의 대법원 판결 이후, 통상임금 판단 기준으로 정기성, 일률성, 고정성이 제시됐다. 연장근로가 빈번한 제조업 사업장에서는 인건비 부담을 낮추기 위해 기본급 수준을 낮게 유지한 채 연장근로수당과 정기상여금 및 매년 경영성과에 따른 성과금을 더해 주는 식의 임금체계를 유지해 왔다.

하지만 대법원 판결 이후 정기상여금의 통상임금 포함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에 노사는 취업규칙과 단체협약 문구를 분석하며 정기상여금의 통상임금 포함 여부를 둘러싼 법적 다툼을 시작했다.

올해 초 서울중앙지법은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 조합원 23명이 상여금, 휴가비 등을 통상임금에 포함시켜 달라고 제기한 소송에 대해 판결했다. 이 판결에서 서울중앙지법은 ‘15일 미만 근무자에게는 상여금 지급을 제외한다’는 규정을 이유로 현대차와 현대정공 출신 조합원들에게는 상여금의 통상임금 포함을 인정하지 않았고, 해당 규정이 없었던 현대차서비스출신 조합원들에게만 상여금의 통상임금 포함을 인정한다고 판결했다. 같은 사업장에서 일하더라도 출신에 따라 누구는 인정받고 누구는 인정 못 받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대법원 판결문에서 제시한 신의칙 원칙도 논란거리다. 정기상여금의 경우, 법적으로 통상임금으로 인정받더라도, 신의칙 원칙 때문에 과거 3년치 임금을 지급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회사의 경영 상황을 놓고 다시 다투어야 한다고 노동계는 비판하고 있다.

반면 일부에서는 대법원의 판결이 그동안 논란이 되어 왔던 통상임금의 판단기준과 고정성에 대해 비교적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했다는 평가와 함께 신의칙 원칙을 제공함으로써 노사의 상반된 입장을 조화시키려 노력했다는 평가도 있다. 하지만 해당 판결로 인한 사회적 갈등과 노사간의 감정 소모가 매년 되풀이 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하루 8시간 근무는 아직도?

임단협 교섭에서 통상임금 문제와 함께 다른 한 축을 이루고 있는 사안은 장시간근로 개선을 위한 교대제 개편 문제이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올해 국회에서 열린 실노동시간 단축 및 통상임금 정상화 입법 토론회에서 “노동시간이 주 48시간에서 44시간으로, 44시간에서 40시간으로 단축되고 있지만, 2013년 OECD 국가의 연간 노동시간을 비교해 보면 여전히 한국은 멕시코, 칠레 다음으로 가장 긴 편에 속한다”며 “장시간 근로와 저임금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데, 그동안 정부와 재계는 장시간노동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탈법적으로 근로기준법을 해석하고 운영해 왔다”고 비판했다.

엄교수 현대자동차지부 정책기획실장은 “일자리 창출을 목적으로 정부에서 실시한 노동시간 단축 정책의 결론은 임금보전-생산 효율성 향상을 맞교환 한 노사간 담합으로 나타났고, 의도한 일자리 창출은 이뤄지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엄 실장은 “아직도 일부 사업장에서는 주 70시간을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이 상당수”라며, “통상임금 문제가 제대로 정리되지 않으면 저임금을 바탕으로 한 장시간근로의 연결고리가 끊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장시간근로가 문제되어온 대표적인 사업장 중 한 곳인 기아자동차에서는 2009년부터 노사공동위원회를 구성해 근로시간 단축을 위한 대화를 시작했지만 물량 문제와 임금 보전, 설비투자에 대한 합의점을 찾지 못해 난항을 겪었고 도중에 통상임금 문제 및 임금체계 개편 문제가 더해지면서 길을 헤매고 있는 실정이다.

기아자동차지부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2개 근무조가 하루 각 8시간씩 근무하는 주간연속2교대제 개편을 위해 교섭하고 있다. 근로시간이 줄어드니 사측에서는 생산량 보전을 위해 UPH 증가를 주장하지만, 이에 따른 노동 강도 완화를 위한 설비 투자 계획을 밝히지 않아 난항을 겪고 있다”며 “설비 개선 및 통상임금 문제 해결을 위한 총비용이 5,000억 원 정도로 예측되고 있는데, 사측에서는 이 돈이면 해외 공장을 하나 짓는 비용과 맞먹는다며 설비투자에 대한 확답을 주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완성차 업계의 교섭 결과에 따라 자동차 협력사들의 교대제도 문제도 달라진다. 협력사라도 그나마 설비투자 여력이 있는 대기업은 사정이 낫지만 2, 3차 협력사로 내려갈수록 설비 개선에 필요한 비용을 감당할 수 없는 곳이 많다. 목돈이 드는 설비 개선에 정부의 지원 계획이 얼마나 현실적인지에 따라서 또 다른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는 지적도 있다.

ⓒ 존슨콘트롤즈오토모티브코리아노동조합
장시간근로, 통상임금 문제 해결에 성공

미국계 기업을 본사로 둔 존슨콘트롤즈오토모티브코리아(이하 JCAK)는 자동차시트를 조립하여 기아자동차에 납품하는 자동차 부품 협력사이다. 이천에 위치한 자동차시트 제조 공장에는 334명의 생산직 노동자들이 근무하고 있고 안산시 테크노센터 연구소에서 연구직 및 관리직 노동자들 80여 명이 근무하고 있다.

JCAK는 원래 삼도그룹 내 삼도산업이라는 사명을 달고 의류 산업을 시작했지만 섬유산업 침체로 1990년 초 자동차 시트제작으로 사업을 전환했다. IMF의 여파로 1997년 대기시트에 인수되었지만 경영 사정은 나아질 줄 몰랐고, 2001년 전 세계 공장에서 12만 명의 직원들을 고용하고 있는 미국계 자동차 부품회사 Johnson Controls로 인수되는 과정을 거쳐 현재의 사명인 JCAK로 출범했다.

외국계 기업으로 인수된 후에도 2006년까지 매년 적자를 볼 정도로 경영상 어려움은 쉽게 나아지지 않다가, 2007년에 이르러서야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어려운 시기를 극복했다는 생각에 노동조합은 성과 배분을 요구하며 사측과 대립했고, 결국 파업을 거쳐 교섭이 타결됐다. 2008년도에도 3번이나 파업을 할 정도로 노사간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런데 자동차 협력사 최초로 2013년 3월 4일, 8+9 주간연속2교대제 실시에 성공하더니 노사문화대상 국무총리상을 수상했고, 올해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근로시간 단축 및 통상임금 문제 해결의 우수 사례로 소개되기에 이른다.

삼도산업 시절부터 경영위기와 2번의 피인수 과정을 지켜본 이창수 존슨콘트롤즈오토모티브코리아노동조합 위원장은 “주간연속2교대제 개편과 통상임금 문제 해결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고 전하며 “노사가 대원칙에 합의하고, 설비 개선을 위해 꾸준히 TFT 활동을 벌인 결과 주간연속2교대제가 안착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 생산량 변동 없고 ▲ 임금 변동 없고 ▲ 인원 변동이 없는 주간연속2교대제로의 개편이라는 대원칙 하에 JCAK는 2015년 1월 1일부터 8+8 주간연속2교대제를 실시하며 잔업 없는 공장을 만들었다.

교대제 개편, 차근차근 풀어가다

2009년 기아자동차에서 교대제 개편을 위한 노사공동위원회를 구성하자 JCAK 노사도 준비를 시작했고, 2012년 11월 교대제변경위원회 설치에 합의했다. 교대제변경위원회는 생산, 임금, 복지분과로 나눠서 운영했다. 2013년 3월 8+9 주간연속2교대제 시행을 목표로 하면 남은 시간이 3~4개월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전문성 확보를 위해서라도 분과별 논의가 필요했다. 사측 대표와 노측 대표가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고 분과별 노사 담당자가 수시로 논의를 진행했다. 교대제변경위원회 설치부터 합의까지 3개월이 채 안 걸렸는데,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전부터 TFT 활동을 통해 설비 개선 작업을 지속적으로 진행해 왔기 때문이다.

자동차 시트 생산은 시트 틀에 부품을 끼워 넣고, 천을 끼우는 작업이 주를 이룬다. 인가공 비중이 80%정도로 높은 수준이기 때문에 자동화가 힘든 분야이다. 근로시간이 줄어든 만큼 노동강도 증대를 통해 생산량 보전을 담보해야 하기 때문에 작업 부담을 덜 수 있는 설비 개선 작업이 중요했다.

JCAK는 노조 간부 및 해당부서 담당자 총 10명이 상시 근무하는 체제로 1차(2010년 11월 1일~2011년 6월 30일), 2차(2011년 11월 10일~2012년 5월 23일) TFT 활동을 진행했다. TFT는 생산성향상 및 품질 개선, 원가 절감, 근골격계 질환 예방, 의사소통구조를 개선하는 작업을 추진했다. 그리고 재고 안정성을 위해 고객사에서 주문하는 양보다 조금 더 여유 있게 물량을 생산해 오던 체제에서 고객사 주문에 1대1 생산 대응 원칙으로 바꾸는 변화를 꾀했다. 이런 노력으로 교대제 변경 전에 비해 UPH가 15% 향상되는 결과를 낳았다.

▲ 이창수 존슨콘트롤즈오토모티브코리아노동조합 위원장 ⓒ 참여와혁신 포토DB
“야간근무를 하면 새벽 4시에서 6시 사이가 가장 힘들고, 아무래도 집중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8+9로 가면서 오히려 실적이 올랐다. UPH가 올라가고 품질도 향상됐는데, 이것은 집중도가 높아진 결과로 보인다.”
- 이창수 위원장

통상임금 문제 해결은 2012년 말 새로 부임한 박태언 사장이 미국 본사를 설득하면서부터 물꼬를 트기 시작했다.

“미국 본사가 회사의 경영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노조는 교섭에서 항상 본사를 설득할 수 없다면 교섭하지 않겠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사측이 본사를 설득하지 못해 갈등을 반복해 왔다. 이번 통상임금 문제도 본사 법무팀에서 대응하겠다고 했지만, 2012년 말 새로 부임한 박태언 사장이 교대제 개편과 통상임금 문제가 겹쳐 있는 한국 상황을 미국 본사에 설명했고 본사에서 받아들이면서 노사관계 또한 개선되기 시작했다.”
- 이창수 위원장

노조에서 사측을 상대로 2014년 7월 통상임금 소송 접수까지 진행했지만 ’14년도 임단협에서 교대제 개편 합의와 함께 상여금 750% 중 설·추석 상여금 150%를 제외한 600%를 통상임금에 포함하기로 합의하면서 통상임금 문제를 해결했다. 750% 정기상여금 중 600%를 통상임금에 포함시켜 매달 50%씩 분할 지급하는 것으로 나눴고, 남은 150%를 통상수당으로 합의하면서 임금 총액을 보전했다. 이와 더불어 같은 해에 입사해도 별다른 근거 없이 몇 개월 차이 때문에 시간당 3,000원 이상 임금수준이 달라졌던 불합리한 임금체계 개선을 위해 호봉테이블 도입 논의도 시작했다. 그리고 근속년수에 기초한 호봉테이블을 완성하면서 동일년도 입사자 간에 존재했던 갈등 문제도 함께 해소했다.

“일련의 상황을 경험하면서 느낀 점은 노동조합과 현장과의 소통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조합원이 근로시간 단축에 반대한다면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니다. 임금수준 저하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다. 그 문제만 해결된다면 부정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 조합원 교육을 통해 임금 보전에 대한 확답을 줬다. 8+9로 갈 때도 임금 저하 없이 간 것인데, 현장에서는 일을 덜 하니까 돈을 덜 받는다는 느낌을 받는다. 예전에는 고정급이 낮고 잔업이 많아서 임금 등락폭이 컸는데, 교대제를 개편하면서 1년에 받는 총액 수준을 맞춘 상태에서 월별로 나눴다. 이렇게 해서 임금 수준 저하 없이 교대제를 개편했다.”
- 이창수 위원장

근로시간을 줄이는 대신 생산량, 임금을 어떻게 보전할 것인가, 생산량 보전을 위해서는 이전보다 더 열심히 일을 해야 하는데 증가하는 노동강도 완화를 위해 설비 투자를 어디까지 진행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더해,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할 때 증가하는 비용의 문제까지, 현장에서 민감한 사안들을 한꺼번에 해결해보려는 노사의 고민이 불꽃을 튀며 마주치고 있는 시기이다.

JCAK 노사는 교대제 및 통상임금 문제 해결을 위해 노사간의 공감대부터 형성했고, 오랜 준비작업으로 문제를 차근차근 해결했다. 설비 투자 및 통상임금 문제에서 칼자루를 쥐고 있는 사측이 태도 변화를 보여줬고, 노동조합에서는 사측과 현장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꾸준히 설득작업을 해 온 것이 바탕이 되어 잔업 없는 공장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아침 8시에 출근해서 저녁 8시까지, 저녁 8시에 출근해서 다음날 아침 8시까지 하루 12시간을 온전히 회사에 머무르며 심야근로, 장시간근로에 시달리던 캄캄한 세상에서 우리가 그렇게 꿈꾸던 잔업 없는 세상이란 꿈이 현실로 우리 앞에 다가온 것이다.” 
- 노동조합 소식지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