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로 만든 변화의 시작, 학습으로 다듬다
참여로 만든 변화의 시작, 학습으로 다듬다
  • 박종훈 기자
  • 승인 2017.07.13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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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다임 전환의 시기… 방향성이 중요
[커버스토리] 대한민국 LEVEL UP ⓒ

아직은 무언가 결과에 대한 평가를 내리기엔 이르다. 대한민국은 지금 참여의 힘이 만든 과정을 관람하고 있는 중이다.

지난해부터 사람들의 이목은 날마다 쏟아지는 경악스런 뉴스로 향했다. 시민들의 발길은 광화문 광장으로 모여들었고, 밤마다 촛불을 밝혔다. 대한민국의 가장 큰 권력이 철저하게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데 쓰였고, 가장 기본적인 절차마저 처참하게 유린되었던 현실에 분노하고 개탄했다.

아니, 어쩌면 우리의 ‘분노’는 ‘국정농단’만을 가리킨 게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의 일상은 치열하고 각박했다. 주머니 사정과 골목 경기에 대한 묘사와 전망은 암울하기 그지 없었다. 희망도 열정도 모두 소진하고, 주체적인 개인으로서 최소한의 자존감마저 잃어버린 대한민국의 오늘에 대한 이야기는 끝없이 되풀이되었다.

일각에서는 마치 정권 교체가, 국정농단에 대한 단죄가 변화 그 자체인 것처럼 이야기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시각은 오히려 더 큰 걱정거리를 불러온다. 자기가 상상했던 모습이 아닐 경우, 더 큰 분노와 적개심에 사로잡힐 수 있는 여지도 크다.

<참여와혁신>이 창간 13주년 기념호의 큰 주제로 삼은 ‘대한민국 LEVEL UP’이란 슬로건은 변화의 스칼라만이 아닌 벡터에 대한 고민이자 제언이다. 결과가 아닌, 과정을 목격하고 있음을 지속적으로 상기하기 위한 주제다. 변화의 방향을 설정하는 것은 지난 겨울 수많은 촛불들이 수놓았던 풍경처럼, 시민들의 참여와 학습을 통해 이뤄진다는 것을 다시 확인하고자 하는 것이다.

변화에 대한 요구와 갈망에 대해서 한국사회는 수많은 이들이 밤을 밝혔던 ‘촛불’을 계기로 새롭게 눈을 뜨게 되었다. 하지만 진짜 변화란 무엇일까? 위정자가 부도덕하게 사익을 추구하고 있는 와중에도, 울고 웃으며 그 모습을 지켜보았던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불투명한 미래에도 변화에 대한 요구는 계속될 것이다.

무엇을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 가에 대한 고민은 계속되어야 한다. 단지 부패한 정권을 심판하고, 정권을 교체하며, 꼴 보기 싫은 이들을 감옥에 가두었다고 미래는 장미빛으로 바뀌진 않을 것이다.

과거의 청산이란?

박근혜 전 대통령의 몰락을 두고 ’박정희 시대의 종언’이라는 수사를 붙인다. 이는 단순히 정치적인 차원을 넘어서 대한민국의 경제와 사회적인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이른바 ‘박정희 시대’는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권위주의적 권력 아래, 관료와 재벌 대기업이 유착한 관치경제와 재벌체제라는 표현으로 함축된다. 서로가 윈-윈-윈을 거둘 수 있는 구조였다. 재벌은 성장을 담보할 수 있는 혜택과 지원을 받았고, 직접적인 정치헌금과 수치적 경제성장을 통해 권력의 명분 형성에 기여했다.

하지만 이러한 ‘좋은 시절’은 영원할 수 없었다. 우리 사회의 불균형이 확대되면서, 점차 이는 사회 근간을 뒤흔드는 큰 문제로 대두된다. 기업 규모에 있어서 양극화가 극대화되고, 이는 곧 가계 소득의 양극화로 이어졌다. 구성원들의 양극화는 사회 계층의 양극화로 대두된다.

고용노동부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에 따르면 2014년 6월 기준, 대기업 정규직의 임금을 100이라고 봤을 때, 대기업 비정규직은 64.2% 수준, 중소기업 정규직은 52.3% 수준에 불과하다. 중소기업 비정규직의 경우 대기업 정규직의 34.6%에 불과할 정도의 임금격차를 보이고 있다.

수출 중심의 대기업들 역시 영원히 호시절을 누릴 게 아니었다. 30대 그룹의 매출 역시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거기에 세계적 추세로도 급속한 고령화와 생산가능인구의 감소, 그로 인한 내수부진과 소비절벽이 도래했다. 마치 이웃나라 일본 사회가 겪은 것처럼 구조적 악순환이 반복되는 불황 사회로 접어들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했다. 각박한 현실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분노’의 형태로 표출된다.

산업 패러다임의 변화, 우리의 준비는?

변화에 대한 압력은 내부에서만 팽배한 게 아니다. 오히려 외부에서 가해지는 압력은 더 직접적이고 강력하다. 이른바 ‘4차 산업혁명’이라는 수식어로 대변되는 산업을 비롯해, 정치, 사회, 문화 등 전 분야의 패러다임 변화는 적응과 생존의 문제로 직결될만큼 강력하다.

미래를 위한 준비는 세 마리 토끼를 동시에 쫓아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 우선 기존의 주력산업을 중심으로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유지, 발전시켜야 할 산업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주력산업인 반도체 플랫폼 산업, 자동차 산업, 조선 산업, OLED 디스플레이 산업, 이차전지 산업 등이 대표적이다.

또한 가까운 미래에 새로운 먹거리를 제공할 수 있는 차세대 선도산업 역시 고민해야 한다. 정밀의학(유전자) 산업, 기업회의-포상관광-컨벤션-전시박람회와 이벤트 등의 서비스업을 가리키는 MICE 및 리조트 산업, 해외발전 플랜트 및 노후원전 해체 산업, 투자 및 인터넷은행 산업, 의료헬스케어 산업, 문화콘텐츠 산업, 에너지 산업 등이 그것이다.

아울러 장기적으로 미래의 생존에 필요한 미래 유망산업 역시 염두에 두어야 한다. 시스템 반도체 산업, 바이오의약 산업, 빅데이터와 사물인터넷 활용 전력인프라 산업, 지능형 로봇 산업, 식물공장 산업, 디자인 산업, 고부가 물류 산업 같은 영역이 대표적이다.

이와 같은 변화의 준비와 적응은 과거의 경제와 산업 발전이 그랬던 것처럼, 어느 한 주체가 주도하거나 이끌 수 없다. 민간기업의 창의적인 도전과 정부의 혁신제도가 결합해야 가능하다.

더불어민주당 신성장특별위원회 간사를 맡고 있는 이장우 경북대 교수는 “산업에 대한 우리의 시선이 기존의 추격형에서 선도형 패러다임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의 준비 수준은 어떠할까? 정은미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주요 선진국의 선도기업들과 비교해 IT산업의 경우 그 격차가 1년 미만으로 비교적 대응이 양호하다고 말한다. 제조업의 경우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대응이 선진국과 비교해 4년의 격차를 보인다. 특히 제조공정 분야는 비교적 양호하지만, 원료조달, 연구개발, 디자인 등 제조 전 단계 가치사슬 부문과 물류, 마케팅, 브랜드 구축 등 제조 후 단계는 상대적으로 미흡하다.

정 연구위원 역시 이에 대한 준비를 위해 민관이 공동으로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점을 강조한다.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의 출현으로 기존의 기업, 산업, 국가간 경쟁 방식의 변화가 가속화되고, 이에 따른 유연한 대응이 강조되는 현실을 감안하면, 민간부문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정책은 이를 시의성 있게 뒷받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중소기업들을 지원할 수 있는 공공 인프라를 확충하는 것의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산업의 융복합, 세분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현실 역시 고려의 대상이다. 과거의 기계산업은 앞으로 로봇, 엔지니어링 산업 등으로 확장, 세분화될 것이며, 기존에는 제조업 영역이었던 제약 산업은 서비스업인 의료 산업과 접목해 스마트 헬스케어 산업으로, 업종 간 경계가 무너지고 융합될 것이다.

이처럼 산업의 패러다임 변화에 발맞추기 위해선 정부의 정책적 패러다임 변화가 필요하다. 정책의 대상과 추진전략에 대한 고려는 기존과 달라야 하며, 특히 신산업 발전을 위한 인프라 구축에 관에서는 역량을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개인이 모인 조직, 변화를 어떻게 끌어낼까?

4차 산업혁명, 산업(Industry) 4.0 시대를 대비하기 위한 노력은 단순히 국가나 기업 차원에서의 정책 패러다임 변화로 그쳐서는 안 된다. 오히려 개별 노동자의 역량(skill)의 축적이 교육과 일자리 분야에 중요한 지점으로 대두되고 있다.

변화한 미래의 직업세계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과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개인의 스킬과 그 활용이 더욱더 요구될 것이다. 사회 구성원들의 스킬을 높이고 활용하는 것은 생산성 제고와 분배개선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OECD는 숙련편향적 기술변화에 따른 스킬 프리미엄이 소득(임금) 불평등 심화의 중요한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으며, 스킬 수급의 균형이 소득분배를 개선시킬 수 있을 거라고 보고 있다.

OECD는 국제성인역량조사(PIAAC)를 통해 16~65세 사이 성인들의 언어능력, 수리력, ICT 기반 문제해결 능력 등 핵심 정보처리역량과 이들의 활용, 개인의 특성, 교육 및 훈련 관련 내용, 노동 및 소득에 관한 자료를 정리하고 있다. 2011년 1차 조사에서는 한국을 포함한 24개 국이 대상이었고, 2014년 2차 조사에서는 9개 국이 추가로 포함됐다.

한국의 성인들이 직장에서 스킬을 활용하는 능력은 OECD 평균과 비교하면 읽기, 쓰기, 수리, ICT 등의 영역에선 평균을 상회하거나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문제해결 능력의 경우 33개 조사 대상국 중 29위로 하위권에 속한다. 문제해결 스킬이란 다양한 정의가 가능하지만, OECD는 “해답이 분명하지 않은 상황에서 문제를 파악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인지적 처리과정이 수반되는 개인의 역량’이라고 정의한다. 인지적, 분석적 능력을 바탕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비판적, 창의적 사고 등 비인지적 능력은 물론, 타인과의 협동과 소통, 설득과 타협 등의 연성 기술 등 다양한 역량으로 구성된다.

직장에서 문제해결 스킬을 활용하는 과정은 문제의 탐구, 문제의 파악 및 이해, 표나 그림, 언어, 수식 등 다양한 수단을 통한 문제의 표현, 문제해결에 필요한 가설의 설정, 정보 및 자료 수집, 기획과 집행, 감독 및 결과 평가 등 다양한 형태와 과정에서 드러난다.

그렇다면 한국의 직장인들의 문제해결 스킬 부진은 무엇과 연관이 있을까? 이와 같은 능력은 업무와 관련된 전문적인 지식을 습득하고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할 수 있는 ‘학습’의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OECD 설문조사 결과 드러난 점은 한국의 경우 직장에서 이를 습득할 수 있는 기회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동료 및 상급자로부터의 학습 경험’이나 ‘업무를 통한 학습 경험’에 대한 질문에 한국의 직장인들은 전체 대상국 중 가장 뒤떨어진다는 응답을 보인다.

또한 이러한 문제해결 스킬의 활용은 소통, 협력적인 직장문화와 업무방식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는 것이 연구자들의 중론인데, 한국의 직장문화는 직장 내 교류나 직장동료간 협력 면에서 매우 뒤떨어진다는 결과도 나왔다. 구조적으로는 격차가 심한 한국 노동시장의 이중적 성격이 문제해결 스킬의 발현과 활용에 걸림돌이 된다는 결과도 주목할 만하다. 고용이 불안하거나 열악한 일자리에서는 기업이 역량 제고를 위한 전문지식 습득과 향상을 위한 교육, 훈련을 충분히 제공하기가 어렵다. 또한 노동자들 역시 자신의 역량을 십분 활용할 동기가 낮다. 이와 같은 내용은 고용형태별 교육훈련 참여율과 문제해결 스킬 활동도에서 큰 격차를 보인다는 점에서 잘 드러난다.

한국개발연구원 김용성 선임연구위원은 일자리에서 문제해결 스킬의 활용을 높이기 위해 두 가지의 정책적 제언을 주장한다. 한 가지는 문제해결 스킬의 활용 능력은 직업 교육훈련이 현장과 결합되어야 큰 효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에, 교육과 훈련 시스템을 구축하고 지원하는 점을 강조한다. 현재 제한적으로 시행 중인 ‘일 기반 학습(Work-Based Learning)’을 확대해 교육의 현장성을 높이고, 실업자를 대상으로 한 훈련 프로그램도 훈련기관과 기업이 번갈아 가며 시행하는 등의 제도적 모색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또한 교육훈련의 내용에서도 문제해결 스킬 안에 포함되어 있는 업무적(전문적) 스킬과 타인과의 의사소통, 협력, 협상 등의 연성 스킬도 포함할 것을 제안한다.

다른 한 가지는 고용형태에 따른 능력 격차를 줄여나가는 방법으로 노동시장 구조를 개선하는 부분이다. 안정적 고용관계는 결국 인적자원의 능력에 대한 투자와 활용을 위한 필요조건이라는 관점에서 노동시장 개혁이 시도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실질적으로는 경기에 따른 ‘인력조정(고용 및 해고)의 유연성’ 중심이 아닌, 임금과 근로시간 조정 등의 탄력적 대응이 시도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이와 같은 유연한 개혁은 비정규직의 고용안정에 기여함으로써, 앞서 조사에서 드러난 고용형태별 문제해결 스킬의 활용 격차를 축소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