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내괴롭힘 금지법 시행 1년…45.4% “갑질 경험 있다” 괴롭힘 여전
직장내괴롭힘 금지법 시행 1년…45.4% “갑질 경험 있다” 괴롭힘 여전
  • 이동희 기자
  • 승인 2020.07.05 16:00
  • 수정 2020.07.05 15: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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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갑질119, 직장인 1000명 설문조사 결과 발표
신고 경험은 3%뿐, “신고해도 괴롭힘 인정받지 못해”

“하루를 꼬박해도 끝내기 힘든 일을 오후에 주고 오늘 안에 끝내라고 하거나 퇴근 직전에 일을 주면서 오늘 안에 끝내라고 합니다. 추가 업무를 당연한 듯이 시키면서 야근 수당은 없습니다. 월급은 최저임금을 줍니다. 무엇보다 견디기 힘든 건 저를 무시하는 언행입니다. ‘너 아니어도 여기 들어오려는 애들 줄 서 있어. 예전에는 4년제 아니면 받아주지도 않았어. 4년제 졸업한 애들은 치열하게 경쟁해서 그런지 달라. 너 이 회사 나가면 너 받아주는데 아무 데도 없어. 그 학력으로는 어디 다른 데 취업도 못 해. 고등학생 때 뭐 했냐 남들은 지방에 4년제라도 돈만 있으면 들어가는데 너는 그것도 못 갔냐.’ 너무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은데,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을까요?”(2020년 6월, 직장갑질119 제보)

직장갑질119가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1년을 맞아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 1년 동안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했다고 응답한 비율은 45.4%로 나타났다. 직장 내 괴롭힘을 당했을 때 회사나 노동청에 신고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3%뿐이었다.

직장갑질119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1년을 맞아 19~55세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2020년 6월 19일부터 25일까지 ▲직장갑질 감수성 지수 ▲직장갑질 경험 및 대응 ▲갑질금지법 인식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다.

설문조사 결과, 지난 1년 동안 직장 내 괴롭힘 경험을 묻자 직장인 1,000명 중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했다’고 응답한 사람은 총 454명(45.4%)으로 조사됐다. 직장 내 괴롭힘 종류는 모욕·명예훼손(29.6%), 부당지시(26.6%), 업무 외 강요(26.2%), 폭행·폭언(17.7%) 순으로 높게 나타났다.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했다고 응답한 454명에게 괴롭힘 수준을 묻자 ‘심각하다’는 응답이 33.0%로 나타났다. 특성별로는 상용직(29.6%)보다 비상용직(38.5%)이 ‘심각하다’고 응답한 비율이 높게 나타났다.

직장 내 괴롭힘 대응을 어떻게 했는지 묻는 질문(복수응답 가능)에는 ‘참거나 모르는 척 했다’(62.9%), ‘개인적으로 항의했다’(49.6%), ‘친구와 상의했다’(48.2%), ‘회사를 그만두었다’(32.9%) 등의 응답이 이어졌다. ‘참거나 모른 척 했다’는 응답자에게 그 이유를 물었더니 ‘대응을 해도 상황이 나아질 것 같지 않아서’ 응답이 67.1%로 높게 나타났으며 ‘향후 인사 등에 불이익을 당할 것 같아서’ 응답은 24.6%였다.

자료 : 직장갑질119

직장 내 괴롭힘을 당했을 때 회사나 노동청에 신고한 응답자는 3.0%에 불과했다. 신고를 했지만 괴롭힘을 인정받지 못한 비율이 50.9%였으며 신고 후 지체 없이 조사와 피해자 보호 등 법에 명시된 조치 의무를 준수하지 않았다는 응답과 신고를 이유로 부당한 처우를 경험했다는 응답은 43.3%를 차지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는 ▲가해자 처벌 조항 신설(77.6%) ▲가해자가 대표자인 경우 처벌(7.7%)이 제기돼 85.1%가 가해자 처벌조항 신설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조치 의무 불이행에 대해 처벌하는 조항을 넣어야 한다는 응답은 81.2%, ▲5인 미만 사업장 적용은 82.1%, ▲제3자(특수인) 적용은 84.4%로 높게 나타났다.

이번 설문조사에서는 2020 직장갑질 감수성지수도 함께 조사했다. 감수성지수는 입사에서 퇴사까지 직장에서 겪을 수 있는 불합리한 처우에 대해 30개 문항의 지표로 개인의 직장갑질 감수성을 수치화한 것으로, 100점에 가까울수록 직장갑질 감수성이 높다는 결과를 보여준다.

조사 결과, 2020 직장갑질 감수성지수는 69.2점으로 나타났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니 감수성지수는 여성(72.4점), 20~30대(20대 71.5점, 30대 70.5점), 비상용직(70.2점), 공공기관(71.5점), 일반사원급(70.5점), 저임금노동자(150만 원 미만 71.1점, 300만 원 미만 70.0점)에서 높게 나타났다.

직장갑질119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이전인 2019년 6월에도 같은 조사를 진행한 바 있는데, 당시 결과는 68.4점이었다. 올해 결과는 지난해와 비교해 0.8점 높아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인식에 큰 변화가 없다는 것이 확인됐다.

윤지영 변호사(공익인권법재단 공감)는 “상명하복, 집단주의적 직장 문화가 직장갑질 감수성을 떨어뜨리는 원인 중 하나이지만 근본적으로는 돈만 주면 함부로 대해도 된다는 노동자에 대한 잘못된 편견이 바뀌고 노동자의 권리가 강화되어야 감수성도 올라갈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직장갑질119는 설문조사를 종합한 결과, “직장 내 괴롭힘 시행으로 갑질이 조금 줄어들기는 했지만, 여전히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권두섭 직장갑질119 대표 겸 변호사는 “우선 사용자에게 신고하도록 한 조항을 바꿔 노동청에 직접 신고할 수 있도록 명시하고 예방 교육을 의무화해야 하며 4인 이하 사업장, 특수고용노동자들도 법의 보호를 받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직장갑질119는 지난 2017년 11월 1일 출범한 시민단체로, 140명의 노동전문가, 노무사, 변호사들이 활동하고 있다. 노동인권실현을위한노무사모임, 민주노총 법률원(금속법률원, 공공법률원, 서비스연맹법률원),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희망법 등 많은 법률가들과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노동건강연대 등 노동전문가들이 바쁜 일정을 쪼개 오픈카톡 상담, 이메일 답변, 밴드 노동상담, 제보자 직접 상담 등을 진행하고 있다.