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공무원들이 노동법원 설치를 요구하는 이유
법원 공무원들이 노동법원 설치를 요구하는 이유
  • 김란영 기자
  • 승인 2019.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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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법원으로 ‘기울어진 재판장’ 바로잡아야

[인터뷰] 조석제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법원본부장

한 시민이 법원 공무원의 뒤통수를 한 대 내리갈겼다. “뉴스를 보니까 법원이 재판을 짜고 치더라”는 것이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사법농단’ 이후 국민의 추락한 신뢰는 법원의 공무원들도 비껴갈 수 없었다. ‘사법부’의 공무원이란 자존심에 생채기가 났다. 재판만큼은 대법원의 최종판결이 나기 전까지 평가를 자제해야 한다는 법원 내부 구성원들의 불문율에도 금이 갔다.

그동안 법원공무원노동조합이 문제가 되는 판결을 비판해왔지만, 어디까지 판사 개인의 문제였다. 그런데 이제는 법원 ‘조직의 문제’가 됐다. 더구나 KTX 여승무원, 쌍용차 해고 노동자, 전교조(전국교직원노동조합) 법외노조 판결 등 재판거래 사건 부분은 노동사건이었다. 법원 공무원들이 ‘노동법원 설치’에 대한 목소리를 본격적으로 내기 시작하게 된 계기다. 노동법원은 노동사건을 전문으로 하는 특별법원을 말한다. > 노동법원이란? 

노동법원은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법원본부가 설립 초창기부터 가지고 있던 숙원 과제기도 했다. 그런데 사법농단 후폭풍을 온 몸과 마음으로 거치면서 절박함이 배가 됐다. 이러한 절박함은 법원본부가 비교섭 사안인 노동법원 설치 의제를 법원행정처의 공감을 최대한 끌어내면서 지킬 수 있게 한 힘이 됐다. 법원본부와 법원행정처는 올해 3월 ‘노동법원 설치를 위해 공동으로 노력한다’는 내용을 담아 처음으로 노동법원 설치에 관한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법원 공무원노조가 노동법원의 필요성에 대해 공론화하고 사회를 설득하는 것은 법원 공무원 노동자여서 할 수 있는 반성이면서, 공무원노조로서의 사회적 책무다. 8월 13일 조석제 법원본부장을 만나 노동법원이 필요한 이유가 무엇인지, 법원본부가 노동법원을 설치하고 나선 이유를 들어봤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법원본부에는 노조 가입이 가능한 공무원 중 약 83%인 공무원 1만여 명이 가입해 있다.

조석제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법원본부장 ⓒ 참여와혁신 김란영 기자 rykim@laborplus.co.kr
조석제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법원본부장 ⓒ 참여와혁신 김란영 기자 rykim@laborplus.co.kr

“사법농단 겪고 나니 노동법원 절박함 커졌다”

노동법원에 대한 논의가 다소 부진했던 상황에서 법원본부가 다시 노동법원 의제를 꺼내 들었다. 계기가 궁금하다.

직접적인 이유는 사법농단 때문이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사법농단을 거치면서 사법부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무너졌다. 재판 거래 대상이 됐던 사건들을 보면 압도적으로 노동 사건이 많다. 사법농단의 가장 큰 피해자가 노동자인 셈이다. 노동자들의 피해를 구제하기 위해서는 해당 사건의 원상회복도 중요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노동사건이 정권이나 자본의 논리로 좌우되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봤다. 그러지 않고서는 사법부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 회복이 어려울 것이란 절박함이 있었다.

지난 3월 27일 법원행정처와의 단체협약에도 ‘노동법원 설치를 위한 공동노력’을 담았다. 단체협약에 노동법원 설치 안건을 포함한 이유는 무엇인가?

단체협약으로 노동법원 설치에 대한 대법원의 원칙적인 동의를 끌어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봤다. 국회에서 노동법원 설치를 위한 법안이 논의될 때 소관 기관인 대법원의 입장이 대단히 중요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법원행정처와의 의견 조율이 어렵지 않았나?

이전에는 참심제로 인한 법관의 권한 침해 등 부정적인 의견이 많았다. 조재연 법원행정처장의 결단이 컸다. 본교섭 전까지도 교섭 사안이다, 아니다, 법원행정처와 밀고 당기기를 반복했다. 노조 측에서도 노동법원에 대해 노조와 법원행정처가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을 최대한 모았다. 노동법원 설치는 국회 입법 사항이기 때문에, 법원행정처의 권한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국회에 법안이 발의된 상태에서, 향후에 세부적인 사안들을 조율하더라도 도입 자체에 대해서는 공동으로 노력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사법농단이 없었다면, 처음에 교섭 안건으로 넣었어도 이렇게까지 끝까지 관철하려고 노력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사법농단으로 인한 충격이 컸던 모양이다.

엄청나게 컸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상고법원을 추진하기 위해서 이렇게 조직적으로 움직일 줄은 몰랐다. 권위주의적이고 다소 보스 기질이 상당해서 그런 스타일 정도로만 생각했다.

노동조합 차원에서 사법농단을 사전에 방지할 방법은 없었을까.

일반 공무원이 재판 거래 문건 등에 접근할 권한이 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사건 임의 배당이나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비자금 조성 같은 일부 과정에서 공무원들이 관여한 부분이 있다. 그때 법원 공무원들이 내부감시자로 역할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공무원은 불법적인 지시를 거부할 수 있다. 그런데 누구도 문제 제기하지 않았다. 공무원 개인은 내부고발로 인한 신변 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만큼 노동조합이 내부고발자를 지키고, 지킬 수 있을 것이란 신뢰가 부족했다고 본다. 이번 단체협약에 조합원이 상관의 부패를 신고하면 노동조합이 법원에 청원하고, 법원이 처리 결과를 통지하는 내용의 협약을 담은 이유이기도 하다.

법관의 정확한 ‘노동법적 판단’ 필요

노동법원이 필요한 이유가 무엇인가? 노동사건이 전문 법원을 둘 정도로 특수하다고 보나?

노동사건은 일반 사건과 다르게 민사와 형사, 행정 재판의 성격이 모두 섞여 있다. 노동사건에 최적화된 별도의 사법 시스템이 있어야 하는 이유다. 특히 부당해고와 관련된 노동사건은 노동자의 생존권과 직결된다. 신속성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법관의 정확한 ‘노동법적 판단’이 필요하다.

노동법적인 판단, 노동법적인 시각이라는 게 무엇인가?

노동법은 역사적으로 노동자를 보호하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자유계약 관계를 중요시하는 시민법을 수정한 것이다. 그래서 민법적, 형법적 시각으로는 노동법이 보장하는 권리를 이해할 수 없다. 일례로 파업권(단체행동권)을 보자. 파업권은 노동자가 일손을 놓아서 사용자 측에 경제적인 타격을 주는 것이다. 형법적으로는 범죄행위지만, 노동법적으로는 합법이다. 노동자가 파업하면 사용자 측은 경제적 손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노동자가 파업하면 사용자가 손해배상을 청구한다. 노동자들은 업무방해죄로 구속 된다. 노동법은 파업권을 보장하고 있지만, 실제로 판결은 형법적, 민법적 시각에서 난다. 이는 노동 삼권을 보장하는 헌법 정신에도 위배된다. 노동사건에 대해 법원의 일관된 노동법적인 시각이 필요하다.

참심형 노동법원이 도입되면 노사를 대표하는 명예판사가 참여한다. 노사 대표자가 판결에 참여할 경우 이해관계가 더 대립하지 않을까? 과연 합의가 될지 의문이 든다.

판사들은 노동 전문가가 아니다. 노동 현장에서 나타나는 문제들을 피부로 느끼지 못한다. 편향된 가치관 속에서 잘못된 판단을 내릴 가능성이 크다. 하나의 사건을 보더라도 노동자와 사용자 양측의 시각을 같이 보면서 논쟁을 벌여야 한다.

노사 간의 첨예한 대립에서 나온 판결이 판사가 독자적으로 내린 판결보다 갈등의 여지를 줄여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법원 판결이 난 뒤에는 노사 모두 손 쓸 방법이 없다. 차라리 판결이 나기 전에 갈등을 드러내주는 것이 낫다. 참심제가 도입되더라도 최종적인 판결은 판사가 한다.

법원에 노동사건을 전문적으로 배당 받는 노동전담 재판부가 있기는 하다.

노동전담 재판부가 다른 재판부보다 노동사건에 대한 이해도와 전문성이 높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판사 개인의 역량을 높이는 데 그친다. 노동법원은 판사들의 전문성을 높이면서도, 사용자 쪽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노동자를 안정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노동사건에 최적화된 소송 시스템을 만드는 데 의미가 있다. 이는 일반 재판부가 담보할 수 없다.

노동법원에 대한 논의는 꽤 오래전부터 나왔다. 법안 발의도 18대 국회부터 꾸준히 이어져 왔다. 그런데도 그동안 구체적으로 논의가 진전되지 못한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보나?

노동법원 도입을 추진해야 하는 국회와 법원, 노사 단체 등 주체들의 의지가 부족한 실정이다. 법안은 국회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되지 못하고 있다. 제18대 국회에선 자동폐기됐다. 법안을 발의한 의원들조차 노동법원 법안에만 역량을 집중할 이유가 크지 않다. 노동법원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공론화 과정이 없었기 때문이다. 야당인 자유한국당은 극렬하게 반대하고 있다. 사용자단체는 이미 자신들에게 유리한 구조이니 바꿀 이유가 없다. 노동계는 그동안 노동법원 말고도 당면한 사안이 많았다. 노동법원의 재판부가 지금의 재판부와 무엇이 다르겠냐는 불신도 짙다. 노동법원을 지금의 사법구조를 본질적으로 극복하는 체계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상황이 만만치 않아 보인다. 앞으로 노동법원 설치에 대한 필요성을 어떻게 설득해나갈 것인가?

노동법원 설치를 노동계 자체적인 이슈로 만든 뒤에 전 사회적인 이슈로 확장하고 싶다. 노동계라면 노동법원을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8월 31일에는 서울법원종합청사에서 ‘노동재판 과연 공정한가? 노동사건 전문법원 설치를 위한 시민대토론회’를 연다. 토론회 후에는 청와대 국민 청원을 넣을 계획이다. 사용자 측에도 노동법원이 절대 불리한 것만은 아님을 설득할 예정이다. 주도야 노동계가 하겠지만, 다시는 사법농단이 반복되지 않도록 국민들이 많은 관심과 응원을 해주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