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정치] 한준호 "'부드럽게 집요한' 정치인이 되고 싶다"
[노동+정치] 한준호 "'부드럽게 집요한' 정치인이 되고 싶다"
  • 백승윤 기자
  • 승인 2020.03.08 00:43
  • 수정 2020.04.15 22: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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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정치라는 새로운 도전 나선 전 MBC 아나운서 한준호

"제가 잘 아는 건 아니지만..."이라며 입을 열면서도 대답은 막힘이 없었다. 항공사 계약직, 데이콤ST 프로그래머, 코스닥증권시장 애널리스트, MBC 아나운서, 청와대 행정관. 한준호 더불어민주당 고양을 지역구 후보가 다양한 이력을 거친 끝에 21대 국회의원에 도전한다. 한번도 정치인을 꿈꿔본 적이 없다던 그에게 정치 철학, 정책, 그리고 지나온 삶에 관한 얘기를 들어보았다.

 

ⓒ 참여와혁신 이연우 기자 yulee@laborplus.co.kr
ⓒ 참여와혁신 이연우 기자 yulee@laborplus.co.kr

- 지금까지 거쳐 온 직장들이 누군가에게는 목표이고 꿈일 수 있는데, 이번에 정계로 진출하게 된 계기가 뭔가?
2009년에 MBC 노조 집행부에 들어가면서 정치의 중요성을 실감했다. 그때가 MB 정권이 막 들어선 시기였다. 노조 활동을 2년 정도 하면서 탄압을 많이 받았다. MBC에 아나운서로 입사했지만 방송 활동을 했던 기간은 짧다. 10년 정도는 아나운서라는 ‘직업인’이 아니라 MBC ‘직장인’으로 출퇴근해야 했다.

언론의 독립과 언론의 민주화를 위해서 10년 가까이 권력과 맞서 싸웠지만, 절대 바뀌지 않더라. 도저히 개인이나 조합의 힘으로는 바꿀 수 없는 한계가 있다는 걸 느꼈다. 제도적 변화는 결국 정치권에서 만들 수 있다는 걸 실감했다. 

- 가장 뼈아팠던 부분은?
올 해 11살 된 막내아들이 아빠가 아나운서인 것조차 모른다. 당시 노조 집행부를 하며 방송현장에서 쫓겨났기 때문이다. 어렵게 들어간 회사에서 15년 동안 방송을 한 기간은 고작 5년이 좀 넘을 뿐이다. 아나운서·방송인·언론인으로서 자부심을 갖고 일하고 싶어서 들어간 회사인데, 실제론 그러지 못했다. 일부 ‘MBC 선배’들이 만들어 놓은 결과물이기도 하다. 정치권에서 자기 자리를 담보 받으려는 사적 욕심에 언론의 독립과 언론의 민주화가 무너졌다. 

문재인 정부 100대 과제 중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거버넌스' 구조다. 거버넌스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정권에 부합하는 낙하산인사가 공영방송의 사장이 될 수 있다. 공영방송 사장을 선임하는 방식부터 정치권과 떼어내야 언론의 독립, 언론의 민주화가 가능하다는 얘기다. 권력으로부터, 자본으로부터 독립해야만 한다. 어려운 일일지라도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 

- 입사 6년차에 MBC 노조 집행부에서 교육문화국장 자리를 맡았는데, 왜 많은 선배들 제치고 총대를 메었나?
사실 욱하는 성격 탓이 컸다. MB 정권에서 ‘미디어 선진화법’이라고 포장한 미디어 개악에 반대하기 위해서 파업에 참가했다. 윗 기수 선배들도 있으니까, 노조 집행부에 들어가리라는 생각은 안 했다. 근데 어느 날 당시 노조 집행부에 있던 박경추 아나운서 선배가 불러내더니 “네가 좀 와야겠다”며 집행부로 오라고 했다. 솔직히 피하고 싶었다. 방송으로도 한창 잘 나갈 때였고, 유학 준비도 잘 되고 있었다. 가정적으로도 문제가 없었다.

그래서 말했다. “선배, 제 앞에 선배들도 많은데 왜 방송 하차하고 가야 합니까?”라며 거절했더니, 박경추 선배가 이런 저런 사정을 얘기했다. 그러고는 ‘네 밑에 후배들에게 맡기는 수밖에 없겠다’며 협박 아닌 협박을 했다. 하필 그때 신조가 ‘쪽팔리는 아나운서, 쪽팔리는 선배가 되지 말자’였다. 험난한 시기이고 구속까지도 감안을 해야 하는데 후배에게 짐을 미루긴 싫었다. 나중에 후배들에게 쪽팔릴 것 같아서. 그래서 맡았다.

- 듣고 보니 정말로 성격이 많이 작용했던 것 같다 
어린 시절부터 남들이 손 안 들면 ‘에이 모르겠다!’하고 손드는 성격이다.

ⓒ 한준호
한준호 후보는 MBC 노조 집행부에서 교육문화국장으로 활동하며 당시 파업을 이끌었다. '쪽팔린 선배'가 되고 싶지 않았던 그는 10년간 방송현장을 떠나야만 했다. ⓒ 한준호

- 항공사 계약직→데이콤ST 프로그래머→코스닥증권시장 애널리스트→MBC 아나운서→청와대 행정관. 여기에 대학시절 아르바이트까지 다양한 노동현장을 거쳐 왔다. 당신에게 노동이란 무슨 의미인가? 무엇을 느꼈고 어떤 영향을 끼쳤나?
‘괜찮은 직장’을 많이, 오래 다녀서 노동에 대한 생각이 사실 깊지는 못하다. 개인적으로 노동직군이 1차 집단과 2차 집단이 있다고 생각한다. 1차 집단은 대기업 중견기업에서 정직원으로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정년도 보장돼 있고, 오늘 하루 스트레스는 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일 뿐이지, 그 자체가 생계와 관련해서 고통을 받지 않는 사람들. 

2차 집단은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사람들이다. 나도 그렇고 내 여동생도 한 때는 비정규직의 삶을 살았다. 그 누구도 자기의 생계를 보장해주지 않는, 사회라는 울타리가 전혀 보이지 않는 삶이었다. ‘일이 힘들다 아니다’를 떠나서 생계만 유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조차도 비정규직으로 살면 가능하지가 않더라. 그래서 2차 집단에 대해 생각을 많이 했고, 한편으론 보편적 복지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됐다. 

- 최근까지 있었던 새로지음발전소랑 연관이 있나? 
그렇다. 정말 최악의 상황에서 한발 한발 올라선 경험이 있으니, 어려운 청년들에게 물고기를 잡도록 낚시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싶었다. 다들 안 된다고 할 때 어떻게 어려운 현실을 뛰어넘을 수 있는지 가르쳐줬다. 새로지음발전소를 통해서 청년들에게 어떻게 하면 열악한 환경을 뛰어 넘을지, 꼭 1차 집단이 아니어도 자기만의 생존방식을 갖출 수 있는 방법을 함께 고민하고 컨설팅 해줬다.

- 얘기를 듣다보니, 청년과 연관 된 활동을 많이 했다. 원래 청년세대에 관심이 많은가?
사람이 이름대로 산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내 세레명이 '요한 보스코'다. 청년을 위해서 평생을 사신 신부님이다. 수녀님이 "준호는 아픔을 겪었으니, 나중에 훌륭한 사람이 되면 너처럼 어려운 이들을 도우라"는 의미에서 고1때 지어주셨다.

젊은 시절에 많이 힘들었다. 19살에 군대를 다녀와 들어간 첫 직장이 신문배급소였다. 거기서 먹고 자면서 신문배달을 하고, 나중에 대학에 들어가 학비를 벌기 위해서 매번 아르바이트를 찾아 했다. 하루 3~4시간을 자면서 남는 시간엔 계속 일을 했다. 기댈 곳 없는 삶이 원망스러운 적도 있었다. 그래서 형편이 어려운 친구들을 만날 때면 그걸 어떻게 극복을 했는지, 내 경험을 통해서 '너도 옳을 수 있다'는 용기를 자꾸 심어주려고 애를 많이 쓴다. 경험이 다양하다보니 그 친구들이 풀지 못하는 문제를 풀어줄 때가 종종 있다.

- 청년들을 위한 활동들이 정책에도 이어지나?
아니다. 전혀 별개다. 나는 방송인으로 당에 영입된 사람이기 때문에, 당이 그런 활동을 잘 알지도 못한다. 그냥 내가 가지고 있는 삶의 과제 같은 거다. 정치 활동이 끝나면 다시 청년·학생들에게 돌아가고 싶다. 

- 더불어민주당이 한준호를 왜 영입했나?
MBC 전 아나운서로 소개됐지만, 사실 방송정책 전문가로서 영입됐다. 청와대 국민소통수석비서관실 행정관도 그 역량을 인정받아 하게 된 거다. 방송정책전문가로 인정받은 사연이 좀 길다. 2014년에 한중 FTA 협상을 하던 때다. 협상 10차 때 미디어 분야가 다 빠졌다. 그 당시에 ‘나는 가수다’ 등 인기 프로그램이 중국에 수출됐다. 그런데 기술만 빼돌리고 우리나라 콘텐츠 산업에는 도움이 전혀 안 됐다.

그때 중국을 공부하는 스터디 그룹에 있었는데, 마침 그곳에 있던 변호사 한 분이 한중 FTA 협상에 관여하고 있었다. 그분에게 한중 FTA에 반드시 미디어분야가 들어가야 한다고 1시간 동안 브리핑을 했다. 그게 인상적이었는지, 방송통신위원회에 한중 FTA 미디어 협상 대응반이 만들어졌고 거기에 합류하게 됐다. 그때 함께 만든 협상안이 한중 FTA 12차 협상 때 문화협력챕터 부분의 미디어분야에 포함 돼서 가결 됐다. 

또 OTT 플랫폼도 만들었다. 2010년에 MBC 방송현장에서 쫓겨나있던 부서에서 하던 일 중 하나가 'POOQ'의 초창기 기획이었다. OTT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던 시절, 원래 프로그래머 출신이라 참여하게 됐다. 그런 것들을 경험했으니 당에서 방송정책 전문가로 영입한 거다.

ⓒ 참여와혁신 이연우 기자 yulee@laborplus.co.kr
ⓒ 참여와혁신 이연우 기자 yulee@laborplus.co.kr

- 경기 고양을에 전략공천 됐다. 방송정책으로는 지역 유권자들의 호감을 사긴 어렵지 않나?
당연한다. 내가 집중하려는 건 교통이다. 고양시는 신도시 중에서 교통문제가 가장 대두되고 있는 지역이다. 17년을 고양시에서 살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불편함을 느낀 부분이기도 하다. 정치인 선배 중 한 분은 "의원이 4년간 집중해서 못 풀 건 없다. 너무 많은 것을 하려 하지 말고 집중해서 하나만 하라"고 조언했다.

지역구 의원이라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을 해줘야 한다. 최소한 교통문제만은 해결하고 싶다. 현재 고양시 등 신도시 주민들이 불만을 갖고 있는 부동산 문제도 교통문제 완화로 풀어낼 수 있다고 본다. 그래서 대중교통 등을 포함한 포괄적인 교통문제 해결을 위해서 4년간 노력하고자 한다.

- 어떤 정치인이 되고 싶은가. 
국민에게 밀착하는 정치인이 필요하다. 정치는 '서비스'다. 국민의 니즈를 찾아서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정치란 ‘사회적 희소가치의 권위적인 배분’ 즉, 배분을 잘 하는 게 좋은 정치라고 이야기를 해왔다. 나는 좀 다르게 생각한다. 권위적 배분이 아닌 국민이 원하는 서비스를 파악하고 제공하고 싶다.

- 노무현 재단에 가입하고 노사모와 많은 활동을 했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각별한 마음이 있는 같은데, 왜 노 전 대통령이 좋았는지, 무슨 영향을 받았는지 궁금하다.
그분이 국민을 대하는 태도 때문이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이라 말했다. 그분이 하려던 정치 방향이 내가 지금 얘기하는 필요한 정치가 아니었을까 한다.

MBC 노조 집행부에서 활동할 당시, 좌우의 논쟁이 아닌 국민의 삶 속으로 좀 더 깊이 들어가는 정치가 필요하다고 생각을 했다. 당시 여당에서는 왜 우리가 미디어선진화법에 반대하는지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 법 자체가 정치적인 목적에서 나왔기 때문에, 산업 일선에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전혀 반영이 안 된 정책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하고자 했던 정치는 달랐다고 생각한다. 국민을 대하는 태도나 정치를 해석하는 태도가 나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정치를 배분으로 보지 않고, 늘 국민의 목소리를 들으려 했고, 정책에 담으려고 애 썼다.

-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정치를 해석하는 태도가 본인이 얘기한 ‘정치는 서비스다’라는 것과 상통하다는 얘긴가?
그렇다. 배분이 위에서 정책을 정하는 일이라면, 서비스는 국민의 요구를 정책으로 만드는 거다. 정책을 세우는 과정이 다르다.

- 노동자를 1차 직군, 2차 직군으로 나눈 것도 그렇고, 기회를 갖지 못하는 청년들을 얘기한 걸 볼 때, 약자에게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소외된 계층을 위한 정책을 계획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실은 관심 갖는 소외 계층에 청년도 있지만, 50~60대를 위한 제도를 마련하고 싶다. 큰 소외계층이라고 본다. 본의 아니게 회사를 나와서 생계를 이어갈 수 없는 50대 중반부터 70 직전까지의 삶이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내 아버지도 그랬지만, 50대 이후 직장을 나온 분들이 대개 직업을 갖지 못하거나 아파트 경비 등 노동여건이 좋지 못한 일을 하게 된다. 그들을 위한 복지정책이 뭐가 있는지 찾아 봤으나 거의 없었다.

ⓒ 참여와혁신 이연우 기자 yulee@laborpl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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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의 행보를 보면 여의도에서 시작해서 다시 여의도로 회귀를 하는 것 같다.
하하. 그 얘기를 최근에 누가 했었다. 그전까진 생각도 못 하고 있었다

- 작가라는 타이틀도 가지고 있다. 자신을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집요함. 예전에 MBC아나운서를 할 때도 썼던 말인데 '굉장히 부드럽게 집요'하다.

- 출간한 책에서 “내가 목표를 이뤘던 적은 있는데, 꿈을 이뤘던 적이 있었을까?”라는 문장이 있다. 지금도 마찬가진가?
실제 꿈을 이룬 적은 없던 것 같다. 정치는 꿈이 아니다. 정치인이 꿈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다만, 내가 정치를 통해서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에 선거에 도전하는 거다. 지금은 선거에 나가서 당선되는 게 목표고, 당선이 되면 내가 해야 하는 과제를 달성해야 하는 것이 목표다. 꿈과는 차이가 있다.

- 지금 꿈은?
사실 지금 꿈은 첼리스트다. 오케스트라에 잠깐 있었던 적도 있다. 50~60대가 되면 악기 연주를 하고, 가벼운 방송도 하고, 학생을 가르칠 수 있는 곳에서 많은 그들을 만나는 게 내 꿈이다.

- 작년 인터뷰 기사 중 “직업인으로서 내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 들면 떠납니다”라는 말을 했다. 정치인으로서 한준호의 역할이 뭔가? 
내 소명이 다 끝났으면 뒤돌아보지 않고 나오는 스타일이다. K-콘텐트 산업 진흥에 이바지 하고 싶다는 게 개인적인 목표다. 또 하나 과제라면 무분별한 가짜뉴스나 정제되지 않은 콘텐트를 어떻게 걸러낼 수 있을 것인지 좀 더 고민해야 할 것이다. 그 역할이 끝나면 내 발로 정치권을 나올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