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물류서비스발전법, 택배 노동자는 ‘환영’ 배달 노동자는 ‘규탄’
생활물류서비스발전법, 택배 노동자는 ‘환영’ 배달 노동자는 ‘규탄’
  • 손광모 기자
  • 승인 2019.08.07 18:23
  • 수정 2019.08.07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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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일 법안 발의 … ‘제도 공백’ 메울 수 있을까?
라이더유니온, 배달 노동자 안전조치에 플랫폼 기업 공동책임 강조
2018년 6월 20일 청와대 앞에서 민주노총 서비스연맹과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이 진행한 기자회견 현장. ⓒ강은영 기자 eykang@laborplus.co.kr
2018년 6월 20일 청와대 앞에서 민주노총 서비스연맹과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이 진행한 기자회견 현장. ⓒ 강은영 기자 eykang@laborplus.co.kr

지난 8월 2일 발의된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대표발의 박홍근, 이하 생활물류서비스발전법)을 둘러싸고 노동계의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택배업계 노동자들은 환영 의사를 밝혔지만, 배달업계 노동자들은 ‘사용자를 위한 법’이라고 비판했다. 어떤 지점에서 이들의 평가가 갈렸는지 <참여와혁신>이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생활물류서비스법, 왜 나왔나?

생활물류서비스산업 발전법은 관련제도를 정비하여 혼란을 막고, 생활 물류 산업을 지원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제도 정비와 산업 발전,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려 한 것이다.

현행법상 ‘택배서비스’에 특화된 법적 기반은 없는 상태다. 지난 1989년 12월 30일 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으로 소화물일관수송업(일명 택배업)이 제도화됐지만 1997년 IMF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규제철폐의 일환으로 업종구분이 폐기됐다.

택배서비스사업과 배달대행서비스사업은 현재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이하 운수사업법)’의 적용을 받는다. 하지만 딱 맞아 떨어지지는 않는다. 운수사업법은 ‘기업 간’ 물류화물 거래를 중점으로 다루며, 차량의 공급, 운송과 중개에 대한 규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운송 차량뿐만 아니라 물품의 분류, 배송을 위한 정보망 등 택배와 배달대행사업을 위한 규정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렇다보니 그간 제도의 공백이 컸다. 현행 운수사업법에 따르면 이륜자동차는 화물자동차로 사용할 수 없다. 엄격한 의미에서 오토바이를 이용해 배달하는 ‘퀵서비스’는 위법인 셈이다. 또한 국가 외에 타인을 위한 서신 송달행위를 금지하고 있어(우편법), 이륜차를 사용해 서류나 물건을 배송하는 일도 법에 저촉된다.

제도 정비뿐만 아니라 생활물류서비스발전법은 산업육성도 꾀하고 있다. 법안 발의문에서는 “배송대행 서비스는 플랫폼 기술과 드론 등 새로운 운송수단의 등장으로 성장잠재력이 큰 업종이다. 서비스 품질이 높고 근로여건이 우수한 업체를 중심으로 시장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인증제와 같은 지원제도 도입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법안은 △발전 기본계획 수립 의무화(27조) △국가와 지자체의 지원 근거 마련(31~32조) △창업 지원 및 인력 양성 정책(33~37조) △시설 확충을 위한 지원 특례(38~40조) 등을 규정하고 있다.

택배업계 노동자들은 ‘합격점’

택배업계 노동자들은 발의안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민주노총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과 참여연대,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등은 지난 8월 4일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 발의를 환영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서에서는 생활물류서비스발전법이 △사용자와 종사자의 정의 및 책임 △원청의 영업점에 대한 관리 감독 책임 △종사자의 보호 및 서비스의 질 향상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 △사고로부터 안전장치 △일자리 안정 △요금에 대한 백마진과 리베이트 금지 등을 규정했다며, 택배 노동자의 권익 신장을 기대했다.

구체적으로 법안을 살펴보면, 택배서비스사업을 하려면 운송사업 허가를 취득해야 하고, 시설, 장비, 영업점 등 관련 사항을 국토교통부 장관에게 등록 및 주기적 신고를 해야 한다.(5조와 6조) 택배물 파손 등 손해배상 대해서는 사업자와 노동자가 연대해서 책임을 지도록 해 여태껏 택배 노동자만 일방적으로 손해를 떠안는 문제를 개선했다. 택배 노동자 안전문제도 개선했다. 산업재해취약 평가를 받은 위탁택배사업자는 위탁계약을 해지하도록 했다.(7조에서 9조)

더불어 택배운전종사자에게 택배서비스사업자와의 위탁계약 갱신 청구권을 6년간 보장하고, 택배사업자가 계약을 해지하려는 경우에는 계약 위반 사실을 명시한 시정요구를 2회 이상 하도록 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불안정한 택배노동자의 고용문제에 도움이 되는 규정이다.(10조 및 11조)

2019년 7월 25일 광화문 앞 라이더유니온이 주최한 기자회견 현장.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배달 노동자와 택배 노동자가 함께 폭염 및 폭우 등 기후변화에 따른 야외 노동자의 위험을 증언했다.
2019년 7월 25일 광화문 앞 라이더유니온이 주최한 기자회견 현장.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배달 노동자와 택배 노동자가 함께 폭염 및 폭우 등 기후변화에 따른 야외 노동자의 위험을 증언했다. ⓒ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배달노동자는 누가 책임지나? 

하지만 배달업계 노동자들의 평가는 달랐다. 법안 발의 이후 바로 다음날(3일) 라이더유니온은 '사업자는 꽉찬 혜택, 라이더는 텅 빈 권리. 이것이 4차 산업혁명의 본질?'이라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은 지난 7월 5일 기자회견장에서 “배달산업은 규제가 많아서 힘든 게 아니라 규제가 없어서 문제”라고 지적한 바 있다. 생활물류서비스발전법이 배달산업의 ‘제도 공백’을 해결하지 못했다고 본 것이다. 

현재 배달산업 구조는 크게 소비자와 영업점, 주문플랫폼, 배달대행플랫폼 네 부분으로 나뉜다. 소비자가 주문플랫폼을 사용해서 영업점에 주문을 하면, 영업점은 다시 배달대행플랫폼에 주문하여 소비자에게 배달하는 구조다. 여기서 배달대행플랫폼은 직접 배달 노동자를 고용하거나 지역의 배달대행업체와 계약하는 형태를 보인다. 사회적 시선은 ‘배달플랫폼’을 단일한 업체로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주문플랫폼과 배달대행플랫폼 두 가지로 구분되는 것이다. 하지만 발의된 법안은 배달대행플랫폼만을 '소화물대행서비스사업'라는 명칭으로 규정하고 있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안 법안의 제19조. 소화물배송대행서비스사업자의 자격 요건을 설명하고 있다. 

라이더유니온은 “플랫폼을 통해 새로운 가치가 창출된 곳은 배달산업이라기보다는 배달주문앱사업”이라며, “배달대행플랫폼은 인건비 절감과 위험회피를 특징으로 하는 ‘린플랫폼’에 가깝다. 동네배달대행업체라는 중간관리자적 성격을 가진 업체와의 유사 프랜차이즈 계약을 통해서 지휘감독을 하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디지털기기로 배달 노동자를 이어주기만 할 뿐 배달대행플랫폼이 새로운 '공유경제'라고 보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또한 이러한 구조에서 배달대행플랫폼이 배달 노동자에 대한 마땅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고 라이더유니온은 비판했다. 

또한, 구교현 라이더유니온 기획실장은 “생활물류서비스발전법에서 배달 노동자의 안전문제를 다루는 규정은 전무하고 사용자를 위한 지원만 가득하다”고 지적했다. 발의된 법안을 따르면, 배달대행서비스사업자의 규제 방식은 허가제가 아닌 ‘인증제’로 진행된다. 강제력이 떨어지는 것이다. 인증의 주체도 국토교통부가 아닌 별도의 심사대행기관을 통한다. 6개 항목의 인증 기준이 명시돼있지만, 구체적인 사항은 국토교통부령으로 확정된다. 구 기획실장은 "산업 육성 목적으로 인증 기준을 낮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안 법안의 제41조와 45조.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안 법안의 제41조와 45조. 해당 조항은 '노력'과 '권장'이 명시돼 있을 뿐 강제력이 없다.

더욱이 배달 노동자의 표준계약서 작성문제와 안전 문제는 ‘권고’와 ‘노력’ 조항에 그치고 있다. 그동안 라이더유니온이 요구해왔던 이륜자동차에 적용되는 과도한 보험료 문제 산업재해 보험 가입 문제 적정단가 보장 및 안전배달료 문제 등은 법안에서 빠져있다.

라이더유니온은 “배달 노동자 안전조치에 있어서도 플랫폼사의 공동책임이 필요하다. 배달플랫폼사의 이윤은 위험과 불안정한 일자리를 감수하고 있는 배달 노동자가 함께 창출한 것”이라며, “배달플랫폼사는 배달 노동자들과 이윤을 공유해 안전한 일자리를 만들어야 할 의무가 있다. 라이더유니온은 8월 2일 발의된 생활물류서비스발전법은 배달플랫폼사업자법이라 규정할 수밖에 없다”고 관련입장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