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는 잘 자고 있는지 가볼까요?" 학교비정규직 1박 2일 노숙투쟁
"청와대는 잘 자고 있는지 가볼까요?" 학교비정규직 1박 2일 노숙투쟁
  • 정다솜 기자
  • 승인 2019.07.19 16:47
  • 수정 2019.07.31 23:05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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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공무직본부, 청와대 앞 1박 2일 대규모 노숙
'교육부와 교육청은 공정임금 지켜라!'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청와대 앞에서 출근길 피케팅을 진행하고 있다. ⓒ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19일 아침 1박 2일 노숙투쟁을 마친 전국교육공무직본부 소속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아침 체조를 하고 있다. dsjeong@laborplus.co.kr

"선생님, 학교 다닐 때 공부 못했죠? 전문대 나왔어요?"

한 초등학교 사서교사에게 4학년 학생이 물었다. 교사는 머릿속이 복잡했다. 아이에게 무슨 이야길 해야 할까? 내가 서울대를 나왔다고? 아이를 붙들고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되는 걸까? 

"왜 그렇게 생각해?" 

"선생님은 좋은 대학을 못 가서 비정규직이래요."

교사는 그건 잘못된 생각이라고 차분하게 설명했지만 아이의 얼굴은 여전히 물음표였다. 왜 선생님만 그런 말을 하느냐는 표정이었다.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 전국교육공무직본부(이하 교육공무직본부) 안명자 본부장이 상담한 초등학교 사서교사의 사례다. 안명자 본부장은 "교육공무직 노동자들과 상담을 할 때마다 비정규직 자체가 그 사람의 명찰이 된다는 생각이 든다"라며 "학교는 보이지 않는 줄 세우기가 아주 심각한 곳"이라고 말했다. 안명자 본부장도 7년간 학교에서 특수교육지도사로 일하며 전문성을 키우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하려고 했다. 그러자 학교장은 해고를 통보했다. 학교장은 그럴 거면 정규직인 특수교사로 다시 들어오라고 조언 아닌 조언을 했다.

이러한 사연 하나씩은 있는 학교비정규직(교육공무직) 노동자들이 속한 교육공무직본부는 공정임금제(9급 공무원 임금의 80% 수준) 실현 등을 통한 정규직과의 차별해소를 요구하고 있다. 

학교비정규직의 정의는 특별히 법령 등으로 정해진 바는 없으나 교육공무직본부 측은 고용(신분) 안정이나 각종 처우 등에서 정규직과 다른 특징을 가진 노동자, 즉 '정규직과 다른 특징을 가진 노동자'를 학교비정규직으로 본다. 
  
교육공무직본부를 비롯해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전국여성노동조합 등이 속한 전국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이하 연대회의)는 지난 3일부터 사흘간 이어진 총파업을 벌인 바 있다.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학교 현장에 복귀했지만 연대회의와 교육당국 간 교섭 진행은 불투명한 상태다. 3일 총파업 이후 열린 실무교섭과 본교섭에서 '교육부 관계자의 교섭위원 참석 여부', '기본급 인상안' 등을 두고 양측이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해서다. 

지난 16일 연대회의와 교육당국 간 본교섭이 파행된 뒤 교육공무직본부는 교육당국의 성실한 교섭태도를 요구하며 투쟁에 돌입했다. 18일에는 결의대회와 1박 2일 청와대 노숙 투쟁을 벌였다. 이날 결의대회에는 약 500여 명이 참가했다. 이 중에서 100여 명이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노숙투쟁에 들어갔다. 

19일 아침 8시 1박 2일 노숙투쟁을 마친 교육공무직본부 소속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만나봤다. 

'교육부와 교육청은 공정임금 지켜라!'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청와대 앞에서 출근길 피케팅을 진행하고 있다. ⓒ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교육부와 교육청은 공정임금 지켜라!'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청와대 앞에서 출근길 피케팅을 진행하고 있다. ⓒ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우리의 목표는 2차 총파업이 아닌 교섭 진행이다" 

학교 도서관 사서로 17년째  일하고 있는 임미현 씨는 그제(17일) 급여를 받았다. 3일 총파업으로 3일 치 급여가 깎인 상태였다. 곧 학교 여름방학이라 약 두 달간 월급도 없는데 막막했다. 임미현 씨는 365일 중 275일만 근무하는 방학 중 비근무자다. 다시 총파업에 나서기 어려운 현실이다. 임미현 씨는 "2차 총파업 전에 교섭이 재개돼서 다시 교육지원을 열심히 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며 "저희가 마치 파업이나 계속 준비하고 있는 것처럼 비춰지는 모습이 안타깝다"라고 말했다. 

"청와대에서는 잘 자고 있는지 가볼까요?" 

이날 새벽, 자꾸 날아드는 모기와 태풍 '다나스'의 영향으로 날씨는 습했다. 스티로폼 깔개에 누운 채 잠을 설치던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말했다. "저기 청와대에서는 잘 자고 있는지 가볼까요?" 새벽 3시 30분이었다. 

부산에서 학교교무실무원으로 일하는 채관림 씨는 "벌레가 많았던 것 빼고 노숙투쟁은 버틸만 했다"라며 " 지금 치위생사로 실습 나가 있는 대학생 딸이 생각났다. 치위생사들의 근무 환경도 좋지 않은데 미래 세대가 더 안정적인 직장에서 일할 수 있도록 세상을 바꿔나가고 싶다"고 밝혔다.

"절박하니까 노숙 투쟁을 시작한 거다" 

전라북도에서 학교조리사로 근무하는 명민경 씨는 "절박하니까 노숙 투쟁을 시작한 거다. 공정임금제는 문재인 정부가 먼저 약속한 것"이라며 "청와대와 정부에게 약속을 지키라고 요구하기 위해 청와대 앞에서 1박 2일 노숙을 한 것"이라며 노숙 투쟁 이유를 설명했다.

이날 아침 9시 교육공무직본부는 사랑채 앞에서 피케팅을 한 뒤 해단식을 진행했다. 안명자 교육공무직본부 본부장은 "아침에 출근으로 학교 현장에 돌아가신 분들이 상당하다. 수고했다는 인사를 못해 아쉽다"며 "우리의 요구사항을 청와대에 잘 전달하겠다"고 말했다. 

해단식에서 안명자 교육공무직본부 본부장, 손두희 경남지부장, 이윤희 인천지부장은 청와대에 ▲공정임금제 실행 ▲교육공무직법제화 등의 내용이 담긴 요구안을 전달했다. 

안명자 전국교육공무직본부 본부장이 청와대 앞에서 '공정임금 약속이행 청와대가 책임져라' '제대로된 비정규직 정규직화 실시하라' 피켓을 놓고 서 있다. ⓒ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안명자 전국교육공무직본부 본부장이 청와대 앞에서 '공정임금 약속이행 청와대가 책임져라' '제대로된 비정규직 정규직화 실시하라' 피켓을 놓고 서 있다. ⓒ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청와대 앞에서 구호를 외치며 아침 피케팅을 하고 있다. ⓒ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청와대 앞에서 구호를 외치며 아침 피케팅을 하고 있다. ⓒ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노숙농성을 진행한 전국교육공무직본부가 효자치안센터 근처에서 노숙투쟁 중인 톨게이트 해고 노동자들에게 아침 주먹밥을 전달했다. ⓒ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노숙농성을 진행한 전국교육공무직본부가 효자치안센터 근처에서 19일째 노숙투쟁 중인 톨게이트 해고 노동자들에게 아침 주먹밥을 전달했다. ⓒ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18일 저녁 전국교육공무직본부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만든 요구 현수막 ⓒ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18일 저녁 전국교육공무직본부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만든 요구 현수막 ⓒ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전국교육공무직본부의 요구사항이 담긴 서한을 손두희 경남지부장, 안명자 본부장, 이윤희 인천지부장이 청와대에 전달했다. ⓒ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전국교육공무직본부의 요구사항이 담긴 서한을 손두희 경남지부장, 안명자 본부장, 이윤희 인천지부장이 청와대에 전달했다. ⓒ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