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청구조 깨뜨리고 하청노조 조직화해야
하청구조 깨뜨리고 하청노조 조직화해야
  • 성상영 기자
  • 승인 2016.10.19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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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업 고용의 위기, 노동운동의 쇠퇴와 맞물려
[인터뷰]금속노조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 하창민 지회장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은 물량이 있을 때 밀물처럼 왔다가 물량이 없으면 썰물처럼 빠진다. 이 때문에 하청노동자들이 특히 고용불안에 취약한 건 당연한 얘기다. 그리고 이들은 고용불안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노조를 만들고 싶어도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하창민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장에게 조합원 수를 묻자 200명이라고 답하면서 “엄청나게 높은 가입률”이라고 말했다.

그만큼 하청노조를 만들기란 어렵다.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는 현재까지 우리나라 조선소를 통틀어서 유일한 사내하청 노조다.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들이 노조에 가입하자 해당 업체는 폐업하고 조합원만 뺀 채 고용승계가 이루어졌다. ‘블랙리스트’가 돌았고, 명단에 오른 노동자는 어느 곳에서도 받아주지 않아 결국 조선소를 떠나야 했다.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는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다단계 하청구조를 깨뜨려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하창민 지회장은 여기에 더해 ‘하청노조 조직화’를 강조했다. 그리고 매우 강한 어조로 정규직 노조의 역할을 성토하듯 이야기했다. 

▲ 하창민 지회장 ⓒ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

이른바 ‘물량팀’으로 대표되는 다단계 하청구조가 갖는 법적 문제는 없나?

불법의 소지가 크다. 2010년도에 노동부가 조사를 했는데 뭐라고 판정을 내렸냐면, 불법파견의 소지가 있으나 합법적인 도급에 가깝다고 했다.

당시에 우리가 같이 들어가서 실태를 파헤치기 시작하면 불법파견이라고 나왔을 거다. 그런데 딱 봉쇄해 놓고 노동부하고 현대중공업 사측, 그리고 정규직 노조까지만 들어가서 조사를 했다.

조선소 자체가 거대한 컨베이어벨트라고 보면 된다. 자동차처럼 단기간에 내가 오른쪽 바퀴 꽂고, 반대편에서 왼쪽 바퀴 꽂는 식으로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노동부나 사측은 블록 하나하나가 도급에 의한 거라고 이야기한다. 블록 하나를 바다에 띄워서 배 역할을 할 수 있나? 문짝 하나 달고서 자동차를 운행을 할 수 있냐는 거다.

그 큰 배를 쌓아올리고 첫 공정부터 긴 과정을 오면서 보면 그냥 거대한 컨베이어다. 여러 블록을 쌓아서 한 제품을 만드는 건데, 당연히 혼재작업이 될 수밖에 없다. 당연히 원청에서 사업계획을 공정별로 지시한 대로 우리는 해야 한다.

다단계 하청구조로 인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하청업체 수를 줄여 나가야 한다. 각 업체마다 80명, 100명씩 수백 개의 업체로 쪼개져 있다. 이 구조부터 안 깨고는 업체들 살려주는 것밖에 할 수 없다. 당장 원청업체에서 직접고용이 힘들다면, 하청업체라 하더라도 수천 명의 인원을 관리할 수 있는 큰 업체여야 한다. 그렇게 해서 수많은 소규모 업체가 가져갔던 이익을 노동자들에게 직접 주는 거다. 근본적으로는 물량팀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강력한 법제도가 마련돼야 한다. 지금 상태로는 물량팀이 나름대로 합법적인 근거를 가지고 확산되기 때문에 우리가 어떻게 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원청업체가 직접 고용하고 직접 책임지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 만약 지금 당장 하청업체를 없애지는 못한다면 최소한 근로기준법을 지키는 업체, 안전관리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업체를 살리고 나머지는 다 없애야 한다.

조선업 위기로 인해 정규직 비정규직 할 것 없이 고용불안을 느끼면서 ‘조선업종노조연대’(조선노연)이라는 연대체가 만들어졌다. 여기에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는 빠져있는 걸로 안다. 구조조정에 대한 노조의 움직임이 정규직 위주로 이루어지는 데 대한 아쉬움은 없나?

분노를 느낀다. 아쉬움이 아니고. 예를 들면 조선노연 공동의장이 금속노조 부위원장이고, 우리가 금속노조 산하 조직이다. 당연히 조선노연에 우리가 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금속노조가 상급단체로서 침묵하고 있다.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 작년에 현대미포조선에서 우리 조합원들 100명이 업체 폐업에 맞서서 싸웠다. 미포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사장실 앞을 점거하고 노동조합 사무실에 들어가서 장기전을 준비하려고 할 때 미포조선 정규직 노조가 우리한테 했던 걸 생각하면 치가 떨린다(2015년 현대미포조선 사내하청업체 ‘KTK선박’이 소속 노동자들에게 문자메시지로 폐업을 통보한 사실이 발단이 돼 사내하청 노조가 돌입했다. 당시 현대미포조선 정규직 노조와 사내하청 노조가 갈등을 빚었다.). 우리보고 외부단체라고 한 사람들하고 사업을 한다고 우리를 외면하는 거냐고 금속노조에 항의를 했다.

불쌍하니까 도와달라는 거 아니다. 하청노동자들을 외면한 채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하청노동자 조직화가 어렵다고 하는데, 우리가 안 싸워서 어려운 게 절대 아니다. 수만 명의 하청노동자들을 조직하려면 예산도 있어야 하고 인력도 투입돼야 하고 장기적 계획을 세워야 한다.

90년대 초반에도 조선소에 사내하청노동자가 있었지만 지금은 그 규모가 당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사내하청 고용규모가 이토록 커진 이유가 무엇인가?

정규직 노동운동의 하락세와 딱 맞물려 있다. 정규직 노조에서 임금인상·복지와 하청 확대를 맞바꿨다. 조선소 내 모든 공장이 하청으로 채워질 때 그들이 저항하지 않았다.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결국은 자기네들 일자리까지 잠식해 버렸고, 이제는 싸울 동력마저 없어졌다. 3,000명, 4,000명이 파업을 해도 공장이 잘 돌아간다. 예전에 현대중공업노조에서 파업할 때 그랬지 않나. 정규직 노동자들이 살기 위해서라도 지금은 하청노동자들에 대한 고민이 없으면 안 된다.

한진중공업 사례가 그런 거다. 임금·복지랑 맞바꿔서 하청노동자가 90%를 넘어버리고, 구조조정 들어와서 싸우려니까 동력이 없고. 나중에 희망버스가 가서 싸워도 못 이겼다. 2011년 희망버스가 영도조선소에 갔을 때 참가자들이 안으로 못 들어가게 정문 용접한 사람들이 다 하청노동자들이다. 그 당시에 그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는 단 한 번도 거론되지 않았다. 그 사람들이 왜 정규직 투쟁의 방해자로 남아야 했는지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지금 상황이 그때의 반복이라고 생각한다.

나중에라도 정규직 노동자 혹은 노조가 사내하청노동자들과 연대할 수 있는 여지는 생기지 않을까?

나는 그 희망까지 접기는 싫고, 연대 가능성은 있다고 본다. 앞으로 어떤 계기가 올 것 같다. 정말로 처참하게 깨지든 해서 각성을 안 하는 이상, 하청노동자 조직화나 하청노동자들과의 연대는 일상적인 수준을 넘어설 수 없다. 내가 정규직 노조 집회에서 발언할 때마다 ‘하청노동자들을 시혜의 대상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냉정하게 정규직 노동자의 고용을 위해서라도 하청노동자와의 연대가 필요하다’, 누차 이야기를 한다. 그게 지금 안 받아들여진다. ‘하청들 안타깝고, 뭔가 해줘야 하는데 일단 우리 거 먼저 하고 해주자’, 이런 걸로 절대 안 된다. 하청노동자 조직화는 조선소 자본과의 일전을 각오하고 해야 한다.

캠페인 몇 번 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다. 조합비를 어떻게 쓸지, 하청노동자들이 만약에 잘리더라도 이 사람들을 어떻게 지킬지 결의를 해야 한다. 이런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안 나는 성과를 가지고 ‘해본들 안 된다’고 결론을 내니까 우리는 그렇지 않다고 얘기하는 거다. 일주일을 하건 한 달을 하건 최선을 다해보자는 얘기다. 그 후에 성과가 나는지, 안 나면 왜 안 나오는지 평가도 하고. 결국 모두가 솔직함에서 출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