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 외투기업 노사관계를 주목하라
2005 외투기업 노사관계를 주목하라
  • 참여와혁신
  • 승인 2005.01.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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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노사관계는 87년을 기점으로 상대적으로 상당히 안정됐다. 하지만 외국인 투자기업의 노사관계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앞으로 한국의 노사관계 이슈에서 외투기업 노사관계가 차지하는 무게는 점점 커질 것이다.”

2004년 12월 KOTRA 경영아카데미와 한국노동교육원이 실시한 ‘외국인투자기업 노사관계 워크샵’에 참석한 한 외국인 CEO의 말이다.

 

외투기업, 국민경제 한축 됐지만


IMF 이후 외국인 투자기업(이하 외투기업)은 우리 경제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축이 됐다. 정부의 적극적 외국자본 투자유치 정책에 따라 생산 시설을 새로 설립하거나 국내 기업을 인수·합병하는 형태로 국내에 들어와 경제활동을 벌이고 있는 외투기업은 2004년 말 기준으로 1만4756개에 달한다.


하지만 외투기업의 국내 진출이 이제 막 걸음마 채비를 하는 단계라면 외투기업의 노사관계는 아직 ‘고개 가누기’도 못하고 있는 상태다. 지난 2004년 하반기 노사관계를 뜨겁게 달군 노사대립의 중심에는 여지없이 외국인투자기업이 있었다.

LG 칼텍스정유, 한미은행, GM대우차 등의 외투기업은 장기파업과 극단적 충돌까지 가면서 큰 상처를 남겼다. 노사관계 제도와 기업 시스템, 조직 내 정서와 문화의 차이 등이 갈등의 불씨가 되고 있는 것이다.  <관련기사 41면>


2004년 3/4분기 중 외국인직접투자(FDI)는 총 2164건, 39억9600만 달러 규모를 기록했다. 이는 2003년 같은 기간과 비교할 때 투자 건수로는 145%, 투자액 측면에서는 162%나 늘어난 것이다. 이 중 제조업에 대한 투자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74%나 증가해 가장 가파른 증가세를 보였다.

또 생산시설 확충이나 고용창출을 의미하는 ‘그린필드형’ 투자는 2004년 상반기 중에만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30% 늘었다.


투자 건수나 규모뿐이 아니다. 1997년 이전 국내 전체 제조업체 매출 총액에서 외국인 투자기업의 매출이 차지하던 비중은 1% 수준에 불과했다. 그러나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1998년에는 5%, 그 이후에는 10% 후반을 유지하다 2002년 처음으로 25%를 넘어섰다.

 

외투기업 고용 기여도 증가세

외국인의 제조업 직접 투자가 고용창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점점 늘고 있다. 2004년 8월 산업자원부 발표에 따르면 지난 2002년 8월부터 2003년 6월까지 ‘외국인투자기업의 국민경제적 영향’을 분석한 결과 2001년 현재 제조업 외국인투자기업에 고용된 노동자 수는 총 219만 명으로 국내 제조업 전체 고용의 8.3%를 차지했다.


가장 높은 고용효과를 보인 부문은 의약, 석유정제로 30%였고, 전기·전자와 기계는 각각 20%, 17%로 평균 이상의 고용 효과를 나타냈다. 97년 전체 제조업에서 외국인투자기업의 고용이 차지하는 비중이 5.5%에 불과했던 데 견줘보면 6년 새 꽤 빠른 증가를 보인 것을 알 수 있다.

공식 집계는 아직 없지만 산업자원부는 2004년까지 제조업 외국인투자기업에 고용된 노동자 수가 300만 명을 넘어섰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노사분규 10건 중 1건은 외투기업에서

이처럼 외투기업의 국내 정착이 빠르게 진전되면서 노사분규도 늘어나고 있다.

1998년 국내 노사분규 건수 중 1.6%에 불과하던 외투기업 노사분규는 2000년 처음으로 10%대를 넘어서 꾸준히 10% 가량을 유지하고 있다. 2003년에 외투기업의 노동쟁의 발생건수는 32건으로 전년대비 23.1% 증가했다. 업종별로는 32개 노사분규 사업장 중 28개가 제조업이었고, 국적별로는 미국계, 일본계가 각각 11건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이중 직장 폐쇄에 이른 사업장도 10개나 됐다.

노사분규 발생원인은 임·단협관련 분규가 93.8%(30건)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했고 회사 매각과 정리해고 관련 분쟁은 각각 1건씩을 기록했다.


외투기업의 노사분규 증가 현상에 관해 KOTRA 노사관계지원반의 김봉철 노무사는 “외투기업의 비중이 늘어난 것에 비례하는 현상으로 크게 우려할 만한 사안은 아니라고 본다”면서 “서로 다른 문화와 관행, 시스템 상에서 발생하는 충돌을 찾아내 간격을 좁혀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단순하게 문화와 제도의 차이로 접근하기보다는 좀 더 세밀하게 외투기업 노사관계에 대한 정책 방향을 세워야 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한국노총 중앙연구원의 김순희 연구원은 “투자기업의 국적과 생산거점 마련이냐, 판로 확보냐 등의 투자목적에 따라 노사관계나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다르게 나타난다”고 말했다.

외투기업 중에는 생산설비 확충과 고용창출로 국민경제 안정에 기여하는 기업도 많지만 ‘그린필드형’ 투자로 신고하고도 인수합병을 통해 판매망만 차지하는 기업도 있다는 것이 김 연구원의 설명이다. IMF 이후 생산 공장에 대거 투자하다가 결국 유통망만 남기고 생산시설은 중국으로 옮긴 다국적 제약사들이 대표적 사례다.


때문에 건전한 외투기업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각 국가별 노사관계의 특성과 투자목적을 세분화해 검토하고 이에 맞는 투자유치 및 지원 정책을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외투기업 노사관계, 국민경제 안정의 열쇠

외국인 투자기업의 노사관계는 몇 가지 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첫째로 자본의 국경이 허물어짐과 동시에 국내 기업의 떠남이 가속화되는 속에서 건전한 외국인 투자의 유치를 통한 생산과 고용 확대, 국민경제 안정화라는 측면이다.

서울산업대학교 노용진 교수는 “세계 각국이 자국 내 일자리 확보를 위해 투자 유치 전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외투기업은 더 이상 국민경제 속에 ‘고립된 섬’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기업의 국적과 상관없이 자국 내 일자리 창출이 중요해 지고 있지만 외투기업 경영자들은 여전히 노사관계 불안 요소를 투자의 가장 큰 걸림돌로 지적하고 있다.


국제노동재단이 2003년 말 조사해 최근 발표한 ‘외투기업 경영자 대상 노동관계 설문조사’에 의하면 응답기업의 51%가 한국에 대한 외국인 투자의 가장 큰 장애요인으로 ‘노사관계의 불안’을 꼽았으며 정부가 외국인 투자유치를 위하여 역점을 두어야 할 노동정책으로는 ‘노사협력의 증진 및 분쟁예방’이 33.1%로 1위를 차지했다.


둘째로 국내 노사관계의 안정과 발전에서 외투기업 노사관계의 영향력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대목이다. 국제노동재단 원정연 사무총장은 “IMF 이후 우리나라 노사관계의 특성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외투기업의 노사관계를 살펴봐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만큼 외투기업의 노사 분쟁과 노사관계 이슈가 전체 노사관계에 미치는 영향이 커졌다는 것이다.


실제로 외투기업이 현지의 노사관계에 저항하거나 적응하는 형태는 투자 국가의 노사관계와 경제 시스템에 큰 영향을 미친다. 최근 강력한 중앙집권적 산별노조가 지배하고 있는 유럽의 국가들에서 교섭의 분권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미국계 및 일본계 다국적 기업의 진출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건전한 투자자본의 유치라는 측면에서도 노사관계의 역할이 중요하다. 모든 외국인투자가 고용 창출을 통해 국민경제 발전에 일조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 국내 우량 기업의 경영권을 위협해 주가를 올리고 차익을 챙겨 짐을 싸는 포트폴리오 투자가 급증하면서 외국인투자자에 대한 국민적 반감이 확산되는 추세다.  때문에 단기차익만을 노리는 투기자본과 국내에서 생산설비확충, 고용을 유발하는 건전한 투자자본을 구별하고 외국기업의 투명경영, 관행 등 장점을 극대화하기 위한 노사의 역할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


한국노총 대외협력본부 강충호 국장은 “이제까지 우리 노동조합들이 외국인 투자자에 대한 막연한 인식에 따른 교섭력과 정책능력 부족 등으로 외국인 투자기업의 장점을 활용하지 못한 면이 있다”며 외투기업 노사관계 안정을 위한 노동조합의 역할을 강조했다.


전세계적 일자리 창출 경쟁 속에서 자본과 기업의 국적이 갖는 의미는 점차 희미해지고 있다. 각국간 투자협정과 자유무역협정의 확산으로 외투기업의 진출과 철수가 더욱 자유로워지는 가운데 외투기업의 노사관계 안정은 국민경제 발전의 중요한 열쇠로 떠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