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의의 물꼬를 트는 게 우선
논의의 물꼬를 트는 게 우선
  • 성상영 기자
  • 승인 2017.06.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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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시한 ‘성큼’ 사면초가 최임위
[커버스토리] 깜깜이 최저임금 ②

불확실성의 시대라고 했던가. 지금쯤이면 이듬해 시간당 최저임금이 얼마나 될지 점치는 뉴스가 넘쳐나야 했다. 경영계와 노동계는 서로가 제시한 금액 사이에서 신경전을 벌여야 했고, 사용자위원을 비판하는 노동계의 성명서가 속속 도착해야 했다.

오는 6월 29일, 최저임금 결정 시한은 다가오는데 최저임금위원회는 회의조차 열린 적이 없다. 대선 기간 동안 후보들이 외쳤던 ‘최저임금 1만 원’ 공약이 무색하다. 게다가 노동계는 최저임금위원회를 거부하고 있다. 내년 최저임금, 그리고 최저임금위원회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 시한인 6월 29일까지 한 달도 채 남지 않았지만 최저임금위원회(이하 ‘최임위’)는 제대로 된 회의조차 열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7월 근로자위원 9명이 전원 사퇴한 이후 1년 가까운 시간 동안 아무런 진전이 없기 때문이다. 최임위가 이대로 파행을 이어간다면 시한 내에 내년도 최저임금 심의·의결을 끝마치기는 어려워 보인다. 현행 최저임금법은 고용노동부 장관이 매년 8월 5일까지 최저임금을 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2016년 최임위 파행의 악몽

최저임금은 고용노동부 장관의 심의 요청에 따라 최저임금위원회에서 결정한다. 최임위는 근로자위원, 사용자위원, 그리고 공익위원 각 9명씩 27명으로 이루어진다. 27명의 위원들은 고용노동부 장관의 최저임금 심의 요청을 받은 후 90일 동안의 대장정에 들어간다. 현장방문과 집담회를 통해 현장의 의견을 청취하고, 생계비전문위원회와 임금수준전문위원회를 통해 최저임금 심의·의결에 필요한 여러 자료를 심사한다.

최임위의 가장 핵심 회의기구는 전원회의다. 전원회의에서는 27명의 위원들이 머리를 맞대고 이듬해 최저임금을 심의·의결한다. 위원장은 1차 전원회의를 열어 고용노동부 장관이 요청한 최저임금 심의안건을 상정한다. 이를 시작으로 최저임금 심의·의결 절차에 본격적으로 들어가게 된다.

지난해 1차 전원회의는 4월 7일에 열렸다. 양대 노총과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최저임금연대가 ‘2017년 적용 최저임금 1만 원’을 요구하고 나서면서 최임위에는 일찌감치 전운이 감돌았다. 6월 9일 3차 전원회의가 열리고 본격적인 심의 절차에 들어가자 노사의 의견차가 뚜렷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월급으로 환산한 금액을 함께 고시할 것인지, 업종별로 최저임금을 달리 적용할 것인지를 놓고 토론이 이어졌으나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지난해의 경우 최저임금 심의·의결 시한은 6월 28일이었다. 그러나 월 환산액 병기 문제와 업종별 차등 적용 문제를 놓고 노사 위원들의 힘겨루기가 이어지면서 논의는 공전을 거듭했다. 노사 위원들은 심의·의결 시한을 하루 앞둔 6월 27일 6차 전원회의에서야 2017년 최저임금 최초 요구안을 제시했다. 이후 11차까지 회의가 이어졌지만 노사는 수정안을 단 한 차례도 제출하지 않으면서 팽팽하게 맞섰다. 결국 지난해 7월 12일 12차 전원회의에서 공익위원들이 3.7%에서 13.4%의 인상률 범위를 제시하기에 이르렀다. 근로자위원 전원 사퇴의 발단이 된 사건은 7월 15일 열린 13차 전원회의였다. 노사 양측은 끝내 수정안을 제출하지 않았고, 오후 5시에 시작된 회의는 자정이 가까운 시각까지 결론이 나지 않았다. 그러자 박준성 당시 최임위 위원장은 “어느 쪽이든 (오후 11시 30분까지)최종안을 제시하지 않으면 제출한 측의 안으로 표결한다”며 양측에 수정안 제출 시한을 통보했다. 이에 근로자위원 측은 “독단적 회의 진행”이라며 전원 퇴장해 버렸다. 반면 사용자위원 측은 시급 6,470원의 수정안을 제출했다.

시각은 자정을 넘겨 7월 16일 새벽 3시가 됐다. 근로자위원 전원이 불참한 가운데 사용자위원과 공익위원만이 모여 사용자위원 측 수정안인 시급 6,470원을 표결에 부쳐 2017년 최저임금으로 의결했다. 최저임금법상 노사 어느 한 쪽이 2회 이상 출석요구를 받고도 회의장에 나오지 않을 경우 노사 구분 없이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위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근로자위원 측은 곧바로 성명을 내고 “사용자 측 요구안을 최저임금으로 결정한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라며 강도 높게 반발했다. 이후 근로자위원 9명은 전원 사퇴했다.

공익위원은 ‘욕먹는 하마’

근로자위원 측은 지난해 7월 19일 일괄 사퇴 선언 당시 공익위원들의 태도를 문제 삼았다. 박준성 당시 최임위 위원장을 비롯한 공익위원들이 사용자위원 측에 편향됐다는 것이다. 노동계는 공정하고 중립적인 공익위원 위촉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절차가 개선돼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지난해 근로자위원으로 활동했던 김종인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 직무대행은 “노동자위원, 사용자위원, 정부가 골고루 공익위원을 추천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공익위원은 고용노동부 장관의 제청에 따라 대통령이 위촉한다. 공익위원의 독립성과 공정성이 확보되지 않는 한 보이콧 철회는 없다는 게 노동계의 입장이다.

사용자위원 측 역시 공익위원들을 향해 떨떠름한 반응을 보였다. 지난해 최임위 의결 과정에서 공익위원들이 지속적으로 증액을 요구했다는 이유에서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2017년 적용 최저임금이 시급 6,470원으로 의결된 이후 “사실상 공익위원의 안과 다르지 않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노동계든 경영계든 공익위원을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 최저임금이 결정되는 과정은 항상 비슷한 흐름을 반복해 왔다. 근로자위원 측과 사용자위원 측이 최저임금 인상안을 놓고 대립하다 공익위원이 제시한 안으로 결정되고 만다. 공익위원이 제시한 안을 놓고 표결에 들어가면 노사 중 어느 한 곳이 항의의 뜻으로 퇴장하거나 둘 다 퇴장한다. 노사 당사자들이 합의점을 찾기보다는 사실상 공익위원이 찍어준 수준에서 최저임금이 정해져 왔던 것이다. 공익위원이 노사 양쪽으로부터 눈총을 받으며 ‘욕먹는 하마’가 된 데에는 당사자 간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와중에 공익위원이 개입한 영향이 크다.

그러나 이것이 공익위원들의 책임이라고만 말하기는 어렵다. 정부의 정책 방향을 반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에서 평균 최저임금 인상률이 크게 달랐다는 점을 상기하면 공익위원의 역할이 독립적이지 못한 게 사실이다. 게다가 통상 6월 초입에 들어서야 노사의 인상 요구안이 제출되는 등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되는 점을 따져볼 때 시간에 쫓기는 측면도 있다. 한 달 남짓의 기간 동안 노사의 크나큰 입장차를 줄여나가기까지 공익위원들의 협상력에만 의존해야 한다. 의결 시한을 넘기는 일이 해마다 반복되는 이유다.

등 돌린 노동계, 돌아올 명분 생길까

그런 가운데 내년도 최저임금 심의·의결에 관한 전망은 어둡기만 하다. 두 자리가 비어있던 공익위원에 어수봉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교수, 김소영 충남대 로스쿨 교수가 위촉된 것 외에는 사실상 아무런 진전이 없다. 더구나 최임위를 이끌 위원장을 누가 맡을 것인지도 정해지지 않았다. 최임위는 간판만 걸어놓고 있을 뿐 장기간 휴업에 들어간 상태다. 최저임금 1만 원 달성 시기에 관한 토론은 고사하고 당장 내년도 최저임금 논의 시점조차 가늠하기 어렵다.

현 상황에서 노동계가 극적으로 최임위에 6월 중순 이내에 복귀하더라도 고용노동부 장관 결정 시한인 8월 5일까지는 시간이 빠듯하다. 현장방문 및 집담회를 진행하는 것은 물론 외부에서 작성한 생계비 보고서와 임금수준 보고서를 심의해야 한다. 이 과정들을 간소화 하더라도 최저임금 1만 원에 대한 여론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지난한 협상이 필요하다.

최임위가 정상적으로 가동되기 위해서는 우선 노동계가 다시 협상테이블에 앉아야 한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단절된 노정 관계에 변화의 바람이 기대되고 있으나 단지 그것만으로는 등을 돌린 노동계를 다시 대화의 장으로 불러올 수 없을 듯하다. 애당초 근로자위원들이 일괄 사퇴라는 강수를 둔 밑바탕에는 최저임금 심의 과정에 대한 불신이 자리 잡고 있다.

노동계의 이 같은 불신은 이들이 내세웠던 요구사항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지난 2월 최저임금연대는 ▲노사 당사자에게 공익위원 추천 권한 부여 ▲2020년까지 한시적으로 국회가 최저임금 권고안 제시 ▲최임위 전원회의 공개 및 방청 허용, 속기록 작성 ▲최저임금 결정기준 중 근로자의 생계비에 가구 생계비 포함 ▲최저임금제도 실효성 확보 ▲최저임금 감액 및 제외 규정 삭제 등을 요구했다. 기존 최저임금위원회에서 논의해 오던 사안들을 국회로 가져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국회에서도 이러한 내용을 담은 최저임금법 개정안이 발의돼 계류 중이다. 6월 임시국회에서 해당 법안이 통과될 경우 노동계의 최임위 복귀는 확실시 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시나리오가 실현될 가능성은 현저히 낮다. 30일 간 열리는 6월 임시국회에서는 새 정부 내각 인사청문회와 추가경정예산, 사드(THAAD) 비준 등을 둘러싸고 여야가 갈등을 예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회를 통한 최임위 재가동의 해법 마련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노동계가 마냥 복귀를 선언하기도 여의치 않다. 현재 공익위원 명단에 이름을 올린 9명 중 6명이 지난해 최임위에서 활동했던 이들이기 때문이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내년도 최저임금을)빨리 결정해야 한다는 식으로만 접근하면 최임위를 졸속으로나마 구성하자는 것인데, 노동계에 일단 들어오고 보라는 이야기로 귀결된다”면서 “왜 최임위가 불신을 받는지를 먼저 생각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정식 노사발전재단 사무총장은 “(이전 정부에서)최저임금 두 자리 인상률은 곤란하다고 했는데 정권 바뀌었다고 갑자기 입장이 달라져 버리면 과거의 주장이 무색해져 버린다”고 지적했다.

명분보다는 실리 챙겨야

상황을 종합해 보면 노동계에 유리하지는 않은 듯하다. 최저임금 심의·의결 시한을 넘기는 것까지 고려하더라도 시간적 여유가 많지 않다. 정부가 공약 이행 차원에서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률 두 자릿수 목표를 강하게 추진한다고 해도 경영계를 설득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 와중에 노동계가 최임위 보이콧 상태를 계속 유지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내년 최저임금을 하루라도 빨리 결정해야 한다는 여론의 압박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노동계가 사용할 수 있는 패는 더욱 적어진다.

현실적으로 노동계가 지금 당장이라도 최임위에 복귀하는 것은 가능하다. 최저임금법 시행령에 따르면 위원 스스로 직무를 수행하는 것이 곤란하다고 의사를 밝힌 경우에도 대통령이 해당 위원을 해촉하지 않으면 위원 직무를 계속 수행할 수 있다. 지난 4월 6일 처음으로 열린 전원회의에 근로자위원 9명이 참석하지 않았을 뿐 궐위가 아니었다. 최저임금 결정구조에 대한 불신만 해소된다면 늦게나마 최임위가 정상 가동될 여지가 남아있는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사회적 기대가 커지는 요즘, 최임위 위원들의 고민이 커지는 것은 당연하다. 일각에서는 ‘최임위 무용론’도 제기되고 있다. 국회에서 최저임금을 결정하자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으나, 이 경우 당사자들이 합의해 정한다는 원칙에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정당 간 정치적 이해관계에 휘둘릴 수 있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이는 뒤집어 말하면, 사회적 기대에 부응하도록 최임위 위원들의 역량도 한층 강화돼야 한다는 의미일 수 있다. 어느 한쪽이 퇴장한 채 공익위원안으로 최저임금이 결정되는 악순환을 끝내지 않는다면 최임위 무용론은 더욱 힘을 얻을 수밖에 없다. 비록 시간이 촉박하지만 지금이라도 개점휴업 상태인 최임위가 정상 가동될 수 있도록 노동계와 경영계, 정부가 한 발짝씩 다가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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