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기업’이라 쓰고 ‘노조파괴’라 읽는다
‘유성기업’이라 쓰고 ‘노조파괴’라 읽는다
  • 성상영 기자
  • 승인 2016.05.09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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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광호의 죽음, 개인 문제 아니다
‘가학적 노무관리’에 신음하는 이들
[사건]‘유성기업’이라 쓰고 ‘노조파괴’라 읽는다

지난 3월 17일 새벽 충북 영동에서 40대 남성이 목을 매 숨진 채 길 가던 시민에 의해 발견됐다. 유성기업(주)에서 일하던 노동자 고 한광호 씨였다. 자동차 엔진부품을 제조해 현대·기아차에 납품하는 유성기업에서는 2011년 이후 6년째 노사갈등이 이어져오고 있다. 그 과정에서 노무법인 창조컨설팅의 이른바 ‘노조파괴’ 문건이 발견되고, 원청업체인 현대기아차그룹의 노무 개입 사실이 드러났다. 노조는 숨진 한 씨에 대해 조직적이고 전략적인 노조탄압에 희생된 ‘열사’로 이름 붙였다.

마흔두 살 한광호의 죽음

▲ ⓒ참여와 혁신DB

고 한광호 씨는 1974년 8월 충북 영동의 한 시골마을에서 태어나 만 스무 살이 되던 해에 유성기업 영동공장에 입사했다. 그가 주검으로 발견된 후 동료들이 회상한 바에 따르면 한 씨는 뭐든 열심히 하는 사람이었다. 사측과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하면서, 노조 간부를 맡기만 해도 징계를 당한다는 말이 조합원들 사이에서 오갈 때에도 한 씨는 노조 대의원을 두 차례 지냈다. 그러나 그는 유난히 투사의 기질을 타고난 사람은 아니었다. 한광호 씨는 어디나 꼭 한두 명씩은 있는 책임감이 조금 더 강한 노동자였다.

한 씨가 숨지기 직전까지 그에게 날아든 고소장만 해도 다섯 장이고, 그가 유성기업 사측으로부터 받은 징계는 세 번이다. 2013년 12월에는 유성기업 영동공장 내에서 삼보일배 투쟁을 하던 중 사측 관리자 수십 명으로부터 집단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사측이 무분별하게 남발한 고소·고발과 징계를 한 사람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도 벅찼다.

▲ ⓒ참여와 혁신DB

2011년 5월 18일 금속노조 유성영동지회와 유성아산지회가 파업에 돌입하자 사측은 곧이어 직장폐쇄로 맞섰고, 공권력이 투입되면서 일주일 만에 파업은 와해됐다. 현장으로 복귀한 한광호 씨는 견책 처분을 받았다.

다소 가벼워 보일 수도 있는 징계였지만 이는 시작에 지나지 않았다. 법원의 중재로 어렵사리 현장에 복귀했지만, 파업에 참여했던 금속노조 조합원들은 잔업과 특근에서 배제됐다. 회사의 주도로 ‘기업노조’가 만들어졌고, 생산라인에는 기업노조 조합원들만 배치됐다. 사측은 금속노조 조합원들에게 공장 청소와 페인트칠 등 그야말로 허드렛일만 시켰다. 영동공장에서는 금속노조 조합원들만 골라 ‘대민지원’이라는 명분으로 근처의 밭에서 고구마 캐기, 잡초 뽑기 등을 시킨 적도 있었다.

잔업·특근 차별과 생산라인 배제로 인한 굴욕감을 견디다 못한 한광호 씨와 조합원들이 사측에 항의하며 현장 선전전 등을 벌였다. 이들과 관리자들 사이에 크고 작은 충돌이 매일 벌어졌다. 한 씨는 2013년 8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약 5개월 동안 ‘업무방해’를 이유로 사측 관리자와 기업노조 간부로부터 다섯 차례 고소·고발을 당했다. 더불어 출근정지 2개월의 징계도 받았다.

노사갈등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일방적인 괴롭힘에 가까운 일들이 벌어지면서 금속노조 조합원들의 심리상태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충남노동인권센터가 아산지회와 영동지회 조합원 187명을 대상으로 2014년에 실시한 정신건강 실태조사 결과 41%에 달하는 조합원들이 주요 우울장애 고위험군에 속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 ⓒ참여와 혁신DB

한광호 씨 또한 우울장애 고위험군 판정을 받았다. 그는 지역 시민단체의 도움으로 전문 상담사로부터 심리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현장의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 이상 근본적인 치료는 불가능했다. 증세는 지속적으로 악화됐고, 결근하는 날이 생겨났다. 그러자 사측은 지난 3월 10일 야간근무 중이던 한 씨에게 근태에 관한 사실관계조사 출석요구서를 전달했다. 한광호 씨의 우울장애는 개인적 문제일 뿐 근태가 좋지 않으니 징계를 하겠다는 게 사측의 입장이었던 것이다.

▲ ⓒ참여와 혁신DB

언제 또 다시 열사가 나올지는…

한광호 씨는 끝내 스스로 죽음을 택하면서 세 번째 징계를 막아냈다. 고 한광호 조합원에게 동료들은 ‘열사’라는 이름을 붙이며 넋을 기렸다. 그러나 유성기업에서는 그 누구라도 언제든 열사가 될 지도 모른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왔다. 한 씨 이외에도 상당수의 아산지회 및 영동지회 조합원들이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조합원 중 절반에 가까운 이들이 우울증, 불안장애 이외에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알코올 장애 등을 겪고 있다. 6년 동안 여섯 명의 조합원이 정신질환으로 산재 판정을 받았다.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산재 판정을 받은 한 조합원은 전문병원의 격리병동에 입원을 자처했다. 그는 지나가는 경찰차가 사이렌을 울리면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자신의 불안한 심리상태로 인해 가족들이 피해를 입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스스로 격리를 택한 것이다.

산재 판정을 받고 현재 요양 중인 또 다른 조합원은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면 전혀 알지도 못하는 사람과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또 어떤 때에는 아파트 옥상에 올라간 자신을 발견하기도 했다. 이처럼 극단적인 상황이 아니더라도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거나 실제 자살시도를 한 경험이 있는 조합원들이 적지 않았다.

“여러 번 자살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하나 죽어서 유성 사태가 해결된다면 내 몸 하나라도 던져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광호 열사 돌아가시면서 충격에 빠졌지만, 다들 ‘올 것이 왔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심리상태가 악화돼 있어서 사람들이 얼마나 죽어나갈지 모르니까 노조파괴 접고 심리치료 진행하자며 수차례 회사에 공문도 보내봤습니다. 회사는 노조 탄압한 적 없다고 말했습니다. 심리치료가 필요하다고 느끼면서도 외면했습니다.”

- 금속노조 대전충남지부 유성아산지회 조합원 A씨

참기 어려운 분노, 이를 이용하는 회사

사측의 괴롭힘과 용역업체 직원들의 폭력에 오랫동안 노출되면서 분노조절에 어려움을 겪는 조합원들도 있었다. 관리자나 기업노조 조합원들을 보기만 해도 분노가 치밀어 욕을 하거나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는 등의 행동이 나타났다.

▲ ⓒ참여와 혁신DB

“회사에서 관리자를 보면 죽이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 들어요. 노동조합 사무실 2층에 깃발을 걸어놨거든요. 우리가 사무실에 없을 때 관리자들이 쳐들어와서 거기에 항의하러 갔는데 공장장을 보자마자 화가 나서 욕이 튀어나오더라고요. 그것 때문에 한 달 출근정지 징계를 받았습니다. 또 한 번은 술집에서 술을 마시는데 어용노조 애들이 오더라고요. 현장에서 어용들은 금속노조 조합원 눈치 보기 바쁘거든요. 그런데 얘들이 같은 데서 술을 마시고 있으니까 순간 화를 못 참고 때리게 되더라고요.”

- 금속노조 대전충남지부 유성아산지회 조합원 B씨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처럼 분노조절이 힘든 상태에 대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전형적인 증상이다. 문제는 분노조절 실패로 인해 사측에 고소·고발의 빌미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인터뷰 과정에서 만난 어느 조합원은 사측이 욕설과 폭행을 유도한다는 걸 알면서도 그 순간의 화를 못 참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실제로 B씨는 욕설과 폭행 등의 이유로 사측으로부터 징계를 받았다. 또 사측의 고소·고발로 인해 검찰로부터 300만 원의 벌금을 구형받았으나 정식 재판을 통해 70만 원으로 감형됐다.

폭행 사건에 연루된 조합원들의 변호를 맡는 국선변호사들조차 심정은 알지만 회사의 노림수에 빠지지 말라며 안타까움을 표할 때가 많다.

더욱 안타까운 점은 자신의 심리상태를 인정하지 못하는 조합원들이 많다는 것이다. 스스로 힘들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조합원도 있지만, 환자로 낙인찍히는 것에 대한 걱정 때문에 그저 괜찮다고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의 심리상태에 대한 우려를 표하는 것조차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분향소를 지키는 사람들

▲ ⓒ참여와 혁신DB

한광호 씨가 주검으로 돌아온 후 동료들은 서울시청 앞에 고인의 넋을 기리기 위한 분향소를 차렸다. 지금은 비바람을 막아줄 천막이라도 설치돼 있지만, 조합원들이 처음 한 씨의 영정을 가지고 서울로 왔을 때만 해도 며칠 동안은 콘크리트 바닥 위해서 뜬 눈으로 밤을 새워야 했다. 경찰 병력이 출동해 분향소 설치를 막아서며 모든 물품을 닥치는 대로 압수했기 때문이었다.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는 과정에서 한광호 씨의 영정은 수모를 겪기도 했다.

분향소는 유성기업 아산공장과 영동공장에서 해고당한 조합원들이 일주일씩 순번을 정해 지키고 있다. 분향소가 차려진 이후 아산과 영동에서는 현장 투쟁이, 서울에서는 거리선전전과 서초구 양재동 현대기아차그룹 본사 앞 집회가 이어지고 있다.

대개 노동조합의 투쟁이 몇 년씩 길어지면 처음의 구호와 나중의 구호가 달라지듯 유성기업 아산·영동지회 조합원들의 구호도 바뀌었다. 2011년 5월 18일 두 지회가 파업에 돌입할 당시의 요구는 ‘주간연속2교대제 실시’였으나 지금은 ‘노조파괴 중단’과 ‘정몽구 회장 처벌’이 됐다. 6년 동안이나 투쟁을 이어오면서 ‘유성기업-창조컨설팅-현대기아차’로 이어지는 가학적 노무관리의 연결고리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검찰의 엄정한 수사’도 추가됐다. 금속노조에서 유시영 유성기업 대표와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을 노동관계법 위반으로 검찰에 고발한 이후 무수히 많은 증거자료가 확보됐음에도 불구하고 검찰이 피고발인들을 기소하지 않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 사이 서울중앙지법의 판결로 설립이 무효가 된 기업노조는 ‘유성기업새노조’로 이름만 바꿔 4월 19일 대전지방고용노동청 천안지청에 설립신고서를 제출했다. 해당 관청은 “고심 중”이라는 답변을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유성기업 ‘노조파괴’ 사태는 현재로서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유성기업 측은 여전히 자신들의 책임을 부인하며 ‘갈 때까지 가보자’는 식이고, 현대기아차그룹은 협력업체의 노사갈등으로 인한 생산차질에만 관심이 있는 모양새다. 어느 누구도 사태 해결에 대한 의지를 나타내지 않아 보는 이들을 더욱 안타깝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