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NG 직도입시장개방 신호탄 되나
LNG 직도입시장개방 신호탄 되나
  • 참여와혁신
  • 승인 2005.01.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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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뛰는 에너지 정책 속 에너지 안보ㆍ공공성 적신호

포스코와 SK가 우여곡절 끝에 민간기업 최초로 인도네시아 탕구컨소시엄과 LNG 직도입 본계약을 체결한 지난해 8월.

증권 시장에서는 외국인 투자자들의 발 빠른 매수와 매도가 이어졌다. 증권거래소에 따르면 외국인 투자자들이 8월 한 달 동안 내다 판 가스공사 주식은 200억4600만원 규모다. 대신 같은 기간 293억3100만원어치의 한전 주식을 사들이는 ‘과식’을 보였다. 가스공사 주식을 판 돈으로 한전 주식을 긁어모으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이와 관련해 우리증권 이창목 애널리스트는 “가스공사의 경우 LNG 직도입으로 인한 향후 영업의 불확실성이 큰 반면, 2005년 전기료 인상 가능성도 남아 있어 한전의 주가 상승 여력이 더 크다는 것이 당시의 분석”이라고 설명했다.


두 달 전과는 정반대의 상황인 셈. 외국인 투자자들은 6월까지만 해도 실적호전이 예상되는 가스공사를 매수했고, 한국전력은 보유비중을 줄이는 경향이 뚜렷했다. 결국 외국인 차익실현 매물이 대표적 경기방어주인 가스공사 주가를 크게 끌어내린 셈이 됐다.

 

정유업계 이어 가스까지 외국자본에 노출

차익실현을 위해 언제든 매수와 매도를 자유롭게 반복하는 증시 투자자들의 속성이라고만 보면 이상할 게 전혀 없다. 하지만 우려는 단지 주식시장에 있지 않다.


산업자원부는 지난 11월 한국전력 발전자회사에 LNG 직도입 기회를 부여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사실상 우리나라 가스시장의 대대적인 구조개편을 의미한다는 것이 가스공사 구조개편팀 관계자의 설명이다.

포스코나 SK(주), LG 칼텍스정유 등의 가스 직도입은 기업에서 쓰는 발전용 가스만을 자체 도입하는 것이지만, 한전 발전 자회사의 경우 직도입한 가스를 발전용뿐 아니라 가정용으로도 공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간 LNG 도입 및 판매를 독점해온 가스공사의 지난해 발전용 LNG 판매량은 648만톤(2조6040억원)인데, 이중 대부분을 한전자회사에 공급하고 있다. 또, 발전용 LNG는 가스공사 전체 판매량의 30%를 웃돈다.


가스공사 노동조합은 더 나아가 LNG 직도입이 가스산업 시장개방·민영화 수순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노조의 배경석 기획국장은 “지난 5월 정기국회에서 가스산업 구조개편 관련 법안이 폐기되자 정부가 ‘경쟁원리’를 내세워 직도입을 허용함으로써 장기적으로 자연스럽게 시장개방을 유도하는 ‘세련된 정책’을 펴고 있다”고 말했다.


더 장기적으로 보면 LNG 직도입은 시장개방의 신호탄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가스공사의 관계자는 “98년 석유시장이 완전히 개방된 지 6년만에 국내 정유산업의 절반 이상이 외국자본의 지배를 받고 있다”면서 “장기적으로는 가스시장도 외국자본에 노출되지 말라는 법이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우리나라는 일본에 이어 세계 2위의 LNG 수입국이고, 지난해 가스공사의 순이익은 2500억원이었다. 외국자본의 입장에서 보자면 충분히 매력적인 시장이다.

 

에너지 안보가 안 보인다

현재는 공기업법에 따라 가스공사의 외국인 지분이 전체 자본의 30%를 넘지 못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이런 우려는 시기상조라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이미 LNG 직도입을 시작하고 있는 민간기업에서는 ‘국부유출’ 논란이 시작됐다.

이들 기업이 정부에 직도입 허용을 요구하며 내세웠던 가장 큰 명분은 ‘직도입으로 인한 원가 절감 효과’다. 하지만 포스코와 SK의 탕구 LNG 도입 추진주체인 K-Power(옛 SK전력), LG 칼텍스정유, 대림산업 등 LNG 직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기업들은 모두 외국인 지분이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곳이어서 원가 절감의 혜택이 소비자에게 돌아가지 않고 해외 유출로 귀결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외국자본이 우리나라 에너지 산업의 구조적 취약성을 더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해외 유전 개발에 투자하고 있는 SK(주)는 외국인 지분 때문에 해외 유전 개발에 제동이 걸렸다. 외국인 지분율이 올 들어 50%를 초과하면서 해외자원개발사업법상 ‘외국인 기업’이 되면서 에너지특별회계법에 따른 석유개발사업자금 지원대상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가스공사 구조개편팀의 오영석 과장은 “외국인이 대주주로 있는 정유회사는 판매망 확산과 이익 극대화만을 노리기 때문에 해외자원 개발 등 리스크가 높은 사업에 투자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면서 “이대로라면 국내의 에너지 안보는 더욱 흔들릴 것”이라고 우려했다.


여기에 정부가 한미 FTA의 전초전 격으로 추진하고 있는 한-미BIT(상호투자협정)협상에서 미국 정부는 전력과 가스를 투자 개방 대상으로 명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열린우리당 안영근 의원은 정책 자료집을 통해 “BIT가 체결될 경우 철도와 가스, 전력 등 주요 기간산업의 사유화가 더욱 촉진될 것”이라며 “이미 주요 공공부문의 사유화를 허가하라는 미국의 압력이 점점 거세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가격을 높이는 ‘이상한 경쟁’

이러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산업자원부가 직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경쟁을 통한 가격 합리화’ 논리다.

하지만 가스공사 노동조합은 이러한 논리가 가스시장 자체의 특성을 무시한 ‘무분별한 경쟁 신봉’의 결과라고 주장한다.


가스산업은 크게 상류-중류-하류 부문으로 나뉘는 데 상류는 탐사와 개발, 액화를 담당하는 부분으로 엑손 모빌, BP와 같은 국제 오일 메이저가 독점하고 있다. 가스공사가 독점하고 있는 부분은 수송과 저장을 담당하는 중류로, 도시가스가 독점하고 있는 가스 송출은 하류로 분류된다.


현재 우리나라는 LNG 완전 수입국으로 상류 부문 참여가 활발하지 못하다. 바꿔 말하면 가스는 ‘사오는 사람 마음’이 아니라 ‘파는 사람이 배짱’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10월 가스공사가 LNG 도입을 위해 계약을 추진하고 있는 외국의 한 공급선을 발전 자회사가 접촉하는 일이 일어났다. 가스공사 관계자는 “당시 공급선 쪽 계약 담당자가 창구를 단일화 해 협상해도 모자랄 판에 두 곳이 협상을 하자는 것은 가격을 더 높여도 좋다는 뜻이냐며 의아해 했다”고 전했다. 결국 이 협상은 발전 자회사의 협상 철회로 해프닝에 그쳤다. 공급선 입장에서 보면 판로가 늘어나는 것이므로 전혀 아쉬울 것이 없다는 점을 보여준 사례다.

 

메이저화야, 분할이야?

이처럼 가스산업은 우리나라의 도입선끼리 경쟁을 도입해도 가격 인하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구조를 가지고 있다. 때문에 지난해 산업자원위원회 국감에서는 상류부문에 참여할 수 있는 에너지 메이저기업 육성 방안이 집중적으로 논의되기도 했다.

열린우리당 김교흥 의원은 “에너지 자원의 97%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나라가 국민경제의 ‘혈액’에 해당하는 에너지 자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서는 에너지기업을 메이저화해 에너지원 개발과 탐사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도 에너지기업 메이저화를 위한 다양한 방안 마련에 나섰다.


하지만 LNG 직도입은 오히려 에너지기업 메이저화 정책에 역행하는 조치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실제로 BP가 주도하고 있는 인도네시아 탕구 LNG 프로젝트에서 연간 700만톤을 도입하는 중국의 ‘후지안’은 이 프로젝트에 15%의 지분을 참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았다. 하지만 동일한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포스코와 SK는 지분 참여를 전혀 하지 못했다.

BP사가 대규모 물량을 도입하는 업체에게만 상류부문 지분 참여를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경대학교 경제학과 홍장표 교수는 “도입부문이 쪼개질수록 자원보유국과의 에너지 자원개발 사업, 플랜트 건설 참여 기회 등 국가적 협력사업 추진의 기회가 상실된다”며 “정부의 에너지 정책이 갈짓자를 그리고 있다”고 우려했다.

 

도시가스 요금 인상 불가피

식량과 더불어 2대 필수재인 에너지의 ‘공공성’이 크게 손상 받을 우려가 있다. 도시가스는 기름의 3분의 1 가격으로 ‘서민 연료’로 각광 받고 있다. 현재 가스공사의 전국적 주 배관망은 2451㎞ 규모로 도시가스 공급 시군은 77개다.

그런데 주 배관망이 통과하는데도 아직도 도시가스가 공급되지 않는 지역이 13개 시군에 달한다. 이중 8개 지역은 아예 공급 계획 자체가 없는 곳으로 가구수가 적어 수요가 미달되다 보니, 지역의 도시가스가  수익성 보장이 안 된다는 이유로 신청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스공사 노동조합 배경석 기획국장은 “공공성을 최우선의 가치로 지켜야 하는 공사 체제에서도 수익성 논리를 앞세워 서민을 위한 가스 공급을 외면하는 상황인데 민영화가 되면 공공성의 파괴나 가격 인상은 불 보듯 뻔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난달 들어 포항지역의 도시가스 요금은 12% 인상됐다. 포스코가 LNG를 직도입하자 포항도시가스사가 공정용으로 포스코에 공급하고 있는 산업용 물량의 대량 이탈을 예상해 도시가스 요금을 인상한 것이다.


한국가스공사 관계자는 “이미 상당수의 발전·산업용 사업자들이 민간부문의 직도입 물량과 동등한 가격으로 LNG를 공급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며 “직도입이 전면 허용되면 발전용 수요의 이탈로 인한 손해분을 가정용 가격 인상으로 메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특히 가스공사의 기존 LNG 도입 계약은 TOP 조항이 적용되기 때문에 공급가격 상승 우려가 더 짙다. TOP는 ‘Take or Pay’의 약자로 계약물량을 인수하든 인수하지 않든 대금을 지급해야 하는 약속이다. 이는 공급업체와 구매업체가 신뢰 관계를 바탕으로 한 제도인데 LNG 수요국은 안정적 공급을 위해 다소 높은 값을 지불하더라도 이러한 방식의 장기 계약을 체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때문에 자가용 LNG 직도입 확대로 인해 수요와 공급이 일치하지 않게 되더라도 가스공사는 기존 계약분에 대한 비용을 지불해야 하고, 이 지불은 당연히 소비자가 지게 된다는 것이 공사측 설명이다. 가스는 수요가 줄었다고 해서 마음대로 안 사올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는 얘기다.

산업자원부는 이러한 문제제기를 의식, 한전 발전 자회사에게 보낸 공문을 통해 “발전 자회사가 LNG 직도입 계획을 별도로 추진할 경우 국가 전체적으로 장기 천연가스 수급 계획상 필요한 연간 500만톤을 초과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하고 “LNG 직도입을 허용하되 도입물량은 TOP 방지를 위해 500만톤 규모에서 합리적으로 조정한다”고 밝혔다.


또 다른 문제는 설비과잉이다. 현재 포스코는 LNG 보관을 위한 설비증설을 마쳤고 LG 칼텍스정유도 장기적으로 700만톤의 LNG 저장이 가능한 설비를 증설 중이다. LNG는 영하 165℃의 초저온 가스로, 보관 및 운반에 막대한 예산이 소요된다.

에너지 전문가들은 “LNG 직도입 허용은 저장시설 추가건설비용과 공급시설 중복투자, 운영의 효율성에서 상당한 낭비를 일으킨다”고 지적한다. 문제는 설비과잉으로 인한 투자비용 역시 공급비용의 상승을 초래한다는 점이다.


결국 가스 시장 개방화의 신호인 ‘LNG 직도입’은 에너지산업의 공공성에도 국가 에너지 안보에도 위험한 ‘적과의 동침’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과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러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산자부의 LNG 직도입 허용 방침은 이미 활시위를 떠났다. 가스공사와 남부·동서·서부·중부 등 4개 발전회사는 2005년 1월 10일까지 도입계약 협상건을 제출해야 하고 산자부는 이중 우수한 계약건을 선정해 최종 승인할 방침이다.


새해 벽두부터 시작될 가스공사와 발전자회사의 ‘결투’가 전 세계적 에너지 확보 전쟁과 공공 에너지 정책에서 이기기 위한 ‘전초전’이 될 것인지, 97%를 수입에 의존하는 완전 에너지 수입국만의 ‘내전’이 될 것인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