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쟁의에 휘몰아치는 손배소 광풍
노사쟁의에 휘몰아치는 손배소 광풍
  • 장원석 기자
  • 승인 2015.06.05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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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한 쟁의행위 요건 형성 거의 불가능
외국은 넓은 쟁의행위 인정, 손배·가압류 제한으로 해결
[사건]쟁의행위 손배소

2003년 1월 9일, 두산중공업 노동자 고 배달호 씨가 공장에서 몸에 시너를 뿌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012년 12월 21일에는 한진중공업 노동자 고 최강서 씨가 노조 사무실에서 목을 맸다. 이들은 모두 유서에서 노조에게 청구한 막대한 금액의 손해배상을 비판했다.

2014년 6월 기준으로 기업이 노조의 쟁의행위에 대해 청구한 손해배상 금액은 약 1,708억 원, 가압류 금액은 182억 원에 달한다. 이제 우리나라에서 노동자가 파업을 하기 위해서는 진압과 구속만 감수해야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경제적 기반까지 송두리째 날릴 각오를 해야 한다.

협소한 쟁의행위 정당성

노조의 쟁의행위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가압류 소송에서 사용자측은 “위법한 행위에 대해 책임이 따른다”는 법적 논리로 손해배상·가압류 청구가 적합하다 말한다. 노조법 제3조는 ‘단체교섭 또는 쟁의행위로 인하여 손해를 입은 경우에 노동조합 또는 근로자에 대하여 그 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1994년 동산의료원 판례부터 대법원은 ‘민사상 배상책임이 면제되는 손해는 폭력이나 파괴행위가 수반되지 않는 정당한 쟁의행위로 인한 손해에 한하고, 정당성이 없는 불법 쟁의에 따른 손해는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는 손해배상 소송에서 가장 결정적인 부분이 쟁의행위의 정당성 유무라는 것을 뜻한다. 대법원은 2008년 판례에서 정당한 쟁의행위를 위해 ▲주체 ▲목적 ▲절차 ▲수단과 방법 ▲ 폭력의 불행사 등, 여러 조건을 모두 구비하여야 한다(대법원 2008. 9. 11 선고 2004도746)고 판시하고 있다.

이 판결에서 볼 수 있듯, 대법원은 쟁의행위의 정당성 판단 기준을 엄격하고 협소하게 보고 있다. 노동조합에서 하는 대부분의 쟁의행위는 법적으로 정당성을 갖추기가 매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두산중공업, 쌍용자동차, 한진중공업, 현대중공업과 같은 사례에서 대법원은 쟁의행위의 정당성을 구성하는 요소 일부분에 대한 위법성으로 전체 쟁의행위가 위법하게 된다고 판단하고 있다.

하급심에서는 노조가 승소하는 사례가 있었다. 2009년 영남학원이 영남대의료원 노조의 쟁의행위로 영업손실을 입었다며 제기한 6억여 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재판부는 쟁의행위로 진료수입이 줄었다고 볼 증거가 없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지난 5월에는 MBC 노조에 대한 사측의 손해배상 2심 소송에서 “MBC 노조가 파업에 이른 주된 목적은 김재철이라는 특정한 경영자를 배척하기 위함이 아니라 방송의 공정성을 보장받고자 하는 데 있다”며 공정성이라는 기준을 쟁의행위의 정당성으로 인정하는 모습도 보였다.

사용자들, “불법 쟁의에 대해 엄정 대처”

사용자들은 불법적 요소를 포함한 쟁의행위에 대해서는 엄정하게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이다. 각 사건에 대해서 “노조의 불법 쟁의행위로 인해 기업이 받는 손실액, 파업일수, 쟁의의 강도가 날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회사가 입는 손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당한 쟁의행위는 문제없지만,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고 기업 손실액에 대한 보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기업이 노조에 손해배상·가압류를 청구하던 초기에는 파업, 협상에 대한 대응책으로서 방어적 의미를 가졌다. 일반적으로 노사 합의가 이루어지면 사용자측은 소를 취하하거나 최소한 가압류 정도는 풀어주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노조 활동 억제, 손실 보전 등을 목적으로 대법원 판결 전까지 가압류를 유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기업들의 손해배상 청구 내역을 살펴보면 영업이익의 상실·감소, 고정비용의 지출, 비 참가자 인건비 보전 등 쟁의행위로 인해 기업이 입는 직접적인 피해 외에도 예상되거나 연관되는 비용들을 합산해 청구하고 있다. 이렇게 거액의 손해배상·가압류가 이뤄지게 되면 노조 재산, 개인 재산을 사용하는 데 제한이 있어 조합원들과 노조 활동은 영향을 받게 된다.

2014년 2월 민주노총이 공기업 민영화 반대 총파업을 예고했을 때,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정부에 ‘법과 원칙에 따른 대응’을 주문했다. 경총은 회원사에게 “단순 가담자라도 맡은 역할 및 행동에 따라 책임을 추궁해야 한다”, “노조의 불법행위와 손해 발생에 대한 구체적인 채증에 신경 써야 한다”는 지침을 내리기도 했다.

단체협약, 입법안, 시민사회 연대가 대안

이러한 손해배상에 대해 노동계는 어떤 대책을 내놓고 있을까. 우선 눈에 띄는 것은 단체협약에 ‘쟁의행위에 대한 사측의 손해배상 청구 금지’ 항목을 추가하는 것이다.

2014년 11월, 보쉬전장 사측이 금속노조 보쉬전장지회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법원이 각하했다. 재판부는 2004년 체결되고 갱신된 금속노조 산별 단체협약 중 손배·가압류를 하지 않는다는 부제소특약을 강조하며 “조합원 찬반투표를 거치지 않은 쟁의행위는 위법하나 폭력·파괴를 수반하지 않았고 위법성이 사회질서 상 허용되는 수준이라 부제소특약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단체협약으로 체결된 사항은 노사가 자율적인 단체교섭을 통해 합의한 사항이므로 준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단체협약에 부제소특약이 포함되면 폭력·손괴 발생 등 심각한 수준의 위반사항이 없는 한 손해배상 책임을 면하게 된다. 결국 단체협약에 쟁의행위 손배소 금지 조항이 추가된 노조들은 쟁의행위의 정당성 제한이 약화되는 효과를 볼 수 있다.

하지만 모든 단체협약에 손배소 금지 조항이 들어있는 것은 아니다. 이 때문에 등장한 것이 입법을 통해 쟁의행위에 대한 손해배상·가압류를 제한하는 방안이다. 16대 국회부터 현재의 19대 국회에 이르기까지 많은 의원들이 이와 관련한 다양한 입법안을 내놓았다.

16대 오세훈 위원이 발의한 민사집행법 개정안은 압류가 금지되는 채권인 급여의 1/2이 최저임금액에 미달할 경우 최저임금액을 넘어서는 금액에 대해서만 압류할 수 있는 것으로 국회에서 의결되어 개정되었다.

18대 조승수 위원, 19대 은수미 위원은 노조법에 따른 단체교섭·쟁의행위에 대하여 업무방해죄 성립 불가 형법 개정안을 냈고, 17대 김영주 의원은 사용자가 쟁의행위와 관련한 폭력 또는 파괴행위로 손해를 입은 경우 ▲ 직접 손해에 한해 손해배상 청구 가능 ▲ 신원보증인에 대한 손배·가압류 금지 ▲ 사용자 압류신청에 대한 노조·근로자 소명 기회 부여를 골자로 하는 법안을 냈는데, 이는 현재 논의된 입법안 중 가장 유력한 대안으로 꼽히고 있다.

현재 19대 국회에는 쟁의행위 손해배상 문제와 관련해 은수미 의원의 민사집행법 개정안, 박영선 의원의 형법 개정안, 심상정 의원, 김경협 의원의 노조법 개정안과 독립 법안으로 전순옥 의원 입법안이 계류 중이다.

▲ ⓒ 손잡고
다른 방안으로 시민사회의 여론에 호소하는 방법이 있다. 2010년대에 들어 노조의 쟁의행의에 대한 손배·가압류 문제가 이슈화되면서, 시민사회 전체에 이 문제 해결을 위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확산됐다. 그 결과 2014년 2월에 ‘손잡고 (손배가압류를 잡자! 손에 손을 잡고)’ 라는 단체가 만들어졌다.

손잡고는 쌍용자동차 노동자 47억 배상판결에 대해 <노란봉투> 모금운동을 벌였고 가수 이효리가 이 모금에 동참하면서 세간의 큰 관심을 받으며 성공했다. 현재 손잡고는 여러 시민단체와 연대해 손배소 관련 입법 활동과 각종 손배소 사건을 지원하며 공청회, 토론회, 언론활동, 연극 등을 통해 이 문제를 사회에 알리고 해결하기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손배책임 제한하고 쟁의행위 넓게 인정하는 외국

우리나라에서는 노조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아주 혹독하게 묻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외국의 경우는 어떨까.

▲ ⓒ 손잡고
영국은 1875년 공모죄 및 재산보호법으로 쟁의행위에 대해 국가의 형벌권 기소를 금지했고, 1906년에는 노조에 대한 민사상 면책특권을 규정했다. 1980년대 보수당 정권이 들어선 이후 노조의 면책특권은 박탈됐다. 그러나 이러한 보수당 정책에 대해 많은 노동쟁의가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사용자가 노조에 손해배상을 청구한 일은 극히 드물다. 사용자는 위법 쟁의행위에 대하여 법원에 쟁의금지명령을 신청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나아가 영국에서는 파업에 대한 손해배상에 대해 그 금액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영국의 노동조합 및 노사관계통합법(TULRCA)은 제2장에서 ‘노동조합의 지위와 재산’을 다루고 있다.

독일에서는 비공인 파업의 경우에도 파업의 원인이 사용자측에 있거나 특별한 지위에 있지 않는 단순 참가자에겐 민사책임을 지우지 않는다. 또한 비록 파업이 위법한 경우라도 노동자는 파업의 합법성을 주장할 수 있는데, 노동자가 파업을 합법이라고 인식하였다면 사용자의 반증이 없는 한, 손해배상책임이 없는 것으로 추정된다.

▲ ⓒ 손잡고
프랑스는 우리나라와 같이 파업권을 헌법상 권리로 인정하고 있다. 프랑스 법에서 파업은 통상 ‘근로자들이 직업적인 요구를 관철할 목적으로 단결하여 집단적으로 노무제공을 완전히 정지 내지 거부하는 행위’로 정의된다. 파업의 목적이 되는 직업적인 요구가 매우 폭넓게 인정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직업적인 요구의 대상도 파업권의 정상적인 행사 여부를 판단하는 데 별로 중요한 의미를 갖지 못한다. 파업권을 굉장히 넓게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1864년 프랑스는 업무방해죄를 만들어 노동자의 파업을 처벌했다. 1980년대 초에는 노조의 쟁의행위에 대한 소송이 일반화되었다. 그러나 1982년 뒤비종-노르망디 사건에서 법원이 파업 중에 발생한 손해에 대해 노조원의 연대 책임은 물을 수 없다고 판시하면서 방향이 달라졌다. 프랑스 법에서 노동자 개인은 자신의 행동만 책임지며 입증책임은 사용자에게 있다. 또 프랑스 노동법전에서도 영국과 비슷하게 연간 보수액을 세분화해 압류, 양도의 한도를 두고 있다.

노사 화합과 상생이 극한 대립 막아

앞에서 비교한 영국, 독일, 프랑스는 파업제한이 약하고, 손해배상에 제한이 있음에도 우리나라에 비해 파업 일수가 현저하게 적다. 외국에서 파업이 적은 것은 노사가 대화와 협력을 통해 파업과 같은 쟁의행위로 가기 전에 문제를 해결하기 때문이다.

2014년 개최된 ‘쟁의행위와 책임’이란 제목의 국제학술대회에서 독일 브레멘대학교의 볼프강 도이블러 교수는 “이런 상황에서는 법적인 해결보다 사회적인 해법이 먼저 요구되어야 한다”며 “한국의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대회에서 외국의 학자들은 공통적으로 노사간 대화와 타협 없이 오직 대립만 하는 구도가 이러한 상황을 만든 주요 원인이라고 인식했다. 극한 대립으로 또 다른 갈등을 만드는 것보다 상생의 자세로 사회적 해법을 통해 서로를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기업의 노동조합 손해배소를 다룬 TV 프로그램에서 인터뷰한 영국 철도 운영 책임자는 “노조에 대한 소송은 더 큰 마찰을 낳을 뿐이다. 우리 회사는 절대로 노조에 대해 소송하지 않을 것”이라 말했다. 또 프랑스 노동 전문가는 “파업을 주도하는 노조에게 모든 책임을 묻는다면 노조는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손해배상 때문에 경제적으로 압박을 받거나 가정이 파괴되고 심지어 목숨을 끊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러한 극한 대립의 결과는 결국 기업의 성장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파업과 손해배상 같은 극한 대립에서 벗어나 신뢰를 기반으로 한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노사 모두에게 절실히 요구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