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같았던 1년, 돌아보니 10년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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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상영 기자
  • 승인 2016.12.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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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의 2016년’ 노동계에 무슨 일이?
[REPORT]2016 9대 노동현안

정확히 1년 전 지금의 위치를 출발한 지구는 타원궤도를 돌아 다시 지금의 자리로 돌아가고 있다. 천체물리학자들은 단지 만유인력법칙에 따라 행성이 항성 주위를 운동한 것뿐이라고 하겠지만, 그 한 바퀴를 ‘1년’이라고 부르는 우리들에게 올 한 해는 너무나 고된 여정이었음에 틀림없다. 한국노총의 9·15 노사정합의 무효 선언으로 시작한 노동계의 1년은 정권퇴진 요구로 끝날 듯 보인다. 이른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여론의 시선이 청와대로 집중되는 연말, <참여와혁신>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잊지 말아야 할’ 9대 노동현안들을 살펴봤다.

<참여와혁신>이 꼽은 ‘2016 9대 노동현안’은 ▲성과연봉제 도입 논란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 구속 ▲최장기 철도파업 ▲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 ▲조선업 구조조정 ▲서울지하철 양 공사 통합 ▲안전의 외주화 ▲노무법인에 의한 노조파괴 ▲대한항공조종사노조의 37% 임금인상 요구 등이다. 그리고 이들을 다시 세 개의 주제로 묶어봤다.

먼저 ‘노-정 갈등’, ‘변화와 위기’ 등 두 개의 주제는 노동계의 2016년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핵심 키워드다.

세 번째 주제인 ‘망각의 기억’은 다른 거대한 사안들에 가려 잊히고 있지만 결코 쉽게 넘길 수 없는 묵직한 이야깃거리다.

노-정 갈등

 

▲ ⓒ 참여와혁신

성과연봉제 도입 논란

올해 노동계의 이목은 공공기관 성과연봉제에 집중됐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1월 28일 공공기관운영위원회를 열고 기존에 1·2급 직원을 대상으로 시행되던 성과연봉제를 최하위직을 제외한 4급 이상 직원으로 확대 시행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전체 공공기관 종사자들의 70%이 성과연봉제 대상이 되면서 공공기관에는 거센 후폭풍이 몰아쳤다.

성과연봉제의 직격탄을 맞게 된 공공기관 노조들은 ‘양대 노총 공공부문 노동조합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를 복원하고 대정부 투쟁에 나섰다. 각 기관별로 성과연봉제 도입 여부를 놓고 사측이 ‘일단 도장부터 찍고 보자’는 식의 밀어붙이기로 인해 갖은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성과연봉제 도입 과정에서 극명하게 드러난 정부의 조급증은 공공기관의 노사관계를 악화시키는 주범으로 지목됐다.

9월 말 공대위의 대대적인 연쇄 총파업 이후 서울시 산하 지방공기업 5곳 등 일부에서 “성과연봉제는 노사합의로 시행한다”는 원칙에 노사가 합의한 곳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공공기관에서는 내년부터 성과연봉제가 시행될 예정이다. 대화가 빠진 채 강행된 성과연봉제가 얼마나 내실 있게 시행될 수 있을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 ⓒ 참여와혁신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 구속

민주노총 최초의 직선 위원장인 한상균 위원장이 지난 7월 4일 법원으로부터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한 위원장은 현재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복역 중이다. 그는 지난해 11월 14일 ‘민중총궐기’ 집회를 주도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민중총궐기 당시 참가자 중 일부가 밧줄을 이용해 경찰버스를 끌어내거나 경찰 병력에게 폭력을 휘둘렀고, 한 위원장이 이를 선동했다는 게 이유다.

한 위원장에게 적용된 혐의는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 및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이다. 이에 민주노총을 비롯한 시민사회와 노동단체는 “일부 시위대의 행위를 노동자를 대표하는 민주노총 위원장에게 묻는 것은 과도하다”며 반발했다. 특히 민주노총은 한상균 위원장에 대해 “전체 노동자를 대표해 박근혜 정부의 노동개악 저지에 앞장섰다”면서 “한 위원장의 구속은 명백한 공안탄압”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올해 11월 12일에 열린 ‘2016 민중총궐기’에서는 주최 측 추산 100만 명의 인파가 몰렸지만 연행자가 한 명도 없어 대조를 이뤘다. 이를 놓고 경찰의 과잉대응이 지난해의 폭력사태 논란을 불렀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 ⓒ 참여와혁신

최장기 철도파업

전국철도노동조합(위원장 김영훈)의 파업이 72일째인 지난 7일 마무리됐다. 지난 2013년 수서고속철도 민영화 저지 파업이 23일 만에 마무리된 점을 볼 때 상당히 길어진 것이다.
통상 파업이 길어지면 복귀율이 눈에 띄게 높아지기 마련이지만, 파업 종료 직전까지 복귀율은 10%가 채 안 됐다. 그만큼 성과연봉제 강행에 따른 조합원들의 반발이 심하다는 얘기다. 여기에는 지난해 임금피크제 합의의 조건이었던 신규인력 채용이 기대에 크게 못 미친 데 따른 실망감이 적잖은 영향을 줬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경강선(판교-여주), 동해남부선(부전-일광) 등 신규 노선이 잇따라 개통되거나 개통을 앞두면서 현장에서는 극심한 인력부족을 호소했다.

야3당을 중심으로 철도파업의 출구를 모색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홍순만 코레일 사장이 “정치권의 개입이 아닌 법적 판단에 맡겨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해 파업은 장기화 국면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피로감이 컸던 탓일까? 철도노조는 7일 코레일 사측과 임금협약을 체결하고 현장투쟁으로의 전환을 선언했다. 그럼에도 성과연봉제는 이번 합의에서 빠져 있어 앞으로도 철도 노사관계는 요동칠 것으로 예상된다.

▲ ⓒ 참여와혁신

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

지난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의 화두는 ‘제4차 산업혁명’이었다. 제1차 산업혁명이 18세기 후반 증기기관의 발명에 따른 사회·경제적 변혁이라면, 제2차 산업혁명은 ‘포디즘’으로 상징되는 대량생산체제의 구축을, 제3차 산업혁명은 통신의 발달과 IT 기술에 의한 정보화 혁명을 의미한다. 세계경제포럼은 이들과 구분되는 인공지능의 발전과 3D프린터, 사물인터넷(IoT), 바이오기술 등으로 인한 변화 등을 4차 산업혁명의 증거로 보았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러한 기술 발전을 4차 산업혁명으로 구분할 수 있는지에 대해 회의적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분명한 사실은 스스로 학습하는 기계가 지금보다 훨씬 넓은 영역에서 인간의 노동을 대체할 것이라는 우려 섞인 전망이 나온다는 점이다. 이러한 전망은 지난 3월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국으로 전 세계가 충격에 휩싸인 사례와도 맥을 같이 한다.

아울러 영국의 공영방송 BBC는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향후 20년 내 인간의 일자리 중 기계로 대체될 확률이 높은 직업들을 공개하기도 했다. <참여와혁신>은 4월호 특집기사를 통해 ‘인간의 노동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이제 중요한 것은 ‘무엇을 어떻게 준비하느냐’이지 않을까?

▲ ⓒ 참여와혁신

조선업 구조조정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가 이듬해 본격적으로 실물경기에 미치면서 중소형 조선소들이 줄줄이 문을 닫았다. 빅3와 같은 대형조선사들은 경우 조선부문의 부진을 해양플랜트 사업으로 만회하려고 했다. 싼 값에 일단 수주부터 받고 보자는 식의 전략은 핵심기술 부족으로 금세 밑천을 드러내고 말았다. 이에 더해 2015년 내내 이어진 저유가 기조는 해양플랜트 수주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고, 위축된 세계 경제는 한국 조선업을 ‘수주 절벽’으로 밀어 넣었다.

그 결과는 노동자들을 향한 해고의 칼날이었다. 조선업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각 조선사별 노조들은 ‘조선업종연대회의’(조선노연)을 결성해 공동 대응에 나섰다. 그러나 아직까지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전국적으로 13만 명이 넘는 조선소 사내하청노동자들이 가장 직접적인 해고 위기에 직면했다. 물론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난 현 시점에서 이들에게 해고는 ‘위기’가 아니라 ‘현실’이다. 새해가 되면 사정이 나아질 거라는 분석이 나오지만, 당장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에게 새해가 갖는 의미는 아무 것도 없을지도 모른다.

▲ ⓒ 참여와혁신

서울지하철 양 공사 통합

한 차례 좌절됐던 서울지하철 양 공사 통합이 결국 성사됐다. 서울시가 지난 2014년 12월 서울메트로(1~4호선)와 서울도시철도공사 (5~8호선)을 통합하겠다고 선언한 지 2년여 만이다. 공모를 거쳐 지난 2일 발표된 통합 공사의 명칭은 ‘서울교통공사(Seoul Metro)’이다. 계획대로라면 내년 3월 통합 서울교통공사가 출범하게 된다. 양 공사 통합이 확정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있었다. 서울시는 노사정위원회를 구성해 통합 공사의 밑그림을 그린다는 계획이었으나 중복인력 감축 여부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결국 인위적인 구조조정은 하지 않기로 노사정이 합의했지만, 공사 통합 방안은 노조 찬반투표에서 부결됐다. 승진이 힘들어질 것을 우려한 서울메트로의 서울지하철노조 (제1노조)와 서울메트로노조(제2노조) 조합원들이 대거 반대표를 던졌기 때문이다.

비록 지난 10월 양 공사 통합 재추진을 선언한 이후 그 결실을 맺게 됐지만, 서울메트로 두 노조의 일부 조합원들이 통합에 반발하며 이탈해 ‘서울메트로정의노동조합’(제3노조)을 결성해 갈등의 불씨는 남아있다. 그럼에도 서울지하철 양 공사 통합이 갖는 의미는 이른바 ‘공공부문의 효율성’에 관해 기존과는 다른 방식의 접근이 시도됐다는 점이다.

▲ ⓒ 참여와혁신

안전의 외주화

올해에도 어김없이 잇따르는 일터에서의 사고들. 잊힐 만하면 터지는 사고에 ‘먹고 살기 힘든 세상’은 ‘살아남기 힘든 세상’이 돼버렸다. 그리고 산재사고의 주된 희생자는 외주업체 소속 노동자이거나 파견업체 소속 노동자들이었다. 특히 지난 5월 28일 서울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발생한 스크린도어 사고는 ‘안전의 외주화’ 논란에 본격적으로 불을 붙였다. 한 조선소에서는 올 한 해 동안 무려 10명의 노동자가 작업 중 사고로 숨져 ‘죽음의 조선소’라는 오명을 얻기도 했다.

외주화 자체가 노동자들의 안전을 위협한다고 단정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기업은 노무비용을 획기적으로 아낄 수 있다는 이유로 외주화를 선호한다. 시시각각 변하는 경영여건에 발 빠르게 대처하기 위해 조직을 ‘슬림화’ 해야 한다는 시각이 여전히 주류이기도 하다. 하지만 외주화는 기업이 안전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작용해 온 게 사실이다. 작업장에서의 안전은 언제나 긴장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 그럼에도 가장 쉽게 놓칠 수 있기는 것이기에 노동자, 기업, 산업안전 당국의 관심이 요구된다.

▲ ⓒ 참여와혁신

노무법인에 의한 노조파괴

한때 ‘창조컨설팅’으로 노동계가 떠들썩했다. 2010년 무렵부터 창조컨설팅이라는 이름의 노무법인이 ‘강성노조’를 전문적으로 와해시킨다는 소문이 돌았다. 실제 창조컨설팅이 없애거나 세를 크게 약화시킨 노조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올해 3월에는 유성기업에서 노동조합 활동을 하던 한광호 씨가 정신적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리고 갑을오토텍 노동자들은 “노조파괴 중단”을 요구하며 150일 넘게 철야농성을 벌이고 있다. 창조컨설팅은 이미 지난 2012년 10월 고용노동부로부터 노무법인 설립 인가가 취소됐고, 노조파괴를 주도한 심종두 창조컨설팅 대표노무사는 노무사 자격이 취소됐다. 그러나 갑을오토텍 노조파괴 문건인 ‘Q-P전략 시나리오’가 공개되면서 그가 암암리에 활동한 정황이 드러났다. 지난 11월 21일 서울 강서구 KBS스포츠월드에서 열린 금속노조 정기대의원대회에서 연단에 오른 이재헌 갑을오토텍지회 지회장은 “우리를 잊지 말아 달라”며 대의원들에게 호소했다. 노조파괴 사업장의 한 노동자가 “우리가 깨지면 다음은 원청 차례”라고 한 말이 가벼이 들리지 않는다.

▲ ⓒ 참여와혁신

대한항공조종사노조의 37% 임금인상 요구

2005년 이후 11년 만에 쟁의행위에 나선 대한항공조종사노동조합(위원장 이규남)은 열 달이 지나도록 싸움을 이어오고 있다. 이들의 요구하는 임금인상률은 무려 37%다. 노조의 요구대로라면 대한항공 사측은 약 5천여 만 원의 임금을 올려줘야 한다. 이를 바라보는 세간의 시선은 곱지 않다. 그러나 이규남 위원장은 임금인상률 37%의 의미를 두 가지로 설명했다. 하나는 대한항공의 누적된 적자에도 불구하고 조양호 회장의 올해 보수인상률이 37%라는 사실에 항의하는 뜻이다. 다른 하나는 중국으로의 조종사 유출이다. 중국 항공사들은 국내 항공사보다 2~3배 가량 많은 연봉을 제시한다. 그는 10년 넘게 임금이 오르지 못한 국내 조종사들은 타국에서의 생활을 기꺼이 감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대한항공조종사노조는 5일 성명을 통해 오는 20일부터 12일 동안 1차 파업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이 역시 2005년 이후 11년 만이다. 자칫 잊힐 뻔했던 이들의 쟁의는 파업 선언으로 다시 주목받게 됐다. 새해의 시작과 동시에 이들의 쟁의도 마무리될 수 있을지 관심이 요구된다.

 

지금까지 ‘2016 9대 노동현안’으로 열거한 사건들은 말 그대로 ‘현안’이다. 9가지 문제를 포함해 많은 사안들이 노동계를 휘감았지만 어느 것 하나 속 시원히 해결된 게 없다. 모든 게 2017년으로 미뤄진 숙제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