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르디우스의 매듭 끊은 국회, 정국은 격랑 속으로
고르디우스의 매듭 끊은 국회, 정국은 격랑 속으로
  • 성상영 기자
  • 승인 2018.06.15 17:39
  • 수정 2018.06.15 18: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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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시간 단축과 최저임금 범위 확대… 다음은?

[리포트] 요동치는 하반기 노정 · 노사관계

민주노총(위원장 김명환)이 5월 22일 새로운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불참을 선언했다. 지난 4월 23일 제3차 노사정 대표자회의에서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밑그림에 합의한 지 한 달 만이다. 민주노총은 이어서 5월 28일 총파업을 벌였다. 한국노총도 최저임금위원회(최임위) 노동자위원 사퇴 카드를 꺼냈다. 노동시간 단축 및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등 국회가 입법을 통해 정국을 주도하면서 올 하반기 노정관계는 크게 요동칠 전망이다.

노동계 반발 아랑곳 않고 내달린 국회

5월 28일 최저임금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재석 의원 198명 중 찬성 160명, 반대 24명, 기권 14명이었다. 당초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최저임금법 산입범위 확대에 합의한 상황이었고, 본회의 통과는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었다. 앞서 21일 환경노동위원회(환노위) 고용노동소위원회가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간 이후,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등 노동계의 반발이 무색하리만치 일사천리로 과정이 진행됐다.

이번에 국회를 통과한 최저임금법 개정안에 따르면 1개월마다 지급하는 상여금과 식대·교통비 등 복리후생 성격의 임금이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포함된다. 지금은 기본급과 직무수당처럼 월 1회 이상 지급하는 임금 중에서도 노사가 미리 정한 근무시간 또는 근무일에 대한 부분만 최저임금에 반영한다. 상여금은 대개 ‘연 몇%’처럼 1년을 주기로 산정하고 복리후생비는 근무의 대가가 아니라 소득을 보전하기 위한 수당이기 때문에 최저임금 계산에서 제외하고 있다. 개정 최저임금법은 내년 1월부터 시행된다.

당초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논의는 최임위에서 진행됐다. 지난해 최임위 노·사·공익위원들은 제도개선TF 권고안을 토대로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를 비롯한 ▲가구생계비 계측 및 반영 방법 ▲업종·지역별 구분 적용 ▲최저임금 결정구조 및 구성 개편 ▲최저임금 준수율 제고 ▲최저임금 인상이 소득분배 개선에 미치는 영향 등 6개 쟁점을 다뤘다. 하지만 노사는 결론을 내지 못한 채 지난 3월 6일 논의를 종결했다.

최임위 제도개선TF의 권고안은 매월 지급하기만 하면 상여금도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포함한다는 것이었다. 단, 임금총액을 유지하면서 상여금을 1개월 단위로 쪼개 지급하는 것은 근로기준법에 따른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이 아니라는 점을 명문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 복리후생비는 ‘현행 유지’(1안)와 ‘매월 일률적으로 지급되는 현금성 임금 산입’(2안), ‘2안에 더해 현물로 제공되는 금품 산입’(3안) 등 세 가지 방안을 내놨다.

국회가 의결한 최저임금법 개정안에는 최임위 제도개선TF의 권고안이 거의 그대로 담겼다. 정부·여당도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쪽으로 가닥을 잡은 가운데, 국회 환노위는 최임위의 협상이 결렬된 다음 날인 3월 7일 최저임금법 개정을 위한 의사일정을 수립했다. 이에 노동계는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한국노총은 “국회 논의가 사용자 측에 편향되어 무분별하게 산입범위를 확대하는 제도 개악으로 귀결되지 않아야 한다”고 우려했다. 민주노총은 “산입범위를 제외한 5개 과제에 대해서는 TF 권고안을 중심으로 합의안을 마련할 수 있을 정도의 공감이 있었다”며 반발, 노동계가 논의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동계는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를 담은 최임위 제도개선TF 권고안이 국회 주도로 실현되는 것에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노사관계 주도권은 노사에 있지 않다

국회 환노위가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입법을 본격화 하자 노동계는 다시 최임위로 공을 넘기라고 요구했다. 새로 구성된 11기 최임위에서 노사 당사자 간 협상을 통해 문제를 매듭 짓겠다는 명분이었다. 5월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는 민주노총 조합원 수백 명과 경찰 병력이 몸싸움을 벌이는 와중에 회의장에서는 환노위 법안심사소위원회가 열리고 있었다. 석상에는 양대 노총과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등 노사 3단체의 관계자들이 참석해 “최저임금제도가 사회적 대화를 통해 결정되도록 법안 심사를 중단해 달라”고 요청했다. 경총이 양 노총에 동조한 배경을 놓고 갖은 추측이 나왔지만, 다른 사용자단체들의 항의에 ‘국회 논의’ 쪽으로 돌아서면서 해프닝으로 일단락됐다.

노동계는 ‘최임위 논의’ 주장은 수용되지 않았다. 최임위가 지난 3월 6일 최저임금제도 개선 논의를 중단해 놓고 다시 협상 테이블을 옮기자는 요구를 국회가 받아들일 리 만무했다. 당장 내년도 최저임금 심의기한이 6월말로 다가온 상황에서, 최임위가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에 관한 결론을 기한 내에 낼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 시각이 환노위 위원들 사이에서 지배적이었다. 관련해 5월 21일 환노위 법안심사소위 회의장 밖에서는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 겸 환노위원장과 김경자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 사이에 말다툼이 벌어지기도 했다.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문제를 최임위로 되가져와야 한다는 노동계의 주장이 설득력을 갖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노동계가 그러한 입장을 고집한 배경에는 지난 2월 노동시간 단축 법안에 이어 국회가 또 한 번 의제를 쥐고 간다는 데 대한 문제의식이 있었던 걸로 보인다.

2월 2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1주일을 7일로 명확히 하고 노동시간 상한을 주52시간으로 정하는 한편, 노동시간 상한의 특례가 적용되는 업종을 기존 26개에서 5개로 줄이는 내용을 담았다. 과거 고용노동부는 휴일(유급)과 휴무일(무급)을 제외하고 1주일을 5일로 해석해 최대 주68시간(주40시간 + 연장근로 12시간 + 휴일근로 16시간)까지 근무가 가능하다고 봤다. 국회는 고용노동부의 이 같은 행정해석을 폐기하면서도 연장근로수당과 휴일근로수당을 중복 할증하지 않기로 했다. 또 기업 규모에 따라 오는 2022년까지는 주52시간 상한이 적용되지 않도록 유예했다.

노동계는 주52시간 상한과 관공서 공휴일 규정의 민간 적용 등은 긍정적으로 평가한 반면, 나머지에 대해서는 불만들 드러냈다. 특히 휴일·연장근로수당을 중복 할증하지 않은 점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또 일부 내용을 자신들과의 협의 없이 국회가 일방적으로 담았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노동시간 단축은 법 시행 이후에도 적잖은 논란을 야기할 전망이다.

결과적으로 노동시간 단축과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라는 핵심 노동현안 두 가지 모두 국회 의사봉을 통해 결판이 났다. 노동시간 단축의 경우 지난 2000년 당시 노동부의 “휴일근로는 연장근로에 포함하지 않는다”는 행정해석이 나오고 2015년에서야 9.15 노사정 합의를 통해 실마리를 찾았다. 그로부터 또 다시 만2년이 지나고서 주52시간 상한 법제화가 이루어졌다.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여부는 올해 최저임금을 결정한 지난해 최임위에서 노사가 논의를 시작했다가 끝내 결론 도출에 실패했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앞에 놓고 노사가 시간을 보내는 사이 국회가 와서 칼로 내리쳐 버린 형국이다. 노동이슈를 주도하는 쪽은 노도 사도 아닌 국회였다. 어차피 노동시간 단축과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모두 입법을 필요로 하는 사안이었다고는 하나, 노동현안만큼은 당사자 간 합의 내용에 기반을 둬야 한다는 정서가 있었다. 하지만 오랫동안 합의에 이르지 못했고 국회는 사안의 긴박함을 내세우며 입법에 나섰다. 더구나 노조 조직률이 10% 밖에 안 된다는 점은 노동계가 노동현안의 주도권을 잡는 데 늘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했다.

사회적 대화로 불똥, 노정관계 다시 암흑기로?

노동계는 국회의 ‘독주’에 사회적 대화 중단으로 응수했다. 우선 한국노총은 최임위를 보이콧하기로 했다. 한국노총은 28일 국회 본회의를 앞두고 긴급 산별대표자회의를 거쳐 이 같은 대응방향을 확정했다. 한국노총 소속 최임위 노동자위원들은 5월 29일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일괄 사퇴를 발표하고 위촉장을 반납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최저임금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주장도 덧붙였다. 한국노총이 민주당과 맺었던 정책연대를 파기할 조짐도 보인다.

민주노총은 이보다 앞서 최저임금법 개정안이 환노위 법안심사소위에서 의결되자마자 노사정 대표자회의와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불참을 선언했다. 김명환 위원장은 집행부 출범 이후 민주노총 내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대화의 필요성을 피력하며 노사정 대표자회의에 참석했다. 5월 중 민주노총에서 열릴 예정이던 제4차 노사정 대표자회의는 개최 여부가 불투명해졌다. 28일 하루 2시간 총파업을 했던 민주노총은 하반기 또 한 번의 총파업을 시사했다.

현재로서는 최임위와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모두 파행이 불가피하다. 노동계가 노동 관련 의제의 당사자로서 주도권을 상실했다는 점 때문에 사회적 대화의 판을 깨뜨리는 악수를 둘 수밖에 없었을 걸로 보인다. 한국노총은 5월 28일 “정부·여당의 후속조치 여부에 따라 일자리위원회 등 각종 노정교섭,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등 사회적 대화기구 전반에 대한 불참으로 범위를 넓히겠다”고 박혔다. 민주노총은 22일 “노사중심성에 따른 사회적 대화기구인 최저임금위원회로 관련 논의를 이관할 것을 제안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집권 여당에 더 이상 희망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