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혜의 온기] 내 일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최은혜의 온기] 내 일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 최은혜 기자
  • 승인 2020.06.02 13:50
  • 수정 2020.06.02 13: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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溫記 따뜻한 글. 언제나 따뜻한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참여와혁신 최은혜 기자 ehchoi@laborplus.co.kr
참여와혁신 최은혜 기자 ehchoi@laborplus.co.kr

최근에 내 일의 범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 아디다스코리아에서 벌어진 ‘직장 내 괴롭힘’사건을 보도한 것이 그 계기다. 이 기사는 제보에서 보도까지 한 달이 소요됐다. 이 기사는 다루기 조심스러운 사안이었고 그래서 여러 단위의 입장이 담겨야만 했다.

10명이 넘는 사람들이 자신이 겪은 ‘직장 내 괴롭힘’ 사례를 아디다스코리아노조에 제보했다. 아디다스코리아노조는 그 사례를 기자에게 알렸다. 상상하지도 못한 사례들을 접하면서 어디까지 보도해야 하는지 고민스러웠다.

처음 작성한 기사에는 사례가 전혀 담기지 않았다. 내 섣부른 보도로 피해자가 특정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컸다. 제보를 바탕으로 기사를 작성한 것은 맞지만 기사는 일반적인 내용을 담아내는, 딱 그 정도였다. 결국 데스크와의 논의 후 일부 사례를 집어넣었다. 피해자들이 겪었던 괴롭힘의 내용이 어느 정도 담긴 기사가 됐다. 기사가 노출된 후, 아디다스코리아노조 위원장과의 통화에서 아디다스코리아노조 위원장은 “소개된 사례의 피해자가 조금 불편해했는데 잘 설명했다”고 말했다.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아디다스코리아노조의 경우처럼 가끔 노조의 제보를 받아 사례를 포함하는 기사를 작성할 때가 있다. 제보 사례를 기사에 담아내면 기사가 풍성해진다고 생각했다. 현장성과 파급력이 더 커진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번 일을 겪으면서 ‘내가 누군가의 불행을 전시하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자는 어떤 문제를 공론화하는 역할을 하는 직업이다. 좀 더 큰 반향을 위해 기사의 형식을 고민한다. 최근의 일로 기사의 형식과 함께 내 기사에서 담아내는 내용의 수준까지 고민하게 됐다. 나는 어디까지 다뤄야 할까. 내 일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지난 기사를 작성하던 당시, 아디다스코리아측은 “개별 사안에 대해서는 대외비인 관계로 구체적으로 상황 설명이 어렵다”는 공식입장을 밝혔다.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공식입장에 아디다스코리아와 아시아, 글로벌에 각각 메일을 보냈다. 아디다스코리아 내에서 발생한 직장 내 괴롭힘 사건과 관련해 묻고 싶었던 내용을 모두 담았다.

답은 아디다스아시아에서만 받을 수 있었다. 아디다스아시아의 메일은 내가 취재과정에서 가지게 된 의문을 하나도 해소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메일 말미, “우리 직원의 사생활과 기밀을 존중하기 위해, 이 특정 사건에 대해 언급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다시 고민한다. 기자는 어느 수준까지 물어봐야 할까. 기자가 쓰는 기사에는 어느 수준의 사례가 담겨야 할까. 그래서 내 일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