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크’를 돌려달라던 웹툰 작가는 어떻게 됐을까?
‘링크’를 돌려달라던 웹툰 작가는 어떻게 됐을까?
  • 정다솜 기자
  • 승인 2019.08.27 14:02
  • 수정 2019.08.29 21: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여성노조 디콘지회 달고나 작가·하신아 부지회장 인터뷰
하신아 여성노조 디콘지회 부지회장과 달고나 작가ⓒ 참여와혁신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하신아 여성노조 디콘지회 부지회장(사진 왼쪽)과 달고나 작가 ⓒ 참여와혁신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더 이상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KT사건이 시작된 이후로 겪고 있던 우울증과 공황만 날이 갈수록 깊어질 뿐, KT와의 기본적인 대화도 못 하고 있습니다. 작품은 작가의 일부입니다. 저는 어떤 방식으로든 계속해서 전송권 회수를 주장할 것이며 정당한 보상을 받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 달고나 작가 기자회견(6월25일) 발언 中

낮고 힘 있는 목소리였다. KT가 운영하는 웹툰 플랫폼 ‘케이툰’(KTOON)에서 7년간 웹툰을 연재한 달고나 작가였다. 두 달 전 달고나 작가(이하 달 작가)가 속한 전국여성노동조합 디지털콘텐츠창작노동지회(지회장 김희경)가 연 ‘케이툰의 일방적 작품 게시삭제 행위 규탄 및 전송권 반환 촉구 기자회견’에서였다. 

달 작가는 케이툰에 작품을 연재하다가 올해 1월 카톡으로 연재 중단을 통보받았다. 일방적으로 계약이 해지됐지만 전송권은 돌려받지 못했다. 전송권은 웹툰을 플랫폼에 게시해 대중에게 전송할 권리다. 전송권이 없으면 작품은 작가에게 있더라도 다른 플랫폼에서 작품을 완결하기 어렵다. 작품의 일부는 여전히 케이툰에 있어서다. 웹툰의 연속성이 사라진다. 6월엔 작품 게시도 중단됐다. 그 사이 작품의 생명력은 죽어갔다.

어느 취재현장이든 ‘당사자’의 목소리는 가장 힘이 세다. 지쳤지만 힘 있던 달 작가의 목소리는 그대로 마음에 남았다. 두 달이 흐르는 사이 자꾸 궁금했다. 그래서 달 작가를 만났다. 전송권 문제는 해결이 되고 있는 건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물었다. 하신아 디지털콘텐츠창작노동지회 부지회장도 함께했다.

6월 25일 기자회견 이후 상황이 궁금하다.

하신아 : 그 뒤로 KT 광화문 빌딩 이스트(East) 앞에서 1인 시위를 계속하고 있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까지 피켓을 들고 서 있는다. 오늘도 느끼셨겠지만(약속한 오전 11시 기자가 인터뷰이를 전화로 깨웠다) 웹툰작가가 오전 11시에 나온다는 건 노숙투쟁이나 마찬가지다. 1인 시위를 계속하면서 서울시 공정경제과에 중재 요청을 했다. KT는 사실상 서울시의 중재를 거부했다. ‘중재 절차를 종료해달라’ KT는 이 한 줄이 적힌 공문을 보냈다. 대화 요청이 거부된 상황에서 우리는 다른 라인을 통해 KT, 케이툰, 지회 간 3자 간담회를 하자고 제안한 상황이다. 

게시 삭제된 작품이나 전송권 등은 어떻게 됐나? 

하신아 : 전혀 해결이 안 됐다. KT는 작가들과 노조를 대화 상대로 인정하지 않는다. 계속 우리의 법률 대리인을 통해서만 소통하겠다는 상황이다. 

달 작가 : 마지막으로 케이툰에 연락했을 때가 6월 초다. 전화했더니 변호사를 통해서 연락하라고 하더라. 그쪽 관계자가 더 이상 작가님과 대화할 건 없다고 얘기하더라. 

전송권 개념이 대중에겐 낯선 개념이다. 

하신아 : 드라마를 제작했다면 방송할 수 있는 권리인 거다. 방영권처럼 전송권은 플랫폼에 게시할 수 있는 권리다. 여러 저작권 중 하나다. 웹툰의 경우 저작권은 작가에게 있다. 저작권 중 하나인 전송권을 플랫폼에 양도한 거다. 온라인에서 전송할 권리를 판 거다. 이 권리가 계약서에 케이스마다 다르지만 ‘작품 완결 후에 2년 동안 전송권을 허용한다’라고 되어 있다.

이번처럼 작품이 완결되지 않은 채 계약이 해지되면 어떻게 되는 건가? 

하신아 : 거기에 대해선 아무런 언급이 없다. 계약서에 쓰여 있지 않다. 완결이 안 되면 어떻게 한다, 중단되면 어떻게 된다, 중간에 플랫폼이 망하면 어떻게 한다 등 이런 상황들이 명시되어 있지 않다. 그런데 상식적으로 중간에 작가가 잘렸으면 또는 플랫폼이 망했으면 당연히 작가한테 전송권을 줘야 한다. 표준계약서에도 이런 상황을 명시해야 한다. 웹툰 현장에서 이런 경우가 지속해서 발생한다.

그렇다면 ‘완결’에 대한 해석이 다를 수 있겠다.

하신아 : 그렇다. 우리는 작품 ‘완결’이 되지 않았으니 전송권을 돌려달라는 입장이다. 그런데 계약서상 전송권을 ‘완결 후 2년간’ 허용한다고 해도 법적으로는 ‘연재 종료 후 2년’으로 간주될 수 있다. ‘완결’을 무엇으로 해석하느냐에 따라 다르지 않나. 그래서 조기 종결당한 작가들도 많다. 스토리를 보면 누가 봐도 뻔히 4~5화 정도 더 있어야 하는데 플랫폼에서 빨리 완결시키라고 독촉하는 거다. 그래야 2년 동안 전송권을 가지고 있을 수 있으니까 난리를 친다. 작가는 어쩔 수 없이 내용을 막 줄여서 완결한다. 

달 작가 : 그러면 작품이 엉망이 되는 거고 독자에게도 악영향을 미친다. 독자들도 댓글을 그렇게 단다. "갑자기 확 끝나는 느낌이 드는데 혹시 케이툰한테 케이툰당하셨나요?” 이런 식이다. 게다가 작가는 조기 종결에 대해서 직접적인 해명이나 언급을 못 한다. 계약상 비밀유지 조항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작가들의 입이 막혀 있으니까 독자들은 이런 상황을 알 리가 없다. 작가한테 항의를 하고 작가는 2차 상처를 받게 된다. 

연재 중단 뒤 독자 반응은 어떤가? 

달 작가 : 최근에 독자들을 만났는데 응원해주면서도 말끝이 모두 과거형이었다. “달고나 일기 잘 봤었어요” “작품 재밌었어요” 내 작품이 슬슬 내려가고 있다, 잊혀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하신아 : 생명력이 없어지는 거다. 과거의 작품이 되는 거다. 웹 콘텐츠는 일주일만 늦어도 안 된다고 한다. 독자와 인터랙티브한 측면이 있다. 모든 웹 콘텐츠가 다 그렇다. 연재중단은 이 생명력을 죽이는 거다.

달 작가 : 계속 시간을 끌면 끌수록 ‘달고나 일기’나 다른 작가들의 작품은 계속해서 잊혀질 거다. 그러면 나중에 다시 돌아와도 화력을 잃을 것이다. 아마 케이툰이 그걸 바라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다. 지금은 케이툰이 전송권을 안 줄 뿐 아니라 이미 게시되어 있던 웹툰도 내렸다. 게시 링크를 삭제해버리니까 포트폴리오가 없어진 거다. 작가가 경력직으로 들어갈 때는 어느 플랫폼에서 언제까지 연재했다고 증명할 수 있는 ‘링크’를 요구하는데 지금은 ‘링크’ 자체가 사라진 거다.

케이툰은 계약서상으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하신아 : 계약 자체가 문제다. 예를 들면 계약서에 부대 약정서인 별첨으로 언제든지 자를 수 있다. 계약을 언제든지 해지할 수 있다. 그렇게 적혀 있다. 그 약정서를 쓴 작가들이 많다. 3개월에 한 번 통보하고 해지할 수 있다는 작가도 있고. 언제든지 계약 해지할 수 있다는 작가도 있다. 

달 작가 : 나는 그걸로 협박까지 당했다. 고료를 안 올려주겠다는 식이었다. 나는 원래 별첨이 들어 있는 계약서가 아니었다. 가장 좋은 계약서였다. 그나마 제일 오래된 거. 그런데 갑자기 세부약정서 한 장을 붙이면서 3개월 전에 미리 통보하면 언제든지 자를 수 있다는 걸 케이툰 측에서 들이밀었다. 분명히 싫다고 했다. 그랬더니 ‘그럼 작가님 고료 못 올려 드린다’고 그렇게 딜을 쳐서 약정서를 어쨌든 다 받아냈다.

케이툰에 요구하는 바는 무엇인가? 

하신아 : “알았습니다. 전송권 가져가십시오” 그냥 메일로라도 한 줄이면 된다. 베스트는 케이툰에서 작품을 내리고 독점으로 다른 데 팔 수 있는 권리를 주는 것이다. 아니면 케이툰에도 올라가 있는 상태에서 다른 데도 올릴 수 있는 권리를 주면 된다. 

달고나 작가는 6월 25일 기자회견에서 아프다고 들었다. 

달 작가 : 나는 케이툰이랑 싸우기 전부터 특이한 케이스였다. 오히려 케이툰에게 일감을 물어다 줬다. 프로젝트가 들어오면 케이툰에게 여러 번 제안했지만 케이툰은 다 잡지 못하고 기회를 날렸다. 케이툰이 무능했지만 나는 인정받지 못했다. 혼자서 단행본을 내고 카카오톡 이모티콘을 내면 케이툰 측에선 “작가님 왜 이렇게 욕심이 많으세요?” 이런 식이었다. 조금씩 우울해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모든 프로젝트를 내가 진행하면서  웹툰도 연재해 거의 쉬는 날이 없었다. 마감은 매일 새벽 4~5시까지 하니까 호르몬 교란이 와서 자궁근종이 생겨 수술을 받았다. 수술을 받는 와중에도 배려를 안 해줬다. 수술 전날 밤까지 계속 세이브 원고 만들어놓고 나서 수술하러 들어갔다. 그런 상황에서 우울증이 심해졌다. 이번 일이 터지고 나서 공황장애를 심하게 겪었다. 어느 순간 벽에 머리를 박는다든가 정신적으로 힘든 상황이 이어졌다.  

케이툰에서 연재 중단 이후 어떻게 지내고 있지 궁금하다.

달 작가 : KT에 2년 동안 작품을 묶어놔야 하면 그 기간 동안 작가는 굶는 신세다. 고료도 당연히 안 나온다. 2년 동안 뭘 해 먹고 살아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하루아침에 수입이 빠진 거니까. 여기 차기작도 써보고 저기 차기작도 써보고 하는데 잘 안 됐다. 의아한 점이 보통 작품을 내면 플랫폼 측에서 피드백이 온다. 피드백으로 유명한 플랫폼이 있었는데 작품을 냈더니 피드백 하나도 없이 T/O가 없어서 안 된다고 했다. 케이툰 사건과는 무관하겠지만 계속해서 떠오를 수밖에 없는 거다. 우울증이 나아지지 않고 있다. 

지금은 차기작을 준비하고 있는 건가? 

달 작가 : 차기작을 준비하면서 인스타 툰에 연재를 하고 있지만 수익이 나는 건 아니다. 차기작은 한 달 만에 뚝딱 나오는 게 아니다. 차기작을 준비하는 작가는 길게는 3년 정도 걸린다. 그동안 수입이 없는 거다. 남들이 보고 있을 땐 쉬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차기작 외에도 어쨌든 ‘과거’가 되지 않기 위해 이 작업 저 작업 쉴 틈 없이 막무가내로 하고 있다. 

어려운 투쟁이다. 계속 이어나갈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하신아 : 창작자는 지지 않는다. 창작자는 질 수 없다. 물론 모든 노동이 지지 않는다. 노동자는 단결하면 지지 않으니까. 그중에서도 창작 노동은 조금 더 특별하다. 대체 불가능한 노동이다. 아무리 AI가 발전해도 대체 불가능하다고 예측되는 분야 중 하나가 이쪽이다. 대체 불가능한 노동자를 이길 수 없다. 우리의 자리를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리 똑같은 작품을 들고 온다고 해도 그 작품은 오리지널이 아니다. 그건 표절, 아류작에 불과한 거다. 오리지널리티의 마법이 제대로 걸리면 아무것도 대체 못한다. 창작 노동은 그런 강력한 무기를 갖고 있다. 절대로 질 수 없다. 그게 우리의 원동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