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노동자의 천국 프랑스, 그리고 프랑스 한국 법인의 한국인 노동자
[기고] 노동자의 천국 프랑스, 그리고 프랑스 한국 법인의 한국인 노동자
  • 참여와혁신
  • 승인 2020.06.25 00:00
  • 수정 2020.06.24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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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호 전국식품산업노동조합연맹 페르노리카코리아노조 위원장
ⓒ 페르노리카코리아노동조합
ⓒ 페르노리카코리아노동조합
▲ 이강호 페르노리카코리아노조 위원장
▲ 이강호 페르노리카코리아노조 위원장

2018년 10월 19일, 국정감사가 한창이던 가운데 환경노동위원회에 '발렌타인', '임페리얼', '앱솔루트' 등을 유통하는 프랑스 한국 법인 페르노리카코리아 장 투불 사장이 증인으로 채택되었다. 그리고 회사 내에서 자행 중인 부당노동행위와 고위직 임원의 갑질 및 성희롱에 대하여 집중 추궁을 받는다. 당시 장 투불 사장을 증인으로 불러들인 임이자 의원은 주어진 질문 시간의 말미에 이렇게 일갈한다.

“대단히 실망스럽습니다. 세계 어느 나라 보다 인권을 존중하고, 프랑스 대혁명을 했던 나라의 사장님께서 한국에 와서 영업을 하시면서 이렇게 헌법을 무시하고, 관련 노동조합법 무시하고, 근로기준법도 무시하다니.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국정감사가 끝나자마자 해당 노동청의 특별근로감독이 있었고, 해당 갑질 및 성희롱 임원에 대해 인사징계 지시를 내림과 동시에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검찰의 수사 지휘를 통해 '기소'로 송치되는 결과까지 진행이 되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페르노리카코리아의 노동자들은 직장 내에서 벌어지는 노조 탄압이 종식이 되고, 노사상생으로의 대전환을 꿈꿨을지도 모른다.

2016년 장 투불 사장이 한국에 부임할 때만 해도, 페르노리카코리아의 노사관계는 대표이사와 노조위원장이 함께 길거리 브랜드 홍보를 할 정도로 괜찮았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노사 교섭이 삐걱대고 충돌을 더해가면서 경색 국면으로 전환되었다. 한 임원의 직장 내 갑질과 욕설, 성희롱이 버젓이 횡행함에도 사측은 눈감아주기에 급급했으며, 이에 결국 노사관계는 파탄을 맞이하게 된다. 노동조합은 갑작스러운 사측의 태도변화에 의구심을 갖던 중, 노동조합과 관련된 경영진의 회의 문건 및 노동조합에 대한 사장의 적대적 발언이 여실히 드러난 녹취 파일을 입수하면서 그간의 물음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었다.

“노조를 공격하고 싶다. 노조는 방해되는 존재다. 내가 있으니 노동조합이 있을 이유가 없다. 노동조합이 파업을 하면 위원장을 비롯한 간부들을 전원해고 하겠다. 노조에게 주는 복지기금을 중단하면 노동조합은 미칠 것이다. 유니온샵을 해지하면 노조는 와해될 것이다. 유니온샵 해지에 대해 매우 흥분된다.”

노동조합은 쏟아져 나오는 충격적인 발언을 믿을 수 없었다. 치밀하게 준비 중인 노조 분쇄 계획에 대해 심각한 위기라고 판단해 시위를 시작함과 동시에 이 상황을 언론에 알리고 국회의 문을 두드린 결과, 위와 같이 프랑스인 사장이 대한민국의 국회에 불려나가 질타를 받게 된 것이다.

그로부터 약 2년이 지난 지금, 페르노리카코리아 노동자들의 삶은 나아졌을까?

더욱 거세지는 노조 분쇄,
그리고 버텨내는 노동조합


국정감사 이후, 회사는 노조를 상대로 번잡한 문제들을 다뤄가며 시간과 비용을 들이는 것이 비효율적이라는 결론을 내렸을 것으로 추정한다. 목소리를 내는 집단을 회사 밖으로 내몰면 그 소리가 현저히 줄어들 것이라는 기대를 했던 걸까? 일은 이듬해에 일어났다. 회사는 경영난을 주장하며 강제적 정리해고를 시행했다.

지난 10년 간 단 한 번도 적자가 난 적 없었고, 최근 3년 간 한국에서 벌어들인 수익 중 300억 이상을 본국으로 배당하는 회사가 구조조정을 결단했다는 건, 노동조합을 제거하려는 목적 외에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회사가 내놓은 구조조정 대상자 중 90%가 위원장을 비롯한 노조 간부 및 조합원이었으니 말이다.

설상가상(雪上加霜)의 상황에서 노동조합은 투쟁을 외치면서도 누적된 피로에서 비롯된 현실적 판단으로 눈물의 구조조정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결과로 조합원 수는 1/5 수준으로 줄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생존을 위해, 골리앗 같은 회사를 상대로 싸워야 하는 힘겨운 현실을 반복 중에 있다.

회사의 부당노동행위를 수사해 오던 검찰은? 무려 14개월이라는, 기나긴 수사 기간을 거친 뒤 본 사건을 '불기소 의견'으로 종결시킨다. 3개월 정도면 끝나야 할 사건이 14개월이라는 긴 시간이 걸린 점은 미뤄두고서라도, 수사 미진과 판단 유탈로 가득한 검찰의 불기소 이유서에 노동조합은 허탈함을 감출 수 없었다. ‘공정’이 생명인 수사기관마저 처절한 투쟁을 가로막고, 노동자에게는 쥐약이자 회사의 가장 큰 무기인 '시간'적 측면에서 도움을 준 것이다.

‘정의는 가혹하다’는 말이 있다. 가혹한 '정의'가 무너지면 노동조합도 도미노처럼 무너질 것이기에, 여러 고통을 감내하면서 다시 버텼다. 지난한 시간을 버텨낸 이후, 정의로운 판단이 검찰에서 나올 것이라 큰 기대를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검찰은 대형 법률사무소가 변호한 회사의 입장이 고스란히 담긴 반쪽짜리 불기소 이유서를 내세우며 하루 빨리 이 사건에서 손을 떼고 싶어 하는 모양새였다. 노동조합은 인정할 수 없는 검찰의 결론에 다시, 항고를 통해 다시금 이 사건을 살펴볼 것을 요청했다.

마치 '노동조합은 종국에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명제를 증명이라도 하듯, 여러 악재들이 겹치는 상황에서 조합원들은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라는 절망감과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외국계 기업에서 '노동조합' 하기
페르노리카코리아 노동조합은 소멸의 선례가 될 것인가?


흔히 외국계 기업이라고 하면 탄탄한 복지와 세련된 기업 문화 등을 생각하기 마련이다. 아마 앞선 고정관념이 외국계 기업에서 노동조합을 꾸려나가는 것을 가로막는 첫 번째 허들일지도 모른다. 외국계 회사의 노동조합은 외국 자본으로 인한 고용 불확실성, 최종 결정권 없는 한국 법인 대표이사와의 노사교섭, 국내 대형 로펌을 등에 업고 진행하는 노사협의 등 여타 국내 기업들과는 사뭇 다른 허들을 앞에 두고 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페르노리카코리아 노동조합은 일하는 자의 정당한 권리와 직장 내 민주주의를 위해서 굳건히 버티고 있다.

지금도 회사는 노동조합 무시와 인사보복, 부당노동행위를 일삼으며 소수로 전락한 노동조합을 끊임없이 괴롭히고 있다. 정식 교섭 간에 한 임원은 “결국에는 회사가 이길 것”이라며 으름장까지 놓는다. 그럼에도 노동조합은 끝까지 투쟁한다. 왜?

외국계 기업 내 노동조합의 현실을 드러낸 드라마 <송곳>에서 나온 대사 중 “저희 회사는 프랑스 회사고 점장도 프랑스인인데 왜 노조를 거부하는 걸까요?"라는 질문에 "여기서는 그래도 되니까”라고 대답하는 명대사가 있다. 프랑스 기업이었던 ‘까르푸’가 대한민국에서 철수하는 과정이 각색되어 있는 <송곳>은 페르노리카코리아와도 맞닿아 있다. ‘여기서는 그래도 되는 줄 아는’ 외국계 자본의 파행이 악순환을 반복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페르노리카코리아 노동조합은 이를 거부한다. 남아있는 조합원의 생존권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에서는 된다’는 그릇된 인식을 종식시키고, 당당하게 ‘노조할 권리’를 되찾아 외국계 자본이 벌이는 악순환을 반드시 끊어야 한다. 페르노리카코리아 노동조합마저 소멸되는 노동조합으로 남는다면, 악용하기 위한 외국계 기업들은 언제든 다시 생겨날 것이다.

누군가 말한다. 회사는 노사 분규의 상황을 대처함에 그저 '일'로 대하지만, 노동자는 일만이 아닌 본인의 '삶'을 걸고 대하기에 피해는 노동자 쪽이 더 크다고. 회사는 쉽게 돈을 쓰고 마무리하면 될 일이라 생각할 수 있으나, 노동자의 경우 삶이 송두리째 날아갈 수 있다. 투쟁의 시작부터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그러나 페르노리카코리아 노동조합은 무너지지 않고 대오단결을 끝까지 유지할 것이다.

다가올 뜨거운 여름에도 투쟁이 계속 될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