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쥐면 사람의 뇌가 바뀐다
권력 쥐면 사람의 뇌가 바뀐다
  • 참여와혁신
  • 승인 2015.06.05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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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파민·테스토스테론 분비 과도
공감 능력 약화되고 목표달성·자기만족 집중

직장인은 힘들다. 매일 처리해야 하는 업무뿐 아니라 시시때때로 변하는 리더의 감정까지 살펴야 한다. 갑작스런 주문을 하고 결과물을 독촉하거나, 사소한 실수에도 폭언을 퍼붓는 상사는 도처에 널려 있다. ‘대체 우리 팀장은 왜 저럴까?’라는 의문을 가진 사람들에게 뇌과학적인 분석이 답을 내려준다. 팀장이라는 자리가 주는 작은 권력에 취하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기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그렇다. 권력을 쥐면 뇌가 바뀐다.

▲ 뇌의 구조 ⓒ Henry VandykeCarter
거울뉴런 작동 멈춰 공감하는 기능 약해져

 작년 연말부터 우리는 이상한 사건들을 겪고 있다. 제 기분에 따라 행동하는 재벌 3세가 땅콩 때문에 이륙 직전의 비행기를 되돌렸고, 대학교수가 학생들과 인턴을 성희롱하거나 성추행했으며, 관현악단 경영자가 직원에게 폭언을 일삼았다. 모두 ‘힘’을 가진 자들이 자신보다 약한 사람을 상대로 비상식적인 행동을 한 것이다. 지위가 높고 권력이 많을수록 더 청렴하고 검소하길 바라는 사람들의 마음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과학자들은 권력을 쥔 사람들이 이런 행태를 보이는 까닭을 뇌에서 찾았다. 권력을 가지면 뇌가 상대를 이해하지 못하고 오만에 빠진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마약중독과 같은 상태가 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캐나다 윌프리드로리어대와 토론토대 공동 연구진은 사회적 힘에 따른 뇌 활동을 보기 위해 한 가지 실험을 진행했다. 실험 참가자를 나눠 한 쪽은 자신이 명령하는 사람이 됐거나 남을 압도했던 경험을 글로 쓰게 했다. 나머지 한쪽은 다른 사람에게 의존했던 기억을 떠올리게 함으로써 스스로 힘이 없는 사람처럼 느끼게 했다.

이들은 각자에게 주어진 기록을 하면서 영상을 하나 보게 됐다. 어떤 사람이 한 손으로 고무공을 쥐는 장면이었다. 그 동안 연구진은 실험 참가자의 뇌 활동을 관찰하면서 ‘거울 뉴런(mirror neuron)’이 작동하는지 살폈다.

거울 뉴런은 직접 말이나 행동을 하지 않더라도 마치 그런 것처럼 느끼게 해주는 신경세포다. 다른 사람의 움직임을 보거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활성화된다. 1990년대 이탈리아 과학자들이 원숭이에게서 발견한 이 현상은 인간을 비롯한 영장류가 다른 이의 고통을 느낀다는 걸 보여줬다.

만약 누군가 공을 쥐는 영상을 보면 뇌 속 거울 뉴런이 활성화돼 마치 자신이 공을 쥐는 것처럼 느끼는 게 정상적인 반응이다. 하지만 자신이 누군가에게 명령했던 기억을 떠올린 사람들의 거울 뉴런은 거의 작동하지 않았다. 반면 자신이 약한 존재라는 기억을 떠올렸던 사람들의 거울 뉴런은 활성화됐다. 결국 힘을 가진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 것이다.

“권력은 매우 강력한 약물”  테스토스테론 증가, 도파민 분비 촉진

이안 로버트슨 아일랜드 트리니티칼리지 교수는 “성공하면 사람이 변한다는 말이 맞다”고 설명한다. 권력 자체가 매우 강력한 약물이라 마약에 중독된 상태처럼 되기 때문이다. 로버트슨 교수에 따르면,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성별에 상관없이 테트토스테론이라는 남성 호르몬이 많이 분비된다. 이 호르몬은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많이 나오도록 해 좋은 느낌이 들게 만든다.

도파민이 많이 분비되면 사람이 더 과감해진다. 또 모든 일에 긍정적이며, 심한 스트레스에도 견디게 된다. 이 때문에 권력을 쥔 사람들은 더 똑똑하고 집중력이 있고, 전략적으로 변하게 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하지만 권력이 지나치게 많아지면 너무 많은 도파민이 분출된다. 이에 따라 실패에 대해 걱정하지 않고, 터널처럼 좁은 시야를 가지며, 목표달성이나 자기만족에만 몰두하게 된다. 자신이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는 오만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마약에 중독되는 것과 비슷하다.

미국 UC버클리의 대처 켈트너 교수는 ‘권력에 빠진 사람의 행동은 뇌의 안와 전두엽이 손상된 환자와 비슷하다’고 주장했다. 안구 바로 뒤에 있는 안와 전두엽이 손상되면 충동적이고 남을 배려하지 않는 행동을 하는데, 권력을 쥔 사람도 이처럼 남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많은 과학자들의 연구한 결과, 권력을 가지면 뇌가 달라진다. 문제는 권력에 중독된 사람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은 채 독주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이를 막으려면 적당한 견제장치를 두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게 최선이다. 이안 로버트슨 교수가 기업의 경우 강력한 이사회가 필요하다고 제안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기업뿐 아니라 정치나 행정, 사회의 작은 조직에도 이런 기능을 하는 장치가 있어야 할 것이다.

시스템보다 앞서야 할 부분은 자기반성이다. 권력에 중독되면 나타나는 뇌과학적 현상을 이해하고 자신을 돌아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혹시 작은 힘이라도 가진 자리에 있다면, 타인의 입장을 간과하고 있는 건 아닌지 살피면 좋겠다. 늘 스스로 경계할 수 있다면 뇌가 변해도 좋은 상사로 남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