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의 ‘러시안 룰렛’은 언제까지
은행권의 ‘러시안 룰렛’은 언제까지
  • 임동우 기자
  • 승인 2019.10.03 05:00
  • 수정 2019.10.04 17: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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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LS·DLF(파생결합상품) 논란… 제2의 키코(KIKO) 사태로 불려

스릴러 영화 속 등장인물이 자신의 운명을 6연발 리볼버에 걸고 내기하는 장면을 본 적 있는가. 총알 한 발만 장전하고 탄창을 돌린 뒤 상대와 돌아가면서 관자놀이에 대고 방아쇠를 당기는 위험한 게임, 바로 ‘러시안 룰렛’이다. 최근 은행이 금융소비자의 안전이 해제된 금융상품을 판매하여 비판받고 있다. 최근 한 은행에서 방아쇠를 당겼다가 처참하게 무너진 금융소비자들의 투자손실률은 60.1%로 확정됐다.

지난 8월, 글로벌 경기침제로 인해 선진국의 채권금리 하락으로 영향을 미친 파생결합상품(DLF·DLS) 사태가 금융권 내의 화두로 떠올랐다. 8월 7일 잔액기준 ‘해외 금리연계 파생결합상품 현황’에 따르면, 예상손실액은 4,558억 원으로 전체 투자원금의 55.4%였다.

현 정부 두 번째 금융당국 수장으로 임명된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파생결합상품(DLF·DLS) 사태에 관련하여 “금융상품 불완전판매, 불합리한 금융관행 등에 따른 피해 가능성을 최소화하도록 금융소비자 보호 시스템을 선진화하고, 금융소비자보호법 제정을 위해서도 적극 지원하겠다”고 나선 판국이니 사태의 심각성은 이미 증명된 셈이다.

알고도 몰랐다? 모르고도 팔았다?

국내 파생결합상품(DLF·DLS) 판매는 우리은행 4,012억 원, KEB하나은행 3,876억 원으로 전체 중 95.9%를 차지했다. 은행 내 금융연구소가 2018년 12월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파생결합상품(DLF·DLS)과 연관된 선진국의 금리 하락 가능성이 예측되고 있었다. 그러나 은행 측의 판매중단·축소 조치는 없었다. 파생결합상품(DLF·DLS) 판매 2위에 해당하는 금융노조 KEB하나은행지부는 “올 4월부터 관련 부서에 발행사의 콜옵션 행사와 이미 일부 손실이 발생된 상태에서라도 고객들이 손절할 수 있도록 환매수수료 감면 등 적극적인 대응책 마련을 요구했으나 경영진은 자본시장법 위배, 중도 환매수수료 우대 시 타고객 수익에 미치는 영향, 배임 우려 등을 내세우며 무능과 안일한 대응을 했다”며 은행이 위험을 감지하고 있음에도 판매를 지속한 점을 비판했다.

최근 파생결합상품(DLF·DLS) 관련 보도로 비춰보았을 때, 현 시점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건 은행이 고위험 상품을 ‘안정적인 투자상품’으로 소개하여 판매한 점이다. DLF투자 피해자들을 모으고 있는 홍정민 로스토리 대표변호사는 최근 <오마이뉴스> 인터뷰를 통해 “고객 입장에선 브랜드 있는 은행에서 PB(프라이빗 뱅커)라는 사람이 ‘선진국 국채 연동이고, 안전하다’고 한 말을 그대로 믿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더군다나 파생결합상품 가입자의 50% 이상이 만 60살 이상의 고령자라고 하니, 고령자의 노후자금을 고위험 투자상품에 맡겼다는 점에서 은행은 비판을 면치 못하게 됐다.

이번만이 아니었다, 제2의 키코(KIKO)

파생결합상품(DLF·DLS)에 대한 문제가 제기된 건 이번만이 아니다. 이번 사태는 제2의 키코(KIKO) 사태라 불릴 만큼 닮아있다. 키코(KIKO)는 환율이 일정 범위에서 변동할 경우 미리 정한 환율로 외화를 팔 수 있지만 범위를 벗어나면 투자자들에게 큰 손실을 입히는 구조의 파생상품이었다. 지난 2008년 발생한 키코(KIKO) 사태 역시 은행권에서 중소기업을 가입대상으로 위험수준이 낮은 안전 상품이라고 소개하여 판매했다. 비대칭적 손익구조를 지닌 옵션의 위험성을 명확하게 고지하지 않은 은행의 과실로부터 시작된 키코(KIKO)의 피해기업 규모에 대해 2010년 금융감독원은 총 738개사, 피해금액 3조 2,247억 원이라고 발표했다. 키코 피해기업 공동대책위원회는 피해업체가 대략 1,000개로, 피해금액은 약 10조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한다.

지난 9월 17일에는 키코공대위 DLS·DLF 파생상품 피해구제 특별대책위원회가 주최한 ‘파생결합상품 피해구제 토론회’가 열렸다. 토론회에 참여한 김성묵 변호사는 “키코(KIKO)와 DLS는 똑같은 구조다. 당시 리먼 브라더스 사태가 터지면서 환율변동이 일어나자, 2~3년 계약으로 인해 투자했던 중소기업들이 피해를 보는 사례가 발생했다. 11년이 지난 지금, 파생결합상품의 판매대상만 개인으로 바뀌었을 뿐 방식이 유사하다”고 말한다. 또한 “Back to back 투자에서 은행이 중간자 역할을 맡고 그 뒤에 JP모건 같은 외국계 기업이 있었다”며 “이번 DLS 사태도 명백하게 이를 밝혀야 한다”고 전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점은, 파생결합상품의 리스크가 오직 고객(기업을 포함)에만 해당된다는 점이다. 2008년 당시에도 기업들이 도산해나갈 때, 은행은 ‘환투기 프레이밍’으로 투자자인 기업들에게 책임을 전가했다. 조붕구 키코공동대책위원회 위원장은 “(당시) 수백 개의 기업이 도산하고, 32만 노동자가 실업했다. 그 와중에 은행은 대형로펌을 이용해서 자신의 책임을 축소시켰다”며 “나는 투자자가 아니고 예금자라고 주장해야 한다”고 말한다.

경제학자인 케인즈가 남긴 명언 중에는 “실무가는 대개 죽은 경제학자의 노예”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이번 사태를 통해 은행권의 경제 윤리 결여가 답습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제3의 키코(KIKO) 사태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는 금융당국의 법규화와 아직 명백히 드러나지 않은 사태의 진실규명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