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박싱] 이 주의 인물 : 김아름
[언박싱] 이 주의 인물 : 김아름
  • 최은혜 기자
  • 승인 2020.06.13 00:00
  • 수정 2020.06.12 22: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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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금융노조 #3.8 세계여성의 날 #유리천장 #38초 유리천장 영상 공모전 #위원장상

언박싱(unboxing)은 말 그대로 ‘상자를 열어’ 구매한 제품의 개봉 과정을 보여주는 것을 말합니다. 언박싱 과정을 지켜보면서 어떤 제품이 나올지 기대하고 궁금증을 해소하는 재미를 얻습니다. 이번 주에 <참여와혁신>이 주목한 인물은 누구일까요?

이 주의 인물 : 김아름(사무금융노조 38초 유리천장 영상 공모전 위원장상 수상자)

제112주년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민주노총 사무금융노조 여성위원회가 채용과 승진과정에서의 여성 차별에 대한 문제의식을 주제로 한 ‘사무금융노조 38초 유리천장 영상 공모전’을 실시했습니다. 3월 8일부터 5월 18일까지의 공모기간 중 총 39편의 영상이 공모전에 접수됐다고 합니다.

지난 10일, 사무금융노조는 접수된 39편의 영상 중 9편의 수상작을 선정해 발표했습니다. 정광원 사무금융노조 여성위원장은 “(공모작) 대부분 공감되는 내용이었다”며 “공모작 수상작을 중심으로 조합원 대상 후속 캠페인을 적극 펼치겠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6가지의 까다로운 심사기준에 의해 평가된 공모작 중 사무금융노조 위원장상을 차지한 작품은 김아름 씨(37)의 <변화의 두드림>이라는 작품입니다. <참여와혁신>은 김아름 씨에게서 작품 제작 과정에 대해 더 들어봤습니다.

변화의 두드림 중. ⓒ 사무금융노조 유튜브
<변화의 두드림> 중. ⓒ 사무금융노조 유튜브

-자기소개를 좀 해주세요.

이름은 김아름입니다. 37살이고 원래는 그림 그리는 일을 하는데 코로나19로 인해서 지금은 무직이에요.

-‘사무금융노조 38초 유리천장 영상 공모전’에는 어떻게 참가하시게 됐나요?

사실 공모전 사이트에 ‘사무금융노조 38초 유리천장 영상 공모전’을 한다고 올라왔어요. 그래서 공모전에 작품을 출품하게 됐어요. 예전에 성매매 근절을 위해 조직된 단체에서 지원을 받아 영상을 만든 경험이 있어서 공모전이 눈에 들어왔나 봐요.

-작품을 봤는데 검정 펜으로 그린 그림으로만 작품이 구성돼있어요. 검정 펜으로 그린 그림으로 작품을 구성한 이유가 있을까요?

영상을 보셔서 아시겠지만, 이게 스케치를 통해 하나의 완성된 그림을 그려낸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려내면서 영상이 진행되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그림에 조금 더 집중되길 바랐어요. 또 제가 자막 없이 그림만 봐도 이해되는 영상을 만들고 싶었거든요. 분량이 38초로 제한돼 있잖아요. 분량이 짧으니까 잠깐만 봐도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이해가 가길 바랐습니다. 굳이 검정 펜을 고른 이유는 흑백 그림이라면 조금 더 도시의 삭막함이 잘 드러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단조롭게 그림이 흘러가죠.

-영상 구상에서 제작까지 얼마나 걸리셨나요?

글쎄요, 한 2주 반 정도 걸린 것 같아요. 사실 영상을 제작하는 시간보다 구상, 그러니까 콘티를 짜는 시간이 더 소요됐어요. 콘티가 나와야 영상을 만들 수 있잖아요. 저는 영상에서 가장 중요한 건 콘티라고 생각하거든요. 콘티가 매끄러워야 영상도 매끄럽게 이어질 수 있어요. 그래서 콘티 짜는 데만 열흘 정도 걸렸어요.

콘티를 짤 때 부수적인 내용이 많아서 그걸 빼는 작업을 많이 했어요. 여성 비정규직이 많은 마트노동자의 얘기나 은행권 여성 노동자의 얘기를 담아볼까 했는데 너무 많은 내용을 담으려고 하면 영상을 통해 어떤 얘기를 하고 싶은지 잘 드러나지 않을 것 같았죠. 또 분량도 짧았고요. 그래서 콘티를 간결하게 정리하는 작업을 많이 했어요.

-영상을 만들면서 어떤 부분을 가장 신경쓰셨어요?

영상이 담백해요. 저는 유리천장이 엄청 특별한 일이 아니라 일상에서 흔히 벌어지는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다이내믹한 사건이 아니라 흔한 일이요. 계속 일어나는 일이다 보니까 담담하고 담백하게 다루는 게 오히려 더 현실적이지 않을까 생각해서 그 부분을 많이 신경썼어요.

또 영상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영상에 등장하는 여성의 직업을 특정하기 힘들어요. 그게 의도한 거예요. 저는 유리천장이 어떤 한 직업에서만 발생하는 일이 아니라고 보거든요. 그래서 특정 직업으로 한정하기 어렵고 특정할 수 없었어요. 영상의 주인공이 어떠한 직업으로 특정되는 것을 굉장히 경계했던 기억도 나네요.

그리고 영상의 마지막에 "작은 변화의 두드림이 모일 때, 벽은 깨지게 될 것입니다"라는 자막이 나오면서 그림을 사람의 얼굴 모양으로 까맣게 칠해버려요. 그건 이건 누구 한 사람의 얘기가 아니라 여성 모두의 얘기라는 걸 의미해요. 이야기를 전체적으로 마무리하는 거죠.

-혹시 유리천장을 경험하신 적이 있나요?

사실 저는 그림을 그리기 때문에 직장생활을 한 적이 없어요. 그래서 유리천장을 경험했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저는 원래 샌드아트를 했고, 지금은 홍보용 영상을 만들거나 방송계에서 그림으로 영상을 만드는 일을 해요. 근데 이쪽 분야가 남성 종사자가 많아요. 촬영팀이 거의 남자거든요. 여성인 제가 그들 틈바구니에 끼는 것이 어렵다고 느낄 때가 종종 있긴 하죠.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는 ‘여자들은 이 일 힘들어서 오래 못 버티고 금방 나간다’는 얘길 듣기도 했어요. 이것도 유리천장이라면 유리천장이겠지만 저는 거의 혼자 작업을 하다 보니까 대부분은 직장을 다니는 친구에게 들었어요.

그렇다고 직장을 다니는 친구들이 명확하게 얘기하는 건 아니에요. 회사 내에 어떤 차별이 있는 것 같다 정도로만 얘기하죠. 굉장히 조심스럽게 얘기해요. 뭐, 여성인 나도 할 수 있는 일인데도 불구하고 남성인 다른 직원을 시킨다는 얘기 정도인 것 같네요.

-유리천장을 깨기 위한 ‘작은 변화의 두드림’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여성과 남성 모두 편견을 깨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여성은 여성이기 때문에 더 높이 올라가기 어렵다는 편견을 깨야 유리천장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또 남성들도 여성이기 때문에 못한다는 편견에서 벗어나야 하고요. 그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유리천장은 더욱 두꺼워진다고 봐요.

그래서 중요한 건 사회적인 목소리 같아요. 민감한 주제죠. 이 얘기만 나오면 서로 싸우자고 달려드는 주제라는 것도 잘 알아요. 하지만 이런 얘기를 지속해서 할 수 있는 대화의 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대화조차도 어려운 게 현실이잖아요. 편 가르기가 돼버리니 대화가 안 되고 그래서 문제해결도 어려워요.

대화의 물꼬를 터야 해요.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고 토론의 장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게 ‘작은 변화의 두드림’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노조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요?

노조야 말로 대화의 장을 만들어 줄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해요. 대화의 장은 누군가가 만들어줘야 해요. 그런 힘을 가진 건 노조고요. 좀 더 많이 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줘야죠. 노조 내부에서든 사업장 내에서든 유리천장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편안하게 서로 대화할 수 있는 기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