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지 않은 정규직 전환의 길
쉽지 않은 정규직 전환의 길
  • 강은영 기자
  • 승인 2020.02.08 05:06
  • 수정 2020.02.08 05: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2금융권 내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사업장
정규직 조합원 공감대 어떻게 끌어냈나

[리포트] 사무금융노조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사례

‘非(비)’라는 이름 하나로 인해 임금부터 처우까지 ‘정규직’과는 큰 차별을 받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많다.
<참여와혁신> 1월호에서는 제2금융권 비정규직들이 느끼는 차별에 대해 알아봤다.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은 노동계의 숙원 중 하나이지만 성공적인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제2금융권은 사업장 내 직접고용 비정규직뿐만 아니라 도급·용역이 만연해 비정규직 문제를 완전히 해소하기 쉽지 않다. 어려운 과제인 ‘비정규직’ 문제를 오랜 시간 공들이며 풀어낸 사업장들이 있다.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위원장 이재진, 이하 사무금융노조) 소속의 교보증권지부(지부장 이은순)와 하나외환카드지부(지부장 정종우)다. 이들을 찾아가 비정규직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고 그 과정에서 어려움은 무엇이었는지 들어봤다.

마음은 있는데 실행은 어려워

사무금융우분투재단, 사무금융노조,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은 지난해 7월부터 10월까지 ‘제2금융권 비정규직 노동자 실태조사’를 진행했다.

이번 조사는 제2금융권 내에 존재하는 비정규직 현황을 파악해 앞으로의 과제를 도출하기 위한 조사로, 제2금융권을 ▲여수신 ▲보험 ▲증권 ▲공공부문으로 구분하고 직접고용 비정규직, 무기계약직, 파견, 용역 및 도급 등 간접고용, 특수고용직의 수 등을 파악했다.

사무금융노조 소속 사업장들의 고용 형태를 살펴보면 ▲정규직 37.49% ▲기간제 계약직 5.34% ▲특수고용직 40.18% ▲파견, 용역 및 도급 11.94% ▲자회사 2.71% ▲무기계약직 2.35% 등으로 나타났다.

많은 비정규직들이 존재하고 있는데 노동조합은 이들을 위한 처우개선에 어떤 노력을 하고 있을까? 이를 파악하기 위해 노조 간부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응답자 중 83.9%가 비정규직에 관해 관심이 있다(매우 관심이 있다 + 비교적 관심이 있다)고 밝혔다.

관심은 높으나 노조의 활동은 아쉬웠다. 비정규직 노동자와 관련한 활동을 설명해 달라는 질문에 대해 49.4%가 없거나 모른다고 답했다. 이러한 결과에 대해 홍춘기 대전노동권익센터 센터장은 “원청 노동자와 파견 노동자 간 소통이 전혀 없다”며 “정규직 노조에서 간접고용 노동자들을 대하는 태도가 변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고서 끝에 소개된 ‘사무금융노조 비정규직 전환 사례’도 많지 않았다. 사업장 내에 있는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한 대표적인 곳은 교보증권지부와 하나외환카드지부였다. 다른 사업장들도 이제 관심을 가지고 하나둘 사업을 시작하고 있는 중이다.

교보증권, “비정규직 문제 초기 대응 중요”

이은순 교보증권지부장은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준 것은 “소산별노조인 증권노조 당시 체결한 비정규직 비율 상한선”이라고 밝혔다. 전국증권산업노동조합(현재는 사무금융노조 증권업종본부 소속으로 상당수 재편됨)은 지난 2001년 통일단체협약을 통해 비정규직 채용의 비율상한 및 정규직 전환프로그램을 도입하기로 조항을 신설했다.

협약을 기반으로 교보증권지부는 비정규직 상한선을 25%로 설정했다. 하지만, 실제 비정규직 비율이 20%를 넘어서는 경우는 없었다. 증권업종의 경우 제2금융권 내 다른 업종에 비해 비정규직 노동자 비율이 높지 않다. ‘제2금융권 비정규직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증권업종은 ▲정규직 54.03% ▲무기계약직 2.67% ▲기간제 계약직 16.49% ▲특수고용직 20.61% 등으로 나타났다.

교보증권은 ‘지원직’이라는 직군을 분리해 계약직을 채용했다. 지원직은 정규직 임금의 절반도 안 되는 임금을 받으며 지점 업무와 지원 업무를 담당해야 했다. 노동조합은 우선 이들의 처우개선을 위해 꾸준히 임금을 상승시켰다. 매년 기존 임금에서 20~30%씩 상승시킨 결과 정규직 임금과 비교해 70% 선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은순 지부장은 “2018년 임단협을 통해 6급 계약직을 더 채용하지 않도록 하고, 기존의 계약직들은 증권 업무를 하는 데 필요한 자격증을 취득하는 등 자격요건이 마련되면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했다”며 “1년 후에는 회사 내부에 비정규직이 없도록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교보증권 노사는 지난 2018년 10월 불평등·양극화 해소를 위해 사회연대 기금을 출연했다. Ⓒ사무금융노조
교보증권 노사는 지난 2018년 10월 불평등·양극화 해소를 위해 사회연대 기금을 출연했다. Ⓒ사무금융노조

정규직 전환을 위해서는 노동조합의 의지만으로 성공하기 어렵다. 노조의 요구를 받아줄 수 있는 회사의 태도 변화가 중요하다. 이은순 지부장은 “정규직 전환 후 늘어난 비용을 회사가 힘들어했다”며 “정해진 비용 안에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회사에서 비용을 추가적으로 부담하도록 해 정규직 조합원들의 불안을 덜었다”고 설명했다.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있어 정규직 조합원들이 생각지도 못한 난관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정규직으로 전환되면서 발생하는 추가적인 부담으로 인해 받고 있던 혜택이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이은순 지부장은 “노동조합의 지속적인 노력이 동반되지 않으면 조합원들을 설득해내기 쉽지 않다”며 “오래전부터 지부는 노동자들이 뭉치고 협력해야 한다는 교육을 하면서 공감대를 형성했다”고 밝혔다.

이은순 지부장은 “정규직으로 전환된 분들은 모두 좋은 기분을 숨기지 않고 표현한다”면서도 “노동자로서 응당 받아야 할 것인데 노동조합이 늦은 게 오히려 미안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규직 전환 이후에 이들은 또 다른 문제에 부딪힌다. 대부분 여성이기 때문에 정규직 전환 이후에는 승진에 대한 차별과 출산 후 차별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이은순 지부장은 “가장 답답한 것은 업황 문제와 맞물리기 때문에 좋은 해결의 실마리를 고민하고 있다”며 “영업직들의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을 해결할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나외환카드, 오랜 고민이 빛을 보다

카드업계의 경우, 비정규직의 비중이 크다고 알려져 있다. ‘제2금융권 비정규직 실태조사’에서도 여수신업종은 ▲정규직 43.89% ▲파견, 용역 및 도급 등 간접고용 노동자 37.14% ▲특수고용직 8.47% ▲자회사 6.10% 등으로 고용 형태가 조사됐다. 파견이나 용역 및 도급 등이 다른 업종에 비해 만연하면서도 본사 소속의 노동조합이 제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정종우 하나외환카드지부장은 “은행에서 분사하며 무기계약직들이 생겨났는데 고용불안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며 “노조에서 이 문제를 깊이 있게 고민해 보자고 시작한 것이 2015년”이라고 설명했다. 하나외환카드지부는 무려 5년의 세월에 거쳐 정규직 전환의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하나외환카드 내에서 파견직으로 일반사무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이들이 정규직 전환의 대상이 됐다.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이들의 임금은 최저임금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정종우 지부장은 “연령대가 30대 초반인 분들이 많다. 20대 중후반에 파견직을 시작하면서 취업 준비를 하려고 하는데 쉽지가 않다”며 “시간이 지나 취업에 실패하면 결국 다시 파견 시장으로 나가고 계속해서 그 자리에 머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노동조합이 가장 어려움을 느꼈던 부분은 사례 취합이다. 주변에서 정규직 전환 사례들이 많았다면 좋은 자료가 됐을 텐데 2015년에는 사례가 거의 전무한 상황이었다. 정종우 지부장은 “사례가 없다 보니 결단을 하거나 고민을 할 때 상당히 외로웠다”며 “주변에서도 왜 하냐는 시선들이 있어서 쉽지 않았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정규직 조합원들을 설득하기 위한 노력도 장기간 이어졌다. 교육을 통해 비정규직들의 정규직 전환 필요성을 계속 인지시켰다. 또한, 정규직 전환 기금 마련을 위한 ‘밥차’나 ‘일일주점’을 진행하며 공감대를 형성했다.

하나외환카드지부는 지난 2016년 사측과 처음으로 임단협에 계약직과 파견직 도급계약 문제를 해결해보자는 의지를 담았다. 진행은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정규직 조합원들의 동의를 얻어내는 것부터 시작해야 했다. 기존 정규직에 충격을 주지 않기 위해 연차를 반납하는 등 포지티브(Positive) 방식을 택했다.

정종우 지부장은 “조합원들에게 시간 외 수당이 없어야 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워라밸 실현도 있지만 고용창출이라고 설명했다”며 “우리 회사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자는 데 직원들의 동의를 얻었다”고 말했다.

파견직 직원들을 매년 상하반기 한 번씩 차례로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전환 대상자들은 근무 연수나 부서장 추천을 통해서 선정된다. 이후 시험을 보고 합격하면 정규직으로 전환된다. 정규직 전환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스스로에게도 자신감을 주기 위해서였다.

하나외환카드지부 투쟁 모습. ⓒ사무금융노조 하나외환카드지부
하나외환카드지부 투쟁 모습. ⓒ사무금융노조 하나외환카드지부

지난 2019년 지부에 상반기 진행해야 할 정규직 전환이 회사의 상황상 어려울 것 같다는 공문이 날아왔다. 지부는 약속 기한을 어기는 회사를 상대로 하나외환카드 본사에서 투쟁을 진행했다. 두 달이라는 오랜 시간 투쟁을 했지만, 조합원들은 하나의 마음으로 함께 했다.

정 지부장은 “비정규직 문제를 가지고 오래 끌고 가는 것은 직원들의 공감대를 형성하기 쉽지 않다”며 “회사 내에 쌓여있던 문제들도 이슈로 만들면서 투쟁의 궁극적인 목적이 회사의 변화라는 것을 보여주며 조합원들과 공감을 형성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하나외환카드지부 역시도 모든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된 것은 아니다. 정종우 지부장은 “정규직으로 전환된 분들이 가족들도 너무 행복해하면서 좋아한다”며 “앞으로도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관철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문제, 확고한 신념 필요해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 두 사업장은 가장 힘들었던 점으로 회사를 설득하는 일을 꼽았다. 이어서 나온 것은 기존 조합원들에 대한 설득이었다. 노동조합은 먼저 조합원들의 이익을 대변해야 한다.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려면 조합원들과 공감대가 형성돼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정종우 지부장은 비정규직 이슈를 풀어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간부들이 비정규직을 해소하겠다는 니즈와 신념이 있어야 한다”며 “그 신념을 조합원들에게 나누는 적극적인 활동과 교육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사실 사업장 단위에서 비정규직 문제를 끌고 가기가 쉽지 않아 사무금융노조의 도움도 필요하다”며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에 대한 산별노조 차원의 합의가 있다면 사업장에서도 핑계 삼아 시도해볼 수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은순 지부장은 “개별 문제를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며 “‘차별금지법’과 같은 법적인 근거가 있어야 쉽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무금융노조에서 다양한 사례를 모아 많은 양의 데이터를 축적해야 한다”며 “이를 기반으로 제2금융권의 구조적 문제를 확인하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정확한 분석이 가능할 것 같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