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공농성 해제 4개월… 내일을 준비하다
고공농성 해제 4개월… 내일을 준비하다
  • 성상영 기자
  • 승인 2016.04.15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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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 나섰지만 해법 찾기 어려워
장기간 농성의 후유증 떨쳐낼 수 있기를
[사람]송복남 생탁노조 총무, 심정보 한남교통분회 조합원

성탄절을 하루 앞둔 지난해 12월 24일, 부산시청 앞 광고탑에서 고공농성을 벌이던 송복남 생탁노조 총무와 심정보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 한남교통분회 조합원(당시 쟁의부장)이 땅 위로 발을 내딛었다. 이들이 고공농성을 시작한지 253일 만이다. 송복남 총무와 심정보 조합원은 각각 ‘소수노조 인정’과 ‘전액관리제 도입’ 등을 요구하며 지난해 4월 16일 고공농성에 돌입했다. 이들은 “사태 해결에 부산시가 적극 나서겠다”는 서병수 부산시장의 구두 약속 하나만 믿고 내려왔다.

ⓒ 송복남 생탁노조 총무

생탁 문제 해결 위한 협의테이블 마련됐으나

2253일 간의 고공농성을 마치고 사다리차를 통해 지상으로 내려온 송복남 총무와 심정보 조합원은 지난 시간 연대의 손길을 내민 동료 조합원들과 일일이 포옹했다. 짧은 시간 인사를 나눈 두 사람은 업무방해와 건조물 침입 등의 혐의로 부산연제경찰서로 이송됐다. 그런데 둘을 기다리던 이들 중에는 서병수 부산시장도 있었다. 서병수 시장은 노사정 협의테이블을 만들어 부산시에서 노사 합의를 이끌어내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농성 해제 이후 4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생탁 문제 해결을 위한 노사정 대화는 단 세 차례 이루어졌다.

“사측이 계속 노조의 안을 수용 안 하려 하고 버티고 있다고 해요. 생탁에서 사규를 바꿨기 때문에 60세 이상은 못 받아준다고 하는데, 이게 지금 가장 걸림돌이거든요. 그런데 파업 중인 조합원 여덟 명 중에 세 명을 빼고는 투쟁을 이어오는 동안 60세가 넘어버렸는데, 다섯 명을 자르고 세 사람만 복귀한다는 건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매년 계속되는 촉탁계약을 안 하려고 2년 동안 같이 싸워온 분들을 내버려두고 나머지만 공장으로 돌아갈 수는 없죠. 시에서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고는 하는데 실제로 사측을 압박한다든가 대화 장소로 이끌어내는 건 안 되는 것 같아요.”(송복남 총무)

서병수 시장의 약속에 따라 마련된 대화기구에는 생탁노조가 속한 민주노총 부산일반노조의 이국석 지도위원(전 부산일반노조 위원장)이 노측 대표로, 부산합동양조 장림제조장의 실질적 경영자인 신용섭 공동대표가 사측 대표로 참여했다. 그리고 조정희 부산여성소비자연합 회장이 부산시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아 시민단체 대표로 참여했다. 그러나 노측 대표인 이국석 지도위원은 사측의 불성실한 태도와 부산시의 소극적 자세를 지적한다.

“부산여성소비자연합은 스스로가 보수단체라고 이야기하는 곳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정희 회장이 사용자를 만나 보니까 너무 이건 기고만장하다고 하더라고요. 실제로 사측에서 우리 쪽 안을 전혀 듣지를 않아요. 부산여성소비자연합이 소비자단체다 보니까 다른 곳에 회의를 들어가면 생탁 불매운동을 하고 있다고 소개를 해주기도 한대요. 그래서 한 달 전에 부산지역 시민단체에서 생탁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려고 했는데, 부산시에서 말렸다고 하는 이야기도 있고요. 사측도 그렇고, 부산시가 어중간한 입장을 취하고 있죠.”(이국석 지도위원)

ⓒ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구속영장 청구한 검찰, 4,762장의 탄원서

생탁 장기투쟁을 마무리하기 위한 노사정 대화가 답보상태에 놓인 가운데, 지난 2월 23일 검찰은 고공농성을 벌인 두 사람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 소식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구속적부심을 앞두고 만 하루 만에 전국에서 4,762장의 탄원서가 부산으로 날아들었다.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 이틀 뒤인 25일 성익경 부산지방법원 영장전담판사는 증거 인멸과 도주의 우려가 없다는 점을 들어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하지만 송복남 총무와 심정보 조합원은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경찰에서 구속적부심을 한다고 연락이 왔더라고요. 저희는 서병수 시장이 했던 약속을 믿고 스스로 농성을 풀고 내려왔고, 지금까지 경찰조사 때 한 번도 출석을 안 하거나 연락을 안 받지도 않았는데, 해도 너무한 것 아닌가 싶었죠. 공안정국을 틈타서 검찰에서 무리했다고 봅니다.”(송복남 총무)

“저희가 구속이 안 될 거라는 자신감은 있었습니다. 그래도 막상 검찰에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고 하니까 어이가 없긴 했죠. 왜냐면 저희들이 광고탑에 올라가서 기물을 파손했다든지, 수사를 안 받고 도망을 가지는 않았으니까요. 시에서 고소·고발을 취하했는데도 검찰이 구속영장까지 청구한 데 대한 아쉬움이 크죠.”(심정보 조합원)

ⓒ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장기 농성의 후유증은 아직 회복 중

한편, 장기간 농성을 해온 이들의 건강상태는 좋지 못했다. 고공농성을 해제하고 경찰서로 이송돼 1차 조사를 받은 두 사람은 곧바로 병원에 입원했다. 송복남 총무는 지병으로 앓던 허리디스크가 재발했고, 두 다리는 겨우 설 수 있을 정도로 근력이 약해졌다.

“지금 체력이 7-80대 할아버지 수준으로 떨어졌습니다. 지하철 계단 한 3-40개 올라가면 숨이 턱턱 차고 조금만 걸어도 다리가 아프고, 힘이 전혀 없는 상황이죠. 산에 한 번 올라가 봤는데, 온 몸에 식은땀이 나고 도저히 올라갈 수가 없더라고요. 그리고 허리디스크가 조금 있었는데 고공농성 중에는 괜찮나 싶다가 설 연휴 지나고부터 다시 아프더라고요. 한의원 가서 물리치료를 계속 받고 있습니다.”(송복남 총무)

심정보 조합원은 멀미 증세가 생겨 한 동안 고생을 했다. 택시운전을 업으로 삼았던 그였지만 오랜 기간 11미터 위에서 생활하며 움직이지 못한 탓에 오히려 땅 위 생활에 적응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최근에는 증상이 많이 호전돼 긴 시간 차량으로 이동하는 데에도 크게 문제가 없다고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멀미 증세가 심했어요. 처음에 광고탑에서 내려와서는 30분 정도 차를 타고 이동을 하는데도 구토가 나오고 그러더니 하룻밤이 지나도 계속 멀미가 나는 거예요.  다른 지역에 꼭 가야 하는 자리가 있는데, 계속 멀미가 나다 보니까 어디를 가는 데 대한 두려움이 생기더라고요. 며칠 전부터 멀미 증세가 서서히 줄어들더니 지금은 괜찮아요.”(심정보 조합원)

신체적 건강도 문제였지만, 무엇보다 이들의 정신적 트라우마가 걱정되는 상황이었다. 검진결과 심리치료가 필요하다는 의사의 소견이 나왔다. 송복남 총무는 일주일에 한 번 심리치료를 받고 있다. 부산 도심 한복판에 위치한 광고탑 위에는 자동차의 소음과 진동이 그대로 전달된다. 이 때문에 송복남 총무에게 가장 민감한 것은 소음이다. 뿐만 아니라 고공농성 후에도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생탁 문제에 대한 답답함도 느낀다.

“고공농성 하면서 워낙 소음에 시달리다 보니까 집에서 나는 TV 소리나 대중교통 안에서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가 너무 싫어요. 음식점에 여러 사람이 떠드는 소리에 신경질이 나서 같이 밥 먹으러 간 사람한테 빨리 나가자고 합니다. 그리고 격리된 생활을 하다 보면 사람이 정신적으로 피폐해지는데 심리치료 받다 보면 하소연이나 이런 걸 많이 하게 됩니다. 심리상담사 선생님은 그거 자체가 치료라고 하시던데, 그래도 아직 생탁 문제가 해결이 안 되고 있다 보니까 마음속에 응어리 같은 게 조금 있지요. 어떤 때는 술에 의존하고 싶은 날도 있고.”(송복남 총무)

송복참 총무와 마찬가지로 심정보 조합원 역시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기는 하지만, 그는 따로 전문적인 상담이나 치료를 받고 있지 않았다. 심정보 조합원은 곳곳에 있는 투쟁현장을 찾으면서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게 곧 치료의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주변의 동료들은 정신과나 심리치료센터 상담을 받으라고 권유를 계속 했는데, 저는 사람들을 만나는 게 치료의 과정이라고 생각을 했거든요. 여건이 되는 대로 현장을 찾아가서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를 하는 일들이 저 스스로 치료를 하는 거라고 생각을 해요.”(심정보 조합원)

ⓒ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연대의 손길 잊지 않겠다는 다짐

지친 몸과 마음을 추스를 틈도 없이 송복남 총무와 심정보 조합원 모두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이들이 고공농성을 하는 동안 전국에서 두 차례 희망버스가 부산으로 향했고, 물심양면으로 연대를 해준 사람들이 곳곳에 있었다. 송복남 총무는 최근까지 부산 기장군 해수담수화에 관한 시민단체의 활동에 함께했다.

“고공농성 기간에 많은 분들이 연대를 해주셨는데 개개인을 찾아가서 다 인사를 드릴 수가 없다 보니 부산지역의 시민단체가 하는 일에 일손이라도 보태는 게 맞지 않느냐는 거죠. 핵발전소에서 11킬로미터 밖에 안 떨어진 데서 바닷물을 정수해서 시민들한테 공급하겠다고 하는데 그 물이 안전하다는 보장이 없잖아요. 당연히 제가 작은 힘이나마 보태는 게 맞고요. 그것이 그동안 연대해 주신 분들에 대해 사람이 할 도리죠.”(송복남 총무)

한편, 심정보 조합원은 자신과 같이 장기간 투쟁을 벌이고 있는 사업장들을 찾아다녔다. 더 많은 투쟁 사업장을 다니고 싶지만, 전국에 장기투쟁 사업장이 너무 많아 시간과 돈이 늘 발목을 잡는다. 게다가 그는 농성 해제 후 회사로부터 두 달간 정직 처분을 받았으나 아직까지 복직이 되지 않고 있다. 그리고 택시 운송수입금 전액관리제가 올해 10월부터 의무적으로 시행된다고 하지만, 복수노조 체제인 한남교통 내에서 제1노조와의 관계 비롯한 많은 과제가 놓여있다. 언제나 자신은 택시노동자라는 생각이 그의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다.

“전국에 투쟁하는 사업장들이 많잖아요. ‘하이디스’나 기아차 비정규직 농성장, 동양시멘트, 티브로드, 유성기업, 하이텍알씨디코리아, 콜트콜텍까지. 전국에 투쟁하는 사업장들과 끊임없이 연대를 해야죠. 여러 분들에게 저희들이 참 많은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얼굴을 비추고 인사를 하는 게 최소한의 도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도 택시 현장을 떠나지는 않을 겁니다. 택시 현장을 바꿔나가는 일에 제일 많이 힘을 쏟아야 될 것 같아요. 그 일은 혼자만 해서 되는 게 아니고, 동료들과 같이 해나가야죠. 앞으로 다시 운전대를 잡아서 경제적인 어려움도 해결하고, 택시 현장의 문제도 풀어갈 계획입니다.”(심정보 조합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