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 개념에서 경영참여, 우리사주조합의 앞날은?
‘소유’ 개념에서 경영참여, 우리사주조합의 앞날은?
  • 박종훈 기자
  • 승인 2015.05.11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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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액주주로서 권한 행사 가능, 한계도 명확
민주적 운영·재정 확립 부문도 걸림돌
[사건]우리사주조합의 어제와 오늘

‘기업의 종업원이 자기 회사의 주식을 취득, 관리하기 위해 조직한 조합’, 우리사주조합의 사전적 설명이다. 이를 통해 기업의 경영이나 이익분배 과정에 참여하고, 근로의욕을 고취시키거나 재산 형성을 촉진시킬 수 있다. 생산 활동의 주체인 노동자들이 생산 수단을 소유, 사용, 처분하는 과정에 개입한다는 점을 주목할 수 있다.

주식 소유 기반으로 일부 경영참여까지

나라마다 상이한 명칭과 특징을 갖고 있지만 기업이나 금융기관의 소유-경영 구조의 선진화, 재무구조의 개선, 종업원 복지증진과 빈부격차 완화, 자본시장의 건전한 발전, 노사 간 협력 증진, 적극적인 회사 구제수단으로서 종업원 기업인수의 촉진, 생산성 향상 등 다양한 형태의 경제적, 사회적 이익을 도모할 목적으로 정부의 정책이나 회사의 경영방침으로 자기 회사의 종업원들에게 각종 편의를 제공하여 회사의 주식을 취득, 장기 보유하도록 하는 사회제도를 흔히 볼 수 있다.

종업원지주회를 기반으로 하는 일본의 종업원지주제도, 종업원 주식소유신탁(ESOT, Employee Stock Ownership Trust) 등을 골격으로 하는 미국의 종업원주식소유제도(ESOP, Employee Stock Ownership Plan), 미국의 ESOP를 모델로 하는 영국의 종업원주식소유제도(ESOP), 프랑스의 종업원주식소유제도 등이 그것이다. 우리사주조합을 기반으로 하는 우리사주제도는 이와 같은 모델의 한국형이라고 볼 수 있다.

국내 최초의 우리사주조합은 1958년 유한양행에 설립됐다. 이후 1968년 자본시장 육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제도가 법제화된다. 한국에서 이와 같은 제도가 본격적으로 도입된 것은 1974년 ‘종업원지주제도 확대실시 방안’이 발표되면서 부터다. 같은 해 10월 일신산업(주)과 중앙투자금융(주)에서 우리사주조합이 결성됐다. 이후 정부가 강력히 추진한 기업공개정책, 종업원지주제의 확대보급을 위한 각종 지원시책 및 행정지도에 힘입어 공개상장 법인을 중심으로 급속히 늘었다. 1974년 말에 8개에 불과하던 우리사주조합은 1980년 말에는 385개로 늘어났다.

우리사주조합은 일정한 요건이 되는 거의 모든 노동자들이 자유롭게 참여하여 자율적으로 운영되며, 주식을 취득할 수 있는 조합원 자격은 종업원이면 누구나 해당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임시직, 회사 임원과 주주는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조합원들은 조합을 통해 자기회사 주식, 즉 자사주를 취득한다. 조합은 자사주 취득을 위해 기금을 조성할 수 있는데, 이 기금의 재원은 사업주나 대주주가 출연한 금전, 조합원이 출연한 금전, 차입금, 조합계정 보유주식의 배당금 등의 수익금, 그 밖의 기부금 등으로 꾸려진다.

우리사주조합을 통해 취득한 자사주는 조합이 일괄해 취득일로부터 1개월 이내에 한국증권금융에 예탁해야 한다. 예탁 기간은 주식 취득일로부터 최저 1년에서 최장 7년이다. 즉 우리사주조합원은 개인별 계정에 예탁된 자사주를 1년이 지나면 언제든지 인출할 수 있다. 회사가 무상으로 출연해 준 자사주는 우리사주조합계정에 3년 동안, 한국증권금융에 1년 동안 의무적으로 예탁한 뒤 처분할 수 있다.

우리사주조합은 소수주주로서 목소리를 내고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조합원계정에 배정된 주식의 의결권에 대해 조합의 대표자는 7일 이상의 기간을 정해 주총의안에 대한 조합원의 의사 표시에 따라 의결권을 행사한다. 그밖에도 일반적인 주주의 권리, 예컨대 주총참여의 권리, 주총결의의 취소, 무효의 소의 제기권, 주식매수청구권 등을 행사할 수도 있다.

일정한 지분율 이상을 보유하고 있을 때 행사할 수 있는 권리로, 불법 부당한 경영으로 손해를 끼친 이사와 감사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도 있다. 회사가 특정 주주에게 불법으로 부당하게 유, 무형의 이익을 제공한 경우 그 이익의 반환을 청구할 수도 있다. 이사나 감사가 부정행위를 하거나 법령, 정관을 위배해 직무를 처리했는데도 주주총회에서 해임이 부결되면 총회 결의가 있던 날부터 1개월 이내에 법원에 해임을 청구할 수도 있다. 주총 6주 전까지 서면으로 일정한 사안을 주총목적 사안으로 다룰 것을 제안할 수도 있다.
회사의 회계 장부를 ‘이유를 기재한 서면’으로 열람 또는 복사를 청구할 수도 있다. 회사의 업무집행에 관하여 부정행위나 법령, 정관에 위배되는 중대한 사실이 있을 경우에는 회사의 업무나 재산 상태를 조사하기 위해 법원에 검사인의 선임을 청구할 수도 있다.

실질적 노동자 경영참여는 어려움 커

그렇다고 해서 우리사주조합을 통한 노동자 경영참여가 그렇게 호락호락한 길은 아니다. 간신히 ‘협의’의 개념에서 참여라도 가능하다면 다행이다.

크게 두 가지 과정의 경영참여를 고려해 볼 때, 의사결정에서 합의과정에 참여하는 부분과 의사결정에서 집행과정에 참여하는 부분을 나눠서 생각해 봐야 한다.

합의과정 참여는 주로 노동조합의 역할로 주어지는 부분이다. 임단협이나 인사, 징계위원회 노사 동수의 구성, 노동조합에 의한 이사와 감사 및 경영이사 추천권 확보 등과 같은 방법으로 기업의 의사결정과 관련한 문제들을 노사합의 차원으로 끌어오는 것이다. 교섭이나 법적, 제도적 뒷받침이 있고, 탄탄한 노사관계 문화나 고도의 정치적 노력이 수반된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참여의 방법이다.

집행과정에의 참여는 기업의 경영회의(일반적으로는 이사회)의 참관권, 발언권, 기업 경영진의 추천, 선입, 해임의 결정, 기업의 재정, 인수, 합병, 매각, 투자, 성과배분 등의 각종 의사결정에 노동자들이 참여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앞서 언급한 ‘소유’를 기본으로 하지 않으면 완성된 결실을 만들어가는 게 불가능하다. 기업주들의 ‘재산권’을 직접적으로 침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강력한 노동조합 조직을 기반으로 노동자 경영참여가 법적, 제도적으로 보장돼 있다는 독일의 사례에서도 보면, 공동결정의 법적용을 받는 기업에서도 예외적으로 노무담당 이사를 선임할 수 있는 수준에 불과하며, 일반적인 집행과정에 대한 참여를 보장받고 있지는 않다. 이사회를 견제할 수 있는 ‘감사회’에 노동자대표 1/3을 포함시킬 수 있다는 진전을 얻어내긴 했지만, 더 이상의 제도적 진척은 재산권 침해 시비에 막혀 있다. 감사회는 주주총회의 주된 기능으로서 이사 선임권, 제반서류의 검토권, 이사회 활동에 대한 협의 및 감독권, 이사회의 연말 결산 및 이윤분배 제안에 대한 검토권, 대규모 투자나 타기업 지분 취득에 대한 동의권 등등을 행사하고 있다.

▲ 소수주주권의 종류
그동안 우리사주조합 사례는?

그동안 기존 노동조합 조직을 중심으로 우리사주조합제도를 활용한 사례를 여러 건 찾아볼 수 있다. 주로 우리사주조합의 직선제 도입과 민주화 과정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며, 이를 달성한 곳에서는 본격적인 경영참여 활동을 편 사례도 있다.

기아자동차에서는 1998년 우리사주조합 민주적 운영에 관해 노사가 합의했으며, 2001년 4월 중 우리사주조합 조합장 직선 선거절차에 합의하기도 했다. 1998년과 1999년에는 만도기계 우리사주조합이 대표소송 등을 통해 오너 일가의 부당한 재산 환수를 위한 국민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1998년 외환카드 우리사주조합은 민주적으로 결성돼 성과배분과 주식배분안을 연결하기도 했다.

데이콤 노동조합의 경우 1999년까지 5.1% 지분율의 우리사주조합을 통해 경영참여를 통한 수평적인 노사관계를 만들어나가려 노력했다. 사장추천위에 종업원대표 추가, 우리사주조합 추천 비상임이사제 등을 내용으로 하는 주주제안을 1999년 1월에 내기도 했으며, 2000년 3울에는 참여연대와 함께 사외이사의 절반을 소액주주가 추천한 자로 하도록 변경하기도 했다.

현대증권 노동조합은 우리사주조합의 지분 약 6%를 활용해 집중투표제와 관련한 정관 변경안, 이사회에서 추천한 사외이사 후보는 현대그룹 차원에서 일방적으로 선임을 요구하는 이들이기 때문에 이를 반대하는 안, 감사위원이 되는 사회이사를 사외 공모 방식으로 선임하는 안 등을 주주제안하기도 했다. 2004년 5월에는 현대증권 이사회가 소액주주들과 우리사주조합, 노동조합이 추천한 하승수 변호사를 감사위원을 겸한 사외이사 후보로 선출하게 하기도 했다.

서울신문(구 대한매일)은 민영화 과정에서 2001년 1월 회사가 현금으로 우리사주조합에 출연한 110억 원과 종업원 퇴직금 중간정산 등을 재원으로 우리사주조합이 회사 지분을 38.95% 인수했다. 당시 지분율은 재정경제부 30.49%, 포스코 22.41%, 한국방송공사 등 8.08% 수준으로 사원소유회사로 전환됐다. 이후 공정한 사장후보 추천위원회를 구성해 민주적이고 투명한 경영을 위해 애썼으며, 노사 간 신뢰도 높아졌다.

현대자동차에서는 1999년 노사가 단협을 통해 우리사주조합 민주적 운영 및 주식취득보조금 지급에 합의하기도 했다. 2000년에는 회사 이사와 노조 회계감사가 조합장 경선에 붙어, 노조 회계감사가 당선되어 회계장부열람 등을 추진하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첫발 뗀 KB금융 우리사주조합

우리사주조합 조합장을 조합원들이 직접 선출한 사례는 1999년 아폴로산업 우리사주조합에서 당시 회사 총무부장과 노조 수석부위원장이 경선을 치른 이후 종종 찾아볼 수 있었다. 대림산업과 영창악기, 앞서 언급한 현대자동차에서도 겪었다. KB금융지주 우리사주조합도 대법원 판결까지 가는 법적 투쟁 끝에 2014년 우리사주조합 조합원 자치시대를 열었다. 노조 수석부위원장이 우리사주조합 조합장으로 당선됐다.

KB금융지주는 지난 2012년 한국기업지배구조원으로부터 기업지배구조 우수기업 대상을 수상했다. 2013년에도 A+ 등급의 우수기업으로 선정됐다. 산하 KB국민은행은 산업통상자원부와 산업정책연구원이 기업지배구조 영역, 고객 영역, 지역사회 공헌 영역, 작업장 여건 영역, 협력업체 영역 등을 평가하는 지속가능경영 실적 평가에서 5년 연속 AAA 등급을 받아 우수기업으로 선정됐다. KB금융지주도 2년 연속 AAA 등급을 유지했다.

민간기업으로는 대단한 성과이고, KB금융이 명실상부한 기업지배구조 우수기업이라면 구성원들의 자긍심이 대단할 것이라고 짐작된다. 하지만 현실은 과연 그럴까? 주 전산시스템 교체 논란으로 불거진 KB국민은행 이사회 내부의 대립 양상은 기업지배구조가 임원 낙하산 논란, 사외이사들의 거수기 논란에서 자유롭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일까?

오히려 구성원들의 사기는 바닥으로 떨어졌다는 이야기를 쉽게 들을 수 있다. 경영진을 비롯한 이사회에서는 지속가능한 기업의 성장의 관점에서, 주주와 고객, 구성원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권익을 고려한 관점에서 핵심 사안을 판단하고 의사결정을 내렸어야 한다. 내부의 의견불일치 상태를 외부의 힘을 빌려 해결하려는 시도도 없었을 것이다.

KB금융지주 우리사주조합은 조합장 선거에서 노조 수석위원장을 당선시키며, 민주적인 운영을 위한 첫 발을 떼었다. 우선 회사가 일방적으로 운영했던 실무 업무를 차질 없이 인수인계 받아 유·무상 배분, 주식 인출업무, 관련 대출의 상환, 연장 및 제 신고 등의 일상 업무를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기반을 확보할 계획이다.

지난 3월 열린 정기주총에서 우리사주조합이 추천하는 사외이사 선임을 목표로 주주제안 사업을 추진했다. 특히 KB국민은행지부와 함께 관치금융, 특정 대기업 이해관계에 의해 일부 사외이사가 선임된 것이 아니냐는 문제제기를 하기도 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노동자들의 경영참여와 함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또 하나의 수단으로 강구된 우리사주조합이지만, 과거에는 조합의 민주적인 운영이 걸림돌이 되어 왔고 이는 현재까지도 유효하다. 또 구체적으로 사업을 펼쳐나갈 수 있는 재정 기반이 기금 조성 등을 통해 마련되어야 한다는 점도 숙제로 남는다. 길면 길고 짧다면 짧은 세월 동안 거듭되어 온 우리사주조합을 통한 노동자 경영참여의 실험이 앞으로 어떤 모습을 보일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