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박싱] 이 주의 인물 : 한국의 나이팅게일(feat. 헌신과 현실 사이에서)
[언박싱] 이 주의 인물 : 한국의 나이팅게일(feat. 헌신과 현실 사이에서)
  • 이동희 기자
  • 승인 2020.05.16 19:04
  • 수정 2020.05.16 19: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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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트 : #백의의천사도 #아니고 #백의의전사도 #아니다
국제간호협의회(ICN)는 2020년 제49회 국제 간호사의 날 슬로건을 ‘간호, 세계를 건강하게(Nursing the World to Health)’로 정했다. ⓒ 국제간호협의회
국제간호협의회(ICN)는 2020년 제49회 국제 간호사의 날 슬로건을 ‘간호, 세계를 건강하게(Nursing the World to Health)’로 정했다. ⓒ 국제간호협의회

언박싱(unboxing)은 말 그대로 ‘상자를 열어’ 구매한 제품의 개봉 과정을 보여주는 것을 말합니다. 언박싱 과정을 지켜보면서 어떤 제품이 나올지 기대하고 궁금증을 해소하는 재미를 얻습니다. 자, 이번 주 <참여와혁신>이 선정한 이주의 인물은 누구일까요?

이 주의 인물 : 한국의 나이팅게일

지난 5월 12일은 ‘국제 간호사의 날(International Nurses Day)’이었습니다. 국제 간호사의 날이 뭔지 생소한 분들도 많을 텐데요. 국제 간호사의 날은 1972년 국제간호사협의회(ICN, International Council of Nurses)가 근대 간호학의 창시자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을 기리기 위해 지정한 날로, 간호사의 사회적 공헌을 기리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었습니다.

간호사의 사회적 공헌, 여러분은 어떤 게 생각나시나요? 아마 코로나19 최전선에서 감염병과 싸우고 있는 간호사들의 노고와 헌신이 쉽게 떠오르실 겁니다.

하지만, 이번 언박싱 이주의 인물에서는 간호사의 ‘헌신’보다는 ‘현실’에 주목하고자 합니다. 코로나19 사태가 터진 이후 헌신과 희생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이들이지만, 국제 간호사의 날을 맞아 우리나라 간호사의 현실을 꺼내보려고 합니다.

간호사의 노동 현장이 나아갈 길은

지난 12일, 국제 간호사의 날을 기념해 ‘코로나19 최전선에 선 간호사들의 나이팅게일 선언’ 기자회견을 개최한 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위원장 나순자)는 “코로나19 최전선에 선 간호사들을 영웅으로 칭하고 사회 각계각층에 격려와 응원이 쏟아지고 있는 것과 달리 간호사들이 딛고선 간호 현실은 참혹하다”고 밝혔습니다.

현장에서 일하는 간호사에게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천안의료원에서 일하는 간호사 박미진 씨와 건양대학병원에서 일하는 천지수 간호사의 목소리입니다.

□ 박미진 천안의료원 간호사

간호사들은 10분이 넘게 시간이 걸려 입던 보호복도 이제는 모든 것이 적응해나가는 단계라고 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

바로 환자들의 무례한 요구와 폭언에 지친다며 여전히 감정노동에 노출되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간호사들의 이야기입니다. ‘피곤하고 지쳐요’, ‘그렇게 자존감이 떨어져 숙소에 돌아가면 혼자 눈물을 흘리고 잠이 들 때도 있었어요’라는 말을 들을 때면 어떻게 위로를 해야 하나 막막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고맙다’, ‘수고 한다’고 말하는 환자들도 있지만 백 번 좋은 말을 들어도 한 번의 폭언이 두고두고 가슴에 상처로 남는다고 했습니다.

코로나가 잦아들 즈음 메르스 때와 마찬가지로 맨 앞에 가장 위험한 자리에 서서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킨 간호사들은 지친 몸과 실망을 끌어안고 가장 맨 아래 보이지 않는 곳으로 또 파묻히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습니다. 비슷한 일을 겪었지만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그때의 불신과 실망 속에서 우리 간호사들이 더 이상 현장을 떠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의료인력의 안정적인 적정수급과 경력간호사의 우대, 재직을 할 수 있게 유도 할 수 있는 면밀한 제도적 장치나 계획이 없이는 매년 신규간호사 배출 증가율이 OECD 국가 중 1위일지라도 지금도 앞으로도 실제로 현장에서 일하는 간호사는 지금처럼 여전히 부족할 것입니다

간호사가 직면하게 되는 현장의 어려움들을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거나 직업적인 사명감으로 버티기에는 이미 한계점에 와 있습니다. 희생과 직업윤리를 내세운 간호사의 헌신을 바라기만 하며 현장으로만 내몰 것이 아니라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간호에 최선을 다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정부와 관계부처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 봅니다.

□ 천지수 건양대학병원 간호사

저희의 근무시간은 8시간입니다. 8시간씩 3교대로 이루어져 있지만 일할 사람이 부족하여 최소 인력보다 부족한 인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당연하게 요구되는 1시간 전 출근과 퇴근시간 이후 2~3시간씩 남아서 근무하는 일이 다반사입니다. 실질적으로 근무시간은 10시간에서 12시간가량 근무하게 됩니다. 부족한 인력과 과중한 업무로 초과근무는 필수가 되었지만 초과근무를 신청하기에는 현실의 장벽이 너무 높습니다. 24시간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지만 퇴근 한 시간 전에 신청한 초과근무만 인정하고 있으며 그나마도 담당 환자가 심폐소생술을 할 경우에만 단 2시간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들로 3년 이하 간호사의 사직률은 80% 가까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의료현장에서 숙련된 의료 인력의 누출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600여 명이 넘는 간호사들 중, 올해 10년 근속한 간호사는 단 9명이였습니다. 그 중에도 교대 근무하는 간호사는 단 3명에 불구합니다. 너무 힘들어 사직을 한다고 하면 이기적이라고 합니다. 남은 사람은 생각하지 않냐고 합니다. 인력이 부족하여 공짜노동에 장시간 노동에 지쳐 나갈 때면 타인에게 배려 없는 사람으로 취급 받습니다. 병원의 책임을, 사회의 책임을 한 간호사에게 모두 전가합니다. 이것이 지금의 간호현장 입니다.

현장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가장 시급한 것은 현장의 적정 인력에 대한 논의와 적정 인력을 유지할 강제성이 필요 합니다. 현재 배출된 간호사의 수도 충분합니다. 하지만 절반이 유휴간호사인 것이 문제 입니다. 그들이 현장으로 나올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근무하는 적정시간인 8시간은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이제는 그 안에 맞는 적정 인력과 적정 업무가 필요 합니다. 언제까지 개인의 업무 능력이 부족하다며 개인에게 탓을 돌릴 수는 없습니다. 병원과 사회의 부족함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림으로 우리는 태움이라는 부작용이 발생하는 것을 보았고 경험하였습니다.

간호대학의 교육과정만으로는 현장 투입이 어렵다는 것 또한 모든 이들이 알고 있습니다. 부족한 교육과정으로 인한 태움 또한 숨길 수 없는 현실입니다. 그렇다면 입사 이후 신규 간호사의 교육을 모두 병원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교육부도 함께 책임져야 합니다. 트레이닝 기간 동안을 온전히 보장해 줄 수 있는 사회적 장치가 필요합니다. 이제는 사회와 병원이 의료의 질 향상을 위하여, 의료인을 위하여, 국민의 안전을 위하여 관심 갖고 노력해야 할 때 입니다.

최근 우리 사회 각계각층에서는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최전선에서 힘쓰고 있는 의료진을 응원하는 ‘덕분에 챌린지’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의료진에 대한 감사함과 응원을 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덕분에 챌린지가 캠페인으로 그치지 않도록, 의료 현장의 노동이 존중받을 수 있도록 한걸음 더 나아가야 할 때입니다. 현실을 뒤로한 채 언제까지고 헌신에만 기댈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