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대만 있는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뼈대만 있는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 강은영 기자
  • 승인 2019.08.30 17:05
  • 수정 2019.08.30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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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과 지붕은 어떻게 마련해야 할까
[리포트]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시행 한 달 후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자가 상대방에게 오만하게 행동하거나 이래라저래라 하며 제멋대로 구는 짓을 뜻하는 명사 ‘갑질’. 선배 간호사가 신임 간호사를 가르치는 과정에서 괴롭힘 등으로 길들이는 규율 문화로 ‘영혼이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의미의 ‘태움’.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직장 내 괴롭힘을 뜻하는 단어들이다.

지난 2018년 12월 27일 저녁, ‘직장 내 괴롭힘 방지’를 담은 근로기준법 일부개정법률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회를 통과한 법은 6개월이 지난 2019년 7월 16일부터 시행됐다. 법 시행 한 달 여가 지난 시점에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가지고 있는 의의와 한계에 들어봤다. ‘직장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위원장 김현정, 이하 사무금융노조) 내에서는 어떤 괴롭힘의 종류가 있었는지도 함께 들어봤다.

‘직장 민주주의’, 기대해도 좋을까?

지난 2018년 3월, 이정미 정의당 국회의원을 대표로 12명의 국회의원은 「직장 내 괴롭힘 예방 및 피해근로자 보호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다. 제안 이유로 “직장 내 괴롭힘은 직장 내의 지위나 다수의 우월성을 이용하여 직장 안팎에서 특정 근로자를 소외시키거나 괴롭히는 학대행위로서 개인의 차원에서 특정인의 인격을 침해하고 신체적 심리적 고충을 초래하는 동시에 기업 차원에서 근로자의 직무열의를 감소시키고 조직 분위기를 저해하여 기업의 생산성과 경쟁력에도 큰 소실을 초래한다”고 설명했다.

2018년에는 간호사 태움을 비롯해 회사 대표들의 여러 갑질로 인해 노동자들을 보호할 수 있는 제도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2018년 끝자락 국회를 통과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2019년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빛을 볼 수 있게 됐다.

고용노동부는 법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는 2019년 7월 16일 이전까지 예방 및 발생 시 조치사항 등을 마련해 취업규칙에 기재 후 지방고용노동관서에 신고하도록 알렸다.

근로기준법 제76조의 2에는 ‘직장 내 괴롭힘’을 “사용자 또는 근로자는 직장에서의 지우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하여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라고 규정했다.

직장 내 괴롭힘을 판단하는 요소는 ▲행위자 ▲행위요건 ▲행위 장소 3가지로 규정했다. 행위자는 괴롭힘 행위자가 사용자인 경우와 근로자인 경우로 구분했다. 여기서 말하는 사용자는 사업주로부터 사업 경영의 전부 또는 일부에 대해 포괄적인 위임을 받고 대외적으로 사업을 대표하거나 대리하는 자, 예를 들어 대표이사나 등기이사, 지배인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또는 근로자에 관한 사항에 대해 사업주를 위해 행위 하는 자들, 인사노무 담당이사나 공장장 등이 해당된다.

두 번째 요건인 행위요건에는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 이용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는 행위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경우 3개가 모두 충족돼야 한다.

마지막으로 행위 장소는 ▲외근·출장지 등 업무수행이 이루어지는 곳 ▲사적 공간 ▲회식이나 기업 행사 현장 등 ▲사내 메신저·SNS 등 온라인상의 공간 등이 괴롭힘 행위 발생장소로 인정될 수 있다.

위와 같은 내용을 기반으로 해 괴롭힘을 신고 했을 경우, ▲당사자와의 관계 ▲행위 장소 및 상황 ▲행위에 대한 피해자의 반응 ▲행위 내용 및 정도 ▲행위기간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직장 내 괴롭힘’이 인정된다.

김태욱 사무금융노조 변호사는 “직장 내에서 아주 명시적이고 법적인 불이익이나 해고, 전보가 존재하기도 했지만, 업무상 어떤 지위에 편승해서 이루어지는 불이익한 사실 행위들이 많이 존재해왔다”며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법적으로 규율되기 시작하면서 괴롭힘 행위가 명확하게 금지되는 행위로 정해졌다는 것이 유일한 의미라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사무금융노조 사업장 내
만연한 업무상 배제와 실적 압박

사무금융노조 내에는 그간 ‘직장 내 괴롭힘’과 관련해 어떤 신고들이 들어왔을까. 신은정 사무금융노조 대표노무사를 만나 주요 사례를 들어봤다. 신 노무사는 업무 배제나 저성과자를 괴롭히는 유형이 대부분이었고, 고연령자들이 주요 대상이었다고 밝혔다.

주요 사업장의 특징을 살펴보면, 연차가 쌓일수록 급여가 올라가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문제는 이 인원들이 증가하면서 승진을 하지 못 하고 ‘승진적체’ 현상이 심각해지고 있는 것이다. 최근 입사하는 노동자들은 기존 입사한 사람들에 비해 더 높은 스펙을 보유하고 있다 보니 회사 입장에서는 기존의 인원을 퇴출시키고 젊은 인원을 올리고 싶어 한다는 것이 신 노무사의 설명이다.

지난 2016년 박근혜 정부는 ‘일반해고’ 및 ‘취업규칙 변경요건 완화’ 등 양대 지침을 시행하겠다고 발표했다. 지침 내용에는 “업무능력이 결여되거나 근무성적이 부진한 경우 해고의 사유가 된다”고 명시했다.

신 노무사는 “회사는 이 부분을 이용해 빈 공간에 노트북도 주지 않고 하루 종일 앉혀 놓고 퇴사를 압박하는 등의 모욕주기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노조가 있는 경우에는 조합원들이 자신의 노트북을 가져다주거나 힘내라고 하면서 연대하면서 버티는 경우도 있었지만 못 버티고 나간 분들도 많았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자리도 없고 승진의 기회도 사라져버리니 자신은 이곳에서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많이 생긴다”며 “그런 괴롭힘 속에서 퇴사를 하는 이들이 많았다”고 밝혔다.

사무금융노조 내에서 주로 일어났던 괴롭힘의 또 다른 유형은 ‘실적압박’이다. 증권이나 보험사 등 영업을 주로 하는 노동자들이 많기 때문에 일정 정도의 성과를 얻어내지 못하면 이를 문제 삼아 압박을 가한다는 것이다.

신 노무사는 “예전에는 실적을 가지고 대놓고 소리를 질렀다면, 지금은 임금체계를 가지고 압박을 가한다”며 “성과기준에 만족하지 못하면 다음해의 연봉이 동결되거나 하락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냈다”고 설명했다.

또한 “총 인건비를 나누는 구조이다 보니 누군가는 반드시 마이너스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어 괴롭히는 방식”이라며 “일부 사측에서는 노조를 만들었을 때 굉장히 유용하게 사용했던 방식이었으며 실제로 노조를 만들겠다고 언급했다는 이유로 센터장 자리에서 팀원을 발령을 낸 사례도 있었다”고 소개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스럽게 올라가던 임금은 실적을 채우지 못 하면 삭감되기 시작했다. 신 노무사가 소개한 사업장의 경우는 30~70%까지 임금을 삭감하기도 했다. 문제는 그 이후다. 임금 삭감을 종용하거나 그렇지 않다면 계약직으로 전환할 것을 제안했다.

계약직 전환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는 이들은 임금 삭감을 걱정하며 계약서에 사인을 해 버린다. 문제는 여기에서부터 시작한다. 사측은 실적 기준을 계속해서 높이고 이를 충족하지 못한 상태에서 2년이 지나면 계약을 해지하면서 직장을 잃게 되는 상황이 발생한다.

신 노무사는 “다행스럽게도 노동조합이 있는 경우, 사측의 터무니없는 임금 삭감 요구에 반대하면서 임금 삭감률을 줄이거나 동결했다”면서도 “노조가 없는 사업장은 자신의 임금이 큰 폭으로 줄어도 계약직 전환에 사인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또한, 사무금융노조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을 앞둔 지난 5월부터 한 달 간 ‘나쁜 질문·나쁜 농담 공모전’을 진행했다. 아래는 주요 사례 중 일부다.

“영업하려면 꾸미고 다녀야지, 못생기면 영업도 못 하는 거야.”

“여직원들이랑 술을 마셔야 시장(보유주식)이 오르더라~ 오늘 장이 너무 빠졌어. 술 마시자. 시장(보유주식)을 올려줘~”

“(부서 배치 첫 날, 가만히 앉아 있는 직원에게 부장이) 야 내가 ▲▲▲ 출신이야. 내가 너 이 업계에서 매장시킬 수도 있어.”

사무금융노조는 본격적인 법 시행을 앞두고 각 지부의 주요 간부들을 대상으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에 대한 교육을 진행했다. 교육을 진행한 김태욱 변호사는 법에 대한 기본적인 내용설명과 함께 단체협약이나 취업규칙에 권장되는 사항들을 주로 설명했다.

김 변호사는 “현재 법에서는 조사에 대한 의무만을 정해놓고 조사과정에 대한 상세한 내용을 규정해놓고 있지 않다”며 “교육을 진행하면서 많은 간부들이 조사 과정과 조사 위원회 구성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에 대한 질문이 많았다”고 밝혔다.

이어서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매뉴얼을 살펴보면 피해자 의사에 따라 별다른 징계 조치를 하지 않고 약식으로 끝내거나 약식조사절차를 규정해 놨다”며 “이러한 상태로 조사를 진행하면 가해자 조사를 제대로 진행하지 않고 조사가 마무리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모두가 행복한 직장 만들 수 있을까?

지난 8월 18일, 고용노동부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한 달 동안 접수된 진정은 총 379건이라고 발표했다. 근무일 기준(주5일) 하루 평균 16.5건의 진정이 접수된 꼴이다. 접수된 내용을 기준으로 직장 내 괴롭힘 유형을 분석해보면 폭언에 관한 진정이 152건(40.1%)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이어서 부당업무지시(28.2%), 험담·따돌림(11.9%) 등의 순서로 나타났다.

‘직장 내 괴롭힘’이 법에 명시돼 그 동안 모호한 영역으로 남아있던 부분에 대해 법적 규율이 가능해졌다는 점에 대해 긍정적인 부분은 있지만, 여러 가지 부분에서 미비한 점이 많다. 김태욱 변호사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을 “기둥만 세워져 있고 벽과 지붕은 아직 없거나 일부만 있는 상태”로 정의했다.

김 변호사는 현재 마련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의 한계에 대해 “남녀고용평등법에 의하면 고객에 의한 성희롱에 대한 부분은 신고에 가능하지만 고객의 괴롭힘은 신고 대상으로 규정돼 있지 않다”며 “또한, 괴롭힘에 대한 조사과정에서 조사에 참여한 사람이 비밀을 누설했을 때 발생하는 2차 가해에 대한 규정도 마련돼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뿐만 아니라 괴롭힘 가해자가 대표이사일 경우에 대한 조치도 문제다. “대표이사 등 사용자가 가해자로 지목될 경우, 매뉴얼에 따르면 간사가 조사를 진행하고 이사회에 보고해 주주총회에서 필요한 조치를 요청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며 “한국에서는 여러 가지 배임 횡령을 한다고 해도 대표이사가 처벌받는 경우가 없는데 괴롭힘에 대해서 어느 정도의 제재가 가능한 지 우려된다”고 전했다.

보완해야 할 점이 많은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에서 우선적으로 개선해야 할 점은 무엇일까. 김 변호사는 “우선적으로는 과태료 조항이 늘어나야 한다”며 “남녀고용평등법과 비교했을 때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의 경우는 예방 및 발생 조치에 관한 사항을 취업규칙에 기재하지 않을 시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 부과 규정밖에 없기 때문에 가해자에 대한 징계조치를 안 했을 경우 등 법에 직접적인 강제 수단을 마련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서 “국회 법사위 통과 과정에서 빠졌던 정서적 괴롭힘에 대한 내용도 추가해야 할 필요가 있다”며 “무엇보다도 법이 시행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고용노동부나 법원에서 긍정적인 해석을 해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보다 행복한 직장을 만들기 위해 마련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법 시행 자체에 의의가 있다지만, 여전히 부족한 부분들이 존재한다. 더 이상 직장에서의 괴로움으로 떠나는 이들이 없기 위해서는 보다 탄탄한 법의 울타리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