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도 늙어간다
노동자도 늙어간다
  • 권태식_구로한의원 원장
  • 승인 2006.08.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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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의 퇴직자 의료비 지원 논란, 남 일 아니다
노사 모두 고령화로 인한 건강 대책 서둘러야

권태식 구로한의원 원장
불과 10년 사이에 대공장노동자들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은 소외받던 자들, 개혁의 주체에서 귀족으로, 개혁의 대상으로 바뀌었다. 다양한 이야기들이 가능하겠지만 이러한 모습의 뒤에는 노동자의 평균연령이 40대를 지났다는 중요한 변수가 있다.

한국 노동운동의 주축이었던 대공장 남성 노동자들은, ‘잃을 것은 쇠사슬’뿐인 육체노동자가 아니라 아파트 할부금과 자녀교육문제가 가장 현실적인 고민거리인 40대 중반을 지나, 퇴직 이후 삶이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50대를 향해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노령화되고 있다. 청년 노동자는 중년 생활인으로 바뀌었다.

30년 후의 건강문제? 바로 지금의 문제
그리고 이러한 변화와 더불어 건강문제에서도 새로운 변화들이 나타나고 있다. 골병으로 대표되는 만성 누적질환과 함께, 노령화로 인한 성인병이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하자면, 현재의 평균적인 대공장 노동자들은 20년 안에 퇴직을 할 것이며 20년 안에 성인병과 성인병 합병증, 암 등의 질병에 이환되어, 10년 정도를 고생하다가 사망하게 될 것이다. 대공장 주변의 노동자 밀집지역은 집단 노인거주 공간으로 변화하고, 성인병에 이환된 현재의 대공장 정규직 비정규직 노동자와 1·2차 하청 노동자들, 그 가족들이 살아가게 될 것이다.

노령화와 함께 이환될,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비만, 등의 만성질환의 특성은 몇 십 년의 잠복기를 지나 질환으로 발전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평균 근속기간이 늘어나면서 만성적인 근골격계 질환들과 직무 스트레스 질환들이 뿌리 깊은 골병으로 나타나듯이, 현재 노동자의 몸은 서서히 노령화되고 있고, 주로 퇴직 이후에 그 변화의 결과를 본격적으로 보여줄 것이다. 20~30년 이후에 나타날 만성 질환의 주요한 원인은 지금의 노동조건, 생활습관, 스트레스 상태에 있다.

누가 준비해야 하는가
의료비용을 차라리 회사에서 지불하는 방식이라면, 노령화로 인한 천문학적인 의료비용 부담 때문에 회사는 오히려 예방관리에 더 적극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퇴직 노동자에 대한 의료 관리는 전적으로 국가의료보험체계로 넘어가 있다. 회사는 아직까지 퇴직 노동자들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롭고 그래서 대비할 필요성이 없다.

그러나 자유로운 상황은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지금의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들은 기업단위로 정규직에게만 제공되는 다양한 복지혜택에 안주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필연적으로 퇴직 이후의 중단이 아니라 퇴직 이후에도 지속되는 복지 및 의료지원 요구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현재 기업단위의 복지정책은 세계화의 추세와 무관하게, 앞으로 다가오게 될 노령화로 인한 퇴직 노동자들의 대한 복지와 의료지원의 추가부담의 요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퇴직한 노동자들이 소수이고 이들의 만성질환이 시작되는 초기형태에서는 노동자의 요구와 회사와의 갈등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보다 앞서 노령화가 진행되었던 미국에서, GM의 퇴직 노동자들은 국가에서 지원하는 메디케이드 수준의 의료지원에 만족하지 않았다. 한국의 강성 대공장 노동자들이 퇴직 후에 의료보험을 중심으로 한 현재 혹은 다가올 미래의 국가의료보험 체계에 만족할 것인가는 논란의 여지가 없을 것 같다.

FTA 시대 민간의료보험, 영리법인 고급병원, 의료 시장이 국내외 자본에 열린 상황에서 능력만 된다면 국가의료보험 체계정도에 만족하지 않는다. 암환자에겐 모 재벌 회장이 치료받은 MD앤더슨 암센터 한국분원에서 치료 받는 것이 목숨을 건 투쟁요구로 느껴질 수 있다.

노동자의 건강한 미래는 노사 모두의 몫
현재의 질병 치료중심의 의료 체계의 피해자는 그 질환에 이환될 노동자이며, 또한 이후 막대한 비용 지원 압박에 시달려야 하는 것은 회사다. 질병이 이환된 이후에 시작하는 질병 치료 중심 의료체계에 대한 비용-효율 평가는 낙제점이다.

단, 지불능력을 가진 이들의 수명과 건강지수는 그렇지 못한 이들에 비해 훨씬 좋다. 저소득층의 주거지역으로 가는 지하철 역 한 구간마다 수명이 1년씩 줄어드는 미국사회의 계급 계층에 따른 생명 차별은 한국사회에서도 그 실체를 서서히 드러내고 있다.

우리의 대공장 노동자와 비정규직, 2차 3차 노동자와 그들의 아이와 배우자는 부자와 빈자 지역으로 가는 지하철 어느 역쯤에 서 있을까. 그리고 이 목숨 서열화의 해결책은 무엇인가.

노동조합과 회사가 고령화로 인한 노동자와 가족들의 건강에 대한 고민을 시작해야 할 시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