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다솜의 다솜] 폭력이 은근히 다가올 때
[정다솜의 다솜] 폭력이 은근히 다가올 때
  • 정다솜 기자
  • 승인 2019.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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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 사랑의 옛말. 자꾸 떠오르고 생각나는 사랑 같은 글을 쓰겠습니다.
정다솜 기자dsjeong@laborplus.co.kr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괜찮겠어?" 

가끔 이런 질문을 건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퇴근이 임박해 새로운 일을 지시하면서 "괜찮겠어?"라고 묻는 상사, 약속보다 한참을 늦으면서 더 기다려도 "괜찮겠어?"라고 묻는 직장선배 등이 대표적 예죠.

최근 노동인권단체 '직장갑질 119'가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한 달을 맞아 내놓은 갑질 사례 보고서에도 비슷한 예가 등장합니다. 먹다 남은 음식을 포장해 와 직원들에게 거의 억지로 먹이며 "맛이 괜찮지?" 순한 눈으로 쳐다보는 회사 대표, 폭염에 지친 직원들이 에어컨 온도를 낮추면 윗사람이 와서 춥다며 에어컨 온도를 높이거나 송풍으로 바꾸며 이 정도 온도면 "괜찮지?"라고 묻는 경우 등도 있었습니다. 전후 맥락은 보고서를 통해 알 수 없지만요. 

그럴 때마다 상대의 사과나 솔직한 변명 대신 질문받은 이의 "괜찮다"는 말로 갈음되는 상황은 못마땅합니다. 물론 "괜찮지 않다"는 선택지도 있겠죠. 그러려면 이어지는 미묘한 불편함은 대답한 사람의 몫입니다. 위계 관계일 때는 더 그렇습니다. 괜찮겠냐는 말은 대부분 배려를 가장한 은근한 폭력입니다.

"괜찮겠어?" 뻔뻔한 질문 아래 놓여 무력감에 빠질 때면 허먼 멜빌의 소설 <필경사 바틀비>를 떠올리곤 합니다. 

뉴욕 월스트리트 법률사무소에서 일하는 필경사 바틀비는 고용주인 변호사가 업무 지시를 할 때마다 이 말을 반복합니다. 

"하지 않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처음엔 바틀비의 부정확하고 우회하는 듯한 말이 답답했습니다. 하지 않으면 않는 거고 하면 하는 거지 왜 하지 않는 '편'을, 그것도 '택'하는 걸까 싶었습니다. 괜히 상대에게 해석의 여지를 줘 발화의 책임에서 멀어지려는 것 같기도 했죠.

게다가 그는 당연해 보이는 상사의 업무 지시를 거부합니다. 상사는 필경사인 바틀비에게 필사를, 문서 오류 검토를 요청합니다. 그럴 때마다 바틀비는 기계처럼 안 하는 편을 택합니다. 어떤 지시든 예외는 없습니다. 그의 "온순한 뻔뻔함"에 상사뿐 아니라 독자도 점점 무력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보면 바틀비의 말은 우회가 아닌 정면 돌파입니다. 그는 하지 않는 '편'을 '택'한다고 말하면서 자신에게 '하지 않을 권리'와 상사의 지시에 대해 '거절을 택할 권리'가 있음을 예민하게 짚어 표현했습니다. 상사와 부하라는 위계 아래서 '지시-복종'이라는 상식이 된 질서 자체를 거부한 것입니다.

다시 "괜찮겠어?"라는 질문으로 돌아가 봅니다. 바틀비라면 어떤 대답을 했을까요. 그는 괜찮지 않다고 말하는 편을 택했을 겁니다. 만약 제가 같은 질문을 마주할 때마다 바틀비처럼 저항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상상할수록 상상에 그치는 게 좋겠단 결론에 가까워집니다. 

"주 52시간 근무제이긴 한데, 우리 회사는 못 지킬 때도 많아요. 괜찮겠어요?" "52시간 안에 업무를 못 끝내면 어떻게 할 건가요?" 요즘 면접관의 단골 질문이라고 합니다. 모범 답변에 "괜찮지 않다"는 없을 겁니다. 면접자에게 괜찮지 않다고 거부할 권리는 사실상 없으니까요.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지만 나의 "괜찮아요"가 당신의 권리가 아니라는 인식이 모두에게 공평하게 퍼지지 않는 이상 쏟아지는 "괜찮겠어?"의 폭력은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