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 조직구조 개편 1차 마무리
현대중공업 조직구조 개편 1차 마무리
  • 홍민아 기자
  • 승인 2015.06.05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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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직지회 설립 및 여직원들의 동참
현중노조, 사내하청지회와 공동투쟁 결의
[사건] 현대중공업 구조개편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의 여파를 조선산업도 피해가지 못했다. 세계 교역이 위축되면서 해상이동 물량이 감소한 반면 중국의 성장과 일본의 강세로 조선산업 경쟁은 심화됐다. 또한 저유가 상태가 이어지면서 해양플랜트 분야에 대규모 투자를 쏟아 부었던 국내 조선소들은 적자를 봤다. 세계 제일의 조선소를 자랑하는 현대중공업도 지난해 사상 최대의 적자를 기록했다.
“현실을 직시해야 하며, 강도 높은 개혁을 통해 새롭게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난해 새로 부임한 권오갑 현대중공업 사장이 취임 직후 경영위기 극복을 내세우며 한 말이다. 권 사장은 지원조직을 대폭 축소하고 생산과 영업 중심으로 조직을 개편하여 회사 정상화에 모든 역량을 집중시키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회사는 경영진 교체 및 구조개편을 통해 위기 극복에 나섰고, 충분한 논의 없이 이뤄진 갑작스런 변화에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은 동요하기 시작했고, 뭉치기 시작했다.

▲ 구조조정 중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 모습 ⓒ 현대중공업노동조합

권오갑 사장의 과감한 행보

경제 저성장 추세와 경기 불황이 이어지면서 웬만해서 흔들리지 않던 조선산업이 불황과 마주했다. 중소형 선박을 건조하는 성동조선해양은 75척을 수주하고도 주요 채권단인 한국무역보험공사와 우리은행으로부터 자금 지원 요청을 거절당해 경영상 위기에 처해 있다. 채권단에서는 이를 저가 수주로 보고 추가 자금 지원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현대중공업도 장기간 지속되는 불황의 여파를 피해 갈 수는 없었다. 지난해 3조 2천억 원이라는 사상 최대의 적자를 기록한 현대중공업은 경영위기 극복의 과제를 안고 올해를 맞이했다.
지난해 9월 현대오일뱅크 사장직에서 현대중공업으로 자리를 옮긴 권오갑 사장은 조직개편에 나섰다. 11월에 성과위주 연봉제를 도입하여 조직 및 개인 평가에 따라 실질적인 차이가 나도록 임금체계를 변경했고, 대규모 적자를 기록하던 플랜트사업본부를 해양사업본부에 통합시켰다. 올 초에는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까지 단행했다.

직영 직원 2만 7천여 명에 사내하청 직원들 4만여 명까지, 총 6만 7천여 명의 노동자들이 움직이고 있는 현대중공업의 변화는 조직 규모에 비해 빠른 속도로 진행됐다. 성과연봉제 도입부터 인력 구조개편 작업까지 약 7~8개월의 기간이 걸렸다.

특히나 인력 구조조정의 일환인 희망퇴직에 대해서는 노사가 첨예하게 대립했다. 회사가 공식적으로 발표한 것과는 달리 직원들 개별 면담 및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퇴사를 종용했다는 주장들이 나왔다. 사측에서 주도한 인력 구조조정 1차전은 현재 마무리된 것으로 보이지만 올해 임금협상이 마무리되면 또 어떤 양상으로 진행될 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그간의 시끄러운 상황에 대한 결과인지는 좀 더 지켜봐야 알 수 있겠지만, 올해 5월 현대중공업은 모디 인도 총리의 울산 방문을 성사시켰다. 현대중공업의 조선 기술력과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인도의 방위 산업, LNG 운반선 사업, 기술 지원 등의 다양한 협력방안에 대해 논의했고, 인도 조선소의 기술 수준 향상 및 인프라 구축에 현대중공업이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발표했다.

구조조정 반대하며 일반직지회 설립

올 초 빠르게 이뤄진 사측의 인력 구조조정에 대항하며 사무직 직원들은 금속노조 산하 현대중공업 일반직지회를 결성했다. 1월 18일 기자회견을 열고 과장에서 부장 직급까지 6천여 명의 노동자들을 가입 대상으로 하는 일반직 노동조합 창립을 알렸다.

일반직지회는 “회사는 지난해 3조 2천억 원이라는 적자 원인에 대한 체계적인 분석 없이 일방적으로 그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전가시키고 있다”며 “지난해 12월 성과연봉제라는 명목으로 정기상여금과 성과급을 일방적으로 삭감 당한 것도 감수했는데, 구조조정의 명분하에 정리해고가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우남용 현대중공업 일반직지회장은 “희망자에 한해서 진행하겠다, 강제성을 띠지 않겠다고 했지만 대상자를 정하고 저성과자 운운하며 사실상 강제퇴직을 종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현대중공업노동조합도 연대의사를 밝히고 함께 투쟁을 진행했지만, 현재까지 1,000여 명의 직원들이 회사를 떠났다.

임금협상만 진행하는 올해 교섭에서는 현대중공업노동조합과 현대중공업 일반직지회가 교섭창구 단일화를 통해 현대중공업노동조합을 교섭 대표로 정하고 상견례에 들어갔다. 5월 19일 상견례 및 1차 임금협상 자리가 마련됐지만 사측에서는 참석하지 않았고, 그대신 20일 부산지방노동위원회에 교섭단위 분리 신청을 냈다.

사측 관계자는 “일반직지회는 금속노조 산하 조직인데 금속노조의 입장과 현대중공업노동조합의 입장 차이가 있기 때문에 교섭이 장기화될 우려가 있다. 그리고 현재 일반직지회 조합원이 41명인데 현대중공업에 과장급 이상 직원들은 4,900여 명이다. 따라서 일반직지회가 과장급 이상 직원들을 대표한다고 보기 힘들고, 기존 노동조합과 조합원 가입 범위 및 임금체계가 상이하기에 분리해서 교섭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는 내부 판단 때문에 분리 교섭을 신청한 것이다”고 밝혔다.

현대중공업노동조합 일부에서는 교섭 조건이 상이한 일반직지회와 함께 교섭을 진행하는 것에 대한 우려나, 지금까지 노동조합 없이 지내오다가 무임승차 하려 한다며 일반직지회에 대한 거부감을 표현하는 조합원들도 있었다. 그러나 현대중공업노동조합 집행부는 추가적인 구조조정이 진행될 우려가 있고, 성과연봉제는 현재 조합원들이 진급을 하면 적용되는 제도이기 때문에 노동조합 차원에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고 교섭창구 단일화를 진행한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사측에서 분리교섭을 신청한 것은 교섭 시기를 늦추기 위한 작전인 것 같다고 말했다.

현대중공업노조의  2015년 임단협 요구사항은 기본급 인상을 비롯해 통상임금 1심 판결 적용, 임금·직급체계 및 근무형태 개선 노사 공동위원회 구성과 내년 6월 1일부터 시행, 성과연봉제 폐지, 사내하청업체 노동자 처우개선 등이다.

사무직 여직원에겐 CAD교육 실시

올 초 과장급 이상 직원들의 희망퇴직이 진행되면서 사무 업무를 담당하던 여직원 170여 명도 희망퇴직으로 회사를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남은 여직원들을 대상으로 CAD교육이 실시됐다. 사무담당을 하던 여직원들에게 설계 교육을 시키고 교육 이수 후 설계 관련 직무로 전환할 계획이라고 사측은 밝혔다.
이에 대해 현대중공업노동조합은 여직원 CAD교육은 자격증을 필수로 획득해야 하는 점, 회사 외부에서 교육을 받게 하는 점, 3개월의 교육기간 후 기존의 업무와는 완전히 다른 곳으로 발령을 내는 점 등을 들어 직무전환이 아닌 퇴출을 위한 교육이라고 비판했다.

그리고 여직원들을 대상으로 긴급간담회를 개최해 상황을 파악했고, 사측과의 협상 끝에 자격증 획득 요건 제거, 회사 내부 교육 장소 마련, 평가로 불이익을 주지 않는다는 부분에 의견을 모으고 교육을 진행했다.

현대중공업노동조합은 “현재 60여 명의 여직원들이 교육을 받고 있는데, CAD교육을 받아도 선박 설계 업무를 담당할 수 있을지 심히 우려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사측에서는 “설계인력 강화 차원에서 이번 교육 및 배치전환이 이뤄지는 것”이고, 노조의 우려에 대해서는 “신규 채용 시 조선학과 출신이 있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성실하게 교육받는다면 업무에 크게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초기에는 여직원들의 반발도 있었지만 5월 중순부터 진행된 교육에 현재는 대상자 전원이 참석해 교육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 노조집단 가입운동을 알리는 기자회견 모습 ⓒ 현대중공업노동조합

매년 증가하는 사내하청 노동자

사무직 과장급 이상 직원들이나 여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인력구조조정은 소강상태에 접어들고 있지만 현대중공업에는 임금 협상 및 통상임금, 사내하청노동자 문제가 중요한 현안으로 남아 있다.

현대중공업에 사내하청노조(현재의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가 결성된 것은 2003년이지만 조직적인 활동을 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단결도 문제이지만 노동조합이 결성되는 하청업체는 폐업되는 관행이 있었기에 노동조합을 결성하는 것도, 조합원이라는 신분을 드러내는 것도 사내하청업체 노동자들에게는 상당히 어려운 과제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정규직 직원 수를 훌쩍 뛰어넘을 뿐만 아니라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근로조건, 안전문제에 대해 더 이상 간과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다음 자료는 금속노조 노동연구원에서 조선해양플랜트협회 9개 회원사 자료를 인용한 표인데, 회원사로는 국내 빅3 조선소인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을 비롯해 현대삼호중공업, 현대미포조선, stx조선해양, 성동조선해양, 한진중공업, 대선조선, 신아에스비가 속해 있다.

▲ 자료 : 조선해양플랜트협회 9개 회원사 자료. 2014-11 금속노조 노동연구원 이슈페이퍼에서 재인용

경기불황이 이어지고 시장 안정성이 사라지면서 고용의 유연성 확보를 위한 사내하청 고용 비중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2013년에는 9대 조선소 내 사내하청 노동자 비중이 처음으로 10만 명을 넘어섰다. 각 조선소에서 일하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수가 직영 노동자들의 수를 훌쩍 뛰어넘는 것이다.

금속노조 노동연구원은 사내하청이 급속하게 증가한 원인에 대해서 “2000년대 후반 해양플랜트 산업이 급성장하면서 사내하청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였다. 그리고 밀폐된 공간에서 폭발 또는 질식의 위험이 있는 도장공정이나 추락사 위험이 있는 고소작업을 많은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담당하고 있는 추세이기 때문에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증가하고 있다”고 분석하며 “작업장 내 지나친 사내하청 활용에 대한 규제의 흐름이 필요하고, 이직률이 높은 사내하청업체 특성을 감안하면 숙련된 기술력이 중요한 조선 산업의 성장에도 긍정적이지 않다”고 평가했다.

사내하청 문제를 인식한 현대중공업노동조합에서도 연대 활동을 시작했다. 3월 31일 임시대의원에서 사내하청노조와 함께 비정규직 노동자 조직화사업을 결정했다. 정병모 현대중공업노동조합 위원장은 “원·하청 노동자가 함께 모여서 함께 우리의 삶을 이야기하고 우리의 고용을, 임금을, 우리의 삶을 이야기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이어 5월 4일 현대중공업노동조합과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는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 노조집단가입 활동을 시작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어 지난 14일에는 3,000여 명의 원·하청 노동자 공동 집회를 열어 “고용안정과 작업안전을 보장하고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하청업체 위장 폐업을 중단하라”고 주장했다.
현대중공업노동조합의 한 간부는 “현대중공업 신규 채용을 살펴보면 100명 중 20~30명만이 직영 노동자이고 나머지는 사내하청으로 채워진다”며 “매년 800~1,000여 명의 현대중공업 직영 노동자들이 정년퇴직을 맞이한다. 갈수록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증가할 것이고 안전문제 또한 더 심각해질 수 있다”고 전했다. 또한 조선소 인력  구조 특성상, 직영 노동자와 하청노동자를 분리하는 것은 서로의 근로조건을 낮추고 더 나아가 회사의 경쟁력을 저해하는 큰 요인이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회사는 경영위기 극복을 내세우면서 대대적인 변화를 선포하고 강행했다. 서로 다른 일을 하며, 서로 다른 위치에 서 있던 노동자들은 연대투쟁을 다짐하며 사측의 불합리한 조치에 대응할 것을 다짐했다. 조선산업이 어려움에 처해 있는 것은 명확해 보이지만, 40여 년 동안 국가 기간산업으로서 국내 조선산업 경쟁력을 함께 이끌어온 노사가 이번 사건을 계기 삼아 서로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는지 다시 한 번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