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 잠 자고 가세요!
꿀 잠 자고 가세요!
  • 강은영 기자
  • 승인 2018.09.07 09:52
  • 수정 2018.09.07 09: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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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노동자 쉼터 개소 1주년

어렸을 때 여름방학을 맞아 정겨운 시골내음이 풍기고 넉넉한 할머니의 인심이 가득한 외갓집으로 놀러간 기억이 있다. 꿀잠은 서울로 상경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잠시나마 마음의 평안을 줄 수 있는 ‘여름방학 외갓집’ 같은 곳을 만들기 위해 지어졌다. 올해 8월 꿀잠은 개관 1주년을 맞았다. 지난 1년의 시간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어떤 계획을 세우고 있을까.

작지만 아담하고 아름다운 집

아주 깊고 달게 잤을 때 “꿀잠 잤다”라고 말한다. 꿀잠은 서울에서 투쟁하는 비정규 노동자들을 위한 쉼터로 만들어졌다. 쉼터의 살림을 담당하고 있는 김소연 운영위원장 역시 과거 비정규 노동자로 투쟁에 선봉에 선 경험이 있다.

김 운영위원장은 기륭전자 파견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랜 시간 싸운 당사자다. 투쟁 끝에 회사와 정규직 복귀하는 것을 합의했다. 농성장을 정리하고 활동을 위한 사무실을 마련해야 했다. 이 때 조합원들이 사무실을 얻을 때 가장 강조한 것이 화장실이었다. 회사 앞에서 농성할 때 가장 힘들었던 부분이 화장실이었다는 것에 이견이 없었다. 매번 먼 곳으로 나가 이용해야 했고, 무더운 여름에 씻을 곳이 없어 불편을 겪었기 때문이었다. 조합원들의 요청사항을 받아 회사 앞 빌라에 화장실이 좋고 편안하고 아늑한 사무실을 마련했다. 또한, 재판을 받으러 오거나 같이 연대하는 사람들이 찾아왔다. 같이 밥도 먹고 술 한 잔 하며 투쟁 얘기도 하니 사무실은 어느 순간 사랑방으로 변신했다.

2015년 7월 매번 상경하느라 고생하는 비정규직을 위한 쉼터를 만들자는 제안을 시작으로 시민사회, 문화활동가 등이 함께 참여해 꿀잠의 출발이 이루어졌다. 3억 원을 목표로 전세를 마련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누가 쉽게 집을 빌려 주겠냐며 2년마다 한 번씩 이사를 할 수도 있는데 안정이 되겠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그러면서 10억 원을 모아 집을 사자고 제안했다.

큰돈을 모을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이 많았다. 걱정은 잠시였다. 문정현 신부와 백기완 통일문제연구 소장이 전시회를 열고 판매를 통해 얻은 돈을 기부했다. 스토리펀딩을 통해 쉼터 마련이 알려지면서 시민들의 지원도 이어졌다.

김 운영위원장은 가장 기억에 남았던 노부부의 일화를 소개했다. 아직도 얼굴조차 모르고 그저 이름과 연락처만 아는 분들이지만 비정규직을 위해 도움을 주고 싶었다며 부부가 각자 천만 원을 기부했다. 이후 예산이 부족해 쉼터가 만들어지지 않는 것 같다며 추가로 천만 원씩 더 기부해줬다고 한다. 기자들은 비정규직을 주제로 한 ‘꿀잠’이라는 잡지로 만들어 판매수익금을 기금으로 기부했다.

모아진 돈으로 영등포에 4층짜리 주택을 구입했다. 100일간 리모델링 공사에 1,000명의 자원봉사자들이 함께 했다. 모두의 땀방울이 모여 비정규노동자의 쉼터 ‘꿀잠’이 완성됐다. 현재 2~3층은 임대 중이며, 지하 1층과 1층, 4층과 옥상은 휴게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곳곳에 노동자들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설계를 바탕으로 타일 한 장, 화분 하나까지도 쉼터를 만들기 위해 노동자들이 직접 붙이고 만들어서 공간을 꾸몄다. 쉼터를 소개하는 김 운영위원장의 목소리에는 뿌듯함이 가득했다. 함께 해 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들이었다. 냉장고, 밥솥 등 물건 하나하나가 마음이 담긴 선물들이었다.

꿀잠을 운영하는 지금도 자원봉사자들의 힘이 많은 도움이 됐다. 김 운영위원장은 정부의 지원 없이 당사자들이 주체적으로 제안을 해 만든 쉼터는 처음이기 때문에 다들 이런 곳이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직접 손을 걷어 부친 것이라고 설명했다.

매 순간순간이 기적

1년을 맞이한 김 운영위원장은 ‘기적 같은 일’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개소를 하고 넓은 공간에 많은 사람들이 이용할까라는 걱정도 있었다. 하지만, 지난 1년간 공간 이용자는 2,400여명이며, 숙박을 이용한 사람들은 1,500여명이다. 비정규직노동자 등 노동자는 37%, 부문투쟁 등 시민사회활동가 23%, 청년학생 36%가 시설을 이용했다. 김 운영위원장은 “쉼터를 이용하며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싸움을 존중받고 응원해주는 마음을 느꼈으면 한다”고 전했다.

지난 1년간 많은 사람들이 쉼터를 이용했지만 그 중에도 기억에 남았던 이용객이 있다. 쉼터에는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숙식공간이 있다. 최근에 제주에서 온 인문학 동아리 학생들이 찾아왔다. 그 중 장애 학생이 있었는데, 처음으로 장애인실을 이용했다며 기억에 남았던 이용자 중 하나라고 꼽았다. 그 학생은 숙소 보완점을 말하며 거듭 고마움을 전했다. 서울에 가끔 오지만 일정 규모 이상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숙소가 있긴 하지만 묵을 곳이 만만치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비정규직을 위한 쉼터에 장애인을 생각해주는 공간까지 마련한 꿀잠에 감동받았다고 한다.

반성폭력 교육을 위해 찾아온 라이더들의 모임도 빠질 수 없다고 덧붙였다. 학생들이 시설을 많이 이용하는 방학 기간에는 소음으로 인한 민원이 들어오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교육을 위해 라이더들이 찾아와 화려한 오토바이들이 쉼터 주변에 줄을 이었다. 동네주민들이 민원을 넣기 보다는 휘황찬란하게 늘어선 오토바이를 신기해하면 구경했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꿀잠은 비정규 노동자들과 함께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도 진행했다. 쌀이나 김장김치 등의 나눔 활동을 시작으로 여러 투쟁 현장을 찾아가 연대하며 응원의 힘을 보탰다. 특히 파인텍 고공농성을 하는 조합원들을 위해 매번 도시락을 만들어 전달하는 일을 계속해서 하고 있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오랜 시간 함께 투쟁을 해왔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고 싶은 심정이라고 설명했다.

김 운영위원장은 꿀잠 1주년을 기념해 진행된 특별토론회가 가장 기억에 남았던 행사였다고 밝혔다. 파견법 20년을 맞아 과거에 비해 현재는 얼마나 변했는지 되돌아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기륭전자에 근무했던 조합원과 최근 출범한 방송스태프 노조 조합원이 함께 했다.

김 운영위원장은 “하청 문제가 자회사 방식으로 그나마 해결됐다고 하지만 여전히 하청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라며 “토론회를 통해서 파견법 폐기를 해야 한다는 내용에 다시 한 번 공감을 했고 앞으로 꿀잠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는 시간이었다”고 밝혔다. 또한, “싸우는 노동자들과 함께 행보를 해 나가고 앞서 나가서 제안을 해야 하는 방식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고 말했다.

일반 시민들도 꿀잠과 함께 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도 진행했다. 노동운동의 역사적인 현장을 직접 찾아가보고 노동자들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노동역사기행을 진행했다. 마석모란공원을 시작으로 구로공단, 전태일 열사와 빈민 운동의 시작인 청계천을 다녀왔다. 또한, 꿀잠을 응원하는 꽃다지의 문화콘서트 등 문화 활동가들의 공연들이 열렸다.

처음에 가능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으로 시작한 쉼터 꿀잠은 비정규 노동자뿐만 아니라 대학생활동가, 일반 시민들이 함께 하고 있다. 김 운영위원장은 “매일이 새로움을 느끼며 무언가가 만들어진다는 생각에 기쁨이 크다”고 그 소감을 전했다. 이어서 “이용하는 분들이 이 공간이 정말 좋고 잘 지어졌다는 느낌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는데 다녀간 사람들이 이와 같은 말을 할 때마다 뿌듯함을 느낀다”고 밝혔다.

김소연 비정규노동자쉼터 꿀잠 운영위원장

‘비정규직’이 없어질 수 있도록

꿀잠은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보다 더 전진하는 것이 목표다. 김 운영위원장은 “차별에는 정규직 비정규직의 차별도 있지만 여성과 남성의 차별도 있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차별도 있다”며 “모든 차별을 없애기 위해 더 열악한 상황에서 싸우는 분들을 위한 힘이 되는 공간이 되고 그런 역할을 하는 것이 꿀잠의 목표”라고 설명했다.

꿀잠의 입구에는 문턱이 없다. 많은 사람들이 다녀간 꿀잠이 어떻게 기억됐으면 좋겠냐는 질문에 ‘내 집’이라는 생각이라는 생각으로 다녀갔으면 한다고 소망을 드러냈다.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언제든지 이용하고 기억할 수 있는 꿀잠이 됐으면 하는 게 김 운영위원장의 바램이다. 또한, 공간을 통해서 다양한 투쟁 방법을 모색하고 제안해 또 다른 투쟁을 시작하는 장소로 쓰였으면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더 이상 비정규노동자의 쉼터로 남지 않았으면 한다. 20년이 된 파견법을 폐지하고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만들어서 ‘꿀잠’이 비정규직이 찾는 공간이 아닌 과거에 비정규직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박물관으로 바뀌었으면 한다고 전했다.

최근에 부산과 창원에서 노동자들을 위한 쉼터를 만들기 위한 준비에 들어가고 있다. 김 운영위원장은 “꿀잠이 만들어지고 나서 영향을 끼친 것 같다”며 “전국에 비정규직을 위한 쉼터가 네트워크를 형성에 서로 도움을 줄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고 앞으로 활동을 전개해 나갈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꿀잠 운영을 위해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다녀간다. 하지만, 많은 이용객이 다녀가는 만큼 상근활동가를 늘려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고 전했다. 김 운영위원장 혼자 상근활동을 이어가고 있었지만 지난 4월 상근 활동가 1명을 추가로 늘릴 수 있게 됐다. 앞으로도 인원을 더 늘릴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보다 많은 시민들이 꿀잠 회원으로 함께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또 다른 과제라고 생각한다면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 예정이다. 오는 10월에는 나병으로 알려진 한센병 환자들의 한이 서려있는 소록도로 노동역사기행을 진행한다. 투쟁으로 인해 몸이 좋지 못한 노동자들을 위해 척추를 바로 잡을 수 있는 몸살림 교실을 진행할 예정이다.

꿀잠을 계획하고 지금까지 운영해오면서 많은 시민들이 비정규직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관심이 도움의 손길로 이어지고 있다. 김 운영위원장은 “직접 현장에 나가 함께 투쟁을 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후원을 하는 것도 하나의 행동이라고 생각 한다”며 “꿀잠에 많은 분들이 발걸음을 하는 것도 또 다른 실천이 될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